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7번 행복이 무엇인가? (상) 한 줄기 여름 소나기가 지나가더니 화단에 풀어진 녹색 나뭇잎들이 한결 더 푸르고 싱싱하다. 대자연의 위대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꽃잎마다 품어내는 여린 얼굴들은 어떻게 저렇게 고운 빛깔을 내는 것일까? 가만히 다가가 꽃잎을 만져본다. 어디나 꽃잎은 같은 색깔인데, 멀찌감치서 보면 색깔이 다 다르다. 노랑, 연록, 초록, 에메랄드빛, 정말 아름답게 보인다. 저 하늘에서 비치는 태양의 위대한 힘인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자연을 노래하는 신비의 합창인 것이다. 내 진료실 한모퉁이에 3~4평 남짓한 화단이 있다. 내가 치과의사가 되기 전, 진료실 옆에 녹색의 공간을 갖고자 함은 나의 꿈이었다. 바람과 비와 태양이 비치는 대지 위의 공간이다. 남천, 공작단풍, 관음죽 등의 나무들과, 장미, 제라늄, 연꽃, 달맞이꽃 등의 여러 가지 꽃이 있다. 크고 작은 화분, 절구통, 갓등, 돌함지박, 항아리, 단지 등의 여러 가지 모양의 분재가 있다. 주먹보다 더 작은 앙증맞은 화분에서 자라는 룬델리, 디스커디아가 날마다 나한테 인사를 한다. 실내 조경사가 관리해 준다. 내가 갖고 있는 이 녹색공간은 나에게 위안, 휴식 그리고 신선한 에너
제1576번째 더딘 삶을 살지라도… 저희 첫째를 보면 저의 어린시절을 보는 것 같습니다.종종 멍한 표정을 지어서 힘이 빠져있고 해서 어떤 당근을 내밀어도 절대로 달리지 않는 말과 같은 아이…상을 주겠노라고 제시하면 항상 관심없다는 투로 자기 세상에 빠져있는 아이입니다. 덕분에 아내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선생님으로부터 “이것 저것이 부족합니다. 많이요…"라는 말을 들었고 주위 어머니들로 부터 너무 많은 훈수를 듣다보니 어머니들 모임에는 안나가게 됩니다.‘누구는 가르치고 싶지 않아서 안 가르치나…"저도 그랬습니다.고등학교때까지 들은 이야기는 뚝심이 없다, 애살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그리고 그것으로 저도 걱정을 했습니다.대학에 들어와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애살이 없는 것은 여전했습니다.그러니 집중적으로 해서 이루어놓은 것은 없습니다.그래서 때로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많이 자학도 했습니다.어릴 적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야기하신 것은 “즐겁게 공부하라"는 말이었습니다.남들은 금새 다 공부하고 다 끝내서 두번 세번 보고 있는데 집중력이 떨어지다 보니 한번 보다가 다른 것 하고 있고 그러다 다시 진도나가는가 싶으면 또 삼천포로 빠지는 자신을 보곤 합니다.그래
제1575번째 초 상 화 -베트남 의료봉사 그래 아주 더운 날이다. 습도는 왜 그리도 높은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한다. 이런 날에 베트남 타이웅엔성 옌락마을로 의료봉사를 갔다.주위 풍경이 강원도나 경상도 산간지역 오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차 한 대가 간신히 가는 도로다. 행여 맞은편에 자동차나, 물소 떼나 오토바이와 마주치는 날에는 옴짝달싹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야 만 한다. 굽이쳐 돌아가는 모퉁이마다 상대편에게 자신을 알리는 경적을 수없이 울려야 한다.여덟 살 때 이었으리라…. 경상도 거창에서 김천으로 나올 때, 좁고 심한 커브 길 때문에 덥고 비좁은 버스 안에서 고장 난 경적 대신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위험한 길을 지났던 기억이 난다. 어허! 지금 그 길을 가는구나!면(面)이라고 하나 살림집이 대여섯 채뿐이다. 다행이 인민위원회 건물이 번듯하게 있어 면 소재지려니 생각이 든다. 그 옆에 면 보건소가 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의료봉사를 할 곳이다.1975년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무의면(無醫面)이 많았다. 충청도 음성도 무의읍(無醫邑)이였으니 다른
제1574번째 우리의 이야기들 오랜만에 대학생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고려대사회봉사단(KUSSO)과 함께 의료봉사단으로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 8박 9일간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휴양지로 그리고 럭비 월드컵 세계 최강팀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의 남동부 오지 마을 나셈비투 마을에 가서 사회봉사활동 그리고 진료봉사를 수행하였습니다. 대학생들은 주민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공연, 현장 작업 등의 봉사활동을 펼쳤으며, 비뇨기과와 성형외과 그리고 치과(김포 미소치과 조영수 원장님과 저)로 이루어진 의료진은 자동차로 한 시간 반 떨어져 있는 인근 코로보병원에서 진료를 하였습니다. 모기장을 치고 넓은 방 하나와 마루에서 모두들 함께 자고, 화장실과 샤워장 각각 두 개로 36명(대학생 19명, 의료진 17명)이 남녀로 나뉘어 줄 서서 기다리면서, 마치 군대의 야전생활을 생각하면서 지냈습니다. 하루는 코로보병원 치과의사의 집에서 거주했는데, 밤에 자다가 모기의 웽웽거리는 소리에 새벽 3시에 일어나 모기 4마리 잡고서야 5시 반에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의료
