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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인 임플란트, 환자에게 심어도 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67)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최 원장은 최신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에 관심이 많은 치과의사다. 원장은 최근 새로 창업한 임플란트 스타트업 K의 제품을 치과에 도입하기로 했는데, 해당 업체가 자신의 수정 의견을 바로 반영해서 장비나 임플란트를 개선할뿐더러, 최 원장을 치과 병의원에 자사 제품 홍보를 위한 대표 강의자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K 업체는 최 원장에게 새로 출시된 임플란트를 공짜로 제공하면서, 더 뛰어난 골유착과 내구성을 보이는 표면 코팅을 도입한 제품이라고 강점을 입이 마르게 설명하였다. 제품은 모 대학병원에서 수행한 임상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였다. 단, 아직 식약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환자에게 돈을 다 받고 식립하기는 그렇고, 간단한 시험 참여 동의서 받으시고 저렴하게 심어 보시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최근 치과에 내원한 환자 중에 65세인 김 씨가 있다. 그는 최근 은퇴하였으며, 그동안 바빠 치과도 제대로 못 다녔다며 이번에 잘 치료를 받고 싶다는 소망을 표한다. 김 씨가 치과 치료를 전혀 받지 못했던 것은 아니고, 오히려 몇 번 임플란트를 심은 적이 있다. 하지만, 골밀도가 충분치 않고 음주, 흡연 등 생활 습관 문제로 계속 실패해 왔던 것이다. 최 원장은 김 씨에게 새 임플란트가 좋은 대안이 되리라고 믿는다. 업체 설명대로라면 좋은 적응증인 데다, 여러 번 실패 경험이 있고 최근 은퇴한 김 씨에게 재정적 부담을 덜 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임플란트는 아직 장기 검증이 되지 않았음도 최 원장은 잘 알고 있다. 과연, 최 원장, 임플란트를 심어도 될까?

 

가상으로 만든 사례라 어색한 부분이 있음을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위 이야기에 등장한 원장님의 상황을 한번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위 이야기를 듣고 어떤 점이 떠오르실까요? 최 원장이 환자에게 저렴하게 치료해 주기 위해 노력을 했으니, 결과가 어떻든 환자는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시지는 않으시는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선생님들께선 아무도 떠올리지 않으셨을 텐데 아마 제 부족함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노파심에 이 점 짚고 넘어가면, 환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과 환자가 어떤 상황이든 감수하는 것은 무관합니다. 심지어 진료 봉사라고 해도, 봉사가 환자에게 나쁜 치료를 감수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면 충분하고, 봉사 상황에서 주어지는 치료가 병원에서 하는 치료와 동일한 질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이야기가 옆길로 샜네요. 다시 돌아와서, 최 원장은 환자의 상황을 보고 실험적인 치료법 또는 재료를 권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는 언제나 이득과 해악 둘 다를 발생시킨다는 점이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 같아요. 잘 아시는 것처럼, 치과 치료는 환자에게 이득을 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해악도 끼칩니다. 해악이라고 해서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간단히 말하면 환자 신체와 정신에 가해지는 손상을 말합니다. 발치든, 수복이든, 근관치료든 치과의 모든 치료는 손상을 동반합니다. 의미를 좀 엄격하게 잡으면, 심지어 약 처방도 손상을 동반하지요. 이상반응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약이 일으키는 불편이 있으니까요.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해악이 발생한다는 점이 아니라, 발생한 해악이 용인 가능한지에 있습니다. 의료윤리에는 가장 오래된 원칙이자 금언으로 악행금지, “해를 끼치지 말라”가 있는데요. 히포크라테스 선서로부터 이어지는 이 원칙은 환자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그렇다면, 아무런 치료도 할 수 없을 겁니다) 정당화될 수 없는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해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쉽게 생각하면, 사소한 손해, 별것 아닌 해악일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우리는 피해를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해악의 크기만 따져선 안 됩니다. 한편, 피해가 크더라도 우리는 감내하기도 하지요. 예컨대, 개복수술과 같은 큰 피해를 우리는 감내하는데, 그것은 그 자체로 큰 손상이라고 할지라도 더 큰 이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기준 하나가 나옵니다. 치료를 통해 얻는 이득과 손해를 비교해서, 이득이 더 크다면 손해는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득이 크다고 해서 무조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거예요. 이전의 인체 실험들, 예컨대 나치가 자행했던 실험들은 과학과 전체 인류의 발전을 위해 몇 명이 피해를 보는 것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지요. 아무리 인류 전체에게 이득이 된다고 해도, 개인이 인정하고 수용할 수 없는 피해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최 원장님의 문제를 풀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가 되었습니다. 최 원장님이 멈칫하신 이유는, 아직 장기적인 결과를 확신하기 어려운 치료를 환자에게 제공해도 될지에 대한 염려가 있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당한 염려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환자에게 주어질 이득과 손해를 비교해 보면 좋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겠지요?


아니지요. 안타깝게도, 아직 문제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환자의 이득은 꽤 명확한 반면, 환자의 손해는 현재 시점에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이 신규 임플란트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문제일까요? 시행되었다는 임상시험이 이런 내용을 모두 밝혀 주었다면 좋겠지만, 임상시험의 특성상 단기적인 효능, 안정성, 안정성만 검토했을 것이며 장기적인 문제는 확인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환자에게 이 새로운 임플란트가 얼마나 해악을 끼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이전의 다른 임플란트 경험들에 비추어서 짐작을 해보거나, 과거에 있었던 문제들을 떠올리면서 어떤 경우가 문제가 될지 생각해 보는 일은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이 사례에서 최 원장님이 할 수 있는 고민은 여기까지일 것 같아요. 그다음은 신이 아닌 이상, 누구도 알 수 없지요. 남은 것은 환자와 이런 상황에 대해 충분히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신규 임플란트가 있으며 임상시험의 형식으로 참여하실 수 있다는 것, 검정은 통과했지만 아직 승인을 받지 못했고 장기적인 결과가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임플란트는 아니지만 다른 임플란트에서 발생했던 문제와 피해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되었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환자에게 충분히 알려준 다음, 환자가 받기로 동의한다면 최 원장님은 “해를 끼치지 말라”던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구현하며, 환자를 위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신 것이겠지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