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쯤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외국과 국내 언론에서 대서특필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IMF 경제 위기였다고 했는데, 지금도 경제 위기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이처럼 우리는 늘 위기 속에서 살고 있기에 긴장의 끈을 풀어서는 안 된다. 지나고 보니 치과계에도 한때 좋은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치과계가 잘나가던 시절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리며 즐거워만 하지 않았나 하는 자성을 해본다. 최고의 정상에 있다 할지라도 샴페인은 영원히 터트리지 말아야 할 금단의 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우리 주변에 일찍 터져버린 샴페인의 허세가 남아있다면 완전히 제거한 후, 신발 끈을 다시 동여 메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그림 제목은 ‘Cham-Paign & Real-Pain’이다(그림1). 작자는 미상이며 1828년 영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뿐만 아니라 제목에서도 작가의 위트가 넘쳐흐른다. 샴페인과 리얼 페인. 앞 단어 Cham은 Sham과 발음이 [∫æm]으로 똑같으며 Sham의 뜻은 가짜, Real과 대조를 이룬다. 뒷 단어 Paign과 Pain은 철자는 다
치의학과 인문학의 뜨거운 만남이 있을 때 치과임상은 더욱 빛이 난다. 두 학문은 다르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며, 서로에게 소금과 같은 존재이다. 치의학만 있고 인문학이 없거나, 인문학은 출중한데 치의학이 부실하다면 치과에서 여러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러나 치의학과 인문학 사이에 소통이 있다면 치과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은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어떤 문제도 발생되지 않을 수도 있다. 환자는 의사다운 의사와 소통과 공감을 잘하는 의사를 원한다. 치과의사란 치아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사람을 치료하는 직업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영국 캐리커처의 황금시대를 풍미했던 James Gillray(1756-1818)의 1796년 작품 "Easing the tooth-ach"는 여타의 다른 그림과 다르다(그림). 파스텔톤 배경에 오롯이 치과의사와 환자만이 묘사되어 있다. 치과의사가 환자의 치아를 발치하는 장면이지만 마치 두 사람이 탱고를 추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칼럼 제목으로 ‘치과의사, 인문학과 탱고를’로 정한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치과의사가 인문학에 한 걸음 다가겠다는 의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
치아우식증과 치주병은 자연치유 되지 않는다. 치통도 마찬가지다. 다만 잠시 사라질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치과의사의 손에 의해서 치과질환은 주로 치료가 된다. 모든 치과의사의 손이 그런 것이 아님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치과의사는 자신이 치료한 치아의 결과를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의 손으로 행한 치료의 예후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치료 결과는 수개월 만에 낙담을 안겨 주기도 하고, 십년 이상 흐뭇한 미소를 짓게도 한다. 이처럼 치과의사의 손이 약손인지 아닌지 치료는 알고 있다. 그림의 정중앙에 있는 의사는 전기를 이용하여 치통을 치료하려 한다(그림1). 그때는 과연 약손이었을까요? 치과치료는 치과의사의 손에서 시작되어 입으로 마무리된다. 치과의사 말의 효험을 종종 임상에서 경험한다. 말은 약 또는 독이 될 수 있다. 나의 말이 환자에게 위로와 치유를 가져다주고, 나에게도 믿음과 자신감을 선물한다. 그러나 나의 말이 환자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람의 입엔 항상 실수가 잠복중임을 명심해야 한다. 말의 효과는 성경(잠언15장4절)에서도 강조된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링컨은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공자가 40세를 불혹(不惑)이라고 한 것과 맥락이 닿아 있다. 어떤 것에도 혹하지 않았고, 판단을 흐리는 일도 없었고, 진리에서 벗어나 방황하지 않았다면 거울 앞에서 자신의 살아온 인생이 묻어나는 얼굴을 당당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바로 내 인생이고 자화상이다. 윤동주(1917-1945)와 서정주(1915-2000)의 시 ‘자화상’. 제목은 같지만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달랐다. 수십 점의 자화상을 그린 고흐(1853-1890)와 피카소(1881-1973)도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이처럼 시인과 화가는 작품을 통하여 성찰하였다. 치과의사는 치과에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영국 풍자화가 조지 크룩생크(George Cruikshank, 1792-1878)의 작품 ‘Tugging at a eye tooth(1821)’은 특이하게 두 가지 버전이 있다(그림1). 처음 그림에는 진료실 거울에 술자와 환자의 얼굴 표정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화가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거울에 비친 모습을 대부분 지우고 환자의 놀란 눈과 술자의 뒷모습
