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부평역 북광장으로 나와 왼편을 바라보면 서울티플란트치과의원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이 간판 위에는 지지난해 여름부터 ‘김건일치과 서울티플란트와 함께 합니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부평시민이라면 이 플래카드의 의미를 금방 알아본다. 부평역 일대를 지나다니며 30년을 봐왔던 치과가 그냥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김건일 원장에게 직접 진료 받은 환자라면 아직도 김 원장에게 기댈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김건일 원장(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의 치과가 지난 2022년 8월부터 근처에 있던 후배 김상용 원장(인천지부 치무기획이사)이 운영하는 치과와 합병·통합됐다. 실제적으로는 김건일 원장이 자신의 치과를 폐업하며, 수십 년 간 축적해 왔던 진료기록부 등을 후배 치과로 이관하고 자신은 페이닥터 형태로 환자를 이어서 진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순 치과 폐업이나 양도양수, 인수인계와는 다른 형태의 모델을 만들어 냈다. 올해로 80세를 맞은 김건일 원장은 “원래 65~70세 사이 은퇴를 생각했다. 그런데 진료에 대한 끈을 쉽게 놓을 수 없었던 게 50년 세월 쌓아온 환자들 때문이었다. 내가 치과 문을 닫으면 이들은 고아가 돼버리고 마는 상황이었다”며 “
“은퇴를 한다고 일을 안 하는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소득으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뤄지는 시기를 은퇴시점으로 삼고 현재의 자금 흐름부터 파악하는 것이 은퇴 준비의 첫 단계입니다.” 병·의원 경영 및 마케팅, 재무·세무교육 전문 업체 엠디캠퍼스의 김성진 대표이사로부터 은퇴를 준비하는 자본 운영의 방향성과 원칙 등을 들어봤다. 김 대표이사는 “아직도 막연하게 금융에 대한 충분한 학습 없이 투자 하거나 이마저도 미루고 있는 치과의사들이 상당수다. 개인의 재무제표를 만들어 특정 시점과 기간의 자금 유동성을 파악하고, 자신의 인생 계획에 따른 ‘투자 정책 명세서(Investment policy statement·IPS)’를 꼭 만들어 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투자의 핵심은 ▲전문인력을 활용한 간접투자 ▲분산투자 ▲개인 맞춤 포트폴리오 구성이다. 개원의들의 상당수가 개인연금저축 등에 자금을 넣고 있는데, 대부분 보험사 상품으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 그러나 이는 은행에서 파는 상품으로 수수료가 목적이라 주식형 상품 보다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같은 5%의 이율이더라도 은행에 적금을 드는 것보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수익률이
치의신보가 지령 3000호 발간을 맞아 발행인인 박태근 협회장과 인터뷰를 갖고 최근 주요 현안에 대한 견해와 치의신보의 책임 및 역할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월 13일 치협 회관 내 협회장실에서 진행됐다.<편집자 주> 3000호 맞아 치과계 여론 형성 더 큰 역할 당부 ‘디지털 치의신보’ 변혁 선도 고무적 시도 평가 회원 필수 정보 전달 전문지로서의 책무도 강조 Q. 갑진년 새해의 각오가 있다면? 그동안 열악한 여건 속에서 회무를 해오면서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이 배웠다. 지금은 경험들이 쌓였고 또 이른바 ‘내부 총질’에 대한 면역도 어느 정도 생겼기 때문에 회무 역량을 자신 있게 펼칠 수 있는 정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협회장의 경험치나 역량들이 결국 회원들에게는 자산이 될 수 있는 만큼 회무 동력을 실어 모든 혜택이 회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 올해는 좀 더 회무의 내실을 다지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특히 더 많은 임원들과 소통해 회무가 좀 더 체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 나갈 생각을 가지고 있다. Q. 지난해 연말 국립치의학연구원 법안 국회통과라는 큰 성과가 있었다.