제1573번째 차세대는 젊은 여성 CEO 영국BBC 특파원은 한국특집에서 놀라운 집중력과 지구력을 가지고 어울려서 하나의 목적으로 24시간 거의 쉬지 않고 즐기는 한국인들의 집단 놀이를 방영하면서 지도자 CEO만 있으면 성공 못 할 일이 없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몇장의 카드로 이뤄지는 고스톱 놀이다.두번째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젓가락을 다루는 솜씨에서 한국인의 기능 수준을 찾아 볼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일본 소니가 삼성이 앞지르는 것을 분석한 연구진은 그 중 하나가 상황 판단에 재빠른 결정이라 하였다. 재고하느라 결정 못하고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버린데 반하여 재빠른 결정이 IT시대에 중요 역할이라는 것을 간파 못하는 과오를 범하였다고 보고하였다. 흔히 말하는 빨리 빨리 문화는 다른 표현으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국특유의 스피드이고 추진력이다. 한국을 비롯하여 선진국 또는 선진국으로 가는 모든 나라의 문제점으로 등장하는 것이 저출산 고령화 문제이다. 반갑지 못한 빨리 문화는 세계에 유래 없이 우리에게 다가온 고령화사회이다. 120년을 넘는 오랜 세월을 거처 이룬 프랑스에 비해 우리는 2000년부터 고령화 시대를 최단기로 맞이하고 앞으로 초고령
제1572번째 휴가때 단식을? 집사람 휴가기간에 맞춰 애 셋을 데리고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며 공항과 도로 위를 헤매는게 나의 휴가였다. 처음에는 그런 가족여행이 당연했고 즐거웠다. 올 겨울에도 가족들과 스키여행을 갈 생각하면 들뜬다. 그러나 한번쯤은 나만을 위한 휴가가 그리웠다. 7월초 직원 한명이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가게됐다. 기회는 이때다. 그 기간에 맞춰 치과휴가를 잡았다. 집사람의 눈치는 애써 외면했다. 애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주말에 보상하리라 합리화했다. 단식원에 간다고 선포했다. 몸도 마음도 속도 쉬고 싶었다. 그동안 과식, 육식, 인스턴트식 등 안좋은 식습관과 술자리로인해 힘들었을 내 위장에게도 미안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진료하다가 쉴 때, 집에서 쉴 때에도 시간의 공백을 참지 못하고 수시로 먹을거리를 입에 넣고는 곧바로 후회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이건 아니다. 공교롭게도 가고자하는 명상단식원이 주말에 행사가 있어서 첫 이틀은 혼자 알아서 해야했다. 집에서는 안될 것 같아 4학년짜리 큰 아들만 데리고 템플스테이하러 서귀포 약천사에 갔다. 3일동안 75%, 50%, 25% 절식을 해서인지 한끼만 굶었는데도 자세성
아들과 단둘이 떠나는 여행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가족여행은 여러 번 했었지만 아들과 단둘이 그것도 15일씩이나 여행을 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사실 아들과의 여행을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떠났던 것은 아니었고, 한국 3M으로부터 인코그니토 어드밴스 코스에 초청을 갑자기 받았고, 문득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고 이왕이면 아들과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내의 반대가 있었다. 이유인 즉, 개원 한지 2년도 안됐고 병원에서 벌이도 시원찮은데 무슨 여행이냐고, 그것도 2주씩이나. 하지만 지금 아니면 내년에 바쁜 중학생이 되어버리는 아들과 또 언제 여행을 해 보겠냐고 잘 설득을 해 동의를 얻었다. 물론 예전부터 입버릇처럼 아들과 단둘이 여행을 해야겠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막상 가겠다고 하니 아내가 놀란 눈치였다. 진짜로 갈 줄은 몰랐었나 보다. 여정을 보면 독일(프랑크푸르트, 배드 에센, 뷔르츠부르크, 로텐부르크, 퓌센), 오스트리아(인스부르크), 이탈리아(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바티칸, 피사, 밀라노) 스위스(인터라켄), 프랑스(파리) 마지막으로 영국(런던)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전형적인 유럽패키지 상품이었다. 다만 우리는 연수회때문에 같
제1570번째 나는 산을 좋아 한다 난 산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고산준령을 넘나드는 등반가도, 자주 산을 찾는 애호가도 아니지만, 춘천이라는 도시는 분지라 주변에 여러 산들도 많고, 눈길 닿는 모든 곳에 병풍처럼 산들이 차지하고 있다. 항시 가보고 싶은 맘은 많았지만, 여러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7월 어느 날 달이 꽉 찬 보름날에 주위 선배님 2분과 동행해 산행하기로 했다. 당일 아침엔 궂은 비가 내리더니 오후가 들어서니 거짓 말 처럼 날이 개었다. 오랜만에 산행인지라 약간 들뜬 마음으로 진료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먼지 쌓였던 배낭 및 등산 도구를 챙겨 약속장소로 갔다. 퇴근시간 때문인지 약속장소인 아파트 입구는 사람들과 차들로 바빴다.오후 7시에 우린 모여서 간단한 밤참거리와 물을 사고, 차로 15분정도 이동하여 등산로 입구까지 도착했다. 오늘 오를 산은 금병산으로 정상은 약 해발 700미터이지만 우린 300미터 지점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입구엔 매점 같은 간이 건물과 산불 초소가 있고, 멀리선 우릴 경계하는 개들이 짖을 뿐 한가로운 시골 풍경 같았다. 등산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것처럼 풀이 무성했고 사람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엔 다소 좁았고,
