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제1781번째 절 사랑하시나요? 뜬금없이 나이 50이 넘어 흰머리와 검정머리가 반반인 사람이 아직도 사랑 타령인가 싶을 것이다. 난 요즈음 사랑을 구걸하고 산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트를 구걸한다. 체면에 직접적이진 못하고 “아들 엄마 사랑해? 그럼 표현해봐”라고…참 구차하다. 그럼 아들은 도도하게 “내가 대신 해줄게” 혹은 “또 야?”라고 이야기 한다. 아들이 게임 순위 상승을 돕는 것은 자존심에 허락할 수 없다. 또한 둘이서 함게 하는 것도 허락하지 못한다. 서열은 나의 실력만으로 쟁취하리라 다짐하며… 아들과 나의 대화를 이해 못하는 아날로그시대의 남편은 이상한 듯 쳐다본다. 어느 날 딸아이가 요즈음 전철이건 시장이건 나이에 불문하고 열풍인 게임하나를 보내왔다. 다운받았으나 계정을 몰라 로그인 하지 못하고 또 며칠… 보다 못한 딸아이가 이번에도 해결해 주고 드디어 애니팡~~~~ 그와 만났다. 나의 하트를 뺏어가는 그를…. 처음 만나는 날 아이들에게 게임방법과 하트 확보법 등을 교육 받고 클릭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아야 할 것에 주의를 받으면서도 내심 그동안 한게임 포포조이에서 습득한 솜씨를 믿고 이쯤이야 하는 자만
Relay Essay제1780번째 임상사진, 누구나 할 수 있다? 흔히들 ‘치과위생사’라 하면 다시 “네?” 라고 되묻는 경우가 흔하다. 쉽게들 “아~치과간호사”라고들 말한다. 치과위생사는 치과간호사가 아닌 치과에 온 환자들을 치료, 예방할 뿐만 아니라 구강교육까지 담당하는 국민들의 입안을 건강하게 책임질 전문가로 앞으로 치과위생사를 간호사처럼 당연하게 알아주셨으면 한다. 그런 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더욱 프로다운 치과위생사가 되기 위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노력 중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가면서 ‘치과임상 사진’이라는 것이 디지털로 이용해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친구와 여행을 다니면서 친구의 DSLR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으며 평소에 사진을 잘 찍는다고 생각했던 만큼 치과임상사진도 금방 손쉽게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병원에서 치과위생사 선생님들이 한 번에 척척 찍는 것을 보고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학교에서 여러 교육역량강화사업 중 하나로 방학동안 ‘치과임상 사진 촬영 과정’이라는 프로그램을 일주일동안 진행하였다. 나
Relay Essay제1779번째 건전한 사회와 직업의식 아이슬란드.우리 땅과 비슷한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인구는 고작 30만명에 불과한 이 나라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순전히 화산 폭발로 유럽내 항공기가 전혀 뜨고 내리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한 때와 2008년 금융위기에 이은 국가부도 선언, 그리고 척박하되 너무나 멋진 자연경관 덕에 관광 수입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는 일련의 해외 토픽에 실리는 기사 때문이었다. 그러다,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좋은 건강보험제도, 부족하지 않은 에너지와 식량, 4만 달러가 넘는 1인당 GDP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탐욕이 건전한 사회를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지, 한 국가가 금융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부를 축적한 듯 보이다 결국은 그것이 거품이었다는 동화같은 이야기 속의 국민 개개인은 어떠했는지를 보고 싶었다. 아이슬란드는 다채로운 자연풍경에도 불구하고 위도 63도의 북극권 가까이 위치하고 있고 북아메리카 판과 유라시아 판의 경계에 있어 잦은 화산, 지진 때문에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 다만 국부의 원천이라 할 어업과 지열을 이용한 알루미늄 제련산업 정도만을 거론할 수 있었으니 생계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라 해 봐야 이것
Relay Essay제1778번째 고마워, 진상 강아지 요즘 지인의 간절한 부탁으로 당분간 강아지를 맡고 있다. 소변, 대변을 잘 가리고 털이 예뻐서 누가 보아도 예쁜 강아지다. 내가 퇴근하면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반기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그런데 이 요크셔테리어의 원래 주인은 강아지 산책을 많이 안 시켰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산책을 하루에 한 번 씩은 꼭 나가는데, 이 녀석 산책을 나서면 다른 종의 강아지로 돌변한다. 강아지 산책용 가슴줄이 끊어질 정도로 앞을 향해 무작정 달리고 또 달린다. 산책이 아니고 이건 뭐 달리기 시합 수준이다. 그러다 내가 지쳐서 잠시라도 천천히 걸으면, 이 녀석은 나만 쳐다보고 계속 짖는다. 앞도 안 보고 걷는 것도 하는 둥 마는 둥. 나를 올려다보고 화만 낸다. “왈왈왈” 싸움개 저리가라 할 정도로의 큰 소리다. 시끄럽다. 이 녀석, 그 시간에 니 옆을 지나는 경치나 사람들을 구경할 것이지. 그래야 니가 하루 종일 기다리는 산책 시간을 제대로 만끽할 것이 아니냐? 하루 종일 내가 퇴근하기 만을 기다린다는 녀석이 가장 기다리는 소중한 순간을 이렇게 허비하다니…. 그런데 가만. 이 강아지의 모