■이민정 공보담당 부회장 "치의신보 발전 이끈 치의 선배·직원 노력에 감사 다양한 플랫폼 통해 독자들과 넓고 깊게 소통할 것"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텍스트가 가진 힘과 그에 따른 책임감은 큽니다. 이 가운데 오랜 역사를 가진 치의신보가 지금까지 발행된 것은, 책임감을 바탕으로 잘 짜인 글이 치과의사 회원들로부터 많은 신뢰를 받아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민정 치협 공보담당 부회장이 최근 치의신보가 지령 3000호를 맞은 것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이민정 부회장은 그간 치의신보가 질과 양적으로 발전해 온 것은 치과의사 선배들과 직원들의 노력 덕분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부회장은 “과거 대한여성치과의사회 회장 활동 당시, 여성 대의원 수 증원과 관련해 제가 직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발표했던 모습이 사진과 함께 기사로 나왔을 때 많은 보람을 느꼈던 적이 있다”며 “저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회원들은 치의신보에 게재된 기사를 보고 각자 의견을 나누는 등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특히 우리 치과의사가 다른 유관 단체와 협력하는 모습은 치의신보가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만큼 정보가 남달랐다”며 “또 기사를 통해 세
치의신보는 대한민국 치과계 역사의 ‘산증인’이다. 본지는 창간호를 시작으로 지령 3000호에 이르기까지 불굴의 생명력을 이어오며 치과계 발자취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지령 3000호 특집호를 맞아 본지가 장장 57년 2개월간 채워온 치과계 여백을 돌아봤다.<편집자 주> 본지는 1966년 12월 15일 ‘칫과월보’라는 이름으로 창간, 치과계 언론의 역사를 열었다. 창간호를 살펴보면, 새 출발에 대한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엿볼 수 있다. 지령 1호 2면에 실린 당시 최진환 공보이사의 기고에 따르면 해방 직후에도 치협의 기관지는 존재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폐간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 창간 시도가 있었으나 단 몇 호를 내놓고 폐간되는 등 애환의 점철이었다고 한다. 최 공보이사는 “이 회보가 깊은 뿌리를 내리도록 다 같이 힘을 모으는 곳에 살길이 열릴 것이다”라고 당시 기고에 썼다.<사진1> 제호처럼 본지는 창간호를 시작으로 한동안 매달 한 번 발행되는 월간지로 명맥을 이어왔다. 1967년 1월 15일자로 발행된 지령 2호에서는 1면 제호를 ‘齒科月報’로 변경했다. 1970년대 중반은 본지가 변혁을 위한 주춧돌을 놓은 시기다. 우선 광고지
한반도 서남단 항구도시 목포. 이곳에서 다시 뱃길을 한 시간 넘도록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전라남도 신안군의 외딴섬, 장산도(長山島). 번듯한 항구조차 마련되지 못해, 배에서 내릴 참에는 발아래 넘실대는 파도를 힐끔거리며 위태위태한 간이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야말로 오지(奧地)라 부를 수 있는 이곳을 기자가 찾은 이유는 단 하나. 치의신보 애독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동쪽을 봐도 바다, 서쪽을 봐도 바다. 사람 말소리보다 갈매기 목청이 더 클 것만 같은 섬마을에도 국민을 돌보는 치과의사가 있다니. 문득 한반도 어느 메고 치과의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어딜까 하는 생각이 밀려든다. 그렇게 항구에 서서 남도의 짜디짠 갯내에 취하기도 잠시, 드디어 치의신보 애독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장산면 보건지소에서 진료 중인 황민호 공중보건치과의사다. # 정보 전달 넘어 치의 삶 곁에 지난 2년여 동안 신안군 도서 지역에서 섬사람들의 구강건강을 지켜온 그는 자타공인 애독자답게 바쁜 진료 일정 속에서도 틈나는 대로 치의신보를 펼쳐 들었다고 말했다. 비록 외딴섬에 있을지라도 한 사람의 치과의사로서 치과계, 나아가 보건의료계의 동정과 현안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
“원장님은 몇 살에 은퇴할 계획이세요?”란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손 떨릴 때까지”였다. 30대 갓 개원했을 때 처음 만났던 A원장이 50을 넘어서고 있었다. ‘본인 보다 가족이 행복한 직업’, ‘아내에게 백화점 VIP카드를 쥐어 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시샘 반, 부러움 반의 시선을 받는 이 업의 끝을 A원장은 이제야 고민해 본다. A원장은 “은퇴를 한다고 하면 경제적인 부분도 준비해야 하지만 환자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가 제일 걱정될 것 같다. 치과의사는 정년이 정해져 있지 않아 더 어려운 직업인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치과의사를 벗어난 삶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개원가 원장들에게 ‘치과의사 정년, 준비하고 계십니까?’란 화두를 던지고 반응을 살펴봤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돌아가는 진료실에서 미래에 대한 공상을 할 여유가 없다. 몸이 움직일 때까지 한다”는 무대포형에서부터 “치과의사란 진료만 하는 직업이 아니다. 경영에 눈을 떠야 은퇴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전략가형까지 천차만별이다. 은퇴에 대한 개원들의 고민, 그리고 거기서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그려봤다. A원장의 요즈음 고민은 사실 은퇴가 아니라 확장성
