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여보! 들숨이 배꼽까지 내려오지 못한다. 가슴에서 멈춘다. 힘껏 아래뱃살에 힘을 주지만, 들숨이 평소처럼 아랫배로 내려오지 못한다. 날숨을 가쁘게 내뿜는다. 가슴이 답답하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화장실 거울 속에 창백한 얼굴만 비친다. 찬물로 얼굴을 씻는다. 한 번 더 들숨을 쉬어본다. 들숨이 따뜻하게 가슴에서 퍼지지 않는다. 아래뱃살에 힘을 줄 수 없다. 세면대에 기댄 손들이 후들거린다. 어지러울 뿐이다. 담당의사 말들이 거울에 띄엄띄엄 쓰인다. 판결문처럼 들렸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 두 사람 모두 정상 수치입니다. 원인불명의 난임인 듯합니다. 그 동안 면담했던 그 의사가 맞나 싶을 만큼 얼굴에 웃음이 없다. 의사는 며칠 전까지 웃는 얼굴로 소곤거렸다. 남편은 매우 건강한 남자입니다. 아내분도 혈중 호르몬 검사, 난관조영술 초음파 검사 등 모두 정상입니다. 정신과 치료와 병행해서 앞으로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하면서 난임원인을 찾아야겠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해야한다는 듯 말을 했다. 우리 앞에 진료기록부와 검사지를 마치 판결문처럼 내밀면서. 남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남편은 눈가에 핏줄을 세우며 겨우
‘여자 선생님이라서 좋아요.’ 치과에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 나는 긴장이 된다. 젠더에 의미를 부여 받는 일은, 그 의미가 아무리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저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두 가지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한 가지는 저 환자분의 불편한 구강 내 병증을 치료하고 편안하게 저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통상적인 치과의사로서의 역할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저 환자분이 내면 깊숙이 가지고 있을 ‘여성 술자에 대한 기대 심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여성 치과의사’로서의 역할이다. 10여 년 전에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왔다. 그 분들 중에서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유난히 의미를 부여했던 분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받았던 ‘냉대’과 ‘기대’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 새내기 시절 아직 빳빳한 가운을 입고 서 있던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남자 원장님은 어디 갔냐고 반말로 물어보던 환자 분이 있었다. 그래, 이런 냉대는 차라리 괜찮은 편이었다.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래가며 여자 선생님이 계신 치과를 찾아 멀리서 왔다고 하소연했던 보호자
요즈음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다. 예술사조로서의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생활양식으로서의 ‘미니멀리즘’ 말이다. 이는 복잡하고 정신없는 현대인의 삶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소유를 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삶과 관심사에 집중하고자 하는 삶의 양식이다. 번역을 하자면, ‘최소생활주의’, ‘최소주의 삶’ 정도가 되겠다. 일본의 어느 미니멀리스트는 똑같은 옷만 세 벌 구입하여 매일 똑같은 코디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는 아침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라는 고민에서 해방되어 행복하다고 했다. 몇 벌 안 되는 옷이기에 오히려 더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개성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무의미한 삶의 선택지를 과감히 버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몇 가지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물론 그와 같은 극단적인(?)형태의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적어도- 내가 모르는 물건은 없다. 물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내 자신을 ‘초보 미니멀리스트’ 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필요로 할 때 적절히 꺼내 쓸 수가 없다면, 그 것이 ‘물건’이든 ‘지식’이든 없는 게 낫다’
혼자 먹는 식탁 저녁 식탁에 홀로 앉아 밥상에 올라앉은 기억들을 먹는다 하루해의 조각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모인다 밥알이 반찬들을 헤집는다 재잘거리던 새들 노랫소리로 날아오르고 장미 무늬 접시에 넘치던 짙은 향기 서로들 노란 주둥이 활짝 벌려 짹짹거리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았을 그 작은 새들, 어느 강가에서 시간을 따라 기억의 강물로 흘러갔을까 아파트 베란다 창문으로 길게 누운 해 그림자 바라보며 죽은 한 건너편에 있는 너를 생각한다 끊임없는 광야 길을 걷고 걸어서 어디쯤 갔을까 너는 배가 고팠을까 그 겨울은 따뜻했을까 빗살로 길게 누워 있다 이내 일어나 붉게 타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하루해 집에 있어 식탁에 앉아 화려한 밤 속으로, 그 고요한 적막 속으로 외로움 한 사발 시원하게 마시련다 아, 맛 좋다 자, 성찬을 즐기자 주여! 이 식탁에 복을 주옵소서 원하옵건대 제발 혼자 먹는 식탁은 사양합니다. =========================================== 신용카드 부끄러운 벌거벗은 내 몸이 구겨지고 접혀지고 압축되어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판에 녹아들고
