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쿠르(Bellecour) 광장은 프랑스 제3의 도시라는 리옹의 중심이었다. 론강 옆에 있는 이 광장은 그동안 유럽에서 만난 광장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광장 한 복판에는 태양왕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던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우뚝 서 있다. 주말이 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광장에 나와 있었다. ‘거리 농구’ 시합에 나선 건강하고 건장한 청년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는 일이 참 즐거웠다. 하지만 내가 리옹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일정으로 이 광장을 찾은 것은 ‘어린왕자’의 작가인 생텍쥐페리와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리옹에서 태어나 9살까지 살았다. 리옹 시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집 앞 거리를 생텍쥐페리가로 명명했다. 생텍쥐페리가 8번지가 그가 태어난 곳이다. 그의 집 앞에 작은 동상이 하나 서 있다고 해서 살펴보는 데 아무리 보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대개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지도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았는지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는지 물었다. 생텍쥐페리의 동상을 찾는다 했더니 그는 성큼 성큼 앞서가며 따라오라고 했다. 동상이 작아서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면서. 정말
우주의 비밀 하나를 누설할까 싶다. 이 세상에 있는 무엇이든 그것을 소유하고 싶다면, 주인이 되고 싶다면 ‘원하는 그것’을 ‘사랑’하면 된다! 무조건 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물질이든 기운이든 무엇이어도 그렇다. 원하는 대상을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면 바로 내것이 된다는 엄청난 비밀, 이것이 사실일까? 정말 맘에 안드는, 심지어 내 옆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내게 딱 붙어서 끈질기게 챙기고 온통 위해준다면 지겹고 더 싫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그가 애정표현의 대상을 다른 쪽으로 옮겨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왠지 울적하고 허전하고 자꾸 신경 쓰이고 결국 이상하게도 좋은 감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때 만약 그가 다시 나를 향해 다가온다면 달콤한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밀당’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숱한 인연들이 이 밀당의 원리에 의해 맺어져 왔을 것이다. 우주적 비밀이 적용되는 증거다.무엇인가를,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게 되면 사랑을 받는 존재의 에너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주는 존재에게 의존하는 형태로 기울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사랑을 걷어버리면 기대어있던 에너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 외곽에 있는 ‘아르메니아인 학살 기념관’을 찾아갔다. 이 나라는 자국의 아픔의 역사를 그 기념관 속에 새겨놓았다. 아르메니아의 근현대사는 수난의 역사였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와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지정학적 위치가 문제였다. 1877년에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보수적인 무슬림들이 터키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와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를 씌워 그들에게 테러를 가했다. 아르메니아인들도 격분해서 대응 폭력에 나섰다. 그러자 당시의 집권 세력인 청년 투르크 당은 자국 내에 있던 지도적 아르메니아인들 253명을 처형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 법. 1894년에 오스만 제국에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그 와중에 2만여 명이 희생당했다. 수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5년과 1916년 사이에 오스만 투르크와 러시아가 다시 격돌했다. 이때는 아르메니아인들 다수가 러시아군에 가담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오스만 투르크는 자국 내에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와 내통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그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강
