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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 없는 세상(Caries free World)

시론

우리나라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HP2030)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치아우식과 성인의 치주질환 발생을 줄이고, 노인의 자연치아 보유를 늘리고, 저작불편 호소율을 줄인다 라는 구강건강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전 생애에 걸친 이러한 구강건강증진 목표는 타당하며 치과의사를 비롯한 구강보건전문가는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다같이 노력해야 하는 직업적 의무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https://www.khepi.or.kr/hpn/hpnIdx/selectIdxDetailList2030.do?menuId=MENU01426).

 

이러한 목표 수립에는 2030년의 구강건강 지표 생산 방식과 2018년의 지표 생산 방식이 동일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동·청소년의 치아우식 지표는 구강보건법에 근거해 매 3년마다 수행되는 아동구강건강실태조사를 통해, 성인의 치주질환과 노인의 치아수 및 저작불편호소율 지표는 국민건강증진법에 근거해 연중 수행되는 국민건강영양조사 구강검사를 통해 생산되고 있다. 2018년 아동구강건강실태조사는 전국 표본으로 선정된 아동 중에서 만5세 9,786명, 만12세 22,378명을 조사 완료하였으며, 201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조사된 성인(35~44세)과 노인(70세+)은 각각 2,413명, 1,980명이었다. 지표 산출을 위해, 훈련된 치과의사(치과대학 예방치과학교실 교수 및 전공의, 치위생학과 교수, 단기고용 및 공중보건의) 조사팀이 직접 기관을 방문하거나, 이동 검진차량에서 구강검사를 수행한다. 필자는 예방치과학을 전공하기 시작한 2005년 이래, 대한예방치과·구강보건학회 소속으로 보조자, 검사자, 질관리 책임자로 활동해왔으며, 현재는 아동구강건강실태조사, 국민건강영양조사 교육훈련의 기준조사자를 맡고 있다.

 

그동안 필자의 조사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HP2030 구강건강 지표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우식경험이란 현재 구강 내에 치료가 필요한 우식(충치) 치아가 있거나(Decayed), 과거 우식으로 수복(충전)치료를 받은 치아가 있거나(Filled), 과거 우식으로 인해 치아를 뽑거나 상실한(Missing) 경험을 말하며,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되는 사람은 우식경험이 있다고 분류한다. 지금까지는 치과의사 조사자가 대상자의 입안을 직접 관찰하고 CPI 탐침을 이용한 촉진, 문진을 통해 우식경험을 파악하였다. 치료필요 우식치아는 일반적으로 와동(cavity)이 형성된 우식 부위를 치과의사가 치과용 드릴로 삭제하고 아말감, 레진, 글래스아이오노머, 인레이와 같은 치과용 수복재료로 치과의사가 충전을 해야 하는 치아를 의미한다. 필자는 치료필요 우식치아의 반대말은 건전치아가 아니라, 치료불필요 우식치아라고 생각한다. 치아우식(Dental caries)은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진행이 멈추기거나 저절로 치유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단, 우식의 흔적은 치아에 새겨진다.

 

유치의 경우 생리적 탈락과 우식으로 인한 상실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만5세는 유치열에 대한 우식과 충전 경험만을 조사한다. 만12세는 영구치열에 대한 우식과 충전, 상실 경험을 조사하지만, 상실 경험은 매우 드물다. HP2030 목표인 아동·청소년의 우식경험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치료필요 우식치아수와 치과에서 수복(충전)한 치아수가 모두 zero(0)인 아동이 증가해야 할 것이다. 물론, 치과에 한번 안 가고도 유치와 영구치열 모두 충치가 없는 건치아동도 있겠지만, 이것은 칭찬할 게 아니라, 아동의 구강건강에 대한 보호자의 무관심과 사회안전망을 탓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보호자는 아이가 생후 18개월이 되면 치과에 방문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 구강검진을 받아야 하며, 이는 권리이자 의무이다. 이때, 치과의사로부터 치료필요 우식치아가 없음을 확인받는 것에서부터 우식경험 감소 노력이 시작된다. 최초 검진 이후부터 보호자는 설탕간식 섭취 횟수를 관리하며, 아침·저녁으로 불소가 1,000ppm 이상 함유된 치약을 쌀알 1개만큼 사용하여 하루 2번 칫솔질해준다. 36개월 이후부터는 치약 사용량을 쌀알 2~3개정도로 늘려 아침엔 아이 스스로, 자기전엔 보호자가 손잡이치실과 칫솔을 이용해 꼼꼼하게 이를 닦도록 한다. 그리고 매 12개월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구강검진을 위해 치과에 재방문했을 때, 이전에 치료필요 우식치아가 없음을 판정한 동일한 치과의사에게 다시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 치과의사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이의 치과주치의이어야만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직이 잦은 페이닥터들이 근무하는 대형 치과보다는 치과의사 1명이 단독 진료하는 동네치과의원에서 검진받을 것을 추천한다. 예방치과학 전공 교수로서 치과의사들에게 제안은 치료필요 우식이 없는 만5세 이하 유아에게는 불소바니시 도포는 자제하고, 대신해 아동과 보호자에게 식이지도와 칫솔과 손잡이치실 사용법 교육을 해달라는 것이다. 근거중심치의학에서는 유치에서 우식이 없는 치아에 대한 불소도포의 이득은 없으며, 유아에서 불필요한 불소 노출과 섭취는 형성 중인 영구치에 대한 치아불소증을 야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보호자와 치과의사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만5세 아동의 유치 우식경험은 줄일 수 있다.

