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협 제32대 집행부는 회원들을 위한 ‘민생 회무’를 모든 정책 추진의 첫 번째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이에 본지는 각 회무를 현장에서 이끌어가는 집행부 임원들이 직접 기고하는 형식의 ‘치협 정책 핵심 체크’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열린 지면을 통해 치협 임원과 독자들이 소통의 폭을 넓히고, 나아가 치과계 현안 추진을 위한 중지를 담을 해당 기고에 많은 관심과 성원 당부드립니다.<편집자 주> 바야흐로 가을이다. 전통적으로 농촌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논밭의 곡식은 물론 산과 들의 초목도 저마다 열매를 맺는다. 농부들은 한 해 힘써 가꾼 곡식을 거두고, 동물들도 양식을 갈무리하며 살과 털을 찌워 혹독한 겨울을 대비한다. 치과계야말로 지금 겨울을 대비할 때인 것 같다. 플랫폼 업체를 중심에 두고 본말이 전도된 듯한 비급여 공개 정책을 강요당하고 있다. 침체된 경제상황에 물가와 제반 비용은 치솟고 비용 부담은 커져만 가고 있다. 거기에 점차 가중되고 있는 진료 보조인력 구인난은 치과회원들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플랫폼과 연계하여 비정상적인 저수가로 치과계를 어지럽히는 의료기관이 창궐하고 있는 현실이다. 치과의사
사람들은 살면서 매 순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제일 가깝게는 가족, 친구들, 연인과의 관계가 있을 것이고, 학교를 다니면서는 선생님, 교수님과의 관계, 단골 식당에서는 사장님과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 아마 치과의사가 된 후에는 환자, 치과위생사와도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다. 관계라는 건 참 어렵다. 평소에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기에 특별한 자극을 느끼지 못하지만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아침에 눈뜨고 밤에 눈 감을 때까지, 혹은 그 넘어서까지도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가화만사성이라는 고사성어도 다섯글자에 그 뜻을 담고 있지 않은가. 유치원때부터 교우관계가 좋다고 소문난 아이 중 하나였던 나에게도 관계는 민감한 주제였다. 관계는 다양하게 이뤄진다. 갑과 을의 관계, 동등한 관계, 사랑하는 관계 등... 간단하게는 긍정적인 힘을 주는 관계와 나를 위축시키는 부정적인 관계가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관계에 대해서 극단적인 표현으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관계라는 것은 배려와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내 몫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관계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다양하다. 손해를 보더라도
50대 후반의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입니다. 좋은 꼴 싫은 꼴을 많이 보기도 하고, 또 보여주기도 했을 텐데도 지금껏 잘 참아낸 당신의 인내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금 당신은 더 이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받지 못한다는 체념으로 가득 차, 힘없이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가련한 처지가 아닙니다. 세월이 만들어준 순화된 감성은 다른 이들의 원함을 더 잘 받아들이고 보듬어줄 준비가 된 것이고, 은은한 미소가 만들어낸 주름은 넉넉하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해주었고, 느릿한 음성은 굳이 힘껏 내지르지 않아도 저 멀리까지 당신 마음의 소리를 퍼지게 해주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차귀도는 죽도, 지실이섬, 와도의 세 섬과 작은 부속 섬을 거느린, 제주에 있는 무인도중 가장 큰 섬이라고 합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아름답고 다양하게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근처의 수월봉 높은 정자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평안한 느낌과, 지금처럼 약간 북쪽의 해안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또 다르게 다가옵니다. 평안히 누워있는 망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힘차게 대양을 향하는 고래이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무엇일
