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치과에는 모든 체어에서 구강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구강 카메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환이나 오랜만에 내원하신 환자분이 있으면 구강 카메라로 구석구석 사진을 찍습니다. 상담할 때 그 사진들을 활용하면 환자분의 이해를 돕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진료 중간 중간에 중요한 장면이 있으면 구강 카메라로 찍어서 환자분께 보여드립니다. 충치는 모두 제거되고 치수는 노출되지 않은 상태와 같이 환자분께서 눈으로 보시면 안심이 되실 사진을 찍어서 환자분께 보여드리곤 합니다. 조금 번거로운 과정이긴 하지만 환자분과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작업입니다. 구강 카메라를 손에 쥐고 참 좋은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물건이 없을 때는 어떻게 충치를 환자에게 보여주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치경과 손거울을 이용해서 어찌 어찌 충치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는 해도 치료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게 하기에는 부족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자분이 비용에 대해서 납득하고 치료에 동의하게 하기까지 신뢰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치료를 받는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치경과 손거울을 이
2019년, 나는 수능을 5번이나 보고나서 24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전북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때는 대학이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그 무엇보다 값진 성과라고 생각했기에 수능 공부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나름의 만족스러운 결과는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보다 먼저 대학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이 굉장히 외롭고 힘들었다. 같이 걷는 사람이 없었지만 내 목표만을 생각하며 버텼다. 2023년 여름, 총대표 선출일이 다가왔다. 총대표라는 직책에 대해서는 치과대학에 입학할 당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총대표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고 크게 관심이 없었다. 평범한 학교 생활을 추구했던 나는 어느새 동기들 사이에서 총대표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다. 제일 먼저 어떤 대표가 될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해답을 찾기도 전에 내 눈앞에 놓인 많은 일들이 보였고 그 일들을 처리해 나가기 급급했다. 피로가 누적되면서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2023년은 그렇게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2024
용궁을 다녀왔다. 숨차고 가래 끓는 증상이 롱코비드 기관지염 때문인가 해서, 진해거담제로 3개월을 버티던 중이었다. 정기검진 받고 오던 중 호흡곤란으로 서울역 계단에서 쓰러져, 휠체어-KTX-휠체어-119 순서로 충남대병원 응급실에 이르렀다. 호흡기 걸고 40시간, 내과중환자실 사흘, 폐부종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심장 약 후유증 문제 분석을 위하여 심장중환자실 나흘, 도합 9일 만에 퇴원하였다. 전에는 하나뿐이던 중환자실(Intensive Care Unit)은 응급·심장·신경의 3개 ICU로 진화되어 있었고, 교수·간호사 모두 과로로 탈진(Burnout) 상태였다. 필자가 충남대 병원에 근무하던 70년대 말 이래 전문과 숫자는 3배가 늘고 세부전공이 분화하여, 영상의학과·내과 수술 또는 시술(施術)이라는 다양한 진료형태가 생겨나 일반화 하였다. 치의신보에 ‘피안성과 정재영’이라는 A4 5장 분량의 칼럼을 쓴 것이 2010년 4월인데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의료대란이 국가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칼럼 내용은 ‘통합치과’ 인정을 촉구하는 목적이었지만, 의료계 인기 과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에서 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로 확대되는 시점에, 생명을 다루는 필수
