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제1743번째 고양이 어릴적부터 반려동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키우는 모험을 해본적은 없었다. 애완동물 애호가도 아닐뿐더러 동물 보호론자도 아니며 동물 털 알레르기도 보유하고 있다. 매일 퇴근하던 청담대교를 넘어가다 청담대교 초입에 고양이 한마리가 고가다리 차량가드레일 위에 덩그러니 올라 앉은 모습을 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도둑고양이 같았는데 눈길이 간 이유는 거기에 고양이가 진입 하려면 차량이 많이 지나다니는 건대입구 사거리를 가로질러서 거의 600미터 가까이 되는 거리를 거슬러 올라 와야만 하는 거리라 신기하기도 했고 불쌍하기도 해서였다. 하지만 곧 그 광경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졌다. 다음날은 금요일 이었다. 주말을 기다리며 하루 일을 마치자마자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 하던 길이었다. 문득 며칠전 고양이가 생각나 혹시나 싶어 가드레일 쪽을 보면서 올라가자 전보다 더 한강 쪽으로 올라간 지점에 그 고양이가 오도 가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차를 세우려 했지만 시속 60키로 이상의 차량이 고속으로 다니는 외길이었고, 구부러진 길이라 차를 세웠다가는 대형사고를 못 면할 것 같았다. 결국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고양이가 어떻게 살 것인지 하는
Relay Essay 제1742번째 안국동 북촌 산책길 저녁을 먹고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에는 안국동을 산책한다. 운치 있는 달을 보면서 경복궁 담벼락을 걷는 것이 즐거운 일과이다.삼청동에 있는 빵집에 들러서 내가 먹을 올리브 치아바타와 남편이 좋아하는 파이를 사고, 빵집 건너편에 원두를 파는 커피숍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삼청동 가게들을 구경한다. 경복궁 길에 새로 돋은 은행나무 잎의 여리고 사랑스런 연한 연두 잎 색깔도 유심히 보고 고궁너머 하늘과 북악산 자락도 본다. 저녁시간이라 갤러리 문은 닫았지만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전시품들을 기웃거린다.내가 자주 들리는 모자가게가 있다. 프랑스 모자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예쁜 모자가게 주인은 매일 밤늦게까지 모자를 만든다.한 개를 만드는데 꼬박 2일이 걸린다고 한다. 진열대에는 별로 모자가 없다. 만들어서 팔기에 항상 시간이 빠듯하다고 한다.종업원이 없이 혼자라 모자 사려는 손님이 없는 저녁시간이면 문을 닫고 바느질을 한다.지나가다가 혼자 일하고 있는 것이 보이면 나는 문을 두드려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기도 하고 집중이 잘 안 되는 날에는 나를 가게에 들어오게 해서 만들고 있는 모자를 씌워보기도 한다. 아직은 젊고
Relay Essay제1741번째 악몽 작년 가을이었다. 결혼한 이후로 하루하루 다르게 늘어가는 뱃살에 고민하던 무렵이었다. 우연히 본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몇 십 킬로그램을 감량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을 하고 자전거 가격을 여기 저기 알아보았다.그러다 발견한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자전거와 레저용으로 팔리는 자전거는 가격부터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었다.고민 끝에 실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처남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질문했는데 하는 말이 고급으로 하려면 중형차 한대 값이고 적어도 기본으로 좀 타려면 백만 원은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이에 ‘마눌님’에게 운동하려 하니 자전거 하나 사 달랬더니 들리는 말이라곤 운동화 신고 뛰라는 조용한 협박뿐이었다. 어쩔 수없이 처남에게 일단 먼저 한번 타보고 결정하겠다고 우격다짐으로 아끼는 자전거를 빼앗다시피 해서 한강으로 갔다.성남 분당에서 출발하여 잠실까지 20킬로미터가 안 되는 거리를 갔다 오는 것으로 계획하고 즐겁게 운동하는 마음으로 탄천으로 향했다.탄천에 도착하니 가을 날씨에 흐르는 물은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선선한 바람에 흐드러지게 핀 억새들은 나를
Relay Essay제1740번째 일본에서 만난 ‘노무라 할아버지’ 마츠도의 치과 선생님인 하야시 선생님께‘푸르메 재단’을 알고 있냐는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난 잘 알아듣지 못했다. 사실 쉬운 발음의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달이 안되기도 했지만 일본 선생님에게서 듣게 될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기에 더 그러했다. 그렇게‘노무라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하야시 선생님은 매주 화요일이면 이바라키현의 미토시에 위치하는‘미토장애인진료센터’로 외근을 나가신다. 거기에 하야시 선생님의 친구가 치과위생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녀가 바로 노무라상이다.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사람 (이게 나)이 있다는 말에 푸르메 재단을 알고 있냐고 물어본 것도 노무라상이다. 노무라상이 주었다는 신문 기사는 푸르메 재단의 장애인시설 치과진료봉사활동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기사 속에 봉사활동을 함께 한 노무라 부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인연으로 일본의 치과위생사가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푸르메 재단의 치과진료봉사에 참여하게 된 걸까? 궁금함은 커져만 갔고, 내 본래 목적이었던 장애인진료센터 견학과 함께 그 궁금함도 해결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12월 6일 화요
