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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환자 불편을 이유로 외국인이나 노인 환자 예약을 별도로 잡았으면 좋겠다는 직원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70)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수도권에 개원하여 환자층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고 생각한 박 원장. 그러나, 최근 그의 치과에는 노인 환자와 외국인 환자의 수가 늘었다. 주변에서 다양한 층의 환자를 나름 잘 본다는 소문도 돈 모양이다. 나름 뿌듯해하던 박 원장. 진료를 잘 마쳤다고 생각하고 그날 진료 특이 사항을 점검하고 있던 그에게 실장이 찾아왔다.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말을 맺지 못하는 실장을 보고 무슨 문제가 있나 보다 했는데, 실장이 이야기하는 것은 환자층과 관련된 고민이었다. 일부 환자들이 외국인 환자와 같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과, 아무래도 노인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져서 환자들의 불평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응대가 아무래도 어렵다는 고민도 함께. 실장은 직원들과 회의 후, 다음과 같이 해 보시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 첫째, 한국인만 진료 예약하는 나절을 따로 만들자. 둘째, 노인 환자 예약은 하루에 개수를 정해 놓자. 그래야 환자들의 편의가 증진된다는 실장 앞에서, 박 원장은 동의한다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무언가 이상한 것 같다. 그런데, 뭐가 문제지?

 

똑같은 형태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선생님들이 계신 줄로 압니다. 사회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지요. 다시 말해, 이전에 보지 않았던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급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움직이고 있고, 이미 2024년 고령화지수는 180을 넘었습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15세 미만 인구보다 거의 2배 많다는 뜻이지요. 지역 차가 있습니다만, 다른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을 환자로 만나는 일 또한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4년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0만 명을 넘었습니다. 전체 인구의 5%에 가까운 숫자지요. 물론, 그야말로 다문화 사회인 미국과 같은 지역에 비하면 아직 그렇게 높은 비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점차 이런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유추하게 되는 자료지요.


치과에서 노인 환자나 외국인 환자의 비중이 증가한다는 것이 그렇게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그냥 보면 되니까요. 다른 환자들처럼 진료하면 되는데 무슨 상관인가,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노인이나 외국인을 병원에서 대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 환경에서, 이들을 진료한다는 것은 충돌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위의 직원이 제시한 생각 같은 것이죠. 환자들이 다른 문화권의 환자를 불편해하니 따로 진료했으면 좋겠다, 또는 언어 문제가 있으니 아무래도 꺼리게 된다, 진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당연한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예약을 조절해야 하지 않겠나 등등. 나름 합리적인 의견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례의 원장님처럼 어딘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드시지 않나요.


위와 같은 논의, 예컨대 외국인과 노인은 따로 예약을 잡는 것은 명백한 차별입니다. 먼저, 예약을 따로 잡는 게 차별일까요? 그렇습니다. 예약을 따로 잡게 되면, 해당 분류에 속하는 환자는 특정 요일이나 시간에만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특정한 시간이나 요일에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치과 접근권을 제한하는 일이지요. 다음, 외국인이야 그렇다 쳐도 노인 환자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때문에 배정을 다르게 하는 건 차별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노인 환자 중에 진료에 오랜 시간이 드는 환자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료에 시간이 많이 드는 환자가 꼭 노인인 것만은 아니지요. 어린이나 청년 환자도, 아니면 중년의 환자도 여러 사유로 진료에 오랜 시간이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진료가 길어져 대기 환자들이 불평하는 일이 생긴다면, 진료가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들의 시간 배정을 검토해야 하는 일이지 노인만 별도로 구분하여 시간 배정을 할 일은 아닙니다. 특정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대우를 하고 있으므로, 이것 또한 차별입니다.


이런 차별에 대한 인식이 사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단일 사회라고 생각해 왔고(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일반적인 경향성에 맞추어서 살아야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튀면 안 된다고,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진료실에서 다른 요구가 있을 수 있음에도 잘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의료진 또한 이를 검토하거나 반영하려는 노력을 잘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회의 구성과 형태가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차별이 무엇인지, 차별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혼동하거나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예컨대, 차별하지 않는 것을 동등 대우가 아닌, 특정 집단에 대한 옹호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또한, 굳이 차별이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하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의료계에 종사하는 이로써 환자를 차별 대우해선 안 된다는 것은 오래된 규칙이자 합의 사항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전쟁 상황에서 적 또한 환자라면 치료를 거부해선 안 된다는 것이 의료계가 확립한 노선이었지요. 여러 민족과 문화가 섞이고 부딪히는 상황에서, 의료계는 환자를 똑같이 대할 것을 천명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접근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치과에서도 환자를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다르게 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엄밀히 말해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차별은 집단 차별입니다. 집단 차별이란, 특정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집단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 사례라면, 외국인이거나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진료 접근권이 제한되는 것이지요. 물론, 진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환자는 그를 반영하여 진료 예약이나 환경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권별로 다른 요구가 있다면, 이를 반영한 대기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예약 슬롯을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며, 적절한 대처가 아닙니다.


사례의 원장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해당 요청이 명확히 차별임을 인식하고, 의원에서 차별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수립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직원들의 요구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예약의 경우, 진료 복잡성에 따라(예컨대 언어, 설명, 진료 상황 자체의 필요 등) 조절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 인식 및 소통 교육을 운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능하면, 원장님도 함께하시는 방향으로요.


왜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하냐고요? 그것이 책임 있는 의료인의 자세라는 것을, 질문하시는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