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존 이론과 구조론으로 본 관계 의미 얼마 전 2007년도 신동아에 실렸던 제로존 이론에 관한 글을 아내가 전해주며 읽어 보라고 권하였다. 모든 물리량을 숫자로 통일하는 꿈의 방정식에 관한 것이었다. 내용의 단순명료함은 호기심을 자극했고, 더우기 제로존을 발표한 분이 치과의사인 양동봉 원장님이라고 하니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 내용은 모든 물리적 실험을 c=h=s=1(c:빛의 속도 h:플랭크상수 s:시간)이라는 공준(公準;증명이 불가능하지만 학문적 실천적 원리로 인정되는 것)하에서 물리량(단위)간의 상호관계를 밝혀 단위를 무차원하여 단위상호간에 산술적 계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과학언어를 무차원의 수로 통일하는 이론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E=mc2 이라는 식으로 에너지와 질량 사이에 비례상수 c2인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으로 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듯이 제로존 이론은 이와 같은 비례관계가 모든 물리적 단위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늘날의 과학계는 질량(kg), 길이, 시간, 광도, 물질량(mol), 전류, 온도의 7개의 국제단위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위자체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인위적
산과 물은 서로 거스르지 아니하니… 분수령(分水嶺)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분수령은 말 그대로 물길이 나누어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분수령은 산줄기의 마루금에 있어서 물의 흐름 즉 수계(水系)가 달라지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산과 물은 절대로 서로 거스르지 않습니다. 산이 억지로 물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산줄기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물길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산줄기에는 그에 따라서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분수령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일생동안 크고 작은 분수령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느 쪽이든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만약 매우 큰 분수령인 경우는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가야할 길과 삶이 전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요즘 산행하는 인구가 많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산줄기에 대한 관심도 꽤 커지는 것 같습니다. 산줄기를 알고 산행을 하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산이 더 친근해집니다. 조선조 지리학자 여암 신경준 선생의 산경표(山徑表)에 보면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정맥 그리고 많은 기맥과 지맥들이 있습니다. 이 들 산줄기에
약한 여자 그리고 강한 엄마 오늘따라 까다로운 환자들이 많다. 진료를 마친 환자가 나한테 와서 자꾸 진료비를 깎아 달라고 한다. 안 그래도 오전에 미열이 있던 아들 준서 생각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운데 환자마저 날 안 도와준다. 결국 진료비 깎아 달라던 환자는 이렇게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나니 그제야 병원 문을 나간다. 환자 대기실을 보니 아직 몇명 정도는 더 있는 것 같다. 원장님이나 스탭 모두 정신없이 움직인다. 진료실, 리셉션 테이블에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많았던 환자들이 하나 둘 사라져간다. 이제 좀 쉴 수 있을까? 잠깐 환자가 뜸한 시간에 창밖을 바라보면서 잡념에 휩싸인다. 이 같은 잡념을 하게 된 이유에는 오전 준서의 미열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준서 엄마로서, 내 남편의 와이프로서, 시댁의 며느리로서, 치과의 치과위생사로서 “주어진 내 삶에 역할에 최선을 다 하고 있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면서도 그들한테 미안한 감정은 무엇일까?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직장맘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같은 직장맘들은 다 그렇게 살겠지라는 생각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봄이니깐 괜찮아 봄이 왔어요 봄! 싱그럽고 활기찬 봄이 왔어요~! 아무리 불러도 들어도 지겹지 않는 말이다.야채장수, 생선장수의 확성기를 빌려 오늘도 내일도 트럭에 가득 싣고 떠들어도 모자라면 모자랐지 지겹지 않을 봄 ! 며칠전, 답답한 마음에 집 앞을 산책하는 내게 바람이 그랬다.“그냥 지금은 나랑 놀면 안돼? 아무것도, 아무 걱정 없이~"산뜻하게 불어주는 녀석 앞에서 내 한숨 따위는 참으로 형편없어 정신 차리고 보니 어쩐지 ‘봄바람’ 이였다. 생각해보면, 한달전부터 “와, 이제 봄인가 보다!"했던 것이 한 달이 된 지금도 “날씨 좋다! 봄이네 진짜!” 여전한 그 멘트이다.물론 다시 그 인사를 건네기까지~쉽지는 않았으리라.날이 조금 풀리는가 싶더니 비는 그렇다쳐도 3월에 눈이 내리고 들여놓은 두꺼운 오리털 점퍼까지 꺼내 입게 하는 매서운 바람~그러다 다시 맑아진 하늘.그래도 뭔가 안심되지 않는지 과감히 외투를 벗어내지는 못하는게~ 마치, 믿었던 사람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자기방어 같다. 어설프게 돌아온 그의 모습에 나 다시는 상처받지 않으리. 하며 온전히 내어주지
