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 둔 마지막 학년으로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정신없이 바쁜 생활 속에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던 시간이 있었다. ‘지역사회치위생학Ⅱ’ 수업의 일환으로 금요일마다 관련 기관에 나가 지역사회주민들을 대상으로 구강보건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속한 조는 3주 동안 ‘원주 효 노인센터’를 가게 되었고 이곳은 약 30여명의 치매노인들이 등하교를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기관으로 실습을 가기 전 자료 조사를 통해 현황분석을 하고 작성한 계획서를 발표 한 후 직접 기관에 투입했다.첫 실습 후 우리는 전략을 다시 세워야 했다. 어떤 것이든 항상 계획대로 되리란 법은 없지만 열심히 준비해 간 것에 비해 계획과 다른 실태로 교육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기관에 하루 종일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오후에 진행하는 기관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 하였는데 이 시간을 통해 새로운 교육 방법을 구성할 수 있었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계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노하우를 보고 큰 도움을 받았다. 기존에 계획했던 매체사용을 자제하고 만담형식과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는 것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때문에 매 주 교육을 위해 조모임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조원들과 회의를 통해 어떻게
지난호에 이어 계속가을가을은 벌써 왔는데 더위 먹은 후유증으로 내 감각체계가 그렇게 민감하지가 않다.늦은 매미가 잠시 울고 조용해 진 사이 공간이 한산하다.성깔 빠른 잎들은 벌써 헌신에 힘쓰고, 준비 중인 것들은 마른 냄새를 풍긴다. 긴 줄 알았는데 이젠 결실을 위한 충전이 필요한, 짧은 시간이 서둘러 필요하다.영원은 짧은 희열 후의 잔해들로 만들어진다.떨어짐(Fall)을 예견하는 건조한 냄새가 가을을 시작한다.팽창에서 유지 또는 축소로 몸집을 바꾼다.숲속에선 주고받는 것들만이 긴밀하게 살아가고 있다.가을엔 영적, 육적인 시-공간이 더 넓어진다.그리고 꼭 다음과 함께 가을의 전설은 흔적을 남긴다.가을을 탄다고요!세상의 모든 것들이 방어 시스템을 구축할 때쯤/심장이 메말라 낙엽처럼 가벼워 질 때쯤/황금들판이 시작되는 꼬옥 이맘때쯤/햇살이 빗겨 눈부신 오전 한가로운 때쯤/문득 반팔 사이로 새털같은 바람이 붙을 때쯤/있어도 옆엔 없고, 없어도 어딘가에 있는 그때쯤.가을은 여름에서부터 잉태되었다.낙엽은 계절이 한참 성숙되었음을 알린다.갈수록 짧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에 대한 상대성이론 때문이다.나무 사이가 점점 많이 보이는 것부터가 가을의 의미다.같은 시간 산책로가
지난호에 이어 계속여름특히 짧은 봄, 긴 여름으로 바뀌는 중엔 숨 가쁘게 꽉 차는 것이 여름, 숲이다.여름은 팽창이다.잎들도 진녹색으로 크기를 키우고 있다.숲이 잎으로 채워지자 길엔 그늘이 생겼다.바람이 없다면 숨은 잎들은 햇살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바람은 마에스트로, 잎들은 연주자들이다.분명한 질서 아래서 경쟁하는 숲엔, 새것과 먼저인 짙음이 다른 치밀함으로 위치한다.소나무의 타감작용(他感作用, Allelopathy)이 자기들만의 영역을 철저하게 만들었다.흥건한 땀, 이 지독한 냄새가 숲에겐 미안하지만 땀이 난 만큼 생각은 시원하다.보약 먹은 사람처럼 비 온 다음 날 잎들이 탱탱, 탄탄, 생생, 싱싱해 보인다.여름 숲엔 인간을 좋아하는 벌레들로 꽉 차 있다.여름의 중간으로 가면서는 향보다도 소리가 숲을 만든다.소리들은 님을 향한 짝짓기의 신호탄이다.짝을 찾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숲에 가득하다.끈적이는 모든 것들이 새 생명을 만들어 낼 것만 같다.여름은 폭우처럼 급하게 흐른다.세찬 비가 바닥에 쌓인 작년 솔잎들을 바다로 보냈을 것이다. 여름엔 더위를 식힐 바람이 꼭 필요하다.깨끗하던 묘지에도 백거이나 관우의 묘처럼 잡풀들이 주인이다.수분섭취가 늘어나자 정상엔 아
삶은 계란 두 개, 제철 과일, 물 또는 인삼차를 동봉한다. 그리고 야산, 나지막한 산이라는 식탁에서 아침을 청한다. 그래서 나는 거부다. 식탁의 크기와 희귀성면에서. 주차장에서 정상까진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도착하지만 배낭을 메고 간다. 쑥스럽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진다. 소풍가듯 산책하는 아침! 바로 그린샤워 안식의 숲(Forest healing)에 안기는 것이다.삶 - 숲에서는숲에서는…어머니처럼 늘 받아주는 포근함이 있고, 전설처럼 바람이 많고, 성소에서처럼 사람들이 순해지고, 연인들처럼 작은 소리가 더 어울리고, 휴일처럼 숨쉬기가 더욱 편하고, 조미료 없는 음식처럼 소화가 잘되고, 휴가철처럼 게을러지고, 아버지 앞에서처럼 취기가 안 올라오고, 겨울처럼 빨리 해가 지고, 정글처럼 모기들의 천국이고, 신호등처럼 양보해야 질서가 생기고, 거울처럼 남보다 나를 더 가까이 보고, 천국처럼 수고해야만 배가 채워지고, 가족들처럼 너무 영리하지 않아도 되고, 특별훈련기간처럼 면회를 제한하고, 인생처럼 길을 숨기고, 창녀처럼 쉽게 잠자리를 내주고, 아이들처럼 잘 웃고, 공동구역처럼 경계가 덜 분명하고, 나이처럼 계절이 빨리 가고, 정든 식당처럼 무덤덤하게