구강은 먹고, 말하는 등의 일상적인 활동에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한다. 이는 입안의 치아와 타액 및 혀-입술 등 주변 조직이 조화롭게 작동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체 노쇠와 “구강노쇠”가 나타나면서 조화로운 구강기능은 어려워진다. 다시 말해 불면, 우울, 사회활동 저하나 손놀림 둔화로 구강관리가 소홀해지고, 3-4개 만성질환과 그에 따른 복합투약으로 입마름이 심해지며, 이로 인해 다발성의 치근 우식과 치주염 발생 및 다수 치아 상실에 따른 교합력 저하가 나타나며, 심지어 뇌병변에 따른 혀-입술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체 노쇠와 “구강노쇠” 사이에는 과연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에 대한 연구의 대부분은 이미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을 뿐 국내 상황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이에 지난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노년치의학회를 중심으로 ‘한국형 “구강노쇠” 진단기준 개발 및 효율적 관리 방안 연구’ 공청회가 개최되어 체계적 문헌 고찰, 빅데이터 조사, 델파이 설문, 해외 사례 분석결과를 공유하고 관련 직역들 간의 패널 토의가 진행되었다. 이에 필자는 신체 노쇠와 관련하여 “구강노쇠” 병명 도입의 필요성을 아래의 세가지
또 한 가지 연구과제를 마감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장애인 구강진료센터의 현황과 개선을 고민해 본 이번 과제는 강원권역 장애인 구강진료센터를 2년째 겸임으로 근무하고 있는 제게 특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제 주된 관심사인 구강건강 불평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과제에 보조 역할이나마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행운이었고, 무엇보다 장애인 진료에 투신하고 계신 여러 선생님의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장애인 구강건강 개선을 위한 일치된 의견을 도출해낸 전문가 간담회 현장에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벅찬 감동이 있었습니다. 모든 연구가 그러하듯, 첫 시작은 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심평원으로부터 제공받은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에 연속된 실수가 분석의 어려움을 더했고 미온적인 담당자의 대응은 하소연할 곳조차 없이 맡은 일정을 지연시킬 뿐이었습니다. 하나둘씩 분석 결과가 도출되어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열악한 장애인 치과 진료의 현실을 마주하며, 이번 연구를 유종의 미로 남기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로 장애인 치과 진료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는 아마 많이들 알고 계시는 불소도포 급여 청구
과정이 결과를 만들고, 자세는 과정을 만든다. 나는 여기에서 국가시험을 준비하면서 유지하고자 했던 마음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혹자는 이런 것보다 국가시험 고득점을 얻어낸 공부 방법이 더 궁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공부법에 특별한 것은 없다. 내가 많이 썼던 방법은 첫 글자를 따서 외우는 정도인데 이것은 전국 치과대학생들이라면 모두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보다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자세가 반영된다. 특히 시험을 준비하거나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이것은 더욱 돋보인다. 이 글은 그저 내가 27년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시험을 준비하며 얻어낸, 마음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이다. 향후 국가시험을 준비할 후배님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첫째, 교만하지 말자. 보통 ‘교만하다’고 말하면 ‘잘난 체 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것과 조금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교만하다’는 뜻은 ‘아직 잘 모르면서 안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정의를 바꾸어 보면 사람은 교만해지기가 생각보다 쉽다. 공부는 안 했는데 시험에 대한 용기가 솟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최근 의대 증원을 출발점으로 하여 의료 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합니다. 증원 논의가 다른 모든 논의를 다 덮어버려서 그렇지, 사실 더 중요한 제도적 변화가 뒤에서 대안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주어지고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가치 기반 지불제도로의 개편 제안입니다. 먼저, 잘 아시는 것처럼 국내의 의료 제도는 단일보험자 보편 보장 제도의 형식을
