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리 치는 늦은 가을날 홍시 한입 물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여름날의 햇살 입안 가득하다 수다스런 잎들 떨 군 가지 끝 끈질기게 매달려 하늘가에 밝혀두었던 붉은 등 하나 무르익는 시간의 농축 농익는 것이 달콤하다 설익은 말과 서투른 몸짓 몸과 마음이 하나로 익어가는 기량 떫은 세월없이는 홍시의 시간도 없다 겨울로 가는 가을의 언어 선명한 입장으로 포장되어 배달된다 곰살궂은 옛정 하얀 분 곱게 서린 노을빛 눈물 무르익는 삶의 온축(蘊蓄) 농익는 것이 아름답다 두 손으로 감싸 안고 꼭지를 따니 시치미 뚝 뗀 새빨간 속살 살갑다 김계종 전 치협 부의장 -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 -계간 《에세이포레》 수필 등단 -군포문인협회 회원 -치의학박사 -서울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 -대한구강보건학회 회장, 연세치대 외래교수 -저서 시집 《혼자먹는 식탁》
땅속을 달리는 지하철에 두더지들이 바지런히 드나든다. 무리에 떠밀려 보사노바 리듬에 맞춰 뱅글뱅글 군무를 추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을 시작한다. 달이 차고 기우는 동안 햇볕을 등지고 살다 숨구멍을 찾아 잠시 지상으로 올라 답답하고 숨 막히는 하루를 게워낸다. 작두를 타듯 타닥타닥 춤추는 하이힐을 신고 배불뚝이 애물단지 백팩을 메고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린 고양이처럼 보낸 하루 의자에 비뚜름하게 기댄 채 몇 번이고 떨궈졌다 일어서는 고개 화들짝 놀라 미어캣처럼 정차역을 두리번거리다 잠드는 당신 당신의 유일한 소원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않고 아무도 되지 않기 당신은 꿈속에서 바람이 늘 쉬어가는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 누워 단잠을 청하고 전능하신 이가 보낸 수호천사는 그대를 어루만지며 먹이고 쉬게 함으로 물 흐르듯 숨을 고르는 시간 티키타카 흐르던 보사노바 음악이 멈추고 지상의 시간이 쏟아져 들면 하나둘 잠에서 깨어난 두더지들은 나비의 꿈을 좇아 천상으로 날아간다. ---------------------------------------------------- *자작시 시상: 지하철 안에서 의자에 기댄 채 가방을 안고 잠든 분이 있었습니다. 몇 번이
벽에 걸린 시계 속 나무 둥지에 뻐꾸기 한 마리 비틀어진 시간을 먹고 하늘을 꿈꾼다 어둠 깊은 곳에서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올라 목울대를 칠 때 비로소 울음이 완성된다 약속의 시간 열린 문을 박차고 자식을 버린 어미를 저주하며 뻐국! 뻐국~ 뻐국! 뻐국~ 청아한 울음소리 한번 피맺힌 울림소리 한번 남의 둥지에 버려진 기막힌 생명은 전설이 된다 눈물도 말라버리고 사연도 희미한데 헛되도다! 헛되도다! 나그네 세월 뻐꾸기 나이 오십이다 울던 손자 울음 뚝 그치고 방긋방긋 웃는다 할아버지 틀니가 덜그럭거린다 부서진 날개 안간힘 다해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허공을 꿈꾼다 약속의 공간 문 닫고 들어가면 님을 향한 그리움 휘어진 허공에 시간은 강물이다 김계종 전 치협 부의장 -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 -계간 《에세이포레》 수필 등단 -군포문인협회 회원 -치의학박사 -서울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 -대한구강보건학회 회장, 연세치대 외래교수 -저서 시집 《혼자먹는 식탁》
주머니 속 꼬깃꼬깃해진 종이 위에 시냇가 징검다리처럼 꾹꾹 눌러 쓴 새까맣고 단단한 글씨 발이 달려서 어딘가로 줄행랑 이 세상 틈새로 사라졌다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아련한 기억을 붙들어 세우고 새하얀 머릿속을 이 잡듯이 뒤져봐도 결국 붉은 입술이 터지고 가슴은 새까맣게 쪼그라들었다 인절미에 조청 찍은 맛 그 맛을 잃어버렸네 눈코입 손가락 그대로인데 나 아닌 누구일까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
