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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3개 보건소, 10년 근무 치의 무더기 해고

“치과의사 OUT?” 공공의료 설 자리 잃어가는 치과 현실화
코로나19 회복기 진입했지만 구강보건사업은 ‘역주행’
수모 당하는 공공 부문 치과 “기반 상실 위기 적신호” 지적

 

“고양시 보건소의 치과의사 무더기 해고는 공공의료부문의 치과 입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도 고양시 산하 A보건소에서 근무 중인 치과의사 박윤정(가명) 씨는 최근 갑작스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보건소 측에서는 명목상 조직 개편, 근로계약형태 변경, 업무 수행 부족 등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 씨는 어느 것 하나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업무 수행 부족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역학조사관으로 헌신한 노고까지 무색하게 만드는 수모에 가까운 처우라고 느꼈다.

 

# 기형적 계약 형태로 '토사구팽'
이번 사건은 지난 5월 3일 경기도 고양시 산하 3개 보건소가 치과의사 3명과 한의사 2명 등을 무더기 계약 해지 통보한 데서 비롯됐다. 또 이 같은 사실이 지난 6월 15일 뒤늦게 드러나며 물의를 일으켰다.


상황을 접한 지역 사회에서는 보건소가 의료취약계층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치과계 일각에서도 이번 사건이 지역 구강보건사업 위축의 나비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강한 우려를 제기했다.


무엇보다 해당 치과의사들은 평균 10년 이상 해당 보건소에서 근무하며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까지 수상할 만큼 지역 구강보건의료 향상에 힘써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토사구팽’식 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처럼 고양시 보건소가 치과의사들을 일방적으로 무더기 계약 해지 할 수 있었던 것은 특수한 계약 형태를 바탕에 뒀기 때문이다. 관련 보건소들은 고양시 조례에 따라 ‘업무대행’ 형태로 치과의사들과 1년 주기의 갱신형 계약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런데 이는 통상적인 근로계약이 아닌 사업자간의 위탁계약과 유사하다. 따라서 일방적인 해지 통보를 받아도 근로기준법 등 현행법의 직접적인 보호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해당 치과의사들은 실제 업무 환경이 사업자간의 계약과는 상이했다고 주장했다. 보건소장의 업무 지시 및 근태 관리를 받은 점, 정액 보수를 수령한 점, 일반 공무원과 동일한 근로시간을 준수한 점 등 사실상 통상 근로자와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대법원(선고 93다17843)은 기간제 근로자라 할지라도 갱신이 반복돼 사실상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 무기 근로계약과 동등하므로 정당한 사유 없는 갱신 계약 체결 거절은 무효라고 판시한 바 있다. 즉, 이번 사건은 단순한 계약 해지가 아닌, 부당 해고의 측면에서도 면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관련 종사자들은 이러한 계약 관계가 현재 경기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 보건소에서 자취를 감춘 기형적 형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2017년 업무대행 의사의 고용형태 변경을 권고해, 각 지자체가 시정 조치한 바 있다. 당시 고양시 또한 업무대행 의사들과 간담회를 열고 2019년 7월 1일까지 임기제 공무원 전환을 약속했으나, 실제 이행되지는 않았다.


행정상 문제점도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지역보건법은 광역시의 구나 인구 50만 명 이상 시에 소속된 구 보건소로 하여금 치과의사 1명을 의무 배치토록 규정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지역의 치과의료 공백을 야기하는 행정 오류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 “굴욕적 조치, 끝까지 투쟁”
이번 사건에 맞서 해당 치과의사들은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른 행동으로 지난 10일에는 함께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한의사들과 연대해 고양시 감사팀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공식 답변을 요청했다.


지역 치과계에서도 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동참했다. 경기지부(회장 최유성)는 사건이 공론화된 직후인 지난 16일 한준호 의원(경기 고양시을)과 면담을 요청하고 시도의원 참석 하 ‘확대 재회의’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 밖에 경기도한의사회와 공조할 방침도 수립했다.


최유성 경기지부 회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보건소 근무 치과의사의 고용과 처우에 관한 자료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요청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현 시대에 맞는 보건의료정책 수립을 위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노력에 고양시의회에서도 전면 검토 움직임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7일 이해림 고양시의회 의원은 사건 경위를 검토하고 보건소 측의 계약 해지 통보가 불합리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수정할 정책적 방안 수립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논란 확산에도 불구하고 고양시 보건소 측은 침묵을 고수하는 중이다. 덕양구 보건소에서 관련 사안에 관한 공식 답변을 총괄 준비 중인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으나, 아직까지 공개된 바는 없다.


현재 관련 보건소 구강보건실은 잠정 중단된 상태다. A보건소의 경우, 유니트체어를 밀봉하고 공간 전체를 감염병 대응을 위한 외부 인력 사무 용도로 사용 중이다.


박윤정 씨는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완화되며 전국 각 지자체의 구강보건사업이 활기를 얻기 시작하는 시기에 고양시 보건소는 역주행 행정을 벌이고 있다”며 “보건소는 정부의 정책 변화를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체감하고 포착할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사건은 비단 해고 당사자인 제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 내 치과 기반을 흔드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치과계가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