Relay Essay제1739번째 일본 장애인치과 연수를 다녀와서 2010년 가을, 대한장애인치과학회와 일본장애인치과학회 사이에 맺어진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단기간 일본 연수의 기회가 있는데 지원할 의사가 있는가에 대한 병원장님의 말씀이 있으셨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2005년 처음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이 생긴 이래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장애인 진료를 해 온 나에게 우리나라보다 20년 이상 전부터 장애인 치과진료를 시행해 온 일본의 현실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니 너무나 달콤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양국 학회의 허가와 병원장님의 허락 하에 3개월 가량의 일본 단기 연수가 정해지고, 자세한 일정 및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조절이 시작됐다. 준비과정 중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연이어 들려오는 원전사고, 그로인한 방사능의 영향이라는 실시간 뉴스들이 나에게 심적인 부담감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보다는 일본학회 방문 때 느꼈던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일본장애인치과학회의 열기와 일본 치과의사들의 높은 참여도 등이 과연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에 관한 궁금증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열망이 더 컸기에 마
Relay Essay제1738번째 꽃피는 봄에 떠난 주말 여행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다. 몇년 새 기후 변화로 인해 봄다운 봄을 느끼지 못한채 바로 더운 여름으로 넘어갔지만, 또 지금도 더울 땐 여름 못지않은 열기를 내뿜고 있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다. 참 신기하게도 지구상에 있는 수목들은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고 저마다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상춘객들을 유혹하듯 부른다. 우리 가족도 수목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오랜만에 가족들이 주말을 맞이해 봄나들이 채비에 여념이 없다. 예전 엄마가 초등학교 운동회 때 싸준 김밥을 생각하며, 좀 일찍 일어나 김밥과 과일 등 먹거리를 만들고 나니 아이들이 일어난다. 남편은 오랜만에 장거리 여행을 간다고 차를 청소해야 한다고 나갔고, 아이들은 눈꼽 낀 눈으로 내가 만들어 논 김밥이며, 먹거리에 탐을 내고 이미 몇개의 김밥이 입속에 들어가 있다. 주말이라 좀 밀릴 것 같다는 남편의 말에 아침을 김밥으로 때울 요량으로 급히 서둘러 나갔다. 역시 요즘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해도 가족과 즐길 수 있는 부분은 비용을 아끼지 않는 추세인거 같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차들이 고속도로위를 질주하고 있다. 김밥을 몇개 맛보지 못한
Relay Essay제1737번째 나의 이중생활? 치과의사면허를 따고 치과의사로서 20년차, 단독개원의로서 18년차인 40대 중반의 한 남자.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규정을 하는 나의 정체성이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원래 물리학자의 꿈을 꾸고 물리학과를 지망했지만, 안타깝게 1지망에서 떨어지고 생각지도 않았던 치의예과에 입학하였다. 재수를 고민하다가 당시 활발하던 학생운동에 발을 걸치게 되면서 학교를 그냥 다니게 되었다. 학업에는 그다지 뜻도 없고 적성도 맞지 않아, 당시의 많은 운동권 학생들이 가던 길처럼 투쟁 중에 구속되고 휴학이나 퇴학당하고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었지만, 치과의사로서의 삶이 계속 나의 길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치과의사를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해준 것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약칭 건치)’였다. 치과의사로서 사회의 진보적인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수돗물 불소화사업 같은 구강보건사업을 힘있게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치과의사로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고 학생 때 제대로 못한 공부를 뒤늦
