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5번째 고3 아들에게 수능을 3개월여 남긴 아들에게선 초롱초롱한 눈망울 외엔 나날이 피곤이 짙어 간다. 자식의 성공 요건 중 아빠의 무간섭(무관심?) 항목에서 만큼은 본의 아니게 일관성을 지켜온 터라 요즈음은 후환이 두려워 등교 시간 걷는 수고를 덜어 줄 요량으로 운전대를 잡곤 한다. 위로와 격려의 말을 주고자 마음먹고 얘기를 건내려다가도, 지구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눈꺼풀을 상대로 힘겨운 전쟁을 하는 모습에 이내 포기 하고 만다. 매일 매일이 기막히게 반복되는 고3 생활이 지겨울 법도 하지만, 크게 흐트러지지 않고 제법 의연하게 버텨가는 아이가 이젠 고맙고 대견하기만 하다. 그리곤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은 30년전 내가 겪었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다. 냉방도 난방도 여의치 않던 시절. 고만 고만하게 철이 들듯 말듯한 까까머리들이 이른 아침부터 저녁 10시까지 내무반 생활처럼 고3시절을 보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그렇듯 기껏해야 선생님 골탕 먹이는 수준의 소소한 일탈들이 있고, 간혹 공부에 흥미를 잃은 친구들의 야릇한 유혹들이 지루한 일상의 화제가 되어 엉뚱한 무용담으로 부풀려 지곤 했는데, 문제는 무엇
내 기억 속 영화와 클래식 음악 (하) <1957호에 이어 계속> 4)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2008)과 Tannhauser 벤자민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셨던 할머니가, 언제나 우울해 보이는 그를 위해 처음 연주해주던 곡은 Chopin의 polonaise op.53 ‘영웅’이다. 이 빛나는 곡을 통해 앞으로 있을 축복 및 영광을 예견해 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그에게는 삶에 대면할 용기가 생겨 세상 밖으로 나아가게 한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고 그들의 삶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경험들을 축적하며 성숙해지지만, 자신의 몸은 데이지와의 결혼을 정점으로, 점점 어려지면서 내면의 원숙함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했던 선장의 말대로,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혹은 과거에 미련이 있을지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이 모든 것을 놓아줘야 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이 아닐까. 벤자민이 어린(?)시절, 왕년의 오페라가수 할머니가 부르셨던 곡은 R. Wagner의 Tannhauser 중 2막에서 엘리자베트가 부르는 ‘노래의 전당(Dich, teure Halle)’이다. 이 오페라는 ‘탄
내 기억 속 영화와 클래식 음악 (상) 지금은 개인적으로 시간이 없어 영화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9년전 어느 시골에서 공중보건의를 시작했을 때, 밤에 홀로 관사에 남아 영화를 볼 기회가 많았다. 그 안의 다양한 군상들이, 나는 살아보지 못할 삶의 이야기를 풀어낼 때면 그 속에서 간접 경험이나마 거듭 환생할 수 있었고 그들의 마음이 되어 보고자 했었다. 그러던 중 너무나 좋아하던 클래식 음악이 영화 속에서 흘러나올 때면 나만의 은밀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며 그 때의 감정을 메모로 남겨두곤 했다. 시간은 벌써 이만큼 흘러갔고, 찰나의 휴식 중 우연히 꺼내어져 놓인 기억의 편린을 발견하여 그 작은 못 속에 지그시 발을 담그며 추억에 잠겨보고자 한다. 1) Band of Brothers(2001)와 Beethoven String Quartet #14 in c minor Op.1316부에서의 의무병의 활약, 9부에서의 참혹한 유태인 수용소, 10부에서의 히틀러 알프스 별장 등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9부 초반에 흘러나오는 허망하면서도 구슬프게 연주되는 실내악곡이 바로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제14번이다.이 곡은 총
백두산 대장관 감상 엄마의 칠순 기념 가족여행으로 백두산을 다녀왔다. 어린 시절부터 마르고 닳도록 불렀던 애국가의 첫 소절에 나오는 그 곳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단군신화의 ‘태백산(太白山)’이 백두산이라는 한민족에 의해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되어 온 산. 백두대간(白頭大幹)의 근원인 산. 어쩌면 한번쯤은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은 아닐까. 뿌리를 찾아가고픈. 하지만 분단된 조국에서 남측과 북측이 합의했던 백두산 관광은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에, 우리는 중국에서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부르는 백두산을 다녀왔다. 중국을 통해 백두산 천지를 보는 방법은 현재 비교적 관광객이 많은 북파와 비교적 개발되지 않은 서파 길이 있다. 우리 가족은 이 두 길을 모두 가보기로 하였다. 서파관광을 위해 이도백하를 지나 송강하를 가는 길은 예사롭지 않았다. 한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의 안개가 자욱이 끼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현대 문명에 익숙한 나는 이 백두산 둘레 길을 가면서 교통사고 위험을 느꼈지만, 이제 와서 감상적으로 보자면 ‘고향의 전설’에서라면 귀신에 홀려서 사라질 만큼, 혹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것 같은 심산유곡이었던 것이다.