아침 햇살에 따듯함을 기대하면서 빼꼼히 창문을 열면 포근한 느낌보다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바람결에 성큼 들어옵니다. 일교차가 꽤 나서 몸이 웅크려질 지경입니다. 어느덧 올해가 9월도 마지막 주로 접어들어 바야흐로 가을의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30도를 훨씬 넘는 날들이 이어져서 꽤 무더웠고, 하늘이 찢어진 듯이 퍼부어대어 많은 침수 피해를 내었던 폭우, 그리고 연이어서 찾아온 태풍은 대비한다고는 했어도 많은 분들을 힘들게 했지만 그런 여러 가지로 힘겨웠던 여름이 그래도 시간이 지나가니 어느덧 멀리 가버리고, 절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도록 하는, 아침, 저녁으로 결실의 계절 기운을 느끼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가을에는 가까운 교외에서 코스모스의 여린 모습을 볼 수 있고, 산에라도 가면 오르내리는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겹겹이 낙옆이 쌓여서 걸을 때마다 나는 바스락 소리에 절로 시인의 감성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단풍은 곱게 물들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때론 붉게, 때론 노랗게 바꾸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찾아오는 봄이 앞으로에 대해서 생명의 시작과 설래임이 있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왠지 만남, 그리고 그 이후에 느껴질 그리
알프스 산맥의 많은 산 중에서도 가장 높다는 몽블랑(Mont Blanc, 해발 4,807m)은 ‘흰 산’ 이란 뜻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에 위치하여 국경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실제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닌, 자존심 싸움에 가까운 것입니다. 관람을 위해 방문한 에귀뒤미디(Aiguille du Midi, 해발 3,842m, 한낮의 바늘) 봉 정상에 설치된 전망대는, 프랑스의 샤모니 마을에서부터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는데, 정상부근을 빠른 속도로 오르내릴 때는 놀이기구를 타듯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늘 함께하면서도 특별한 느낌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것, 그것은 바로 ‘공기’입니다. 실제로 공기에도 무게가 제법 있어서, 1기압에서는 1세제곱미터 당 1.2kg이나 됩니다. 단시간에 고지에 빠르게 오르면서 산소부족으로 나타나는 증세가 고산병인데,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구토 증세와 호흡 곤란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늘 곁에서 지켜 주고 있었으나,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감사함도 표하지 못하여, 떠난 뒤에야 비로소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못난이들의 숙명입니다. 휘청거리게 취했을
얼마 전, 우리 치과 옆에 있던 백화점이 문을 닫았다. 단일 점포 백화점으로서는 서울에서 유일한 백화점이었다. 27년 동안 성업했던, 이 동네의 랜드마크 백화점이었는데 코로나19라는 악재를 견디지 못 하고 결국 폐업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명품 백화점은 아니었지만 나름 인지도 있고, 나름 가성비 좋은 물건들이 많은 백화점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없어지고 나니 자주 가서 사 입고 사 먹고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치과 주변에 있던 치과 두 개가 1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요즘 떠오르고 있는 상권으로 떠난 것 같다. 우리 치과가 입지한 동네는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4호선 출구 주변은 오래된 상권이고 7호선 출구 주변은 새 상권이라 할 수 있다. 재래시장을 앞세운 오래된 상권의 세력은 막강했었다. 새 상권이 생긴 후로도 오래된 상권의 세력은 좀처럼 쇠하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한 백화점도 오래된 상권에 있었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곳에 터널이 하나 뚫리더니 흐름이 바뀌었다. 그 터널로 통하는 긴 대로가 새 상권과 만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새로 지어지는 건물은 모두 새 상권에 자리하고 있다. 새 상권 주변의 주거지역이 마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공부해서 남 주냐’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만큼 공부하면 공부한 자신한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이죠. 하지만 살다 보니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이 공부이고 그 공부를 통해 남에게 많이 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학생 때 입시를 위한 공부와는 또 다른 공부의 세계는 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의 공부, 직업을 유지하기 위한 공부, 새로운 영역의 확장을 위한 또 다른 공부, 취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할 공부, 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 자녀를 제대로 키우기 위한 공부 등 쉴 틈 없이 우리는 공부를 해 왔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은 이 사회를 이해하고 또 사회 구성원을 사랑하고 살아가기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최재천 교수님은 이런 공부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분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오늘 올린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4만7천명 이상이 감상하고, ‘좋아요’를 현재도 외쳐주고 계십니다. 