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마라톤대회를 마치고 지난 10월3일 상암동 월드컵경기장내 평화의 공원에서 치과인들이 처음으로 만든 스마일마라톤 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대회전날까지도 강풍과 비바람으로 대회의 진행자체가 불투명하였으나, 모두의 염원 덕분인지 대회 당일날 새벽부터 비가 정말 감쪽같이 그쳤었습니다. 대회가 끝날 무렵에야 다시 시작된 비를 보면서 모두의 바람은 하늘도 감동시킨다는 말이 새삼스레 떠올랐습니다. 대회의 공식명칭은 구강암과 얼굴기형 환자를 위한 스마일마라톤대회로 정하였습니다. 대학병원 레지던트 시절 보았던 많은 구강암환자들과 얼굴기형 환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고자 했던 교수님들의 열정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받았었습니다. 이 대회의 아이디어는 1년전 유방암 예방 및 후원을 위한 핑크마라톤에 치과인마라톤회의 박성진 회장님과 제가 일반인으로 참여하면서 처음 가지게 되었습니다. 치과계에는 치과의사, 위생사, 조무사, 기공사, 치재상공인 등 많은 분들이 열정적으로 활동하는데 대국민을 상대로 한 축제나 대회가 전무한 것이 안타까웠고 구강암 등의 구강영역 질환을 가진 환자들에 대한 홍보의 장도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작은 아이디어와 용
혁신의 출발에 선 2011년!병원 마케팅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2011년 신묘년, 새해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 지도 벌써 열흘째이다. 많은 병원들이 2010년 경제한파와 경영난으로 어려웠던 2010년의 침체되었던 분위기를 쇄신하고, 병원을 개선하고 혁신하여 2011년은 성과가 있는 한 해로 바꾸겠다는 당찬 결의를 했을 줄로 안다. 그러나 필자도 잘 알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결심을 실천해 나가기란 막상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를 꾀할 것인지 그 핵심을 잡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특히 올해 대안으로 본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병원의 성장을 이루어나가겠다고 결심하시고 준비하시는 원장님들을 많이 뵙게 된다. 2011년은 더욱더 경쟁이 치열해지고 마케팅의 기법과 수단들도 점점 다양해질 것이며, 벌써부터 이러한 흐름에 따라 발 빠르게 움직이는 병원들도 물론 눈에 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연 이러한 마케팅과 다양한 병원의 활동들이 환자의 니즈를 반영한 것인가 하는 부분이 가장 먼저 고민이 되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여전히 많은 치과들이 환자의 니즈를 간과한 채 ‘우리 병원은 환자중심의 진료를 하고 있고
내 복(內服) 나이가 들어 글을 쓰면 대개 지난날을 회상하는 글을 많이 쓰게 된다. 고생을 많이 했다느니, 잘 살았다느니, 기뻤다느니, 행복했다느니 등등 곱씹을 일들을 되짚어 보면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내 속내는 이런 정형화 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복하면 ‘빨간 내복’의 추억을 떨칠 수가 없다. 아마도 또다시 회상과 추억의 글로 빠질 것 같다. 내복은 우리네 입성이 아니고 유럽 사람들의 의류로 생각되나 사실은 삼국시대부터 입었던 속옷이란다. 내복은 유럽지역 외에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입는다. 추운 고구려에서는 동물의 가죽으로 내복을 만들어 입었고, 조선시대 부유한 양반들은 솜옷으로 내의를 만들었고, 가난한 양반이나 상민들은 개가죽으로 내복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동지방 사람들은 기능성 내복보다는 다발로 된 흰색 면 내복을 선호한단다. 그 이유는 물이 귀해 매일 세탁을 할 수가 없어 그냥 10일 정도 입다가 벗어 버리기 때문이란다. 참 편리해 보인다.아프리카에서는 내복이 필요 없어 보이나 심한 일교차 때문에 긴 내복이 중요하단다. 아마도 아프리카에서는 중동처럼 한번 입고 버리지는 않겠지? 요새 내복이 과학이다. 발열 내복을 보자. 두
스트레스 하나 줄이기 인간은 항상 생각하고 연구하며 편리성을 추구하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필요에 의해서 발명이 되고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발달된 문명의 이기로 인간의 수명 또한 연장하여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 인간이 저질러 놓은 과학문명의 폐해가 다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굳이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아도 환경의 파괴가 우리 인간에게 가져다 준 피해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기사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인간의 발명품 중 자동차, 에어컨, TV가 생활자체를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자주 걷는 운동이 필요한 인간에게 자동차는 특히 자가용은 걷기의 제약을 선사했고 에어컨에서 나오는 공기와 대기 중에 공기차이로 인한 호흡기 질환이 만연되고 TV로 말미암아 가족 간의 대화단절은 물론 인간이 획일화 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런 부작용 이외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문명의 이기가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기는 했지만 환경호르몬이나 유전자 변이식품, 운동부족,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아야 하는 스트레스 등으로 각종 질환을 갖고 지내는
