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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을까 뭐 먹을까 뭐 먹을까?

스펙트럼

성경에는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라는 구절이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제 삶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뭐 먹을까?”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끼니나 생계를 걱정하는 말은 아니지만, 특히 주말에 점심 먹으면서, 저녁 무엇을 먹을까 고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 주말마다 요리하는 재미에 빠져서 준비를 하려고 그런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 보다는 무언가 정해져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제 나름대로는 바쁜 현대인의 정서 때문이 아닐까라고 진단해봅니다.

1857년 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이 자신의 저서에서 발표한 엥겔지수는 총 가계지출액 중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합니다. 식료품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지출 항목이지만,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식료품 소비량이 크게 증가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를 통해 생활수준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식비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뜻으로 ‘엥겔지수가 높다’라고 말을 하지만, 엥겔지수의 본 뜻으로는 외식을 포함하지 않고 식료품비의 비율만을 계산한 것 입니다. 친환경 식료품이라던가 값비싼 식재료가 다양하게 구하기 쉬워진 현대에는, 고소득층에서는 식료품비의 증가도 많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겠지만, 외식을 제외하고 식료품비만으로 계산한다면 소득의 차이는 엥겔지수로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식욕은 수면욕, 성욕 등과 함께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중에 하나 입니다. 빈곤한 나라를 칭할 수 있는 제3세계에는 아직 생존을 위한 식욕이 필요한 곳도 있겠지만, 주변에서 생존을 위한 식욕이 발현되는 것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대사회는 오히려 지나친 식욕이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경우가 있어 식욕 조절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영양과잉, 탄수화물 중독, 비만 등의 문제는 인류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전부터 먹는 즐거움은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 중에 하나였습니다. 현재에도 변함없이 먹는 즐거움은 우리가 추구하는 큰 행복 중에 하나 입니다. 더구나, SNS의 시대인 현재에는 음식을 시각화하기에도 모자라 이제 청각화하기 까지 합니다. “ASMR”이라는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라는 신조어는 꼭 음식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소리, 바사삭하는 과자가 씹히는 소리, 아자작 간장게장 씹히는 소리 등 바로 이것이 먹는 즐거움의 청각화가 아닐까 합니다.

사랑니를 발치할 때, 양측으로 뽑게 되면 먹는 것이 힘들어져서 한쪽씩 뽑고자 하는 환자들이 계십니다. 양측으로 뽑는 것과 편측으로 발치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진정법을 동반하여 네 개의 사랑니를 한꺼번에 뽑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진료에 대해서 반드시 무리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그 무서운 사랑니 발치를 두 번에 나눠서 하게 되는 것일까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라는 광고 카피가 아니더라도, 먹는 즐거움을 치과의사를 포함한 치과계에 종사하는 우리가 크게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일 것입니다. 통증의 치료, 심미적 회복도 치과에서 반드시 행해져야 할 진료영역이지만, 기능적인 회복이야말로 치과 진료의 백미가 아닐까 합니다. 잘 씹을 수 없다면, 치아 교정 진료도 의미가 퇴색될 것이고, 악교정수술을 성형외과가 아닌 구강악안면외과에서 행해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씹는 문제 때문일 것 입니다.

경제가 어렵고, 인구문제, 정치문제, 강대국들의 문제, 연금문제 등 문제가 아닌 것을 찾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런 가운데 치과계에서도 경쟁도 많고, 쉬운 일을 찾기 보다는 어렵고 힘든 일을 찾기가 훨씬 쉬운 것이 현실입니다. 치과계에서 일어나는 우울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열거하고자 한다면, 이 지면을 다 채울 수 있겠지만, 기쁘고 보람된 이야기는 사실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치과계 가족들이 앞에 언급한대로 이렇게 중요한 먹는 즐거움을 완성시켜주는 사람들이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사랑니 밖에 뽑지 않는 저 조차도, 사랑니로 인해 아파서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 밥 먹게 해준다고 생각하면, 참 장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죽어가는 치아를 살리고, 씹지 못하는 치아를 세워주고, 잇몸으로 씹을 뻔한 사람들에게 치아를 선물하는 치과계의 훌륭한 선생님들이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항진 사랑이 아프니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