아침 출근길에 종종 마주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들과는 눈인사를 나누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헤어 스타일이 남달라 눈에 띄던 아이가 있었다. 남학생인 데도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어 인상적이었는데, 그 아이가 자라 이제는 의젓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 학생과 마주칠 때마다 세월이 그렇듯 빠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곁을 지나치며 학생을 위해 화살기도를 날린다. “저 학생의 가슴에 하늘의 따뜻한 기운과 생기를 불어넣어주십시오.” 언덕 위에 있는 학교 후문에 마치 풍경처럼 서 계신 분이 있다. 처음에는 선생님인 줄 알았지만, 그는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기 위해 자원봉사하는 분이었다. 그는 벌써 여러 해 째 그 자리에 서 있다. 처음부터 눈인사라도 나눴더라면 좋았을 것을, 매일 마주칠 때마다 괜히 무안해져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쩍 눈길을 피하곤 한다. 소심한 내 성격을 탓할 수밖에 없다. 괜히 빚진 마음이어서 어느 날부터인지 그분의 모습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화살기도를 날린다. “저 아름다운 헌신을 기억해주시고, 부디 건강 잃지 않게 지켜주십시오.”아침마다 집을 나서 하루 종일 공원을 산책하는 아주머니도 가끔 마주친
요즘 내가 사랑에 깊이 빠졌다. 하루라도 못만나면 견딜수 없어 밤늦은 시간이어도 달려나간다. 그의 정체는 공원에 사는 ‘토끼’이다. 그는 공원을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만인의 연인이지만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고 자꾸 달아나 애를 태운다. 그토록 도도한 그가 어느날 불현듯 내게 마음을 고백해 왔다. 무심히 걸어가던 내 앞에 나타나더니 주위를 빙빙 도는 것이었다. 기분이 무척 좋았지만 어쩌다 그랬으려니 했다. 공원 끝까지 갔다 돌아오는 동안 토끼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혀졌다. 다시 그 장소에 이르렀을때,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와 나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누구에게도 하지 않던 행동이었다. 만인의 연인이 오로지 나에게만 온 것이다! 그날부터 그는 ‘나의’ 토끼가 되었다. 그날 이후 온통 토끼 생각에 공원으로 향한다. 멀리서 내 모습이 보이면 바로 달려나와 애완견처럼 졸졸 따라올 때의 기분이란… 다리와 운동화에 얼굴을 부비며 애정표현을 하는가하면, 배를 드러내고 한바퀴 구르며 애교를 부린다. 오가는 사람들의 부러움의 시선을 흠뻑 즐기는 건 덤이다. 다른 사람이 토끼를 너무 가까이서 예뻐하면 내 토끼한테 왜 저러지 하고 기분이 별로다. 내 토끼가 누구에게든 내게
10여년 전, 붉은색으로 넘치던 광장이 이제는 노란색 물결로 일렁인다. 열광과 환희의 함성 대신 숨죽인 흐느낌이 번져간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가슴에 단 노란 리본, 광장에 내건 깃발, 그리고 기억의 장소마다 붙여놓은 노란색 포스트잇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뼈저리게 자각했다. 죽음을 예감한 이들이 절박하게 내민 손을 누구도 잡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그저 버려진 것이었다. 그들은 잉여인간, 혹은 호모 세케르 취급을 받았다. 죽어간 이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식의 모습을 보았고, 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누구도 고통이라는 나라에서 이방인일 수 없다.분향소 앞, 세찬 바람에 일렁이는 노란색 깃발은 마치 죽어간 이들의 넋인 듯하여 나는 그저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돌아선 채 눈물을 훔쳤고, 또 어떤 이는 처연한 표정으로 두 손을 그러쥔 채 영정 앞을 떠나지 못했다. 애도의 물결을 막으려는 이들, 애도가 분노로 화하지 않을 방도 찾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에게 저 펄럭이는 노란색 깃발은 공포 그
이래도 되는가 싶다. 어쩌자고 꽃들이 이렇게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일까? 세상은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래서 짐짓 비장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데 자꾸만 배어나오는 미소를 숨길 수 없다. 영춘화, 산수유, 매화, 살구, 앵두, 사과, 목련,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제비꽃까지 눈인사를 나누기에도 분주하다. 게다가 달빛 아래서 바라보는 배꽃이라니. “하얀 배꽃 밝은 달빛, 은하수는 한밤인데/아직 남은 푸른 내 맘, 소쩍새가 어찌 알까/정 많음이 병이라서, 잠 못들고 뒤척이네.” 고려 후기의 문신 이조년의 시가 절로 떠오른다. ‘푸른 마음’이 뭘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왠지 공모의 미소를 짓게 된다. 나이 탓일 게다. 이 무정한 세월도 잠시 한눈파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까?요한 루트비히 우얼란트의 시에 프란츠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봄을 믿는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깨어났습니다./여기저기 속삭이고 살랑거리며 밤낮 불어옵니다./이렇게, 창조의 완성은 여기저기서 날마다 계속됩니다./오, 신선한 향기, 새로운 울림이여/이 신비 속에서 무언가를 근심하고 있다면/그대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지금 여기.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하며 /새로워지고 있습니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한 인류학자가 부족 아이들 몇명을 모아놓고 경주를 시켰다. 평소 구경하기도 힘든 달콤한 딸기 한 움큼을 백미터 앞에 놓아두고 달리기에 일등 한 아이가 차지하게 하는 게임이었다. 