남도 일번지 ‘강진’ 강진!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가 일컬었던 한국 최남단의 땅. 20여년의 세월 속에 내 삶의 희노애락이 한데 어우러져 섞여 있는 곳이다. 내겐 어머니의 품속 같은 제2의 고향이 되어 버린 셈이다. 말로 표현하기 부족할 정도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지만 이 곳은 아직도 느린 거북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남도의 여유로움과 포근함이 남아 있어 좋다. 치료가 끝나면 홍시나 바지락 같은 해산물을 갖다 주는 친정 엄마와 같은 환자들을 대할 수 있어 마음이 훈훈해진다. 매일 진료실에서 반복적인 진료에 임하는 회원님들께 잠시 쉬어가도 후회하지 않을 이 곳 강진을 소개하고 싶다. 전국 어디를 다녀봐도 군단위에서 산과 강과 바다가 하나로 조화를 이룬 곳은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보은산 우두봉에 올라가 보자. 월출산과 유치계곡으로부터 흘러오는 탐진 강물 자락이 굽이굽이 한눈에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태풍이 와도 미동도 않을 것 같은 기다란 강진만과 저 멀리 완도의 섬 남해 바다까지 확 트인 전경은 속까지 후련해진다. 밟으면 깨져버릴 듯한 날카로운 암성 봉우리로
나의 역사문화 활동 (하) <1898호에 이어 계속> 1994년 맏딸의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했다가 경상대학교 정경대학학장과 진주문화원장을 역임한 정치학박사인 맏형의 부고를 받고 급히 귀국했던 일이 있었다.지난날 진주는 소년운동의 발상지라는 역사적인 논제를 형님이 제시하였으나 당시 역사의식이 비천했던 나로서 큰 감흥이 없었다. 시대가 흘러서 진주의 문화지킴이로 탈바꿈한 나는 1995년 진주정신으로 진주문화를 부흥하는데 이바지 하자는 뜻을 세워 진주문화사랑모임을 결성, 망진산 봉수 복원, 진주걸인기생독립만세운동 재현, 진주팔경제정, 형평사운동의 주역 신현수송공비이전, 일본에 빼앗겼던 진주대첩의 김시민장군 공신교서 환수운동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는 등 쉴 사이도 없이 활동하고 있었다. 2007년 5월 문화동지이며 후배인 강동욱 박사가 소년운동의 발상지 표지석을 역사복원사업으로 나에게 권유하고 난 후 경남일보에 진주에 어린이운동 발상지 표지석을 세우자는 논지와 어린이 날 제정의 주역 ‘진주사람 강영호’ 선생에 관한기사를 연달아 발표했다. 이어 오마아뉴스 윤성효 기자의 ‘소년운동 선구자 강영호를 아십니까’라는 기사를
나의 역사문화 활동 (상) 이상근국제음악제 “진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세계로 뻗어가는 음악을 만드신 이상근 선생님을 기리고 알리는 건 지역 후배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죠.”3일부터 7일까지 진주에서 열리는 ‘이상근국제음악제’를 마련한 (사)이상근기념사업회 리영달 이사장은 이상근 선생과 깊은 인연을 자랑한다. 다름 아닌 일제 강점기 말 길야(吉野)국민학교(현 중안초등학교) 재학시절 이상근 선생에게 음악을 배운 제자이다.<경남일보 2010. 11.3.> “치과의사가 무슨 음악축제 이사장이냐”고 하겠지만 원래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1961년 초 개업하기가 바쁘게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음악 감상을 위해 사천공군기지의 PX에서 미군을 통해 부속품을 비공식적으로 구입하여 진주에서는 드문 Audio/stereo 시설을 하여 매월 진주의 초·중·고등학교의 음악교사를 초청하여 클래식 음악기행시리즈로 감상회를 2년간 계속하였다.진주의 원로 음악가 최재호 선생의 해박한 해설과 음률에 맞춘 신나는 몸짓은 음악감상회의 인기를 드높여 참여를 희망하는 분이 너무 많아 비좁은 치과대합실로서는 더 지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시
많다는 것이 행복할까 요즘에는 모든 것이 풍부하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다. 백화점에 한번 가보라. 정말로 좋은 물건들이 넘쳐나고, 어디서 보지도 못한 물건들이 정말로 많다. 별 희안한 것을 만들어서 판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그렇게 좋고 희귀한 물건들이 돈만 있으면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돈을 지불하고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행복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아니 잠시 동안은 행복하다. 잠깐 동안 그것을 가지고 정신적인 만족감을 느끼고 소중하게 여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시들해지면서 다른 더 좋은 것을 찾게 된다. 물질적인 것이 정신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물질적인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단기적인 만족감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얽매이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면 그 단기적인 만족감을 맛보기 위해서 계속적인 소비를 하게 된다. 마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요즘 사람들은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필기구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겠지만 나는 만년필에 대한 욕심이 많다. 볼펜에 비해 부드럽게 써지면서 약간 종이를 긁는 맛이 나를
