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속 도시락 199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0살이 갓 넘은 젊은 시절, 모교의 강단에서 구강보건교육학을 가르치던 어느 날이었다. 강의 중에 앞문을 씩씩하게 열고(그 강의실은 뒷문이 없는 강의실이었다) 용기 있게 들어서는 아이가 있었다. 멜빵이 달린 청바지를 입고 짧은 커트에 유난히 눈이 예쁘고 수줍은 듯 하면서도 당당함이 매력적인 아이였다. 그렇게 만난 아이가 20년을 건너온 세월 속에서도 아직도 내 옆에 있다. 부안으로 강의 가는 길. 전북지역 보건소 치과위생사들이 “나는 잘해요” 프로그램을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다. 혼자서 진행 하려면 4개의 차시를 담당해야 하는지라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다들 바쁜걸 알면서 연구진들에게 동행을 요청하기도 미안하여(나이 들면서 변한 것이 나보다 남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혼자 율동도 연습하고 시연도 해야 하나 고민 했는데 4차시 중 두 차시를 맡겠다며 자청하여 길을 동행 해준 제자의 마음이 고마웠다.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여 긴 시간 집을 비우기 힘들었을텐데…. 지난번 대구에 이어 부안으로의 먼 길 동행이 고맙기도 하고 지난 20년의 시간을 되돌아
섬마을 이야기 큰 섬 그리고 작은 섬이라고 불리우는 두 섬들이 그리 멀지 않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두 섬들은 제법 넓어서 열심히만 일하면 배불리 먹을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기도 했는데, 배들은 많지 않아서 수확량이 적었고 사람들은 비싼 값에 물고기를 사야했으며 사람들은 늘 배한척 갖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큰 섬에 배를 만들줄 아는 고 아무개가 살았는데, 그 사람은 좋은 배를 만들기 위해 늘 노력했으며, 배 한척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고 배는 비싼 가격에 팔렸습니다. 농사를 짓던 작은 섬 최 아무개는 배만드는 기술을 배우기로 작정하고 큰 섬 고 아무개를 만났고, 몇 달이 지나 기술을 다 익힌 다음 작은 섬으로 돌아와 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섬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큰 돈을 벌려는 생각에 배를 사려했는데, 마침 큰 섬에서 만든 배보다 싸게 파는 최 아무개의 배를 사서 바다로 하나씩 하나씩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작주문이 쇄도하자 최 아무개는 배를 대충 만들기 시작했고, 따라서 기술자가 아닌 사람이 볼 때는 멀쩡해보이는 그러나 기술자가 보면 문제투성이인 배를 만들었습니다. 배들이 많아지면서 수확량도 많아졌고
이 방 인 배치를 받아 내려간 그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정선에 대한 첫인상은 비 내리는 풍경과 험한 고갯길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다.구름도 쉬어가는 아니 힘들어 넘어가지 못하는 고개 또 고개, 그래서 비구름이 골짜기 마을로 한번 들어오고 나면 비가 금세 멈추지 않는 이곳.배치를 받은 춘천에서 출발해 횡성을 거쳐 7개의 고개를 넘으니 멀리 정선읍내가 보였다.다행히도 나에게 장거리 출퇴근은 또 하나의 여행이었다. 그냥 두 시간이 좀 넘게 걸리는 매주 하는 여행.눈에 익은 월요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의 많은 차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강릉방향으로 차를 돌리면 시원한 4차선 도로가 나를 반겼다.그렇게 달리고 달려서 중앙선 하나 딸랑 그어진 시골길로 접어들면 차창을 열고 맑은 공기를 마신다. 이미 지지직 소리를 내며 잡히지 않는 라디오 따윈 꺼버리고 CD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바람소리를 섞어 들으며, 그렇게 출근을 한다.가는 길은 여행일지 몰라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상은 쉽지 않았다.전신질환 등으로 잘 걷지도 못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익숙치 않은 진료실에서 하루종일 익숙치 않은 진료를 하고 나서 익숙치 않음에서 오는 설명할 수 없
고창 미당 생가와 내소사 산울림 문인모임이 전남 영광에서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와 ‘불갑사’를 구경하고 고창 선운사 입구 숙박지에 도착한 것이 저녁 7시경. 숙소를 정하고 이곳에서 먹을거리로 유명한 풍천 장어 집을 찾았다. 먹을거리도 관광인데 이곳도 영광 굴비 백반 집처럼 천지가 풍천 장어 음식점 뿐이다. 서울에도 장어 집하면 풍천 장어집이 즐비하고 웬만한 장어 식도락가들은 장어하면 풍천 것을 으뜸으로 친다. 이곳이 본고장이고 보면 당연히 풍천장어라고 생각 하나 안내인이 귀띔으로 눈 딱 감고 풍천장어로 알고 먹으세요. 이 좁은 바닥에 풍천장어가 얼마나 나오기에 전부 풍천장어라 하니 풍천장어가 웃겠다고 하며 99%가 중국산이라고 하니 어쩐지 입맛이 떫다. 그렇다고 주인에게 ‘이것 진짜 풍천장어요’라고 묻는다면 묻는 사람만 바보라 기분 좋게 먹어주며 맛이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주인의 서빙도 지극했다. 아침 식사를 숙소에서 간단이 하고 오전 일찍 미당(未堂) 서정주 생가와 미당 시문학관을 찾았다. 미당 생가는 초라한 빈농의 전형적인 촌가이며 마당에는 국화꽃을 많이 심어놓아 지금 한참 푸른 잎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그에 대표작