우연을 가장해 넌지시 다가온 백년손님 미니 임플란트 틀니 치료를 해 온 지도 어언 만 6년이 지났습니다. 우연히 시작된 미니 임플란트 시술이 저를 포함해 동료들과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회사 직원으로부터 2.5mm 미니 임플란트를 처음 소개 받고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시작했습니다. 미니 임플란트를 식립하는 첫날 딱딱한 아래턱 뼈에 거저 대충 심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로지 식립 즉시 힘을 받아야 함으로 거저 빡빡하게 심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마지막 드릴을 하지 않은 채 식립했는데, 그때 부러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만약 다시 인접 자리에 심어 보고 또 다시 부러지면 아예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프로토콜대로 식립하니 제법 단단하게 식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헐거운 틀니를 가진 노인들의 의치 지지용으로 미니 임플란트를 지속적으로 적용하게 되었고, 초창기 무개념에 따른 실패를 넘어 이제는 식립과 부하에 대한 개념을 더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었고, 비로소 환자의 구강 상태와 생역학적인 관점에서 보철물의 디자인 및 식립할 미니 임플란트의 위치 및 개수 등을 고려한 미니 임플란트 틀니를 제작해 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흔히 3년
독서삼매경 휴가 새해가 되면 항상 다짐하는 것이 있다. “올해에는 독서를 많이 하자" 또는 “한 달에 2권 정도라도 책을 꼭 읽자" 등등… 그런데 새해 다짐은 작심삼일로 끝나고 만다. 업무상 1년에 한 두 차례 큰 행사를 준비하거나 학술대회 통역을 준비하는 때가 있다.이럴 때는 이 프로젝트에만 집중을 한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도 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온통 프로젝트 생각뿐이다. 이렇게 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다시금 다짐을 한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봐라. 여유를 갖고, 내 시간이 생기면 꼭 책을 읽을 것이야" 하면서 바쁜 여정 속에서 여유를 찾아보려 애를 쓴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난다고 시간이 생기지 않는다. 어쨌든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은 또 다른 일들로 자연스레 채워진다. 간혹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찾게 되는 유명인들이 내놓는 추천도서 목록은 가능하면 스크랩을 해가며 나도 꼭 읽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이런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실제 독서는 거의 못한다. 매번 실패를 하는데도 독서만큼은 미련을 못 버리겠다.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렇게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독서만큼 투자가치가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읽으면 읽은 만큼
대한민국종단 537㎞ 대회를 마치며 7월 11일(일) 오전 6시부터 16일(금)오후 1시까지 127시간의 제한시간 내 부산태종대에서 대구, 문경새재, 괴산, 이천, 서울역, 임진각까지의 코스를 완주해야 하는 2010년 대한민국종단 537km 대회에 참가했다. 2년 전 대회 때는 412km 지점에서 발바닥 물집으로 인한 부상으로 중도기권 한 기억이 있어 약간의 부담은 있었지만 많은 준비를 했기에 내 자신을 믿고 다시 도전했다. 꾸준히 훈련을 해 왔고 6주전에 태화강 100km와 3주 전의 5산종주를 마지막으로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태종대로 향했다. 내내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84명의 선수들이 빗속을 뚫고 임진각을 향하여 힘차게 출발했다. 중반까진 무리하지 않기로 했고 비가 오지만 자주 발을 닦아주며 바세린과 테이핑도 교환해주고 양말도 갈아 신으며 레이스를 펼쳤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발에 투자한 시간이 꽤 컸지만 대회 끝까지 물집이 안 생겨서 편한 후반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약 20km 가량의 부산시내를 통과한 후 낙동강을 따라 달려 25번국도의 직선화도로를 지나고 한참을 가니 반가운 100km cp인 상동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