입원실 隨想 (하) <1895호에 이어 계속> 나는 평소 종합건강진단을 기피해 왔다. 검사하다보면 어디엔가 무슨 병이 발칵 될 것 같은 불안과 걱정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큰 맘 먹고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진발표를 기다리는 마음은 무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것 같이 가슴이 두근거린다.의사들은 참 야속하다. 의사들이 진짜 야속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고 기대를 갖는 환자의 마음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담당의사와 짧은 면담을 하고, 나는 너무 미흡하고 섭섭하다보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꼭 물어보고 싶은 한 마디를 그냥 막아버리는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에 수 많은 환자를 소화해야 하는 의사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웃기는 얘기다. 나는 어떤가? 무뚝뚝하기로 소문났다는 나는 환자한테 얼마나 친절했느냐를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뻔뻔한 생각이 든다. 한번 한 얘기를 또 하고, 저만치 나가다 들어와서 또 하고, 심지어 문밖에 나가 한참 가다가 돌아와서 또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 환자나 의사나 경우와 정도의 문제라고 본다. 서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을 때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
제1602번째 입원실 隨想 (상)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다. 벌써 가을이다.입원실 창가에서도 가을이 보인다.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 흘러가는 구름, 아파트, 고층빌딩, 타워 크레인 같은 건축 장비들, 그리고 도심을 가로 지르는 순환도로…. 서울의 살아있는 모습이다. 무엇인가 생명의 흐름이 있는, 활기찬 움직임이 보이는 시가지를 바라보면서 마음 한쪽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어찌할가? 이 광명이 암흑으로 변한다? 바로 삶과 죽음에 대한 번뜩이는 생각이다. 종합병원을 방문하다보면 환자대기실, 입원실, 복도, 모두가 붐빈다. 웬 환자가 이렇게 많은가? 그때는 남의 일이니까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다. 입원실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말 그대로 쓸쓸하다. 특정 상황밖에서 그 상황을 바라다보면 그저 그렇겠지 하는 관망의 정도지만 그 상황 안에 있는 사람은 절실한 자기의 현실 인 것이다.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가? 생과 사의 갈림길, 저만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한, 욕망과 집착을 갖고 열심히 살았던 지난 시간들, 마시고 또 마시며 방황하고 낭비한 시간들, 가슴에 꽂힌 그리움 때문에 저미는 가슴을
초보치의 학술대회에 도전하다 螳螂拒轍(당랑거철)평택의 한적한 시골 지소에 공중보건의로 발령 받은 지 두 달 남짓 지난 2009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어버린 아낙네처럼 하염없이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료한 마음에 인터넷 웹서핑으로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되었다. 홈페이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학술게시판에 올라온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제4회 공중보건의사 심미수복학술대회’ 공고문이었다. 심미수복 관련 강연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특전을 제공함과 동시에 발표만 해도 상품을 준다는 사실이 내 구미를 당겼다. 결국 잿밥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참가신청을 하고 말았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강연을 수강하고 그곳에서 습득한 지식과 술기를 기반으로 임상증례를 준비했다. 많이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나름 열심히 준비한 발표 자료를 주최 측에 제출했다. 운 좋게 예심을 통과했고 학술대회 당일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윽고 학술대회가 개최되는 날이 되었다. 첫 번째 순서로 발표를 한 나는 나머지 11명 참가자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