나의 사랑하는 야구부-조선대와 경희대의 제1회 OB야구교류전을 마치고 “조선 어이 어이 어잇”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힘찬 파이팅 소리. 수업 중간에 땡땡이 치고, 야구연습을 위해 장비 챙기려고 열나도록 뛰어가 조대 후문 근처의 송도식당 아줌마한테 열쇠를 받아 푸대자루 질질 끌며 운동장으로 뛰어가던 그 시절, “퍽”, “퍽” 복날 개 패듯이 맞기도 하고, 운동장 뺑뺑이도 돌며 속으로 욕도 하면서도 선배가 무서웠던 그 시절이 어느덧 20년이 다 되가네요. 아직도 그 시절의 패기와 젊음을 그리워하며, 냄새나는 입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좁은 구멍 힘들게 찾아가며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중에, “야구부 OB 한번 모일까” 하는 전화를 받는 순간 어찌나 좋고 설레이던지, 진료를 일찍 마친 후 후배 차를 얻어 타고 모임 장소인 강남의 한 식당으로 향했어요. 비록 예전에 비해 배가 불룩 나오고 머리털도 좀 빠지고 아저씨 몸매가 다 되긴 했지만 오랜만의 해후를 만끽하며 술 한잔 돌아가자 ‘기분 째지구만’ 반가워서 술 한잔, 술 먹었으니 노래 한방 쏘면서 또 한잔, 헤어지기 아쉬워 또 한잔. 그렇게 즐거운 첫 모임
스트레스, 스위치를 꺼라! 우리는 모두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힘듦의 원인, 그 중심에 각 개인의 스트레스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일상 속의 주변 환경과 사람들, 그리고 내 자신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우리의 머리 속을 복잡하게 한다. 이런 스트레스의 누적은 오늘날 뉴스 속 많은 질병과,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갈등과 사고들을 초래한다. 특히 치과의사로서는 네트워크 치과 문제, 의료 사고를 포함한 환자와의 문제, 세금을 포함한 치과 경영 문제, 직원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이 계속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의료인의 사례가 보도될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고, 난생 처음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필자는 스트레스의 본질과 해결책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같이 나누고자 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살아 남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남게 되면서 터득하게 된 생존 비법이 종족 보존을 위해 몸속에 깊이 남겨 진화된 것 같다. 아마 가장 어려웠던 것이 먹이와 혹독한 추위를 해결하는 문제였을 것이다. 원시 시대 먹이를 구하기
인생은 바둑을 복기하는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관상에 대해 많은 것을 공부하였습니다. 체계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공부하면서 정리해보았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익혀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여전히 아마추어입니다. 10년 이상은 집중적으로 해야 약간 눈이 떠진다고 하는 관상을 그렇게 수박 겉핥기 하듯 해서 무엇을 얻나 싶지만 그래도 대충의 윤곽은 잡을 정도는 됩니다. 개원을 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배운 것을 적용해보고 보는 눈을 조금씩 넓히면서 도달한 결론이 사람의 운명은 태어나면서 어느 정도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아무리 벗어나려고 노력해도 결국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너무 결정론적으로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성실하고, 여자 쫓아 다니는 사람은 문지방 넘을 힘만 있으면 계속 여자를 쫓아 다닙니다. 공부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 공부만 하고, 운동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 그것만 합니다. 여자 쫓아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공부 열심히 하거나 공부 좋아하던 사람이 갑자기 운동 선수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두
코골이 결혼하고 나서 집사람과 몇 번이나 다툰 건 순전히 코골이 때문이다. 일부러 코를 고는 것도 아닌데 그때마다 와이프한테 좀 서운하기도 했다. 20살에 독립하여 지금까지 혼자 사느라 나는 내가 코를 심하게 곤다는 걸 모르고 지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난후 집사람이 불면증으로 나날이 피폐해지는 것을 본 후 코골이 수술을 여기 저기 알아보았다. 하지만 금액은 둘째 치고 수술적 처치는 재발할 가능성이 높고 아프다 해서 포기하고 비수술적 처치를 알아봤는데 이것도 매일 마우스피스를 물고 자야한다는 것이다. 선택한 결론은 집사람이 비행기용 귀마개를 하고 자는 걸로 반 강제적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집사람의 모습에서 평생을 아버지와 거꾸로 주무신 어머니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이야기는 십몇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계실 때다. 다들 걱정스런 마음에 혹여 무슨일이라도 생길까 집이 병원 정문에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환자실 앞에서 아버지와 누나, 나 이렇게 병실 앞을 떠나지 못하고 의자에서 기다렸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이고 누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아버지와 함께 중환자실 문 앞을 지켰다 아버지가