직업적 관점에서 치과의사의 조상은 누구였을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대에 따라서 Charlatan, Quack, Tooth-puller, Apothecary(약제사), Blacksmith, Farrier(말 수의사), Goldsmith, Silversmith, Watchmaker, Barber-Surgeon 등이 치과 치료를 담당하였다. 이 모든 직업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천한 신분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동안 노력한 덕택으로 치과 치료를 학문적으로 발전시켜 현재의 치과의사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잘 안다면 누가 눈 덮인 들판을 함부로 걷을 수 있겠는가? 치의학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서는 안 될 일이다. Thomas Rolandson의 1823년 작품 ‘The tooth Ache, or Torment & Torture’의 장소는 Barber-Surgeon(이발-외과의)의 상점이다(그림1). 오늘날 치과의사의 직접적인 조상이라 할 수 있는 이발-외과의는 1540년 영국 헨리 8세 때 탄생되었다. 영국에서 첫 번째 치과대학은 1859년에 설립되었기에 약 300년 이상동안 이
어떤 침대회사의 광고 카피 문구인데 18세기에 틀니는 진짜 패션이었다. 왜냐하면 틀니는 사람을 만나고 말할 때 만 장착하였고 식사할 때에는 틀니를 빼고 먹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틀니는 패션이 아니라 보철인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아있다. 치과에서 보철 치료를 행할 때 보철(補綴)의 어원적 의미도 항상 명심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치과의 꽃길이라고 할 수 있는 ‘보철(補綴)’의 의미를 찾아가 본다. 이한수 선생님의 주장에 의하면 ‘보철’이라는 용어는 19세기말 일본 치과의사들이 미국 볼티모어 치과대학에서 출판한 Mechanical Dentistry(치과 기계학)을 번역하면서 최초로 치의학 서적에 적용되었다. 먼저 보철을 한 글자씩 살펴보면 이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기울 보(補) : 깁다, 돕다, 꾸미다, 고치다. 엮을 철(綴) : 엮다, 잇다, 연결하다, 짓다. 기울 보(補)는 ‘옷 의’ 변으로 시작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틀니는 패션이란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엮을 철(綴)에서는 ‘또 우(又)’변이 4번이나 반복된다.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이처럼 보철 치료는 무한 반복되는 운명을 갖고 있다. 또 우(又)에는 용서하다와 돕다는 뜻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해석하면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판틴은 자신의 딸 코제트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앞니 2개를 팔아 40프랑(현재 가치로 약 12만원)을 마련하여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보냈다. 오호 통재라! 이제 코제트가 나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던 판틴의 핏빛 미소가 보이는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26년이 지난 1815년부터 실패로 끝나는 1832년 6월 항쟁까지 프랑스의 혼란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이라는 구제도를 타파하려는 민초들에게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기쁨의 눈물과 승리의 미소를 안겨주었다. 마치 우연의 일치처럼 프랑스 혁명의 출발점에서 치과계에서도 미소혁명(Smile Revolution)이 시작되었다. 파리의 치과의사 니콜라스 뒤뷔아 드 슈망(Nicolas Dubois de Chemant, 1753~1824)은 도자기 틀니(mineral teeth paste denture 또는 porcelain denture)를 1789년 발명하였다. 변색, 악취 및 우식등 상아 틀니(ivory denture)의 단점들을 일거에 극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토머스 롤런드슨(Thomas Rowlandson, 1756-1827)의 작품 ‘Transplantation of teeth(1787년)’은 아래와 같이 언급되어 있다(그림 1). <칸트 시대에 콩팥 시장은 성행하지 않았지만,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아를 사서 자기 잇몸에 심었다. 18세기 영국 캐리커처 화가 토머스 롤런드슨이 치과 진료실 풍경을 그린 ‘치아 이식’에는 의사가 굴뚝 청소부에게서 이를 빼고 그 옆에서 돈 많은 여자들이 치아 이식을 기다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칸트는 이를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보았다. 누구도 “자기 팔다리를, 심지어는 치아 하나라도 팔 자격이 없다” 이는 자신을 대상으로, 단순한 수단으로, 이익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행위이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사례로 돈만 있으면 타인의 치아를 사서 이식받을 수 있었던 동종이식(Homo transplantation)을 손꼽았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진료이지만 18세기 한때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하였다.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리다. 치과에서 임상을 하다 보면 치료를 잘할 수도 있고 때론 못할 수도 있다.
