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책임감

스펙트럼

어릴적 유행하던 ‘덩달이 시리즈’ 중 학교에서 돌아온 덩달이의 책가방을 정리하시던 할머니가 책을 꺼내시며 “이게 책임감”하던게 아직 생각납니다. 아재 개그에도 속하지 못할만큼 썰렁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진짜 “책임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스펙트럼에 썼던 “뭐 먹을까?”라는 제목도 사실은 “뭐 먹을래?”하고 물어보는 질문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듯한 질문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정작 책임지지 못해서 아니 책임지기 싫어서 책임을 떠미는 말일 뿐입니다. 인터넷에서 맛있게 보여서 가족 모두를 데리고 갔지만 맛은 커녕 분위기조차 별로여서 미안한 마음을 가져보신 적이 한두번씩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가격까지 비싸서 낭패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그러한 불편한 감정을 굳이 가지고 싶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심리입니다.

“결정장애가 있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서 결정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배달음식을 시키려면 중국집, 피자, 치킨, 족발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종류의 음식을 시킬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티비를 켜서 서너가지 채널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되었지만, 지금 유투브에 들어가면 평생 보아도 다 볼 수 없는 영상이 하루만에 올라옵니다. 하지만, 정말로 결정을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보다는 그 결정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책임을 지기 싫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인간인 우리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최고의 화두인 미세먼지 하나 책임지지 못하고 있으며, 그보다 큰 자연 재해에 대해서 인간이 다 막을 수는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자연은 너무 큰 카테고리라 해도, 우리는 우리의 안전, 건강, 행복에 대해 완벽하게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예방하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 아닐런지요.

책임을 지지 않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는 곧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뒤집어서 생각하면, 우리가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편안함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지만, 현 세태는 편안함, 안락함, 안정감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은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좀더 편안하고, 좀더 안락하고, 좀더 안정된 삶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편안함, 안락함, 안정감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국 무협 영화에서 보듯이 고난으로 수련을 받아야만 단련이 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이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분명히 개인에게 어떠한 방향으로든 도움을 주겠지만, 고난이나 역경을 수련 과정 쯤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운다는 말은 요즘 잘 쓰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해서 아이비리그에 들어간 많은 한국 학생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졸업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반증일 것 같습니다.

“책임감”, 세 글자로 너무 거창한 글을 쓴 것은 아닌가 합니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정치인이 공약에 책임을 지고, 공무원이 책임지기 싫어서 일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공무를 하고, 경제인들이 자기 사업에, 자기 사업체에, 그리고 그 사업체에 일하는 사람들을 책임을 지고, 의료인이 치료에 책임을 지고, 소비자들이 큰소리로 진상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비에 책임을 진다면, 멋진 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서구 사회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신용”을 중요시 하는 그들의 사회를 조금 본받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서구 사회도 많이 무너지고 변질되고 어려움을 겪지만, “신용”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사회를 유지하는데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고유의 “정”도 잃어버리고, “신용”이라는 가치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지 않았나 아쉬움을 토로해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항진 사랑이 아프니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