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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귀의 도시

Relay Essay 제2591번째

지귀(志鬼) 이야기를 아시나요? 저는 경주하면 지귀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적어도 저에게 경주는 불국사도 석굴암도 아닌 지귀의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지귀는 선덕여왕을 한 번 본 뒤 반해 버려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선덕여왕을 부르다가, 그만 미쳐 버리고 만 친구입니다. 어느날은 지귀가 영묘사의 탑 아래 선덕여왕을 기다리다가 지쳐 잠이 들게 됩니다. 지나다 그 모습을 본 선덕여왕은 그런 지귀가 가련해 팔목에 감았던 금팔찌를 뽑아서 지귀의 가슴 위에 놓은 다음 발길을 옮기었습니다.
 

여왕이 지나간 뒤에 비로소 잠이 깬 지귀는 가슴 위에 놓인 여왕의 금팔찌를 보고는 너무 좋아 껴안고 어찌할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모의 마음이 너무 커져 불씨가 되어 가슴 속을 활활 태우더니, 어느새 온몸이 불덩이가 되고, 결국에는 불귀신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지귀가 세상을 떠돌아 다니자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선덕여왕은 다른 백성들이 다치지 않게 주문을 짓게 됩니다.
 
‘지귀가 마음에 불이 나(志鬼心中火)
몸을 태워 화귀가 되었네.(燒身變火神)
마땅히 창해 밖에 내쫓아(流移滄海外)
다시는 돌보지 않겠노라.(不見不相親)’
 
지귀는 그녀를 너무도 사랑해서 불이 되어 버렸는데 정작 그 상대방은 그를 바다로 쫓아 보내 더 이상 보지도 않고 친하게 생각하지도 않겠노라고 합니다. 아픈 사랑이지요. 
 

사랑이 불처럼 타올라 네 존재를 재로 만들 듯 할 때, 그리고 그 사랑의 아픔이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끼친다는 생각이 든다면 경주에 가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낮술 몇 잔 하고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는 겁니다. 날씨 좋은 평일에 가면, 그 넓은 공간이 오롯이 그대를 위한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취기가 오르면 ‘박물관은 살아있다’가 영화 속 얘기만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지금도 깨어진 불상이 말을 걸고 문득 스치듯 지나친 가락지 하나에 전생의 여인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또 신라역사관 제3실에 가면 영묘사에서 출토된 얼굴무늬수막새가 있습니다. 차분히 웃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인데, 제 생각에는 선덕여왕, 덕만공주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 가서 가만히 그 고운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그럼 그녀가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게 들릴 겁니다.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