여름은 또 그렇게… 한동안 지루하게 쏟아지던 장맛비가 그치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쨍쨍한 햇빛과 후텁지근한 열기만을 내뿜고 있다.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요즘 날씨도 한해가 다르다. 장맛비가 계속되는 날이면 “오늘은 또 바지 끝자락 적셔가며 출근을 해야 하나” 푸념부터 나오고,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아침이면 “출근길부터 푹푹 찌는 날씨에 기운이 다 빠지네”하며 축 쳐져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폭염이 예상되니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세요”하는 날씨정보가 흘러나오고, 나는 또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한다. 그러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 구름 한점 없이 맑고 푸르다. “와~여름 하늘도 참 예쁘구나”하는 생각이 들 즈음, “그래, 어렸을 땐 햇살 가득한 아침이면 문밖으로 뛰쳐나가기 바빴었지”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 그땐 더위쯤은 아랑곳없이 해가 나나 비가 오나 하늘만 보고 내달리곤 했다. 땀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가끔 소나기가 지날 때면 채 가려지지도 않는 작은 손을 머리에 얹고 첨벙첨벙 물을 튕기며 집에 들어오곤 했다. 비가 오는 날엔 엄마가 삶아준 고구마에 만화책 끼고 보는 재미가 있었고, 땀이 줄줄 흐르는 더운 날엔 시
여행의 기술 장맛비가 한창이다 하늘이 열린듯 하루 종일 연이어서 내리는 비를 보며 모두들 걱정이다.너무 지겨우니… 이제 좀 그만내리길… 이 비가 그치면 얼마나 더울까? 올 여름 또한 불볕 더위가 예상된다고 한다. 장맛비가 그칠때면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휴가철에 돌입하게 된다.직장인들에게 휴가란 정말 삶의 활력소이다. 1년 내내 기다리며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하고 그 고민하는 동안은 행복한 순간이다.여행은 함께 동행하는 사람에 따라, 쓸 수 있는 여행경비에 따라, 가고자 하는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10대는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좀 모자라지만 부모님을 따라 여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나의 선택권은 거의 없다. 20대는 시간은 있으되 돈이 없어 친구들과 저렴한 비용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선호하며 장소보다는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30대는 재정적인 여유로 인해 좀 럭셔리한 여행을 꿈꾼다. 본격적인 휴가 시즌을 대비해 여행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 일단 사진기를 집에 두고 가는 거다… 요즘은 블러그나 홈피, 페이스북 등 다양하게 자신의 일상을 인터넷상에 오픈 시킨다. 그러기 위해서 풍경이나 음식물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올리느라
같이 꿈꾸는 세상 ‘위메진’ 어릴적부터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가끔은 부정적이거나 음탕한 쪽으로 치우치기도 했지만 되도록 제 자신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상상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시크릿’이라는 책의 내용처럼 저는 상상을 하고 이것이 실현되었다고 믿음으로써 강한 추진력을 얻어서 크고 작은 일들을 성취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일을 실행하기에 앞서 습관처럼 상상력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상상하다’라는 뜻의 이메진(Imagine)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제 자신의 행복과 성공을 꿈꾸고 좇으면서 하루하루 발전해 나가는 모습에 흡족해하던 어느날 다음과 같은 글이 저의 가치관을 바꾸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쉽게 자신의 마음을 바꾸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게는 큰 영향력을 발휘한 문구였습니다. ‘어떤 행복도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게 하지 않으면 지속적일 수 없다.’ 어릴적 막연히 다니던 교회에서 듣던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성경구절이 동시에 이해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이웃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행복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명확한 메시지 였습
