구강노쇠 진단의 세번째 항목으로 돌봄 노인의 구강건조에 대한 평가이다. 침(타액)은 하루에 1-1.5L 분비되고, 그 성분들의 완충, 윤활, 항균 및 소화 작용으로 구강질환을 예방하고 음식물을 잘 먹을 수 있게 해 준다. 일반적으로 침 분비가 반 이상 줄어들면 구강건조(입 마름)를 느끼는데, 80세 이상 노인의 40%에서 구강건조가 보고되고 있다. 문제는 스스로 구강관리가 어려운 돌봄 노인에서의 구강건조가 구강불결, 저작 불편 및 삼킴 곤란을 더욱 악화시켜 흡인성 폐염의 발생 빈도를 높인다는 점이다. 이에 필자는 나름대로 돌봄 노인의 구강건조에 관련된 제반요인들을 살피면서 그 관리법을 제시해 보고자 하였다. # 돌봄 노인의 구강건조 파악과 측정 구강건조란 어디까지나 입이 마르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이다. 이는 침이 구강점막으로 흡수되며 구호흡으로 빠져나가는 양보다 적게 분비되거나 침 성분이 변해도 느끼기 때문이다. 돌봄 노인에서의 구강건조는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관계한다. 먼저 노화에 의한 타액선 기능 감소와 약한 입 주변 근력에 의한 타액선 자극의 부족이다. 여기에 알코올이 함유된 구강양치액 사용, 불결한 틀니 및 설태에 의한 구강 캔디다증 감염
고등학교 수학여행에 가면 장기자랑 대회를 합니다. 학생들이 주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춥니다. 늘 노래와 춤, 둘 중에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이 너무 구태 의연해 보였는지 수학여행을 앞둔 체육 시간에 체육 선생님께서 이제는 그런 틀에 박힌 것들에서 벗어나 뭔가 창의적인 것을 해봐야 한다고 한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귀담아 들은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장기자랑 대회… 모두가 춤과 노래를 준비하여 나온 가운데 딱 한 팀이 극을 준비해서 나왔습니다. 체육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은 그 학생들이었죠. 귀추가 주목된 가운데 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빗자루를 든 학생이 무대 위를 왔다 갔다… 오리걸음으로 몇 학생이 무대 위를 지나가고… 전달력이 전혀 없는 극은 그냥 그렇게 뭔가 하나보다 하다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수학여행 무대의 한계였습니다. 결국에는 춤을 잘 춘 학생이 1등, 노래를 잘한 학생이 2등과 3등을 차지하며 장기자랑 대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체육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은 학생들은 아무 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세트도 조명도 부실하고, 심지어 마이크도 충분치 않은 상황, 체육 선생님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 말씀을 귀담아 들은
1993년 4월 24일에 개원하였으니, 올 4월 24일이 만으로 3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같은 안산지역 동문후배들이 저의 사진이 들어있는 케이크와 행운의 열쇠 키 등 깜짝 이벤트를 해줘서 감동의 물결이 아직도 저의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개원 후 첫 환자인 초등학생이 이제는 40대가 넘는 나이가 되었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향후 얼마나 진료를 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저의 마지막 은퇴하는 그날의 마지막 환자도 상상해 보았습니다. 먼저 저의 젊은 날을 함께한 진료실을 바라보며, 공간과의 이별에 대해 작별의 눈물이 나올 거 같습니다. 아울러 저의 치과의사로써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신 환자분들의 생각에 목이 메일 거 같고,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울컥합니다. 또한 더 이상 일을 안 한다는 시원함보다는, 더 이상 일을 못한다는 아쉬움이 클 거 같습니다. 처음 첫 환자를 진료했을 당시의 초심도 중요하지만 은퇴하는 그날을 상상한다면 지금 현재의 일하는 이 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만남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별도 동시에 생각할 때, 지금의 만남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 듯이 미래의 마지막 그날을 생각한다면 한순간도 허투루 지낼 수 없습니다.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관심을 가지고 보는 분야라 지난번에 챗GPT의 교육 활용에 관한 글 잘 보았습니다. 생각하다 보니, 이런 챗봇 같은 인공지능이 지닌 윤리적 문제는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일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익명 살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말씀 주신 것처럼, 지난번에 챗GPT(ChatGPT)와 교육에 관한 내용