“역사를 아는 치의에게 미래가 있다” 역사를 정의하는 아포리즘은 많다. 그러나 역사를 알아야 할 당위성에 대해서는 윈스턴 처칠의 격언이 가장 유명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정체성은 뿌리에서 기인한다. 뿌리를 모르면 지금 서있는 자리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는다. 권 훈 원장은 대한치과의사학회에 몸 담으면서 오랫동안 치과의사학을 천착해 왔다. 치과의사 역시 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있다고 강조하는 권 원장이 이번에는 예술과 치과의사학을 결합한 칼럼을 격주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에서 예술은 순수 예술인 음악이나 미술이 아니라 의술(醫術) 즉 healing arts를 뜻한다. 사람의 인생은 짧지만 의술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기에 의사들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구이다. 최근 들어서는 전공학문 뿐만 아니라 인문학(humanities)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어 교육 과정에도 ‘치과의사학(齒科醫史學)’등과 같은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어떤 질병을 갖고 있는지 보다는 어떤 사람이 어떤 질병을 갖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역사책을 읽
최근 필자는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에 흠뻑 빠져 그녀의 삶을 그린 영화 비커밍 제인(2007)까지 호핀에서 봤을 정도로 열혈 팬이 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문학 작품 ‘오만과 편견’과 ‘이성과 감성’은 19세기 영국 남녀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하지만 제목만 보면 매일 다양한 사람을 치료하는 치과의사들이 성찰할 필요가 있는 단어들이다. 특히 오만과 편견에 나온 이 문장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1813년 9월 어느 날 제인 오스틴은 런던에 개원중인 치과의사 Mr. Spence를 만났다. 환자가 아니라 치료 받으러 간 3명의 조카(Lizzy, Marianne, Fanny) 보호자로 치과에 갔다. 이러한 사실은 제인 오스틴이 언니 카산드라에게 보낸 편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제인 오스틴의 설명을 통해 19세기 초 치과 임상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9월 15, 16일 3번의 내원 끝에 Lizzy의 전치부에 발생한 우식이 제거되고 금 충전 치료가 시행되었다. 치료를 받는 동안 Lizzy는 슬픔과 눈물에 잠겨있었는데
제70회 ‘치아의 날’ 행사를 위한 휴진 안내문이 필자가 속한 치과의사회로부터 배송되었다. 유독 숫자 70에 눈이 간다. 1946년 조선치과의사회가 6월 9일을 ‘구강보건의 날’로 정한 이후로 어느덧 70번째 구강보건 캠페인이 시행되고 있다. 2015년 치아의 날은 사람 나이로 치면 종심(從心)이다. 종심은 마음 가는 대로 행하여도 어긋남이 없는 경지, 즉 남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나이를 말한다. 종심의 나이처럼 제70회 치아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국민들에게 ‘치아사랑’을 고취시킬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6월 9일이 치아의 날인 이유는 ‘6세 구치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해방이후에 지정되었다.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일본은 6월 4일이 대한민국 치아의 날과 비슷한 ‘충치예방의 날’이다. 충치가 일어로 ‘무시바’인데 ‘무’는 숫자로 6이고 ‘시’는 4이기에 그냥 6월 4일이다. 아픔의 역사는 치아의 날에도 투영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 6월 4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구강 보건 행사가 시행되었고 해방전까지 지속되었다. 생활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자 하는 선학들의 지혜가 존경스럽게 느껴진다.치아는 이 치(齒)와 어금니 아(牙)로 구성된 한자어다.
흡연은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손꼽히지만 담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러니 하게도 담배(tobacco)는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었다. 아메리칸 인디언은 담배가 상처를 치료하고 치통을 완화하는 효과를 갖는 것으로 믿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에 의해 담배는 16세기 유럽에 급속도로 전파되었고 다양한 치과 질환의 치료제로 사용되었다.1874년 미국에서 상품화된 ‘Dental Snuff’는 snuff(코담배)와 chewing tobacco(씹는 담배)에 소독제 또는 제산제로 추정되는 물질을 첨가하여 만든 제품이다. 이 담배는 치통, 신경통과 괴혈병에 효능이 있다는 엉터리 광고가 배포되었고 심지어 충치를 예방하고 치아 미백 효과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황당한 제품의 개발자가 볼티모어 치과대학을 졸업한 치과의사 Robert Morgan(1844-1904)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나니 기가 막힌다.현재는 흡연이 폐암, 심장병, 구강암 발병과 높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입증되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금연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금연 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치과의사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봄으로써 지금 의료기관에서 시행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