Relay Essay제1736번째 친구 아들 “아빠 또 보고 오면 저도 좋아요.” 작년 여름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투병기간 동안 가끔 전화로 위로와 추억을 주고 받았지만, 막상 친구의 소천 소식에는 그저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불과 넉 달 전 나의 둘째 딸 결혼식에 불편한 몸으로 애써 참석해 축하해 주던 모습이 흐르는 눈물에 희미해질 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었다. 금년 3월 휴일에 미루던 숙제인 친구 묘소에 다녀왔다. 정확한 묘소 위치를 몰라서 친구의 아들과 연락을 주고받던 중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묘소 위치와 번호만 알려주면 찾아 가겠다”고 해도 굳이 자기가 묘소를 안내하겠다고 하면서 보낸 문자가 앞에 있는 글이다. 친구는 양지 바른 언덕에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과 큰 형님 발치에서 편안히 쉬고 있었다. 아직 큰 누님과 세 형님은 잘 지내시건만, 막내인 친구는 어찌 그리 서둘러 갔는지…. “얼마 전 아버지 묘소에 다녀오면서 엄마와 대화중에 김 선생님 얘기를 했었는데, 오늘 선생님께서 아버지 묘소에 가신다고 연락 주셔서 놀랐습니다. 아마 하늘에 계신 아빠께서 우리들 마음을 다 알고 계신 듯 합니다” 이런 얘기를 시작으로 우린 봄볕 가득히 쏟아
Relay Essay제1735번째 내가 사랑한 ‘세 여자’ 이런 제목을 달고 수필을 쓰려고 하니, 마치 인터넷에서 올라온 기사성 글귀에 현혹되어 클릭하다, 요즘 하는 말로 낚였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앞에 두고 세 여자에 대한 관심, 사랑,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여자는 다름 아닌 어머니, 아내, 딸입니다. 누군가 남자는 철이 늦게 든다 라고 하는데 결혼을 해서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서야 철이 든 느낌입니다. 어린 시절 힘들고 괴로울 때면 항상 옆에서 격려의 말씀과 더불어 자신감을 주셨던 어머니가 칠순(七旬)을 넘어 아직도 이 철부지 아들을 멀리서 못내 그리워하며 염려하고 계시는 것을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말씀은 자주 안하시지만 고향에 내려가거나 전화를 드릴 때 늘 하시는 말씀은 항상 “몸 건강해라”라고 말씀하시며 집에서 기른 농작물이나 당신께서 직접 손수 담근 김치며, 여러 가지 반찬을 꼭 손에 쥐어 주시곤 하십니다. 결혼을 하고나서 이제 그러실 필요가 없고, 가져가기도 번거롭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오히려 택배로 보내시는 방법까지 터득하셔서 보내주시는 어머님의 자식에
Relay Essay제1734번째 큐슈대 치대생 부산대 치전원 방문 지난 3월 14일 큐슈대학교 치과대학 교수 2명, 행정실 직원 1명, 학생들 12명이 부산김해국제공항으로 입국하였다. 이번 행사는 지난 1988년 치과대학 때부터 시작된 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의 국제교류프로그램으로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총 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날, 큐슈대학교 일행들은 부산대학교 치과병원 및 치의학전문대학원을 견학하였다. 대학원 세미나실에서 환영인사를 하고 양교 학생들은 자기소개 인사를 하였다. 자기소개 후 한국 학생들은 준비한 선물을 일본 학생들에게 전달해주었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일본 학생들은 뜻밖의 선물에 감동하였다. 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앞에서 단체사진 촬영 이후 부산으로 이동해서 해운대 웨스턴 조선비치 호텔에서 정두윤 부산대학교 치과대학 및 치의학전문대학원 동창회장 주관으로 만찬을 가졌다. 이번 국제교류프로그램을 진행한 박봉수 교수(구강해부학교실)를 비롯해 정태성 치의학전문대학원장, 박혜련 부원장, 안용우 학과장 그리고 여러 교수, 교직원들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환영 만찬 이후 양교 학생들은 서면으로 이동해서 친목의 자리를 가졌다. 막걸리와
Relay Essay제1733번째 UCLA치대 유학을 마치며 치과의사 20년째 되는 2010년 저는 큰 결심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20년 동안 저를 거친 많은 환자분들의 칭찬을 받았고 수많은 큰상을 받았지만 저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제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부족하기에 포기하거나 실패했던 환자들 앞에서 저는 할 말을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늦은 나이의 유학은 절실함에서 온 결심이었고 큰 도전이었습니다. 미국의 최고의 명문 UCLA치과대학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공부하는가운데 위로를 받았습니다. 진료실에서 강의실에서 그리고 사람과의 대화에서 진정한 치료는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으로 하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유학생의 하루 하루는 매일 새로운 각오와 용기로 시작했지만 항상 긴장과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침 8시에 시작하는 대부분의 수업은 쉬는 시간도 없이 3시간 동안 진행되고, 점심시간을 이용한 외과보철 치주 3과의 공동 임상증례 토론이 이어지면 바로 수술실 참관과 진료 참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미국 개원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같이 참석해 실습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