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풀잎을 타고 미끄러져 나아가는 달팽이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달팽이는 자기 몸보다 더 큰 집을 등에 지고 열심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집에 들어가 쉬는 시간도 있겠고 집을 통해 보호 받는 시간도 있겠지만 많은 시간, 달팽이에게 그 집은 무척 무거워 보입니다. 집 없이 매끈한 몸매를 뽐내는 달팽이도 있는 것을 보면 달팽이에게 있어 집이라는 존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개원의로 살아가던 어느 날, 경영으로 인한 스트레스 없이 진료에만 몰두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들과 협업하는 일, 기공소, 재료 업체, 건물주 등에 소정의 비용을 매달 지불하는 일, 건강보험공단을 위시한 정부와 관련된 사무를 처리하는 일 등등 그저 나열하기에도 힘들고 머리가 아픈 일들을 하면서 진료까지 하고 있는 저… 그런 제가 바로 집 있는 달팽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영이라는 무거운 집을 등에 지고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치과적 집 있는 달팽이가 바로 저인 것 같습니다.
개원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주인이 되는 치과를 꿈꾸지 않았다면 저도 집 없는 달팽이처럼 홀가분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왜 굳이 이 무거운 집을 등에 지는 선택을 했을까요...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진료를 하면서 치과를 경영하고 싶어서 개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원장으로 사는 내내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마흔 중반에 접어든 요즘, 때때로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저의 가정에도 줄줄이 식구들이 딸려 있는데, 치과에 오면 줄줄이 치과 식구들이 딸려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월말이 되면 매출과 순익의 큰 격차를 느끼며 생각이 많아지게 됩니다. 개원 치과의 현장은 노인과 바다처럼 처절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내 치과와 분리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몸이 된 지금, 달팽이가 자기 몸보다 더 큰 집을 등에 지고 살아가듯이,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경영의 무게를 견디는 선택을 합니다. 제가 오래도록 치과를 할 것으로 믿어주신 환자분들을 생각해서 저는 반드시 경영의 무게를 견뎌야 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사후관리를 해줄 것을 믿고 정가에 임플란트를 심으신 환자분들을 위해서 저는 제 치과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건강하게 살아나가야 합니다.
좋은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치과를 시작할 때 마음 먹었던 것들, 좋은 가치들을 되뇌이며 첫 마음으로 돌아가봅니다. 치과의사, 직원, 환자가 서로 좋은 이웃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꿈꾸며 좋은이웃치과를 시작했습니다. 이해관계의 틀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배려와 존중, 상생하려는 마음가짐을 통해서 각박한 현실을 바꿔보자는 마음이 좋은이웃치과의 첫 마음입니다. 높은 현실의 벽을 늘 체감하지만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봅니다. 가끔 제 마음을 달래주던 노래 가사를 떠올려봅니다. 저는 치과를 짊어진 달팽이입니다.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 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이적, 달팽이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