인생의 황금기 ‘공중보건의’ 2009년 4월 보건소로 첫 출근. 한 시간 후 여사님이 부른다.“선생님, 환자왔어요. 발치요.”첫 환자. 상악우측 제2소구치였는지, 제1대구치였는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잘 뽑을 수 있을까, 발치순서가 어떻게 되었지’ 속으로 되뇌면서 진료실 유니트체어로 향했다. 간단한 치주발치였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치아가 ‘쏙’하고 뽑히는 느낌도 좋았고 자신감이 생겼다. 공중보건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운이 좋아 경기도로 근무지 배치를 받았다. 내가 근무한 보건소는 여러 구강보건사업을 시행하고 있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에는 어린이집 원생들이 구강검진, 교육을 받으러 보건소에 왔고, 매주 수요일, 금요일에는 초등학교 구강보건실에서 치아홈메우기 사업을 하였다. 장애인시설, 요양원 등으로 구강보건버스를 타고 출장도 나갔다. 그 외 시간에는 보건소에 오는 환자들 진료를 하였다. 그렇지만 치과대학에 다닐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여유로운 생활이었다. ‘무엇을 할까.’ 하고 싶은 일들을 목록으로 적었다. 여행, 악기, 운동, 세미나수강 등 생각나는 대로. 하루는 공중보건의 축구모임에 나가고 이틀은 기타학원에 다녔다.
1-1-11 (하) 마추픽추(Machu Picchu)‘나이 든 봉우리’를 찾아가기로 했다/너무 유명하니 인사함 하는 것도 살아가는 맛이라 생각했다/즉, 네가 중요한 핵심이었단 말이다/400년간 쉬고 있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성스러운 계곡’ 우르밤바 강을 따라 하늘이 보이는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사실은 해발 2800에서 2400으로 내려가는 길/열대우림을 뚫는 길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가는 길/사리사리하게 가지 않고는 보여주지 않는 길/영험한 곳은 모두 그랬다/현기증을 느끼게 한 후에야 보여주는 공중도시는/구름이 까치처럼 왔다 갔다 했다/사라진 비밀의 도시, 그곳엔 이방인인 관광객들이 부산만 떨고 있고/그 신비로움에 쌓인 깎아서 만든 절벽도시는 사라짐을 예견했다/아무도 모르게 궁금증을 낳고선 징기스칸*처럼 비밀을 간직하고/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아니 잠시 비켜서 있을지도 모른다/또 다른 세상에서도 역시 인간은 잔해를 남기고 갈 뿐/미라로 남는 인간은 그저 선반용 제물일 뿐/마추픽추에는 영(靈)가득 추락하는 아슬아슬함이 가득.(*그룹 징기스칸의 노래 마추픽추도 있다.) 12월 29일 수요일, 우르밤바에서 버스로 7시간 아래로 이동,
1-1-11 (상) 딸아이가 잠시 머물고 있는 텍사스, Tutor에게 전화해서 이번 방학에 겸사겸사(兼事兼事)해서 페루를 갔다 오려고 한다니깐, 네? 잘 모르겠다는 듯 “페루요?” 하면서 “아~아! 퍼루! 그런데 거기는 왜요?” 라고 한다. 난 속으로 “왜요”는 “일본 담요”이거든요 하고픈 것을 참고, 여차저차하여 떠나게 되었으니 딸 좀 LAX로 오게 도와주십사 부탁했다. 나로서도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직업상 겨울방학이 대목인데 그것도 일주일이상 병원을 비우고 먼 남미로 간다는 것이 영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한동안 못 본 딸아이 본다고 생각하여 미국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일단 신청서를 넣고 기다렸다. 모객이 안 되면 취소될 수도 있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서 LA까지 비행기 삯은 개인부담으로 하고 출발 몇 주 전에야 우리가족 넷과 미국 시민권자 여섯, 총 10명이 간다는 연락을 받고선 추운 겨울 한국을 떠나 비수기 우기인 페루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한국서 LA까지 10시간(LA서 한국은 12시간), LA서 수도 리마(Lima)까지 8시간 30분, 리마서 쿠스코(Cusco)까지 1시간 30분 비행시간, 그리고 기다리
내 나이 편지 한 장을 받았다.분명 나에게 보낸 편지는 맞는데 보낸 사람이 누군지 통 알수가 없다.“김중현, 김중석이가 누구지?”편지 내용을 보니“삼가 아뢰옵니다. 저희를 낳아주시고 가없이 사랑으로 길러주신 아버님(김 청字 환字)의 고희를 맞아 어머님(최 경자 애자)을 모시고 저희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오늘날까지 저희 부모님과 두터운 정을 키워 오신 어르신들과 친척 분들을 모시고자 하오니 기쁨을 나눠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아하! 청환이 형 고희연 초청장이구나. 중현이와 중석이가 청환이 형 아들들이구나. 지금까지 무심히 지냈으니 청환이 형 아들 이름을 알 턱이 있겠는가? 벌써 청환이 형이 고희네! 일흔 살이라는 거 아니어? 그렇지, 청환이 형이 나보다 다섯 살 많으니 고희가 맞기는 맞네.그러고 보니 내 나이도 예순 다섯 살이네. 허참, 앞으로 오년만 지나면 나도 고희네.청환이 형 고희연 초청장을 앞에 놓고 지난날의 내 나이를 돌이켜 본다.이유는 모르겠으나 스물여덟 살까지 난 늘 이랬다.“언제 난 사, 오십을 지나 환갑이 되지?”“왜 사람들은 나를 매냥 애 취급을 하는지 모르겠어?”“나이 스물여덟이면 어른인데
