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든 앙금 꽃 떡을 들고 예쁜 후배가 찾아왔다. 새내기 치과의사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선배들의 경험담을 듣고자 찾아왔다. 덕분에 지나온 치과의사로의 삶을 되짚어 보게 된다.처음 개업한 1980년대 당시만 해도 여자 치과의사의 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그 시절 개원가에서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졸업 후 대부분 개업을 하였고 개원은 그런대로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개업 준비하면서 재료공급 사장님이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여자니까 힘든 발치나 틀니 같은 것은 하지마시고, 어린 애들이나 치료해주시면 딱 좋을 것 같으니 그리하라 했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린이 치료가 제일 힘든 영역이라 내 손자는 소아치과 전공한 후배 선생님의 몫이 되었다.개업의로서 36년이란 세월을 보냈고 뒤돌아보면 강산이 3번이나 변했으며 4번째 변하고 있는 강산을 생각해 본다. 앞으로는 더 많은 학문과 재료 그리고 경영의 빠른 변화가 얼마나 많이 올까? 그 변화를 인지하고 빠른 적응을 해야 할 것이며, 그리고 이를 수용하여 행하는 치과의사로서 삶을 살아가야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니 힘에 부쳤던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
매일매일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살아가야 할 소명을 갖고 사는 우리 치과의사들!환자들의 컴플레인에 집중해서 살다보면 하루가 어둡고 우울해질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긍정과 부정, 행복과 불행이 양면처럼 존재한다. 우리가 어떤 쪽을 선택하고 주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하루는 달라지게 된다.난 가능하면 밝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루를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면 행복한 순간이 늘어나고 어느새 난 행복 가득한 사람이 되어 있을거라 믿는다.난 행복한 순간을 늘리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이런 노력 중의 하나가 만나면 즐겁고 마음이 치유되는 여후배들과의 만남이다.처음엔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지역에서 개원했다는 것만으로만 모임을 시작했지만 지금 나에게 후배들은 언제나 만나면 반갑고 안보면 보고 싶고, 힘들 땐 의지가 되는 때론 친구 같고 때론 자매 같은 그런 존재이다.25년전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한번도 와본 적도 없는 안산이라는 도시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십대의 패기로 용감하게 개원을 했다. 자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현실은 버거웠다. 직원채용 문제, 환자와의 갈등, 진료의 어려움, 행정상의 문제 등등. 이런 문제들을 의논할 사람이 없어서 힘들고
4년 전 6살 꼬마 아가씨가 치과를 방문한 적이 있다. 치과 오기를 무서워하며 고사리 같은 손을 오돌오돌 떨며 울던 꼬마 아가씨. 진료실에 들어오기 싫어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흔드는 아이를 보며 엄마가 “지영아! 치료 받아야지”라고 타일렀다. 바로 그때 한참을 울던 아이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획 돌리며 엄마에게 소리쳤다. “지영이라 부르지마! 강아지라고 불러!”살짝 미운 6살 꼬마 아가씨의 말에 아이를 쳐다보고 있던 나를 비롯한 치과 직원들은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4년이 지난 며칠 전 그 꼬마 아가씨가 치과를 다시 방문했다. ‘강아지’라 불러달라며 울고 있던 아이의 얼굴은 그 때 그 얼굴 그대로였지만 키는 한 뼘 반 이상은 큰 것 같았다.얌전하고 수줍은 미소로 치과로 들어서던 꼬마 아가씨 ‘지영이.’ 지영이와 눈을 맞춘 나는 “지영아, 선생님 기억해? 그때 우리 지영이 치료 잘 받아서 토끼 인형 만들어줬는데~ 기억해?”라고 물었다. 지영이는 누가 토끼인형을 줬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토끼인형을 준 것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4년 전 치료를 안 받겠다고 울고 떼를 쓰고, 화를 내던 그 때의 지영이는 어디가고, 밝게 웃으며 스스로
고대로부터 치의학은 의학의 일부로 여겨졌고 미용적이나 기능적인 측면에서 삶에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구강 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필요한 처치 방법을 알지 못하여 구전된 방법으로 처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처치 방법이 어떠한 기전을 바탕으로 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다양했지만 희박했으며 이론적인 배경보다는 처치하는 이의 명성에 기대거나 종교의 힘을 빌리는 경우도 있었다. 내과의에 의해 경시되던 치과 치료가 현대 서양 학문의 형태를 갖추는데 18세기 프랑스 의사 피에르 포샤르의 역할이 지대했다. 피에르 포샤르는 치과 치료를 학문의 형태로 발전시켰지만 질환의 원인을 수천년간 지속되어온 ‘체액설’에 기댔기 때문에 백여년 뒤 루이 파스퇴르가 실험을 통하여 증명한 세균설을 기준으로 본다면 비과학적인 접근을 했다고 할 수 있다.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대부분의 의학적 지식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경험 의술로부터 얻었기 때문에 현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해하기 힘든 주장도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치과와 관련하여 설명한 내용은 많지 않지만 그 가운데 ‘남성은 여성보다 치아의 개수가 많다’라는 주장은 눈길을 끈다. 이 주장은 이 후 이천년에 걸쳐 최고의 과학자로 칭송