“그린치과까지 가주세요. 흠 흠… 차에서 상큼한 향기가 풍겨나네요?”어제 아침 평상시처럼 출근을 하기 위해 걸어가다가 시간이 좀 늦어져 택시를 잡아 탔더니 말로는 ‘향기가 풍긴다’ 했지만 차안에 방향제를 얼마나 뿜어 놓았으면 어지러워 구토가 날 정도였다.“예, 차가 오래 되지는 않았는데 주행을 많이 해서 그런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향수를 뿌렸습니다. 향기가 좋으시지요?”운전 기사는 그게 그리 자랑스러운지 아니면 간만에 손님을 태워서인지 연신 싱글 벙글이다.“네, 좋지요. 하지만 좀 강한 편이네요.” 사실 나는 얼굴에 로션도 냄새가 싫어 거의 바르지 않는다. 더구나 방향제 같은 그런 인공적인 향은 기관지에 자극을 받아 더욱 싫어한다. 자랑스런 방향제에 폐를 끼치기 싫어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달리는 중에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와 나는 결국 창문을 열어 상큼한 바깥 공기를 모셔 왔다.“이 차를 5년이나 몰았는데도 겨우 90만km 밖에 주행하지 못했어요. 앞으로 몇 년 더 몰아야 본전을 뽑는데….”운전 기사는 새로 사야 할 차 할부금이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싱글거리던 미소가 사라지고 다소 풀이 죽은 모습으로 혼자 말을 하였다. “겨우 90만km 밖에 주행하지
한국쓰리엠 치과교정사업팀 마케터로 일하게 된지 벌써 6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Lean Six Sigma부서에서 일하다가 전공과는 상관이 없는 직군인 마케터로 옮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MBA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선배에게 상담을 하기로 하고, MBA를 먼저 이수한 선배에게 MBA가 도움이 되는지, 된다면 어느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어떤 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 자문을 구해보았습니다. 마케터로서 MBA를 도전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꼭 도전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조금 의외였습니다. 학교는 집 가까운 곳으로 선택하고 준비사항으로는 체력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조금은 의외의 답변이었지만 MBA과정을 이수하면서 선배가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금요일 저녁 4시간 토요일 8시간 수업을 듣고, 매 수업마다 Project 과제를 수행하고 졸업 논문(Business Project)까지 써야 하는 과정에서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였고 토요일 아침에 지친
요즘 주말에 하는 드라마 중 ‘참 좋은 시절’이라는 드라마가 있던데… 드라마를 잘 보는 편은 아니지만, 얼마나 좋은 시절이길래. 내용은 잘 모르지만 현실이 많이 피곤한 사람들이 먼 훗날 보았을 때 지금의 현실을 참 좋은 시절로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는 우리 모든 이들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에 대해 그려지고 있다.흠… 나도 참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참~좋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회상할 만큼 나도 나이를 먹은 건가? 씁쓸함과 함께 내가 그 동안 먹어놓은 나이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정말 참 좋은 시절이 있었다.어릴 적 철 모르고 나댔고 딸이 귀한 집안에 태어나 무한한 사랑과 관심 속에 유년기를 보내며 정말 세상이 내 것과 같이 느껴졌었는데… 크고 작은 사고들도 많이 쳐서 부모님 속도 많이 썩히고 정말 철이 없었던 시절을 보낸 것 같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년기를 비슷하게 보내긴 하겠지만 철이 온전히 들면서 내 인생에 책임을 지려 노력하는 지금에 다다르기까지(아직 철이 완전히 들었는지는 모르겠다).정말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참 좋은 시절’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 편으로 그 좋은 시절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겨울과 봄을 오가던 변덕스럽던 날씨가 어느새 또 바뀌어, 이제 정말 여름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5월이다.매일 아침, 저녁으로 병원과 집을 오가며 햇빛 따사로운 시간대에는 작은 진료실에 틀어박혀 환자를 돌본다. 이 단조로운 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10년. 이런 내게 이동진료는 작은 변화이자 기쁨이 되기에 충분했다.2005년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고, 2008년 처음 장애인 이동진료 차량이 병원에 생겼다. 큰 대형버스를 개조한 이동진료 차량에는 치과용 체어 두 대와 작은 진료실이라는 말이 어울리게끔 다양한 장비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저 병원에 앉아서 이곳을 찾는 환자들을 기다리던 것에서 벗어나, 치과진료가 필요한 더 많은 장애인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발걸음이 시작된 것이다.서울 시내에는 생각보다 이동진료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곳이 많이 있다. 장애아동들을 위한 특수학교, 서울시립정신병원, 장애인 생활시설 그리고 다른 시립병원들과 함께 공동으로 찾아가는 쪽방촌 및 노숙인들까지…. 긴 시간동안 이동진료를 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는 서울시립축령정신병원이다. 축령산 자연휴양림을 옆에 둔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 자리 잡고 있는 병원