“여러 예술 방면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시는 치과의사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 데 제가 수상하게 돼 기쁘면서도 송구스럽습니다. 많은 치과의사들이 사회와 예술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기회를 더 자주 갖기를 바랍니다.” 안정모 원장(전 치협 부의장)이 2023년도 ‘치의신보 올해의 치과인상’ 사회공로·문화예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안 원장은 지난 2015년 6월 강원도 고성군에 조각미술관 ‘바우지움’을 설립, 미술관 이사장으로서 아내이자 유명 조각가인 김명숙 관장과 함께 지역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또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 서울지부 의장, 서울치과의사신협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치과의료계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공이 인정돼 이번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바우지움은 멀리서 설악산이 내려다보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여러 예술 작업과 전시, 지역 주민과 여행객들과의 소통을 통해 강원도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또 자연을 배려한 낮은 건축, 조각을 배려한 거친 벽 등 건축학적으로, 예술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9년에는 한국문화공간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바우지움은 총 7000평 규모에 달하며, 2개의 상설 전시장과 1개의 기획전시실 등 1
박종수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이 진료 봉사를 한 역사를 되짚어 가면 55년의 세월이 함께 따라 온다. 지난 1965년 치대 원내생 시절 시작한 봉사로, 누적된 진료 인원만 어림잡아 3만 여 명이 훌쩍 넘는다. 산간오지·낙도 등 무의촌 지역은 물론 도시 소외·취약 계층, 구두닦이, 장애인, 장애어린이, 넝마주이, 외국인 근로자 및 다문화 가족, 파병 당시 월남 국민, 소년소녀 가장, 무료급식 노인 등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머물던 이웃들이 그의 봉사 진료를 받으며, 함께 울고 웃었다. 이 같은 공로를 통해 ‘2023 치의신보 올해의 치과인상 봉사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박 전 의장은 “앞으로도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생을 이어가고 싶다”며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위해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봉사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생명이 가장 소중한 만큼 의료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늘 섬김의 자세로 이분들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대한민국 국민포장, 대통령 표창, 베트남 1등 명예훈장, LG의인상, 한국 가톨릭대상, 치협 공로대상 등 수많은 포상과 표창이 박 전 의장의 공적을 수식하지만, 그가 일관되
“저와 가족 모두 많이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봉사는 치과의사들이 많이 하고 있으며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아마도 오랫동안 지속해 온 꾸준함에 대한 칭찬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문가 집단에서 선정된 상이기에 더욱 기쁜 마음입니다.” 이주석 원장(가인치과의원)이 2023년도 ‘치의신보 올해의 치과인상’ 봉사 개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치과 치료가 필요한 현장 및 시설들을 직접 돌며 국민 구강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나아가 치과의사 이미지 제고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그는 ▲사회복지법인 ‘자비원’ 원생 치과 진료 ▲중증 장애인 복지시설 ‘늘 사랑의 집’ 장애인 진료 ▲장애인 특수학교 강릉오성학교 구강진료실 개설 및 학생 방문 진료 ▲성인 지적·발달 장애인 거주 복지시설 ‘애지람’ 내원 진료 ▲각종 재해 지역 방문 진료 등 의료 지원이 필요한 현장 곳곳을 누비며 30년 가까이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같이 꾸준한 봉사활동을 이어오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제가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과 지금도 지속하는 것은 마치 해설지를 보며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선배 치과의사인 부친을 포함해 사회에 귀감이
갑진년(甲辰年) 새해에도 동네치과의 일상은 쭉~ 계속된다. 원장과 직원들이 지난 한해 하루하루 어떤 일상을 보내왔는지, 또 서로의 모습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었는지 개원가 일선의 원장과 스텝들로부터 들어봤다. 그리고 가상의 원장과 스텝의 1인칭 시점으로 치과의 하루를 정리했다.<편집자 주> 18년째 계속되는 나의 일상은 요즘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통학을 시키는 중2 아들을 깨우는 게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다. 최근 새로 이사를 했는데, 아들은 집과 학교가 멀어졌다며 짜증을 내곤 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하는 아들을 달래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길에 오르는데 거래하는 치과기공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평소 보철 제작에 직접 참여하다 보니 조율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있는데, 통화가 길어진 탓에 치과에 10분 정도 지각했다. 대기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과 직원들의 얼굴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늘은 아침부터 귀여운 진상(?) 환자가 나를 귀찮게 한다. 나이가 지긋한 환자로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강남의 저수가 치과에서 임플란트 3개를 하고 우리 병원에 왔다. 우리 치과에서는 엔도를 했는데, 몇 달 말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