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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10월 29일 밤 10시경 서울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좁은 길에서 무려 15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너무나 황당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간 코로나로 즐기지 못했던 젊음을 만끽하기 위해 할로윈을 핑계로 즐겁고 들뜬 마음으로 나왔을 이들이 그 좁은 골목에서 단 10여분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하늘의 별이 된 것이다. 희생자 대다수는 이제 갓 자신의 인생을 그려나가기 시작했을 우리의 미래인 소중한 젊은이들로서 자신의 그림도 미쳐 완성해보지 못한 채 순백의 도화지에 큰 여백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그 소중한 이들의 허망한 죽음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이를 이용하려 다시금 설왕설래하고 있다.

 

의도적인 건지 아니면 무지에 의한 단순 객기인지 그 밀집된 군중을 아래로 밀어붙인 불상의 청년(?)들에 의해 도미노 식으로 넘어지며 순식간에 수백 킬로그램의 하중을 받으며 깔렸을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생명이 꺼질 때까지 그 짧은 순간 과연 어떤 황망한 심정이었을까? 약 5년전 필자는 회식 후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기사가 조는 바람에 길 옆의 가로수를 들이 받는 사고를 겪은 적이 있다. 동승자가 있어서 운전자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던 필자는 충격 직전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몸을 지탱해 보려고 하였으나 충격 후 잠시 정신을 잃었고, 깨어 났을 때에는 택시 뒷좌석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정신은 멀쩡하였으나, 사고시 가슴 타박상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계속되는 노력에도 여전히 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 초가 한시간처럼 느껴지던 순간, 문득 이렇게 숨을 계속 못 쉬다가 죽는 것 아닌가? 이건 너무나 허망한 죽음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남겨질 가족들, 지인들, 꼭 했어야 했을 일들까지 초 스피드로 스쳐 지나갔다. 순간 밀려오는 공포감으로 힘을 내어 택시 창문을 두드렸다. 하늘이 도왔을까 지나가던 행인이 차안을 들여다 보는게 아닌가? 더 세게 창문을 두드리니, 차문을 열고 괜찮냐고 물어본다. 아직 숨을 못 쉬니 말을 할 수 없고, 손짓으로 빨리 꺼내어 가슴 압박을 해달라고 했다. 마침내 정신이 몽롱해 지려는데 그 친구가 필자를 차 밖으로 막 꺼내었고, 그 순간 가슴이 좀 비틀렸는지, 밀폐 용기 뚜껑을 처음 딸 때 나는 소리처럼 피익하며 약간의 공기가 들어온다. 점점 호흡이 나아지며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서 구급차를 기다렸고, 전신 타박상 외에는 큰 문제가 없어 다음날 아침 멍든 몸이지만 예정된 수술도 하고 무리없이 잘 나을 수 있었다. 만일 그때 내가 정신을 계속 잃고 있었다면? 만일 그때 내가 택시 창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마침 지나가던 행인이 없었다면? 나도 이태원의 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황망한 결과를 맞이 하였을 것이다. 이후 필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람은 그리 쉽게 죽는 존재가 아니라는 믿음 대신 삶과 죽음은 바로 지척에 있고, 사는 것과 죽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인간은 어차피 한시적인 삶을 살수 밖에 없고, 인생의 전성기는 불과 20~30년 뿐이다. 그 이전은 부모에 의한 양육 및 준비기간, 심지어 인생의 전성기에도 나의 DNA를 물려줄 후세를 돌보는 것에 보다 많은 에너지가 집중되고 자녀가 완전히 성장한 이후는 신체적 정신적인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인생이 마무리 된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는 말도 있듯이 본능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DNA를 잘 보존하여 미래에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을 중요시 하기에 특히 자식뻘 되는 한참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젊은이들에 대한 감정은 그 안타까움이 배가 되는 듯 하다.

 

우리말에 생을 마감하는 것을 “돌아가신다”고 한다. 이는 어느 나라 표현에도 없는 말이다. 윤회사상을 기본으로 하는 불교에서 온건 지 아니면 우리나라 고유의 죽음에 대한 관점인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현생과는 분명히 다른 어떤 세상(저세상)이 있다는 믿음이 있으셨나 보다. 그리고 단군신화에서도 보듯 우리는 스스로를 하늘에서 내려온 민족이라 믿었고, 따라서 어느 민족보다 하늘과 별을 연구하고 숭배했다. 그렇기에 대대로 우리 마음속에 돌아가야 할 그 다른 세상은 하늘이었고, 그 주인은 하늘님이며, 그 하늘을 채우고 있는 셀 수 없는 수많은 별을 의인화하여 하나 하나의 돌아간 영혼의 표식이라고 믿었던 듯 하다. 너무 낭만적인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종교가 없는 필자는 천문학이고 뭐고를 떠나서 그냥 조상님들이 대대로 믿어왔던 대로 내가 돌아갈 저세상은 하늘이고, 나는 언제가 돌아가서 저 별의 하나가 될 거라고 믿고 싶다.

 

올 해 초 미국학회 참석차 LA 근처를 간 김에 모하비 사막을 차로 횡단한 적이 있다. 그곳은 듬성듬성 고속도로 가로등 외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곳이다. 잠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바로 머리위로 쏟아질듯한 수 많은 별들, 성운들, 그 아름다운 장관은 잊을 수 없다.

 

현생의 부모에게 육신을 빌어 태어나기 전 어떤 세상에 나의 존재가 있었고, 현생에서의 그 짧은 시간동안 미지의(?) 나의 임무(?)를 다하고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죽음이라면 나의 존재는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조금은 덜 허망하고 심지어 돌아가야 할 곳이 그렇게 아름다운 하늘이라면 슬프기는 커녕 오히려 설레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군중이 밀집되어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도 알았고, 경찰이나, 구청 등은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해 앞으로 보다 더 정밀한 매뉴얼을 수립해 놓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꼭 아픈 경험을 하고서야 뭔가 대책을 세운다는 점인데, 사람의 머리는 경험하지 않아도 예측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되고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기능도 좋아진다. 우리 스스로도 조심해야겠지만 다시는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 발생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잘 대처 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번 사건에서도 상당히 의심할 만한 선진국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이유 없는 집단 살인 혹은 불순한 집단의 계획된 테러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이는 예측과 매뉴얼을 넘어서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수 억개의 정자 중 운 좋게 선택되어 부모님의 감사한 보살핌 하에 고이 성장해 왔어도, 어이없는 이유들로 찰나에 우리 생명의 불꽃은 금새 꺼질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어차피 죽을 운명이다. 죽은 이는 말이 없으니 죽은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간 이를 사랑했던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비극이 된다. 특히 부모들의 마음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지나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자식들은 여전히 부모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고, 끝없이 그립고, 마치 자신이 그 모든 죄를 진 것 마냥 평생을 자책할 것이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이태원 참극에 대해 말이 많은 이때 우리가 진정 보살펴야 할 사람들은 그 남겨진 사람들이 아닐까?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필자의 졸필이 어이없이 하늘의 별이 된 이들과 남겨진 가족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하늘의 별이 된 친구들도 기회가 되면 슬퍼하는 부모에게 나타나 밝게 웃으며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 여기 살 만해요. 너무 슬퍼마시고, 조금만 더 있다가 반갑게 다시 만나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