연세대 치위생학과에 서류를 넣고 인터뷰를 보고 최종합격 결과를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을 앞두고 있다. 국가고시도 준비하며 병원 실습도 하고 많은 인연을 만나면서 뜻 깊은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바쁘고 분주하지만 모교의 학생으로 지내는 하루하루의 나날이 감사함의 연속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다. 나는 호주에서 치과기공학과를 졸업 후 한국에 오게 되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일과 공부를 동시에 했는데,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또한 치기공사로 2년을 근무하며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배우고 일하면서 뭔가 내가 이것을 통해 남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의료봉사에 관심이 생겼다.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 직장도 다니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몸은 피곤하고 지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너무 좋았고 이런 예배 시간이 나에게는 한 주를 힘껏 달릴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호주에서 졸업 후 바로 의료봉사를 가려했으나, 그 때 가는 것보다 치위생학에 대한 지식을 익혀서 사람들의
계절의 여왕인 푸르른 5월에는 항상 가족, 사랑, 감사, 은혜라는 긍정적인 단어들이 함께 하는 달이다. 그러나 이번 5월은 유독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이 크다. 아마도 지켜주지 못한 못다 핀 어린 꽃들에 대한 미안함은 전 국민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일시정지’ 상태가 길어지지 않기를 기도한다.하루하루 주어진 삶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더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마인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오늘은 스쳐가듯 한 페이지에 실린 글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감과 팁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준비하려고 한다. 나는 현재 치과병원에서 여러 가지 업무를 하고 있는 기획자이다. 스스로는 메디컬 브랜드, 마케팅, 홍보, 전략, 의료관광 등 여러 가지 업무를 맡고 있지만, 한 단어로 말하면 ‘잡케팅(잡다한 모든 마케팅)’이라 부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양한 일들 중에 스스로 가장 뿌듯해 했던 ‘스토리’ 하나를 들려주고자 한다.치과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은 치과위생사이다. 치과의사 다음으로 국가에서 주는 ‘라이센스’가 있는 직종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부심(Pride)이 강할 수 밖에 없
사람들이 천형이라 부르는 한센병. 과거에는 나병, 심지어 문등병이라 칭하며 천대와 멸시를 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한센인은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우리 인간사에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왔다.그러나 내가 가족같이 생각하면서 누구보다 더욱 사랑했던 이들. 오직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사는 이들. 많은 사람에게 접근하기 두려운 대상일지 모르지만, 오직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사는 이들. 이번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며 누구보다도 많이 울고 아파했던 이들 또한 한센인이다. 어렸을 때 한센병에 걸려 이웃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았고, 부모님과 생이별을 경험한 아픔 때문에 더 슬펐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친다.과연 우리가 한센인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단지 육체적 건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인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살고 있기 때문인가?소록도는 한때 천형의 땅이라 불렸던 곳이다. 단지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교육도 받을 수 없었다. 가족과 일가친척, 심지어 살던 동네에서 추방당했던 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본인의 이름과 호적이 없어지고 새로운 이름이 생겼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다.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