윈드서핑과 스키 저는 여러 가지 레저 스포츠를 즐기지만 그 중에도 여름에는 윈드서핑을 주로 하고, 겨울에는 스키를 즐깁니다. 두 가지 스포츠를 하면 아주 큰 장점이 있습니다. 비시즌이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스키를 열심히 타는 마니아들은 스키시즌이 끝나면 공황상태에 빠진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 시즌에 스키장에 50번 갔습니다. 예년에 70~80번 가던 것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이지요. 저 보다 열심히 타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봄이 되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게 되어 허탈감이 생기게 되고 다음 시즌이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름에도 실내 스키장에 가서 열심히 스키를 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름에 까지 스키를 탄다는 것은 좀 오버가 아닐까요? 과일도 제철 과일이 맛이 있듯이 레저 스포츠도 제철에 즐기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윈드서핑은 3월부터 11월 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윈드서핑에 미친 몇몇 사람은 한강이 얼지 않으면 겨울에도 타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11월 말에 시즌을 끝냅니다. 우리 클럽에서는 11월에 제주도 윈드서핑 원정을 가는 것으로 시즌을 끝냅니다. 스키 시즌은 11
제1628번째 카리스마 (Charisma) 이 단어의 어원이 된 그리스어 카리스(Charis)는 ‘은총"이나 "신이 내린 선물"을 뜻한다. 그냥 우리 식으로 쉽게 말하면 “쟤 쨩이야”라는 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대중을 탄복시켜 스스로 꼬리를 내리게 만드는 초인적인 자질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수년 전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에서 계절학기 수업을 받는 선생님들을 따라 가서, 음악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관현악단과 함께 협연하기 하는 모습, 지휘하는 모습도 보았다. 지휘자의 지휘봉 끝을 따라 흐르는 선율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선율을 그린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런 모습을 넋 잃고 보았다.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전공 악기에 관계없이 결국엔 지휘자로 타이틀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휘봉의 움직임에 따라 단원들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멜로디가 마치 전쟁터에서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 같았다. 무대에 서기 전까지 단원들은 지휘자와 함께 많은 시간 혹독한 연습을 하면서 지휘자가 의도했던 대로 소리를 그려 간다. 단아한 선율이 장내에
‘사랑 챔버’선율 온누리에… 저는 1986년에 연세치대를 졸업하고 20여년 째 서울 은평구에서 개원하고 있는 배현경 원장입니다. 제가 감히 서울여자치과의사회 정기총회 및 특별공연에 선 것은 저의 특별한 큰 아들 이정익이와 우리 ‘온누리 사랑 챔버’를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정익이는 올해 만 23살이고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아이인데다가, 발달장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기에 그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의 노력으로 유능한 선생님께 특수교육 열심히 시켜 입학시키면 정상 아동들보다 처지더라도 일반학교 과정을 따라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제점이었습니다. 제 아들의 장애를 제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감출 수 있으면 감추고 싶었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했습니다. 정익이는 보통 아이들이 지키는 규칙과 학습을 당연히 따라가지 못했고, 엉뚱한 곳(예를 들어 우연히 옆을 지나가는 아이나 주차시켜 놓은 자동차)에 화풀이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수 학급이 없는 일반 학교로 보낸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동안은 담임선생님께 호출 전화가 올까봐 학기 중에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고, 방학이 되면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