통역사의 통역이 끝나자 아이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출발 신호가 울리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손을 잡더니 다정하게 나란히 달려가더니 딸기를 하나씩 입에 물고는 뭐가 그리 좋은지 마냥 키득거리고 있었다. ‘일등하면 딸기를 다 먹을수 있지 않니?’ 당황한 백인 인류학자의 질문에 아이들은 오히려 이해가 안된다는 듯 일제히 대답했다. ‘우분투~~~다른 친구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혼자 행복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우분투! 남아프리카 부족의 인사말로, ‘당신이 있어야 제가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들은 만날 때마다 ‘우분투’하고 인사한다. 우리의 ‘안녕’이나 ‘안녕하세요’정도에 해당하지만 차원은 매우 깊다.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고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수 있다! 너와 나, 우리 모두는 하나의 망으로 짱짱히 얽혀 뗄 수 없는 한 몸이다!’는 뜻이 담겨있다. 너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으로 직결될 터이니
나치의 절멸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작가 임레 케르테스는 포로들이 수용소를 벗어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탈출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둘째는 자살이다. 누구라도 한번쯤은 이런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수용소이다. 하지만 죽어서라도 수용소를 벗어나는 것이 차역스런 삶을 견디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셋째는 상상력의 힘을 비는 것이다. 제 아무리 엄격한 감시자들도 상상력만은 통제할 수 없었다. 상상을 통해 그는 주로 집에 있는 자기를 떠올리곤 했다. 치과 의자에 기대 앉아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애쓴다. 이제 잠시 후면 벌어질 일을 가급적이면 떠올리지 않기 위해서이다.‘나는 지금 독일의 소도시 아이제나허에 있는 바흐의 생가에 와 있다. 뒤뜰이 아름다웠던 그 집.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 건물 2층에는 참 멋진 의자가 있었지. 소라 껍질을 연상시키는 빨간색 의자, 그네처럼 앞뒤로 조금씩 움직일 수도 있던, 세상에 그렇게 멋진 의자가 또 있을까. 그 의자에 앉아 듣던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참 장중했지. 장엄한 오르겔 연주를 듣는 순간 왠지 비현실적인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은
뜻하지 않게 동료 교무님의 권유로 경복궁 야간개방 관람을 가게 됐다. 십여년 전에 서울, 그것도 경복궁 주변에서 살때도 가지 않던 곳을 시간들여 공들여 가는 아이러니라니…원래 그 고장에 살때는 옆에 두고도 가지 않던 곳을 다른 지역에 가서야 애써 찾아오지들 않던가! 먹거리 볼거리가 많은 삼청동 골목을 거닐다 전에 가본 적이 있는 단팥죽집 앞을 지났다. 그냥 내부를 힐끗 들여다보며 지나치려는데 때마침 눈이 마주친 주인 할머니가 곧장 뛰쳐나와 화들짝 반가운 낯빛으로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니트 모자를 눌러쓴데다 자유복장이어서 내 신분을 알기 어려울텐데… 내가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데는 타고난 특기가 있긴 해도 정말로 처음 보는 얼굴 같아 순식간에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당황하긴 그쪽도 마찬가지, 사람을 잘못 보신 것이다. 아시는 모 교수님의 사모님과 너무 닮아 착각했단다. 말하자면 우린 서로 모르는 사이이다! 멈춘김에 들어가 팥죽 한그릇을 주문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한사코 손을 물리며 돈 받기를 사양하신다. 이 가게가 왜 문전성시를 이루는지 그 비밀이 읽혀져 마음이 훈훈했다. 무엇보다 그집 이름이 명물이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집!’ 이토록 여유로운 상호가 또
두 아들을 둔 엄마가 있었다. 쌍둥이였는데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웠다. 태어날 때도 동생은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었다. 한 태에서 나왔지만 둘의 성격은 아주 달랐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날쌘 사냥꾼이 되어 들에서 살고, 동생은 성격이 차분해서 주로 집에 머물렀다. 늙은 아버지는 맏이가 잡아온 고기에 맛을 들여 그 아이를 사랑하였고, 엄마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둘째를 사랑하였다. 형제는 묘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기력이 쇠약해지고 눈도 어두워졌다. 아버지는 그래서 맏이에게 어서 나가 사냥을 해다가 별미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러면 힘을 내서 그를 마음껏 축복한 후 가야 할 곳으로 가겠다는 것이었다.맏이는 즉시 활과 화살통을 메고 들로 나갔다. 부자간의 대화를 엄마가 엿들었다. 엄마는 둘째를 불러 즉시 염소 두 마리를 끌고 오라고 지시했다. 그 염소 고기를 요리해 줄 터이니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리고 축복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고지식한 둘째는 두려웠다. 만에 하나 아버지가 알아차린다면 축복은커녕 저주를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어하는 아들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저주는 이 어미가 받으마.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