공자가 풀이한 주역 조선시대에는 사서(四書)를 다 배우고 난 뒤에 ‘주역’을 읽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퇴계 이황 선생도 20세(1520년)읽기 시작하여 34세에 회시(會試)에 응시해 모든 과목에서 최고점인 ‘통(通)’을 받았지만 ‘주역’만은 요즘으로 치면 C학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계사전’은 주역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해석서로서 공자의 저작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주역 자체를 해석하려고 하다가는 사이비종교가 되기 쉬워서 성인이 풀이한 해설서를 중국의 대학자인 남회근 선생님의 재해설서인 ‘주역계사’를 근본으로 하고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역경’을 배우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상으로써 살펴 효사로서 가지고 놀기 위해서지 점을 치거나 명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보면 운세를 알 수 있다. 이것을 ‘관기상(觀基象)’이라 일컫고 그 상을 잘 살피면 그것이 사물이든 상황이든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죠.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이라 우주의 만물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주역 계사전에서 이릅니다. 천지간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기에 개인이든
저는 지금 복싱에 도전 중입니다! 제 큰아이가 대학교 3학년이고 막내가 고2입니다. 인생에 있어 도전은 앞으로 길어야 15년 전 후일 것입니다. 환자와의 진료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한 투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뒤돌아 봤을 때 치과의사라는 직업만 떠올린다면 얼마나 불행할까요? 나는 참으로 후회 없는 인생을 보냈다고 자부한다면 내 인생은 참으로 멋있었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도전이라고 볼 수 없으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행위야 말로 진정한 인생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결국은 다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라기보다는 지금당장 해야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녹화가 아닌 생방송입니다. 생방송은 되돌릴 수가 없듯이 우리네 인생에서 오늘은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환자진료에 너무 올인 하지 마시고 즐기십시오. 환자가 좀 줄고 수입이 좀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답답한 진료실을 벗어나 주위를 돌아보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생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
‘힘’ 이어라 이슬람교 첫 예배 소리인 파스로의 아잔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4시 30분이다. 아마 이 시간이 가장 신선하고 힘이 샘솟는 시간인가 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남쪽 78Km 떨어진 사당지역으로 의료봉사를 간 첫날 새벽에 울려 퍼진 코란기도 소리다.익숙치 않은 우리에게는 귀에 거슬리고 피곤한 몸에 짜증이 난다. 이 기도는 모든 이슬람교도라면 의무적으로 하루에 다섯 번씩 하는 기도 중 첫 번째 기도란다. 우리에게 이슬람교하면 중동이 생각나고 중동하면 전쟁과 테러가 떠오를 정도로 이슬람교에 대해 무지하다. 또 이슬람교하면 한 손에는 코란 다른 손에는 칼을 든 호전적 종교로 각인 되어 있다.그런데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다섯 번씩 인류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기도를 한다니 좀 혼란스럽고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60억 세계인구중 11억 인구가 이슬람교도라니 우리가 이슬람교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몰이해 했던 게 아닌가 생각 된다.특히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는 인도네시아 인구(2억5000명)의 88%를 점하고 전체 이슬람교도 중 10%가 넘는 1억5000명이라고 하니 인도네시아 이슬람교야 말로 세계적 종교이고 잘못 된 우리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