★ 희망의 나라로 위암 수술 후 양전자 단층촬영(PET 검사) 결과, 경식은 죽음의 그늘을 의식했다. 위 전체를 잘라내는 극한의 수술을 받았지만, PET 촬영 검사 결과 광범한 암 전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암 진단 후 환자는 대체로 5단계의 심리 변화가 온단다. 첫 단계가 현실 부정, 둘째 단계가 ‘하필이면 내가 왜’하는 분노, 셋째 단계가 아픈 상황과 타협, 넷째가 생의 포기로 오는 우울, 다섯째가 죽음에 순종하는 수용. 이라는데 - 내과 전문의로 30년 임상 경험이 풍부한 경식은 수술 후 항암 치료 초기엔 ‘왜 하필이면 내가’ 라는 둘째 단계부터 심적 갈등을 시작 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너무 부정적인 것을 알고 바로 5번째 단계로 죽음을 수용했다. 고통의 항암치료를 의료진은 강행 했지만, 그 고통을 ‘내 십자가’로 믿고 지고 갔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언덕에 산천 경계 좋고 바람 시원한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희망의 나라로 경식은 치과봉사자 김 원장의 권유로 현재명 작곡의 가곡 ‘희망의 나라로’를 매일 맘속으로 불렀다. “원장님(그는 경식을 지난 20년간 늘
5월의 황금연휴 전날, 치과에 낯익은 노부부가 들어왔다. 서울에서 대전 근처로 귀촌하신 분이신데 오랫동안 사용하시던 틀니가 헐거워져서 비닐 봉지에 싸가지고 고치러 오셨다. 대전 근처 치과에서 하셔도 되는데 일부 러 여러 번의 교통편을 이용해서 오신 거다. 수리가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치과 근처에 있는 세 딸들의 집을 방문했으나 모두 문이 잠겨 있 어서 다시 치과로 오셔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틀니 수리가 되었다. 늦어도 당신 집이 편하신지 대전으로 가려 하신다. 움직임이 편치 않아 보여 오늘 쉬시고 내일 가시라고 권해드렸다. 출가한 세 딸이 있으나 눈치가 보이시는지 둘째 딸이 성격은 못되어도 사위가 편하다고 하시며 그 집으로 가신다며 병원 문을 나섰다. 노인을 뵈올 때마 다 항상 나를 연관시켜 본다.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가 투영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쁜 생활로 가족이 모두 모이긴 정말 힘들다. 모처럼의 연휴로 가 족 모임을 하기로 했다. 모처럼의 맑고 화창한 날이다. 항상 자식들의 소 식을 기다리고 계시는 친정 부모님과 나의 세 딸이 모였다. 우린 낀 세대 가 된 것이다. 옛날 같으면 우린 노인이
졸업 40주년을 기념하여 동기들이 단체로 첫 해외여행을 하기로 했다. 초등학교 때의 소풍 날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설렘과 기대가 차올랐 다. 새벽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젊고 활기찬 모습의 동기들은 어느덧 희끗 희끗한 백발을 한 채 안단테의 발걸음으로 한 둘씩 모였다. 마음은 청춘이 라는 웃지 못할 현상이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느껴졌다. 서로의 모습에 자 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세월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다. 여전히 어린 아이 들처럼 40년 전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서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기다림으 로 지루하던 탑승 전 시간도 순식간의 기다림으로 흘러갔다. 힐링이라는 의미가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일 게다. 학창시절에 조용하게 지냈던 친구는 중년의 수다쟁이로 변해 있었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 치던 교수 친구는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스타일로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어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노년의 여유로움은 모두 어디로 보내고, 희희덕 거리는 철없는 아이들로 변해 버린 듯 여행은 사람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 버리는 듯했다. 오사카의 간사이공항에 도착하자 온 지천이 벚꽃동산이었다. 화창한 날 씨와 더불어 흩날리는 벚꽃처럼 친구들의 마음
수원 팔달문에 있는 박 약사가 약대에 들어가면 장학금을 지원해줄 테니 나중에 본인의 약국에 와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을 때도 사랑스러운은 수녀가 되겠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약사의 말을 전해준 건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외가 쪽으로 먼 친척뻘 되는 대머리 국어 선생님이었다. 사랑스러운은 마치 인생 상담을 해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같았다. 먼 동네까지 입소문이 나자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안에 상담실을 마련하고 예약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의 부모님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라며 ‘유 사랑스러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녀와 한 번이라도 상담했던 동네 사람들은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즉문즉답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카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밤새 소리 없이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낮부터 강한 비바람으로 돌변해 카페 창문에 들이치고 있었다. 카페 문을 닫기 위해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을 때, 회색 보더 스커트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비에 젖은 채 문밖에 떨고 있었다.