오래전 어느 설탕회사의 설립 초기에 있었던 일화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어렵게 사업허가를 받고 차관을 얻어 기계를 사고 기술도입계약을 맺어 공장을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드디어 대망의 시운전을 하는데, 기계에서는 나와야 할 설탕이 아닌 원당이 쏟아져 나오더라는 것이다. 몇 번을 다시 기계를 돌려봐도 똑같았다. 공정을 점검하고 기계를 뜯어봐도 문제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골머리를 앓던 차에, 지나가던 현장의 다른 직원이 무심하게 던진 ‘원료를 왜 저렇게 많이 넣지?’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고 한다. 욕심이 지나쳐 생산설비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는 원료를 들이부은 탓에 제대로 완성품이 나오지 못한 것이다. 다시 기계와 매뉴얼을 확인하고 적정량의 원료를 넣자 비로소 새하얀 설탕이 제대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설탕이 귀한 대접을 받던 오래전 이야기건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 첫째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 사람의 공로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닐터이다. 국내 최초로 도입된 기계 조작에 능숙한 사람이 있었겠는가. 몇달이나 여러 사람이 매달려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것을 보면 기술
주변에 치과가 개원을 하면 우리 치과에 환자가 줄어든다. 그건 여지없이 모든 치과가 겪는 일이다. 우리는 헤어샵도 쉽게 바꾸지 못하고 찾아다닌다. 잘 하는 헤어디자이너를 말이다. 가끔은 그 헤어 디자이너가 그만두면 그 사람을 따라가기 할 정도이다. 그런데 주변에 개원치과가 생기면 주변치과들은 일정기간 타격을 받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누가 개원치과로 가는 것일까? 대부분은 우리치과에 만족하지 못한 환자분들이 혹여나 저 치과는 좀 괜찮을까 싶어서 확인하러 간다. 이 치과에서의 나에 대한 관심이 마음에 들면 치과를 옮긴다. 이렇듯 만족하지 못한 환자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 곳도 별다를 바 없으면 원래 다니던 곳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런 환자들을 만족하게 하는 방법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환자관리를 잘한다는 모든 치과에서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환자 스킨십’이다. 자연스럽고, 친밀함을 주며 진료의 안정감과 따뜻함을 주는 스킨십은 좋은 결과를 주지만, 서투른 태도는 서로의 어색함을 부른다. 스킨십의 정답은 참으로 애매하다.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건 마취할 때 환자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이지만 이것도 대상에 따라서 연령대가 비슷하건
김치는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이다. 우선 김치의 어원을 살펴보면 채소를 절인다는 뜻의 침채에서 딤채 - 짐채 - 김채 - 김치로 변모하면서 오늘날까지 김치로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야채를 소금에 절여 먹어왔으며 1700년대에 중국에서 배추를 들여와 배추김치가 대중화 되면서 대표적인 김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전부터 각종 채소를 절여 먹던 김치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으므로 우리에겐 특별할 것이 없는 단어이고 늘 우리에겐 생활화 되어 왔던 김치는 김장김치, 백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파김치 등 삼백 가지가 넘는 다양한 김치 맛에 우리는 당연히 김치는 곧 대한민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요즘 들어 건강식품으로 인정되어 세계적으로 인기가 치솟으니 이웃나라에서 자기네 문화라고 우기며 파호차이라며 소개하는 웃음꺼리를 자초하고 있다. 중국어인 파호차이는 채소를 절여서 만든 여러 반찬의 총칭일 뿐 배추김치와는 별개다. 일전에 중국의 유명배우가 김치를 파호차이라 소개하면서 소금에 절이지도 않고 양념을 발라 만든 반찬을 자기네 고유의 전통 음식이라며 유튜브에 올린 적 있었는데 발효시키는 과정과 젓갈 등의 재료
작년 합계 출산율이 0.72로 집계가 되면서 또 한번 저출산이 화두에 올랐습니다. 23년 4분기만을 보면 0.65로 올해는 0.7도 무너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저출산율 2위인 스페인의 1.1과 비교해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소득이 오르는 국가에서 출산율이 감소되는 것은 전세계적인 트렌드이긴 합니다. 복지가 좋은 북유럽국가도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고 핀란드도 1.2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한국이 조금 더 압도적인 저출산 현상을 보이는 것은 사회의 경쟁적인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미국의 자본주의에서 다양성과 같은 가치들을 제외하고 자본주의적으로 효율적인 가치들 위주로 받아들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보험제도에서도 감기와 같은 경증 질환에 걸렸을 때 전문의를 당일에 만나서 약을 처방받고 금방 출근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식으로 제도를 갖추었습니다. 대신에 유병률이 낮은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굳이 태생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경쟁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식민지배 이후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경쟁이란 가치를 최우선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