Relay Essay제1777번째 야구 통한 학창시절 추억-경희치대 vs 조선치대 야구부 OB 정기교류전을 마치며 먼저 6시간 이상의 장거리를 버스를 이용하여 전남 화순까지 내려와서 교류전에 참여해준 경희치대 야구부 김소현 OB회장 이하 모든 OB, YB회원들, 재경 조선치대 OB회원들게 감사드린다. 또, 멀리 미국에서 정기교류전 참관을 위해 귀국하신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야구부 초대 지도교수님이신 김학원 전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히 이번 제 2회 교류전은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화순 도곡구장이 파손되어 긴급복구를 하고 경기 당일 날에는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폭우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치러져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두 학교의 최초 교류전은 야구부 OB졸업생이 없었던 지난 1979년 6·9제 행사를 위해 경희대학교 김여갑 지도교수님과 조선대학교 김학원 지도교수님의 합의에 의해 재학생들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명맥을 유지해오다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중단되었다가 전체 치과대학 야구대회로 이어져오던 중 대한치과의사협회 최치원 대외협력이사의 제안에 의해 2011년 7월 두 학교의 OB회장단 회동으로 양교의 우호와 협력 증진을 위한 OB 교류
Relay Essay제1776번째 카메라에 치과를 통째로! 입학한지도 엊그제 같기만 한데 벌써 부담스러운 졸업반이다. 주위의 권유로 치위생과에 지원하게 됐고, 처음엔 과연 나하고 잘 맞는 직업일까? 하는 걱정도 많았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고 내 성격과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왔지만 삼학년이다 보니 취업걱정도 되고 과연 임상에 나가서 학교에서 배운 만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이런 마음을 교수님들께서도 아셨는지 여름 방학을 앞두고 임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특강 프로그램들을 개설해 주셨다. 그 중에는 2학년 때부터 참여하고 싶었던 ‘치과임상사진촬영과정’이라는 인기 있는 특강프로그램이 있었다. 작년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못해 아쉬워하며 3학년 때는 꼭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 여름 특강 프로그램으로 이 프로그램이 또 다시 이슈가 됐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눈치경쟁을 하다가 세상에서 제일 공평하다는 ‘가위 바위 보’에서 묵! 을 내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 할 수 있었다.
Relay Essay제1775번째 그래서 행복해 지셨습니까? 20대 80의 법칙이 있다. 20의 원인이 80의 결과를 가져 온다는 말이다. 즉, 원인의 작은 부분이 대부분의 결과를 이루어 낸다는 것이다. 파래토라는 경제학자가 실험을 했다. 100마리의 개미를 모아 놓고 집단생활을 관찰하던 중 특이한 사항의 모습이 관찰되었다. 100의 개미 중 열심히 먹이를 나르며 일하는 개미는 단지 20여 마리이고 나머지 80여 마리의 개미는 그냥 습관적으로 왔다갔다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열심히 일하는 개미 20여 마리들만 모아 다시 100마리의 집단을 구성해 다시 관찰해 봤다. 그랬더니 역시 이중 20여 마리만이 열심히 먹이를 나를 뿐 나머지 80여 마리는 역시 건성으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이런 현상은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 철 따라 내가 주로 입는 옷의 80%는 옷장에 걸린 옷의 20%에 지나지 않으며, 상위 20% 부자가 한 나라의 부의 80%를 소유한다던지, 전체 범죄의 80%는 전체 범죄자들의 20%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으며, 백화점의 하루 매상 중 80%는 그 백화점의 단골인 20%의 손님이 올린다. 심지어는 내 인생에서 20%의 삶이 나머지 8
Relay Essay제1774번째 네팔의 추억(하) <2067호에 이어 계속> 일년반동안 네팔에서 생활하면서 총 5번 메디컬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코이카 의료단원들과 2번, 람중병원 식구들과 3번. 한국에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할 산이 많은 이곳 네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트레킹같은 의료캠프. 병원이 있는 곳까지 나오려면 이삼일은 걸어서 나와야만하는 동네로 의료진들이 찾아가기 때문에 찾아가는 길도 험했지만 캠프를 진행하는 동안 너무나 많은 동네 주민들로 인해 약간은 힘들었던 캠프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캠프는 ‘무구’라는 지역으로 코이카 의료단원들과 갔던 캠프인데, 무구라는 지역은 네팔 75개 District 중 가장 못사는 동네로 인간계발조사 75위, 유아사망률 1위, 사망평균연령 48세 최하위,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의 메디컬캠프는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기위해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로 12시간 걸려 네팔건즈라는 도시로 간 후, 그곳에서 8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딸자지역까지 가서 다시 걸어서 7시간을 가야 우리가 갈 최종목적지 로와지역이 나왔습니다. 가는데만 2일이 걸리고 가서 의료진들 회의도 전기가 안 들어와 랜턴을 켜고
