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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계,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을까?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 9


20여년 전 쯤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외국과 국내 언론에서 대서특필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IMF 경제 위기였다고 했는데, 지금도 경제 위기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이처럼 우리는 늘 위기 속에서 살고 있기에 긴장의 끈을 풀어서는 안 된다. 지나고 보니 치과계에도 한때 좋은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치과계가 잘나가던 시절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리며 즐거워만 하지 않았나 하는 자성을 해본다. 최고의 정상에 있다 할지라도 샴페인은 영원히 터트리지 말아야 할 금단의 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우리 주변에 일찍 터져버린 샴페인의 허세가 남아있다면 완전히 제거한 후, 신발 끈을 다시 동여 메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그림 제목은 ‘Cham-Paign & Real-Pain’이다(그림1). 작자는 미상이며 1828년 영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뿐만 아니라 제목에서도 작가의 위트가 넘쳐흐른다. 샴페인과 리얼 페인. 앞 단어 Cham은 Sham과 발음이 [∫æm]으로 똑같으며 Sham의 뜻은 가짜, Real과 대조를 이룬다. 뒷 단어 Paign과 Pain은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은 페인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샴페인과 리얼 페인을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한다면 ‘가짜 통증과 진짜 통증’이 된다. 이른바 19세기 아재개그라 할 수 있다. 지금도 진료 중에 환자의 통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혼돈스러운 경우가 왕왕 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그림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얼굴 표정에 세 사람의 처지가 명확하게 그려져 있다. 장소도 진료실 이라기보다는 가정집 거실로 보이며 테이블에 놓여 있는 적포도주가 그 근거라 할 수 있다. 왼쪽에 얼굴은 불그레하며 배가 불룩한 남자는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을 지으며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다. 그는 와인을 마시며 눈앞에 펼쳐지는 치과 진료 모습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앞으로 치과 치료를 받지 않을 거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반면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처참한 상황에 놓여있다. 발치를 받고 있는 환자의 팔과 다리에는 경련이 일어난 듯 부르르 떨고 있으며 얼굴 표정은 일그러져 있다. 그의 복장을 미루어 짐작컨대 부유층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누가 이 사람을 부러워하겠는가? 어쩌면 이 환자는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는 동안 지난 날 자신의 부적절한 구강위생에 대해서 후회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의 왼쪽에서 강아지가 술자와 환자를 보면서 짖고 있다. 이것은 고통의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환자를 암시한다.

날씬하고 안경을 쓴 tooth master는 불안하고 근심어린 표정으로 발치를 하고 있다. 발판 의자에 서서 진료를 하는 술자는 시야 확보를 위해 허리를 구부리면서 환자의 하악 왼쪽 구치를 발거하려 하는데 녹록지 않아 보인다. 테이블 위에 김이 나는 그릇(bowl)에는 발치 후 통증과 부종을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될 찜질제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은 약통(box)과 스프레이 병(phial)에는 아편약물(laudanum)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 이번 작자 미상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액자에 있는 그림은 1825년 George Hunt의 ‘Charles Wright's Champaign driving away real pain’이다(그림2). 그림에 하단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Wine cures the gout, the colic and the phthisic. Wine is to all the very best physic.’ 어쩌면 찜질제와 아편으로 제조된 약물보다도 샴페인이 환자에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적절한 용량이 복용된다면 발치 전 환자의 정신을 분산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분도 좋게 하고 통증까지도 완화시킬 수 있다. 최근 뉴욕 맨해턴에 소재한 치과는 환자를 위해 대기실에 와인을 비치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따라 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주의가 요망된다. 
 

치과 진료실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치과의사든 환자이든 직원이든 고통과 근심과 확신 중에 하나는 갖고 있을지 모른다. 고통은 과거를 돌아보게 하며, 근심은 현재를 살펴보게 하며, 확신은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는데, 고통과 근심과 확신 중에 그중에 최악은 고통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치과에서 통증은 환자에게만 발생하지 않는다. 치료하는 치과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를 응대하는 직원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리 서럽고 비위가 상해도 스마일 하는 것이 치과에 종사하는 직업인의 운명이라 생각된다. 치과에서 Pain을 만난다면 이렇게 해보자. 소소하게라도 Cham-paign을 마시면서 담소를 통해 Real-Pain을 극복해보자.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2540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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