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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New Normal)은 힘이 정한다

Editor Column

​2026년 새해 벽두,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소식은 전율 그 자체였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생포 소식. 미국의 최정예 특수부대 델타포스(Delta Force)는 주권 국가의 심장부에 침투해 현직 대통령을 ‘범죄자’처럼 낚아채 뉴욕 법정에 세웠다. 복잡한 국제법 절차나 외교적 수사는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생략되었다. 바야흐로 절대적 힘이 곧 정의로 규정되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가 완성된 것이다.

 

​이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문득 세계 주요 도시의 광장을 떠올린다. 런던, 파리, 워싱턴 D.C.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피터대제 상 등 문명국의 심장을 점령한 것은 펜을 든 학자가 아니라 칼을 찬 장군들의 기마상이다.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이 그 원형이 되었듯, 인류는 왜 평화의 시기에도 정복을 업으로 삼는 전사들을 도시의 중심에 세워두었을까? 그것은 공동체의 번영과 자유가 누군가의 피와 칼, 즉 ‘물리적 강제력’ 위에서만 지탱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특히 낙성대역 앞에 우뚝 솟은 강감찬 장군의 기마상을 보며 전율을 느낀다. 그는 칼을 의례적으로 높이 쳐들고 있지 않다. 칼날을 마치 말의 갈기처럼 뒤로 힘껏 젖혀, 적의 목을 향해 금방이라도 벼락처럼 내리칠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거란의 10만 대군을 귀주에서 몰살시켰던 그 찰나의 살기와 역동성. 그것은 평화가 말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적을 단숨에 베어버릴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침묵으로 웅변한다. 동학농민운동의 전봉준 장군이 남여에 태워져 부릅뜬 눈의 동상은 꺾을 수 없는 결기를 보여주나 기마상이 보여주는 힘과 위풍당당함은 없고 패자의 한뿐이다.

 

​우리의 심장, 광화문 광장의 배치 또한 이 이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광장의 최전선, 세상의 풍파가 몰아치는 곳에는 갑옷을 입고 긴 칼을 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서 있다. 그리고 그 뒤편, 장군의 거대한 등 뒤에서 보호받는 안전한 곳에 인자한 미소로 책을 든 세종대왕이 좌정해 있다. 물론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세웠고 이명박 대통령 때 세종대왕상을 덕수궁 중화전에서 이전하여 새로 조성했지만 그 의미를 현재 시각으로 재구성해 해석해 봐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문(文)의 찬란한 문화(세종)도 결국 무(武)의 압도적인 힘(이순신)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존립할 수 없음을 상징한다. 역사 속 세종대왕 역시 이를 알았다. 그는 한글을 창제하면서도 당대 최고의 무장(武將) 김종서(金宗瑞)를 북방으로 보냈다. 4군 6진을 개척한 김종서의 호랑이 같은 무력이 있었기에, 세종의 태평성대는 완성될 수 있었다. 붓을 든 세종 곁에는 언제나 칼을 든 김종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시선을 현대의 기업 전쟁터로 돌려보자. 힘의 논리는 국가 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시장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쿠팡(Coupang)을 보자. 그들은 한국인의 지갑을 열어 돈을 벌지만, 본질은 철저한 미국 상장 회사이자 검은 머리 미국인이 지배하는 기업이다.

 

​만약 쿠팡에서 미국인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고 가정해 보자. 미국 하원 청문회장에 불려 나간 쿠팡의 의장은 어떤 자세를 취할까? 한국 국회에서처럼 뻣뻣한 태도로 일관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식은땀을 흘리며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모든 것은 제 불찰입니다”라며 처분을 기다리는 죄인의 모습을 보일 것이 자명하다. 왜인가? 미국이라는 시장과 달러 패권,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절대적 힘’을 가진 국가 앞에서 개별 기업은 생사여탈권을 쥔 주인 앞의 하인과 같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면서도 정작 그들이 두려워하고 고개를 숙이는 대상은 오직 그들을 파멸시킬 힘을 가진 미국 법정이지 힘없는 한국정부나 국회가 아니기 때문이며 대체불가한 한국시장에서의 시장지배력이 있기 때문이다. 힘이 있는 자가 심판하고, 힘이 없는 자는 고개를 숙인다. 힘이 있는 자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힘이 없는 자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진짜 얼굴이다.

 

​치과의사로서,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우리는 흔히 논리와 이성, 그리고 윤리를 무기로 삼는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던진다. 우리가 가진 고상한 가치와 전문성(세종의 책)도, 그것을 지킬 강력한 정치적·사회적 힘(강감찬의 칼, 김종서의 기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의료계의 권익이 침해당할 때 우리가 내세우는 논리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온다면, 그것은 우리가 너무 ‘점잖게’ 책만 읽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낙성대를 지키는 강감찬 장군의, 금방이라도 적을 내리칠 듯 뒤로 뻗친 그 칼날이 오늘따라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평화를 원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정의를 관철하고 싶다면 먼저 그 무게를 감당할 힘을 길러야 한다.

 

​치과계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불법·덤핑 진료로 건전한 개원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부 세력에 단죄를 내리려면 우리 스스로가 강해져야 한다.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 자들에게는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압도적인 힘의 자세가 필요하다.

 

​세종의 미소 뒤에는 항상 이순신과 강감찬의 칼이 숨 쉬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야생과도 같은 2026년의 뉴노멀 시대를 생존하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