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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10년 만에 치의 면허 취득 ‘인간승리’

한국 간호사→캐나다 간호사→캐나다 치과의사 된 염명덕 씨
‘결핍’ 영양분 삼아 지독하게 공부, 세 번 도전 끝에 치대 입학
원주민 보호구역 진료 고되지만 원주민 예쁜 웃음 보람 느껴

 

아이큐는 96, 성적은 끝에서 5등,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이가 간호사를 거쳐 캐나다 치과의사가 됐다. 염명덕 씨가 캐나다에서 치과의사의 삶을 택한 건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IMF 여파가 남아있던 2001년 국가 차원에서 해외취업을 장려했고, 캐나다 위니펙(매니토바주 주도)에서 내건 간호사 모집 공고는 그를 해외 취업의 길로 이끌었다.


최종 목표는 치대였지만 그는 간호사 면허 획득을 우선순위로 설정했다. 당장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학습이 가능했고, 캐나다에서 치대 입학을 위해서는 이민이나 시민권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족한 영어실력이 발목을 잡았다. 중학교 영어 참고서와 토플학원 등에 다니며 수개월 간 공부했지만 점수는 처참했고, 캐나다로 건너갈 때 준비했던 예산마저 바닥을 보였다.


염 씨는 치과의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결핍’을 꼽는다. 돈이 부족해 치대 입학에 필요한 필수과목을 정상적으로 들을 수 없었고, 시간이 부족해 영어 공부와 간호사 면허 준비, 치대 준비를 병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어든 어떤 공부건 몰입이 가장 중요한데, 몰입을 위해서는 결핍이 필요하다”며 “나는 살기 위해 결핍 속에서 간절함을 가지고 공부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매일 영어로 수필 2개를 작성했고, 토플 단어 100개씩을 외웠으며, 영어 듣기를 위해 틀어놓은 영화의 대사를 따라할 때까지 독하게 학습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할 때도 영어만을 고집했고, 첫 8년간은 한국 TV 프로그램은 일절 보지 않았다.

 

#원주민 환한 웃음 결핍된 삶의 자양분
간호사 면허를 딴 그의 다음 목표는 치대였다. 그는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밤에는 간호사로 근무하며 매니토바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세 번의 도전을 통해 2007년 매니토바 치대에 붙었고 2011년 캐나다에서 정식 치과의사가 됐다. 31세에 시작한 그의 파란만장한 도전이 10년 만에 빛을 본 것이다. 


면허 획득 후 처음 향한 곳은 Shamatawa다. Shamatawa는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지역이다. 비행기로만 출입이 가능해 물가가 타지의 4배에 이르며, 10대 미만 아동의 자살률이 유독 높다. 겨울이 길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이 땅에 그는 매주 월요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출근했고, 진료가 끝난 금요일 밤 집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스스로 택한 길이지만, 비행기로 출퇴근하며 주말에만 집에 돌아가는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일은 고됐고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다. 곧 치과의사란 직업에 대한 회의감까지 찾아왔다.


그가 치대를 선택한 데엔 규칙적이고 안정적이라는 이유가 컸다. 염 씨는 “의대를 갈 경우 전문의가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생이 싫었다”며 “간호사를 하며 밤에 일하는 게 얼마나 안 좋은지 알고 있었기에 규칙적 생활이 가능한 치과의사를 목표로 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Shamatawa를 떠난 그가 새롭게 둥지를 튼 근무지는 Norway House, 또 다시 원주민 마을이었다.


염 씨는 지금 캐나다 연방 보건부와 계약을 맺고 원주민을 진료하고 있다. 국가에서 보수를 받기 때문에 환자를 볼 때 필요한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다.


왜 다시 원주민 마을로 갔는지 묻자 “처음에는 치과의사를 선택한 것이 실수였다고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원주민들의 예쁜 웃음을 볼 수 있는 이 직업이 좋아졌고, 돈 생각하지 않고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아이큐는 96, 끝에서 5등이던 그 치과의사는 이제 결핍된 이들의 삶을 향해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