다국적 대상의 사진 콘테스트에서 제법 큰 상도 수상한 작품입니다. 대한민국 공군 에어쇼팀 'Black Eagles'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데 작은 기여를 했다고도 생각합니다. 촬영 후 여러 해가 훌쩍 지났지만, 그때 비행장 근처의 야트막한 야산 언덕 위를 빽빽이 메웠던 카메라들과 결정적인 순간을 낚아채기 위해 집중하던 수많은 눈들을 기억합니다. 난생 처음 에어쇼 장면을 촬영해보겠다고 며칠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진 작품들을 열심히 검색하고 분석해보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이후로 몇 번을 더 에어쇼에 가면서 비행 순서를 외울 정도가 되니, 좋은 장면을 촬영해야겠다는 긴장감이 반대로 점점 떨어지더군요. 사진 촬영하는 장비를 신형으로 늘리고, 테크닉을 기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지만, 저 사진 이후로는 늘 아쉬움만 쌓여갑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애초에 제목은 ‘악마의 손톱 (The Devil's nails)’으로 출품 하였습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손톱을 발톱으로 수정하였습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 할퀴고 쥐어뜯고자 하는 네 발의 발
강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진료 일정으로 불가피하게 강원 전역 60여 기관의 아동 구강 건강 실태조사 검진 일정을 4주에 몰아넣었는데, 4개월 된 아들의 육아 난이도가 나날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보부상이라도 된 양 매일 강릉에서 출발하여 짧게는 동해, 멀게는 철원까지 운전하고 검진을 마친 뒤 다시 운전하여 녹초가 되어 돌아와 육아를 시작하는 일상의 반복입니다. 카페인에 의존하여 운전대를 부여잡고 대관령을 넘다 보면 안개 자욱한 저 너머에서 산신령이 손짓하는 듯하지만, 스스로 뺨을 때려 강렬히 거부하며 어떻게든 매일의 임무를 완수하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무척이나 지치는 일상이지만, 정신만큼은 온전히 무장할 수 있는 데에는 요즈음 매일같이 마주하는 ‘불평등’의 현장이 있습니다. 아동 구강 건강의 ‘불평등’입니다. 시 단위 지역 조사에 못지않게 군 단위의 지역을 많이 다니다 보니 치과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아동의 구강 건강 상태로부터 발견되는 불평등부터 같은 반 아이들의 평균에 비해 크게 차이 나는 아동의 구강 건강 불평등까지, 조사에 나설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상황이 관찰되곤 합니다. 이들 현상에 대한 추가 분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치과의사로써 간혹 의사나 사회의 시각이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의사보다 전문성이 부족한 직업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하지요. 그래서 묻습니다. 의과와 치과, 의학과 치의학은 어떻게 나누어지게 되었나요? 앞으로 이런 차이에 변화가 생길까요? 익명 작년 말에 이 질문, “의과와 치과는 왜 나누어졌을까?”를 개
그 시절 제일 맛있게, 그리고 질리게 먹었던 도시락 반찬은 장조림과 멸치였습니다. 한 품으로 안기도 힘들만큼 커다랗고 노란 자루봉투에는 마른 멸치가 꽉꽉 채워져 있었는데, 볶음용 멸치건 육수용 멸치건 쓴 맛을 없애기 위해서는 검은 내장을 일일이 잘 발라내야 되서, 바닥에 신문을 깔고 온 식구가 한나절 이상을 매달려야 했습니다. 빙 둘러 앉아 도란도란 시작했던 멸치 까기는 공부, 졸음, 귀찮음을 핑계로 한 형제들의 이탈로, 결국 엄마와 나 두 사람이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양반다리로 시작하여 엎드린 자세로 바꿔가면서 몇 시간씩 참을성 있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이제 그만 들어가 쉬라는 말씀에도 끝까지 엄마와 함께 비릿한 멸치를 다듬었습니다. 10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엄마는 작지만 예쁘고, 사려 깊고, 총명하셨지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셨지만, 숫자 계산이 빠르고 정확하셨으며, 상황 판단이 합리적이고 활동력이 강해서 친척들 행사나 동네 대소사 모임을 우리 집에서 주관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여러 포대의 그 많은 멸치를 까는 동안 엄마와 나누었을 대화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오랜 입원 생활, 정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