울어 보셨습니까? 모든 이의 삶은 울음으로 부터 시작한다.첫 울음은 엄마의 산고를 잊게 하는 행복한 탄생의 울음이다.이울음은 오직 하나다. 왕후장상의 울음이 따로 없고 말구종, 여릿군, 까정이패, 각설이패, 화적패, 논다리, 더벙추의 울음이 다르지 않다. 이울음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곧은 선물이며 옹근 몫이다.울어 보셨습니까? 동계 올림픽에서 우승한 김연아의 눈물이 아니어도 좋다.찌든 삶 속에 한푼 두푼 옹골지게 모은 돈으로 처음 자기 집이라고 15평짜리 아파트를 샀을 때, 창가에 서서 자기도 모르게 흘리는 눈물은 환희와 기쁨의 눈물이며 끝내 해낸 성취의 눈물이다.이때만큼은 지난날의 모든 사연들이나 괴롭고 안타까웠던 모대기가 모두 사라져 버린다.울어 보셨습니까? 이건 큰 싸움이다. 인생의 갈림 길이기도 하다. 꼭 이겨야 했다.전쟁, 전투가 아니고 우리 생활 속의 입시, 선거, 진급, 당첨, 말질 등에서 이겨야 했다.그러나 매양 떨어지고 석패와 열패로 얼룩졌다.어느 누가 말하기를 ‘자기는 운전면허 시험까지 합해 인생의 합격률이 45%라 한다." 그럼 55%는 울었다는 얘기 아닌가?울어 보셨습니까? &nb
철원의 봄·여름·가을·겨울 “104번 사관후보생, 6사단"“훈육장교님, 6사단이 어딥니까"“철원이다" 작년 4월 초임 군의관 배치를 받고 좌절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주로 남쪽,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우리나라 최북단 시골에서의 삶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국방부의 시계는 거꾸로 놓아도 간다는 말처럼 어느덧 1년이 지나고 교류도 해서 지금은 서울 근교에서 나름 편하게 군의관 생활을 하고 있다. 작년 철원에서 보낸 생활을 바탕으로 잠시나마 철원 홍보대사로 나서볼까 한다.봄작년 봄, 철원에 배치받고 군의관들과 단체로 참가했던 안보관광.역시 철원에 왔다면 안보관광이 빠질 수 없다. 철원은 해방 후 6·25 전까지 북한의 체제 아래 있던 곳으로 철원 평야를 중심으로 쌀 수확량이 많아 인근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안보관광은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로 유명해진 노동당사를 비롯해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열차가 전시된 월정리역, 평화전망대, 제2땅굴 관람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관광을 마치고 허기를 채울 식당으로 민통선 안에 위치한 ‘전선휴게소’식당을 추천한다. 민통선 안의 깨끗한 한탄강
요새 내가 하고 있는가치있는 일들 내가 개원하고 있는 성남에서 치과의사회 공보 영역에서 일한 지 2년여가 되어간다. 공보이사가 뭐하는 자리인줄도 모르고 그냥 회보발간만 도와주면 된다는 선배의 말에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고 어물쩍 맡게 되었다. 처음엔 정말 회보발간을 도와주는 업무로 일년에 한번 내지는 반년에 한번 발간되는 8페이지 분량의 아주 단순한 소식지를 발간하는 일로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데 크게 부담되지는 않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장안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최고의 사랑’에서 톱스타 배우인 독고진과 비호감 생계형 연예인 구애정의 ‘레벨’이 다르듯 2년여가 지난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레벨’이 되었다. 먼저 소식지의 발간이 격월에 한 번씩으로 정례화 되었고 그 사이 소식지의 이름도 회원들의 공모를 통해서 ‘성남치원’으로 명명이 되어졌다. 또한 홍보위원회를 조직하여 구강보건의 날을 앞둔 지난 5월에는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지역방송과 지역신문 기자들에게 치과치료에 관련된 정보들과 치과계 관련 소식들을 전달, 보도되게 하여 일반 시민들에게 치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회원들의 과반수가 넘
‘아빠와 나’ 지금은 어린이들이 거의 대부분 다니는 유치원이 내가 어린 시절은 흔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거의 형제들이 4~5명은 되는 시절에다가 흔히 집안에서 어머니께서 어린 자녀들과 가족들을 챙기시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유치원에 다니는 것은 일종의 사치였고, 셋째인 막내동생이 태어나기 전 연년생으로 태어난 남매중에서 나는 장녀라는 특권(?)으로 부모님께서 다니시던 교회의 부속 유치원에 다니도록 배려하셨다. 그런데 유치원에 신나게 다니던 나와는 달리, 교편을 잡고 계신 어머니께서 유치원에 다니도록 나를 배려하여 주시는데는 많은 수고가 따랐다. 시시때때 잘 다린 유치원 교복은 물론이고 계절이 바뀌면 달라지는 유치원 교복 챙기시기, 재롱잔치와 소풍갈 때면 이것저것 배려하시기,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는 귀여운 머리모양이랑, 머리핀 등등…. 여하튼 여자아이라서 매우 손이 많이 갔던 것 같다. 유치원의 큰 행사는 단연코 생일잔치이다. 생일잔치에는 그 달에 생일이 있는 아이들에게 유치원에서 생일상을 차려준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유치원에서 제공한 예쁜 족도리를 쓰고, 집에서 챙겨온 한복을 입어야 한다. 남자아이들은 양복을 입고, 와이셔츠도 입으며, 나비넥타이를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