거칠고 진한 것들보다 부드럽고 연한 것들이 더 살갑게 다가오는 것은 노안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 맞서는 것보다 순응하고 긍정하는 것을 더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귀에 들어오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은 고집스러움이 귓밥으로 가득 찬 연유도 있겠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잃지 않고 살아왔음도 인정해주렵니다. 말로 해명하고 모면하는 것보다 발로 뛰고 손으로 매만지면서 해결하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한 것은 오랜 세월을 전문가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오늘이 나와 당신과 우리들의 미래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은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넘치기를 희망합니다. 아름다움을 탐하는 것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지금”이, 행복하겠다는 결심의 순간이 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고, 미래는 나의 것, 당신의 것, 우리의 것이 될 테니까요.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탈북민들의 유튜브를 시청하다보면 북한의 인권탄압과 억압, 통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그들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고 또 대한민국 생활을 함으로써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하곤 한다. 이 분들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체험했기에 다시 북으로 간다면 상상하기도 싫다고 했다. 또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 도피생활을 하다 공안에 붙잡혀 다시 북송되어 투옥되고 교화 생활을 한 후라도 다시 탈북을 하는 이유가 한번 맛본 자본주의 자유를 잊지 못해서 재 탈북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만큼 인간에게 규제와 통제는 힘들게 한다. 그동안 우리 치과의사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라면 특권이고 아니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가던 절차들이 몇몇 의료인들의 이탈된 행동이나 사회적 물의를 가지고 정부나 정치인들이 흔히 얘기하는 국민의 편의를 위해서 자꾸 법과 시행령, 규칙을 만들어 통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의료인들은 힘들어한다. 몇 년 전에 의료인들의 의사면허증 신고제도를 만들었다. 의료인이 최초로 면허를 받은 후부터 3년마다 실태와 취업상황 등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신고를 해야 한다. 미신고 시 신고기한이 종료하는 시점부터 신고를 마칠 때까지 면허 효력이 정지되고 신고를 완료하면
봄이 오면 마음에 바람이 분다. 따뜻해진 공기를 피부가 먼저 느끼는 것처럼. 생명이 움트는 기운에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봄은 으레 꽃구경으로 만족했지만 올해는 구경만 하고 여느 해처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남들은 애완동물도 키우는데, 나는 식물을 키워보고 싶었다. 가족들은 이왕이면 키워서 먹자고 한다. 잔인한 것 같지만, 지구에 생명이 있어 온 이래 우리가 사는 방식이 그러한 것 아닌가. 내 몸이 살기 위해 남을 먹어야 하는 삶. 채소 씨앗을 뿌려서 키우고 자라면 뜯어먹고 싶었지만,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는 과정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자원과 노력이 들여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풍기와 연탄난로로 따뜻하게 만든 비닐하우스에서 모판 안의 씨앗을 키우기란 내 노력과 열정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고 발아를 기다리는 것은 인큐베이터의 미숙아가 잘 자라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이리라. 큰아이와 둘째를 키울 때도 하지 못한 정성을 씨앗에게 베풀기란 어려웠다. 초보자는 모종을 사서 키우기로 결심했다. 처음은 검색창에 ‘모종’을 써넣는 것으로 시작했다. ‘상추’부터 시작해서 ‘방울토마토’, ‘딸기’를 거쳐 눈에 들어온 모종은 ‘고추’