어릴 적 동네에 대형마트가 처음으로 생겨 가족끼리, 친구끼리 구경 가는 것이 특별한 일이었던 적도 있었다. 아파트 분양 광고에도 부지 인근에 대형마트가 있다는 것이 엄청난 장점인 것처럼 부각하여 광고를 하는 요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형마트가 있는 건물에는 음식점, 안경점, 세탁소, 커피전문점, 심지어 영화관 등 마트 안에서 어지간한 일들은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으니, 생활에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언제부턴가 나도 장을 본다는 것은 마트를 같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고,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가 본 일이 손에 꼽힐 정도가 되었다.내가 대형마트를 자주 찾게 된 것은 단지 깨끗한 실내에서 잘 정리된 물건들을 보고 살 수 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소한 기본은 되는 듯한 품질의 상품을 더 싸게 산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일 것 같다. 특히 1+1의 유혹은 하나 가격에 두 개의 물건을 ‘득템’한다는 심리 때문에 굳이 2개가 필요 없는 음식, 또는 물건이라도 카트에 담고 나선 필요한 것이었는데 싸게 잘 사는 것 같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는 창고형 마트에서 더
아침에 잠을 깨우는 것은 햇빛이 아니라 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이다. 도심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중창으로 방음을 하고 있지만 고요한 정적을 깨우는데 소음이 일등 공신일 수밖에 없다. 출근을 앞두고 아내의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며, 아이들의 등교나 출근을 위해 동분서주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낀다.일단 집 밖으로 나오면 더욱 커지는 자동차 엔진이나 경적소리에 그리고 지하철 레일이 미끄러지면서 터널의 고요함이 굉음으로 들릴 뿐 아니라 안내방송에서 나오는 멘트에 나의 귀는 혹사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모자라 핸드폰의 동영상을 보기 위해 이어폰까지 끼고 있노라면 귀에 압박과 주변의 시끄러움으로 고통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바야흐로 소리로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진료실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환자 앞으로 다가간다. 치료를 위해 돌아가는 핸드피스의 회오리같은 소리는 보철, 임플란트라는 큰 수입이 기다리고 있기에 그 다지 소음으로 들리지 않고 아름다운 악기소리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내 귀는 계속적으로 혹사 당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쉴새없이 움직이는 suction소리까지. 진료실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며
항상 강인하실 것 같던 아버지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가슴 한켠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큰 키와 넓은 어깨 굵은 목소리의 아버지는 마치 만화 속 영웅처럼 꼬마 아들의 어려움을 척척 해결해내는 슈퍼맨 같은 분이었다. 어느덧 슈퍼맨은 늙고 지쳐 예전처럼 산을 옮길 듯한 기세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대신 그간 세월의 흐름은 그의 아들에게는 넘을 수 없어 보이는 거대한 지혜의 산맥으로 보일 뿐이다.아직까지도 나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존재는 이처럼 큰 사람이다. 때론 부딪히고 거스르려 노력해 보았던 기억도 있지만, 결국 ‘아버지의 말이 옳았구나’라는 뻔한 결론만 확인할 뿐이었다. 이런 작은 존재였던 나도 어느덧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혼을 하여 작은 가정을 이루고 놀랄만치 나와 닮은 작은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마냥 이쁘고 귀엽기만 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도 아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하루하루 새로운 걱정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의 치아 맹출시기와 순서는 넓은 범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머릿속의 지식과는 다르게 우리 아들의 유치가 단지 조금 빨리 났다는 이유만으로 불안감에 휩싸여 각종 교과서의 치아맹출 단원을 샅샅이 찾아보는