Relay Essay제1773번째 네팔의 추억(상)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해야할 일 등을 적은 것이 ‘버킷리스트’이라면, 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죽기 전에 해외봉사는 꼭 해보고 싶다’ 였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2007년 즈음부터 알고는 있었고, 홈페이지 회원가입을 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었지만 간호사, 임상병리 분야는 많이 채용을 했지만 치과위생사 채용은 거의 없었습니다. 있었더라도 이미 홈페이지를 확인하면 기간이 지났거나 타이밍이 맞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인연이라는게 있을까요? 평상시에는 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2010년 가을 이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코이카 62기 봉사단 모집’ 분야엔 네팔 치위생 1명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에 ‘설마 되겠어’ 하는 마음에 원서를 넣었고, 서류전형, 2차 면접, 마지막 신체검사까지 최종합격 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때 제 나이 33살. 치과에서 일하고 있었고 잘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도 있었던 때라 모든 걸(모든 거라고 거창하게 할껀 없었지만 당시 전 심각했었습니다) 포기하고 2년동안 갔다 올 수 있을까? 굉장히 고민에 고민을 한 결과 이번
Relay Essay제1771번째 치의미전을 준비하며… 덥다, 덥다 했던 올 여름보다도 더 무더웠던 1994년. 나의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많은 동아리의 선배들이 우리들에게 손짓을 해왔다. 합창동아리, 농구동아리, 응원동아리, 사진동아리, 진료동아리 등등. 그 중 내 대학생활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동아리는(흘)’ 이다. 기뻐할 흘. 그림을 그리는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나의 유일한 동아리는 미술부였고 경희치대 미술부의 이름은 이었다. 그림에 별로 소질은 없었지만 마음씨 좋은 형들과 동기들이 함께한 동아리 활동은 즐거웠다. 다행히도 미술부에는 ‘미’부와 ‘술’부가 있었기에…^^ 우리 동기 5명은 무척이나 잘 뭉쳤고 ‘미’와 ‘술’ 모두에 열정적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미술부 제2의 전성시대랄까? 우리 동기들은 매주 모임은 물론이거니와 겨울방학 동안 학교 앞 미술학원에서 특훈(?)을 통해 기량을 갈고 닦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마땅한 전시회장이 없어서 치과대학 통로 벽에 전시를 했던 우리에게 그럴 듯한 전시회장이 생긴 것이다. 학생회관(정확히 맞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지하에 생긴 ‘경희갤러
Relay Essay제1770번째 진홍의 거리 언젠가 시내 교차로 신호등 앞에서 초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얼굴이 빨개지고, 코피가 사방으로 튀벅이며 작은 목구멍에서 나오는 비명을 지르면서 뺨을 맞고 있었다. 찰싹 찰싹 사정없이 내려치는 사람은 그 아이의 엄마이다. 노트 한권 어디갔냐고 아이를 죽일듯이 윽박지르며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를 때리고 있었다. 그 소리가 너무나 컸기때문에 차 안에서 내가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순간 나는 그 아이가 되어 버렸다. 철썩, 철썩 맞는 순간마다,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죄책감을 가져야 했고, 그 죄책감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라고 몸부림을 치고, 참기 힘든 아픔에 비명을 질러야 했고, 나는 왜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를 증오해야만 했다. 나는 차라리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단지 이 생각만 있었던 것 같다. 차라리 이세상 이란 곳이 존재하지 않아서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혹한 피의 향연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한겨울 날씨에, 피가 튀겨 나가면서 얼어버리는 광경을 묵도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피의 가루 까지는 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