 

만6세 전후로 제1대구치인 영구치가 처음 맹출하기 시작하여, 유치와 영구치가 공존하는 혼합치열기를 거쳐, 만12세 즈음에 영구치열이 완성된다. 갓 맹출한 치아는 법랑질의 미네랄 함량이 낮아 치면세균막이 만들어내는 산(acid)에 취약하며 우식 발생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식 예방을 위해 칫솔과 치실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치면세균막을 적절히 제거하고, 간식의 섭취 빈도를 관리해야 한다. 덜 성숙한 치아 법랑질의 재광화(mineralization)를 유도, 촉진하기 위해 불소치약은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영구치가 맹출하는 혼합치열기에는 치과에서 불소바니시 도포가 권장된다. 영구치에 대한 치아불소증의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치과에서 맹출 중인 제1대구치에 치료필요우식이 없음이 확인되었다면, 1년에 1번은 동네 치과주치의를 만나 불소바니시를 도포할 것을 권장한다. 실런트는 대구치가 완전히 맹출한 뒤에 도포 여부를 치과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방치과학 전공 교수로서 치과의사들에게 제안은 소와열구의 검은 점과 선 같은 착색 및 초기탈회를 성급하게 치료필요 우식치아라고 진단하지 말고, 불소도포나 칫솔질 교육, 식이지도와 같은 예방적 방법으로 개입하고, 3~6개월 뒤 재평가하여 다시 예방적으로 개입할지, 수복적으로 개입할지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만 12세까지 초기 충치를 예방적으로 잘 관리한다면, 실태조사에서 그 치아는 우식치아로 분류되지 않을 것이다. 치과의사에 의해 만들어진 수복물은 태생적으로 수명이 존재하며, 미세누출과 균열은 세균침투로 이어지고 더 큰 수복물로의 교체, 신경치료, 크라운 수복, 발치와 보철치료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수복 치료는 예방적 개입 노력을 했음에도 와동이 형성되었을 때, 치과의사만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임을 명심해야 한다. 보호자와 치과의사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만12세 청소년의 영구치 우식경험은 줄일 수 있다.

 

발치는 주로 치과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70세 이상에서 자연치아 보유 비율을 늘리기 위해서는 성인에 대한 치과치료 계획 수립 시 치아 보존을 우선하는 치료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발치를 해야만 하는 심한 치주염과 치수염으로 진행되기 전에, 정기적인 방사선 검사를 통해 염증 악화를 조기에 발견하고, 신경치료와 치주관리가 우선적인 치료계획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발치 후 임플란트 보철 치료는 치과보존과적, 치주과적 개입 노력을 했음에도 치조골이 상당히 파괴되어 치아가 저작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치과의사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치조골 소실은 뼈이식으로 보상할 수 있고, 치아 상실은 임플란트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치과의사의 전통적인 직업적 가치인 아프거나 흔들리는 치아를 안 아프고 안 흔들리게 하려는 노력을 더욱 가치있게 평가하는 치과의료생태계를 치과의사와 환자, 국가는 계속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2020년 7월 30일, 치의신보 시론 원고를 처음 집필한 지, 어느덧 만 3년이 지나, 이번이 20번째 마지막 시론입니다. 짧은 글쓰기였기만, 저에게 주제 선정과 집필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개적인 글쓰기를 통해 예방치과학·공중구강보건학 전공 치과의사이자 대학교수로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독자 여러분과 저의 생각을 나눌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치의신보 시론 지면을 허락해준 치의신보 팀과, 부족한 저의 글을 읽고 공감과 비판을 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