수능과 입시지옥이라는 길고 긴 동굴을 끝내 탈출한 나는 대학교 새내기로 오티, 동아리, 엠티, 미팅 등의 새로운 대학교 문화의 홍수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즐거운 일 년을 보낸 것 같다. 일학년을 마치고 이학년이 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새내기 생활 내내 어느 자리에서나 가장 활기차게 쫑알거리면서 분위기메이커로 주도적이었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며 나는 종종 지금의 내 모습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던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고 피식 웃곤 한다.어렸을 때 치과의사이셨던 어머니는 치과 개원을 하셔서 매우 바쁘셨다. 따라서 나는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에 자랐다. 나이가 많으셔서 몸이 좋지 않으셨던 그 분의 영향으로 나는 사람들과의 접촉 없이 집에만 있기 십상이었고 따라서 점점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하는 아이가 되어갔다. 뒤늦게 들어간 유치원에서는 체육시간이나 합창대회에서 조차 행여 남들이 나를 볼까봐 혹은 말을 걸까봐 무서워서 목석처럼 가만히 서있기 일쑤였다. 유치원 선생님께서 어머니께 아이가 심각하게 내성적이라고 걱정하실 정도였다.나의 이런 성향은 중학교에서도 계속 되어서 한 두 명의 친구를 제외하고는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수줍고 무서워서 대화하기도 어려워하곤 했다
공자는 논어에서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 하였다. 세 명이 같이 여행을 하면 그중에 한 명은 나의 스승이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나보다 좋은 능력을 지닌 본받을 긍정적인 스승이 있다는 의미와 반대로 나쁜 모습을 보아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자각을 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개념이 있다. 또 여러 사람이 선택한 길이 옳은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TV에 1대100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1명이 100명과 퀴즈를 같이 풀면서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여 준다. 그런데 가끔은 대다수가 선택한 답이 틀리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수가 선택한 것이 옳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그와 반대되는 생각이나 선택을 하면 틀렸을 것이라는 생각과 심한 심리적인 저항을 받는다. 심지어는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딸이 졸업한 후에 무엇을 하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냥 본인이 하고 싶다면 무엇을 하여도 좋다고 답변하였다. 지인은 아빠로서 조언해주거나 바라는 것이 없냐고 물어왔다. 지금 필자의 생각이 1
올해로 자가치아뼈이식재와 치아보관 사업 7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치아은행은 매우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작년 가을, 홈페이지를 리뉴얼 한 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치아보관 사업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는데 결과가 무척 좋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치아보관 문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다. 갑자기 6년 전 처음 이 회사에 입사 했을 때가 생각난다.자가치아뼈이식재라는 용어도 생소할 뿐더러 한국치아은행이라는 이 회사로 매일같이 치아가 들어온다는 게 참 신기했던 때다.내가 처음 치과에 전화했을 때 회사이름 때문에 재미났던 반응들이 꽤 많았다. “네? 신한 은행이요?” 또는 “네? 치안은행이요?”, “네? 한국은행이요?”등 은행에서 대출 문제 등으로 전화를 한 건 아닌지 나 때문에 긴장한 원장님들도 꽤나 있을 것이다.자가치아뼈이식재란 처음 듣는 개념을 처음 접하는 원장님들을 설득하고 고정관념을 깨기란 쉽지 않았다. 하루는 종로의 어떤 치과에 들어갔는데 원장님이 “치아가 어떻게 뼈가 되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문전박대를 해 나온 적도 있었다. 나는 그때 한동안 자가치아뼈이식재에 대한 영업에 자신이 떨어졌다.
의료봉사를 시작한지 7년이 지났다. 매달 강원도 오지 마을을 찾아가고 격년으로는 해외로 나간다. 개원 11년 차인 점을 감안할 때 봉사를 다니시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기간이나 횟수가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단 한 번을 나가더라도 단 한 분에게 최선을 다했더라도 그 시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특히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인들, 후진국 빈민들에게는 더 그러하다. 아픈 치아를 하나 뽑아줬을 뿐인데 평생 가장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는 환자를 직접 경험하고 나면 의료봉사의 유혹은 더 심해진다. 진료실에서 멱살을 잡힐 정도로 환자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현 의료실태를 감안하면 더 그렇다. 사실 봉사란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의료섬김이라는 말을 더 즐기는 편이다. 봉사란 말은 왠지 내가 뭔가를 많이 내려놓고 헌신하는 느낌이 강해서 싫다. 내 스스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서다. 하지만 진료를 할 때 환자를 섬기는 마음으로 한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 누군가에게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이 어찌 그러지 못해서 내가 그 사람을 섬겨야 하는 업이 생겼다고나 할까?아프리카 세네갈은 이번이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