여름날 늦은 오후, 온종일 찜통 같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바람이라도 쐬어 볼까 하고 창문을 열었다. 아파트 뒤편에 즐비하게 자리 잡은 주택들의 옥상에는 형형색색의 빨래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아파트 3층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주택의 옥상에 한 여학생이 빨래를 걷으러 올라왔다. 그녀가 입은 파란색 스커트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 이후로 나는 자주 그녀가 사는 집의 옥상을 내려다봤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은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 옥상에 올라오는 그녀의 모습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애써 떨쳐보려고 교회학교 선생님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목욕하던 밧세바를 보았던 다윗왕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다윗이 있어야 할 암몬과의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혼자 예루살렘 궁 안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님을 떠올리며, 이건 훔쳐보는 거라고,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마음먹을수록 나의 시선은 옥상에 긴 시간 동안 머물곤 했다. 여름 장마로 며칠째 그녀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어느 날, 아침에 민망한 일이 생겼다. 속옷이
치과의사이면서 문인들이 활동하는 영역이 바로 치과의사문인회다. 이번 데일리덴탈의 “치과문화의 향기” 라는 코너에서 앞으로 치문회 회원들의 시,소설,수필,문학평론 등 각종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치과계 영역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능력 있는 분들이 많은 곳이 바로 치문회라 할수 있다. 2004년 이후 2년에 한번씩 치인문학지를 발간하여 제8호 발간을 앞두고 있지만 등단을 원하는 분이나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치과의사는 참여할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치문회를 운영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2004년 5월 협회 학술대회가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릴 때 당시 정재규 협회장이 다른 성격의 이벤트를 기획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개최되었던 학술대회와는 달리 문화행사를 하게 되었다. 그 중 시낭송회를 하게 되었다. 이틀간 열린 행사는 김경선문화복지이사가 주동이 되어 진행되었고 시인들 규합에는 정재영 시인이 힘을 썼다. 이미 등단해 있던 치과의사시인인 김수경,김영훈,남현애,이영혜,이재윤,정재영 시인등이 참여했다. 그 행사가 있은 후 종로구문인회장을 역임한 김영훈 시인의 건의에 의해 김경선,김영호,신덕재,이병태,이영혜,정재영 문인들이 참가하여 치문회를 결성하
당신이 잠든 사이 혜승은 어두운 아파트 층계를 따라 2층 현관문 앞에 섰다. 새끼손톱만 한 모기떼들이 새까맣게 콘크리트 천정을 점령하고 있는 게 못마땅했다.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다가 집안에 들어갈 기회만 엿보고 있는 놈들이었다. 그는 녀석들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광수와 인나 부부가 거실에서 그를 맞이해줬다. 그는 말할 기운조차 없어서 눈인사만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광수 부부는 3년 전부터 그의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채로 그는 침대 위로 쓰러졌다. 셔츠 소매에 Dr. Jung이라고 자수로 새겨 있었다. 온몸이 멍석말이를 당한 것처럼 쑤셨다. 타이레놀이 든 약상자가 있는 주방 선반까지 가는 건 죽기보다 싫다고 생각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잠든 사이 누군가 석고를 목구멍에 조금씩 밀어 넣어서 좌﹡우측 폐에까지 잔뜩 채워진 석고가 열을 내며 굳어가는 것 같았다. 숨이 멎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발작적인 기침을 해댔다. 혜승은 잠시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때, 거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혜승 씨 말이야, 아들한테 좀 심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