사람의 체온보다 더 높은 날은 늘 침묵이었다 온통 뜨겁게 달아오르는 지열 속에 사방천지의 살아 있는 것들의 호흡은 잠시 멈추고 더 살기 위한 숨 고르기는 바람 한 점 없는 몽환 속을 헤맨다 오후의 뜨거운 빛은 느릿느릿 느슨하게 흐르고 나뭇잎들에 부서지는 빛의 가루들이 넓게 스며들고 불타오르는 태양을 향해 분노의 눈을 들면 수억만 개의 빛들이 생멸로 반짝여 눈이 먼다 온통 숨죽이는 대지의 인내는 먼 기억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가고 첫사랑도 옛사랑도 마지막 사랑도 비비적거리고 온몸을 움츠리며 벌어진 땀구멍을 막아버린다 제 몸무게보다 서너 배 삶의 무게를 지고 까맣게 타버린 대지를 횡단하는 개미의 여름날 땀방울은 최고의 포식자의 배설물이다 달아오르게 하는 것들은 식히는 것들에 의해 언제나 평형을 이루는 몸부림이다. 온천지가 뜨거울수록 옷을 하나씩 더 껴입어야 하는 이 외로움은 언제 해동이 될런지 죽어도 죽어지지 않는 밤 권태의 덧문을 걸어 잠그고 더울수록 더울수록 외롭다 외로워지는 환한 밤이다. 김계종 전 치협 부의장 -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 -계간 《에세이포레》 수필 등단 -군포문인협회 회원 -치의학박사 -서울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
오늘 마음들 단단히 잡수세요 첫눈이 올지도 모른답니다. 불멸의 시간 사이 바람 옷을 입고 잠든 당신을 찾아낼 겁니다 오늘 마음들 단단히 붙잡으세요 달곰한 봉숭아 꽃물 흥건하게 흘러넘칠 때 첫사랑 마수걸이 시간입니다 오늘 마음들 단단히 잡수세요. 아침 까마귀 울고 모퉁이 금 간 접시 바닥을 나뒹굴어도 그 사람 떠올라 하나 두울…… 숨을 고르고 먼 하늘 가나안 땅 아부지 작은 누야 기어이 죄 많은 땅에 내려 내 마음 설레게 하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
70이 넘는 친구들이 여덟 명 모였다. 배꼽 친구란다. 재잘대기는 예나 똑같다. 재잘대기에는 욕이 빠지지 않는다. 2년 넘게 만나지 못했다. 코로나 역병 때문에 그동안 배꼽 친구 두 명이 역병과 함께 갔다. 80만 원이 모였단다. 어느 더운 날 냉면 한 그릇 춥고 바람 부는 날 뜨거운 국밥 한 그릇 아마 재잘거리며 먼저 간 배꼽 친구와 같이 먹겠구나. 신덕재 원장 -《포스트모던》 소설 신인상 등단 - 한국문인협회 인권위원,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 한국 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국제PEN문학상 소설 부분, 서포문학상, 순수문학상 대상, 대통령 표창 - 수필집 《생활 속에 흔적》 《세월을 거슬러 간 여행》, 소설집 《앙드레 사랑》 《바보죽음》
귓가에 살랑살랑 입김을 불어도 흔들리는 법이 없다 사람 따위인 양 아랑곳없이 땅속에서 보낸 인고의 시간에 취해 눈에 뵈는 게 없다 애써 인연을 만들러 서성이지도 외롭다 두렵다 힘들다 비명도 없이 메롱메롱 두 날개를 비벼 가며 사람들을 을러댄다 가던 길 멈추고 물끄러미 추파를 던져본다 타원형의 검정 얼룩에 날개의 경계를 비상하게 맞추고 보란 듯이 구애를 하고 있다 매미에게 나무가 달라붙어 있다 완벽한 보호색 신통방통한 처세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만지지 말고 바라만 보았으면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
그대는 서 있는 바람이오 바람이 서 있다 하여 나뭇가지와 해바라기가 흔들리지 않는 거는 아니요. 한때는 무서운 태풍이 되어 온 것을 휘몰아 감고 용트림 쳐 참뜻을 찾아내오 한때는 산마루의 산들바람이 되어 우리의 볼을 어루만지며 산듯하고 깨끗한 참을 찾아내오 서 있는 바람은 시작과 끝이 없으며 승진과 정년도 없이 항상 우리 곁에서 참뜻을 깨우쳐주오 나는 서 있는 바람을 존경합니다. 신덕재 원장 -《포스트모던》 소설 신인상 등단 - 한국문인협회 인권위원,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 한국 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국제PEN문학상 소설 부분, 서포문학상, 순수문학상 대상, 대통령 표창 - 수필집 《생활 속에 흔적》 《세월을 거슬러 간 여행》, 소설집 《앙드레 사랑》 《바보죽음》
슬픈 새벽녘 비몽사몽 눈앞에 어른거리는 어두운 그림자 무섭다 이불속에 숨어들어 생사부(生死簿)를 고쳐 쓴다 일하러 간다 영혼일랑 차 안에 던져두고 쇠나막신 타박타박 앞서가는 할마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면 위에 붕어마냥 뻐끔뻐끔 숨을 쉬는 당최 숨이 쉬어지지 않네 오늘 하루도 깜장 물 노랑 물 혈관에 들이붓고 눈물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를 고쳐 쓴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
어둠이 찾아간 산기슭엔 아직 빛의 따스함이 말라버린 나뭇잎 거적 덮고 깊이 숨어있습니다 어제는 누군가 밟고 갔지만 그제는 누군가 눈물 흘리기만 여러 날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불어 모두 날아오른 그날이 오면 비로소 투명한 가면이라도 쓰고 그대 앞에 나설 용기가 나게 될까요 강인주 -2021년 《가온문학》 시부문 신인상 등단 -경북대학교 치과대학ㆍ대학원 졸업 -대학병원 치과 인턴ㆍ레지던트 수료 -치의학석사. 치과 보존과 전문의. -시집 《낡은 일기장을 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