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하치조신경 손해배상 판결 소식을 접했는데, 손해배상금이 왜 이렇게나 높게 책정된 거죠?”
일선 개원가에서 하치조신경 손상 관련 법원의 손해배상금 산정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노동능력상실률 판단 기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또 위자료가 지나치게 높다며 위자료 산정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이 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최근 치과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환자에게 2670만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해당 사건은 임플란트 식립 후 식립체 말단이 하치조신경과 최소 안전거리인 1~2mm 미만의 거리로 근접한 탓에 감각이상이 발생해 소송까지 이어진 의료분쟁 사례다.
당시 재판부는 의료진이 CT상 안전거리를 침범, 하치조신경과 식립체의 말단이 상당히 인접해 있었던 점을 들어 환자의 노동능력상실률(2.25%)에 따른 일실수입과 위자료, 향후 치료비를 반영한 80% 비율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노동능력상실률은 신체 장애율에 따라 직업별로 계산한다. 신체 장애율은 감정인이 평가하며, 대한치의학회 ‘치아·구강·악안면영역 장애평가기준’에 따라 감각소실 및 저하 관련 신경손상 장애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장애율은 ▲경미한 감각 저하 시 0% ▲부분적 감각 저하 시 1% ▲완전 감각소실 시 2~3% ▲통증을 동반한 감각 소실 시 4~5%로 책정된다. 다만, 모든 감정인이 해당 기준을 바탕으로 의료 감정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위자료는 지난 2017년 1월 발표된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을 기준으로 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정도는 법원의 재량으로 판결된다.
이번 판결에 대한 개원의들의 불만은 감정의가 평가한 것이 임상적으로 정확하냐는 의문에서 비롯됐다. 판결 기사를 접한 개원의들은 임상적으로 노동능력상실률은 물론, 위자료까지 손해배상금이 너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A 원장은 “식이 장애나 근위축이 생긴 것도 아닌 것 같다. 수천만 원 가량 손해배상을 받을 정도의 후유장애라고 보긴 어려워 보인다”며 “이런 식이라면 이익이나 권리는 없고 책임만 과중한데 누가 치료를 하겠느냐. 치과의사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지워봤자 결국 국민이 손해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A 원장은 “이 판결이 임상적으로 합당한지 다른 원장들과 의견을 나눴는데, 다른 원장들도 이번 판결의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노동능력상실률을 포함한 손해배상금 산정이 정당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밖에도 일선 개원의들은 판결문에 명시된 손해배상금 책정 결과에 위자료가 너무 높게 나온 것 같다며 불만을 내비쳤다.
# 노동능력상실률 평가 제각각
이와 관련 법조계도 노동능력상실률 산정 등 의료감정에 대해 일부 보완할 점이 있다고 봤다. 지난해 열린 대한의료법학회 학술대회에서 김동원 대구고등법원 상임전문심리위원은 한 의료분쟁 소송에서 각기 다른 감정서로 인해 사후 공방이 발생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김동원 위원은 “세 명의 감정의가 평가한 노동능력상실률, 장해기간, 간병 평가가 32%에서 9%로 각기 달랐던 적이 있다”며 “1심 재판부가 이 세 감정서를 혼합한 배상 판결을 내렸다가 항소심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김동원 위원은 이어 “결국 2심에서 3명의 상임 전문심리위원이 추가 의견을 모아 사건을 해결했다”며 “충실한 감정을 위해선 객관적인 신체장애평가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장애평가 기준이 단일 평가기준이 아닌 각기 다른 형태의 기준을 적용해 (감정)평가를 하는 의사나 평가를 받는 대상자 모두에게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대법원은 보다 명확한 의료 감정을 위해 최근 담당의사의 풀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최근 올해 하반기 중 법행정자문회의에 감정 담당의사 확대를 포함, 의료감정제도 개선에 관한 최종적인 연구·검토 결과를 보고하고 결정사항이 도출되면 그 취지에 따라 구체적인 제도 개선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이강운 치협 부회장은 (가칭)치과의료감정원(이하 감정원), 의료배상공제조합 설립 등을 통해 환자·의료진 간 대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운 부회장은 “환자나 회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표준화된 감정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현재 노동능력상실률이 표준화가 돼 있지 않다. 노동능력상실률을 객관화하는 것이 설립의 핵심 포인트”라며 “감정원 위원에 법조인과 시민단체를 포함시켜 신뢰성을 확보하자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