한국 토종 야생화 중에 ‘솜다리’가 있다. 다소 생소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에델바이스로 알려져 있다. 유독 관심이 생겨 찾아보니 원래부터 우리 고유의 솜다리라는 꽃은 설악산이나 한라산 일대에 자생하고 있었고 예쁘고 앙증맞은 꽃이다 보니 필자가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뽀송뽀송한 솜털이 난 국화과의 꽃으로 7월 전후로 개화하는 보호종에 속한다. 꽃말은 맑고 깨끗한 선녀의 마음씨로 귀중한 추억, 고귀한 사랑을 뜻하는데 에델바이스로 부르기 보다는 솜다리라고 기억하며 전통 우리 꽃을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해변의 바위나 절벽에 붙어사는 야생풍란처럼 솜다리도 인적 없는 절벽이나 척박한 산기슭에 꿋꿋하게 생명력을 지탱하고 있어 고고하고 신비한 자태와 함께 솜털처럼 부드럽고 깃털처럼 가볍고 귀여운 모습이다. 몇 년 전에 화원에서 씨를 구해 발아를 시도해 봤으나 실패하여 집에서 배양하기 어려운 식물인가보다 하며 단념했었는데 근자에 발아시킨 모종을 구입하여 열심히 배양 중이다. 꿈에 그리던 꽃을 인터넷상이 아니라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감격스럽고 황홀하다. 솜다리 종류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1)솜다리, 2)산솜다리, 3)한라솜다리, 4)들쑥꽃, 5)왜솜다리가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아내를 시작으로 아기와 저까지 온 가족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입니다. 변이를 거듭하며 독성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저희 가족에게는 이번이 첫 감염인지라 증상도 우려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양성판정을 받은 아내가 격리하는 동안 아기와 둘이서 이틀을 무사히 지냈지만, 3일째 되는 새벽에 발열과 함께 보채는 아기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응급실을 고민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평소에도 11개월 아기를 데리고 갈 만한 병원이 적은 탓이었습니다. 또 해열제를 먹이며 대증요법으로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데, 두 종류의 아기 해열용 상비약이 모두 최근 식약처 회수조치가 내려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보채다 지친 아기를 품에 안아 재우며 쉬지 않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정보를 모았고, 날이 밝자 가까운 소아과를 우선 방문하여 부자 모두 양성 확인을 받았습니다. 약도 넉넉히 받았고 온 가족이 양성이니 격리중인 아내도 귀가하여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안도하는 순간, 제 몸이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이틀을 앓아누운 동안 아기는 발열과 해열을 거듭하며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아직 다 낫지 않은 몸
자연이 대리석을 깎아내어 험준한 계곡을 만들고, 제비들이 날아들어 절벽 구멍에 둥지를 튼다는 곳. 바로 대만의 제일명승지라는 태로각 협곡입니다. 태백산맥을 동서로 횡단하기 위해 넘는 대관령, 미시령, 한계령 등이 해발고도 1,000미터 아래임에도 힘들게 쉬면서 넘어가는데, 대만에는 3,000미터가 넘는 고봉 200여개가 남북을 가로질러 중앙산맥으로 위치합니다. 일제도 식민지 대만을 수탈하기 위한 동서 관통도로는 만들지 못하고, 해안을 따라 철로를 만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대륙의 반대편 태평양 쪽에 자주국방을 위한 군사적인 요충지 마련을 위해, 장개석 총통의 아들 장경국이 중국본토에서 건너온 퇴역군인들과 죄수, 민간인 등 450여명을 동원합니다. 동쪽의 화련 태로각 협곡부터 서쪽의 타이중까지 192km를 뚫어 만든 도로가 바로 “동서횡관공로”입니다. 기술도 장비도 변변치 않던 시절이라 삽과 망치로 터널을 깎고 파서 10년 걸릴 공사를 단 4년 만에 끝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땀과 피로 만든 도로로, 그때 희생되었던 226명의 위패를 모신 절이 장춘사입니다. 그 길은 이제 태로각 협곡의 절경을 감상하는 최적의 공간으로 대만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사진
남과 북의 국력이 그만그만하던 1970년대 초, 육지에서 뚝 떨어진 서해와 남해의 수많은 낙도(落島)는 간첩선이 노리는 안보 취약지역이었다. 해군에서는 매년 정훈담당 중령을 단장으로 공연팀과 진료팀에 온갖 선물을 싸들고, 주민을 달래는(宣撫) 홍보선을 띄웠는데, 통상 중위를 보내는 유배(流配?) 자리에 필자가 찍혔다. 한 달 동안에 20여개 섬을 순회하는 강행군이었지만, 멀미를 모르는 체질 덕분에 크루즈여행처럼 즐겁고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그중에서도 해변이 온통 검은 몽돌로 뒤덮인 소안도의 하룻밤이 기억에 생생하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자리에서 일어나 해변에 나가 누웠다. 좌르륵 쓰르륵 파도에 밀고 쓸리는 자갈의 합창소리에 스르르 두 눈이 감긴다. 당시 대위 1호봉이 만원 남짓인데, 어느 일본회사가 자갈을 4억 원에 사가겠다고 제안했단다. 수만 년 파도에 갈고 닦인 자잔한 조약돌이 그토록 값진 자산이라니... 1995년 8월 치의신보에 실린 칼럼 ‘새로 적는 노트’를 일부 인용한다. “주택 2백만 호 건설은 6공 공약이었다. 건축자재가 동이 나자 저질 수입품을 마구 썼다. 소금기를 씻지 못한 바닷모래(海砂)에 자갈 대신 쇄석(碎石)이 들어갔다. 망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