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화산을 거쳐 만 하루를 더 상류로 헤쳐 가니 황학루, 악양루와 함께 중국 강남 3대 누각 중의 하나인 등왕각(滕王閣)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등왕각은 당 고조 이연의 22번째 아들이자 당태종(唐太宗) 이세민의 아우인 이원영이 그 지역 목사로 봉해져 부임한 후 8층으로 지은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강변 누각이다. 첫 건축 후 29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다. 이원영의 후임 목사였던 염백서가 베푼 연회에 참석한 시인 왕발(王勃)이 지은 시가 장원으로 뽑혔다. 왕발은 수나라 말의 유명한 수학자 왕통의 손자로서 당나라 초기(初唐) 4걸(傑)이라 불리는 당대의 대표적 시인이었다. 약관 1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조산랑(朝散郎)이 되었고, 그 후에 괵주참군(虢州參軍)을 지냈다. 왕발은 너무나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참신하고도 건전한 정감을 노래해 성당시(盛唐詩)의 선구자가 되었고 특히 7언절구(七言絶句)에 뛰어났으며 시문집으로 《왕자안집(王子安集)》 16권을 남겼다. 그는 불과 26세였던 676년 8월, 교지땅(交趾令)에 좌천된 부친을 찾아가다가 배에서 떨어져 장강에 빠져 죽었다. 여기에서 당시 왕발이 염백서에게 올렸던 <등왕각서(滕王閣序)&
무기를 녹이자 미제 검은 안경을 끼고 온 세상을 바라보았다 사막은 온통 금가루 욕심이 날 법도 하더라 점령군이 메고 있는 총알은 알사탕으로 보이더라 그것을 받아들고 떠난 영혼들 약자의 한을 품고 가더라 색안경을 벗자, 온통 핏자국 “총질은 이제 끝장내자” “무기를 녹여 다리를 놓자” “오아시스에 손을 씻자” 악몽의 이명증에 시달리던 전상자들은 저렇게 소리치고 이 세상에 평화의 눈길이 쏟아져 전쟁의 불길은 꺼져 가고 있다.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
1. 침묵 위주치명(爲主致命, 주를 위해 목숨을 바침)!,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오지 못하는 프랑스 알프스(희고 높은 산)의 그랑드 샤르트뢰즈(Le Grande Chartreuse) 봉쇄 수도원를 담은 영화 위대한 침묵(Into the Great Silence, 2005년, 162분)의 첫 장면은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다. 모든 종교의 수도원들은 도피가 아니라 구별이다. 수도원은 절제, 기도, 청빈과 무소유가 기본이고 제일 규칙은 Silence다. 침묵과 묵언은 모든 종교(유불선 포함)의 기본원칙이다. 짙은 침묵은 최소의 소리(수도복, 성경, 바람소리…)도 증폭시킨다. 종일 침묵과 관상기도(Contemplation)로 하나님을 만난다. 침묵은 내면의 응시다. 새벽기도(Martins)를 모두가 잠든 12시 5분에 올린다. 수도사들은 수방(修房, Cell)에서 홀로 은수(隱修)한다. 그 안은 최소한의 살림살이만 있다. 의탁하지 않는 삶을 산다. 물질보단 정신적인 가난을 추구한다. 밝은 색 카울(Cowl, 고깔이나 두건 달린 겉옷)을 입고 있다. 스님들의 배코머리 정도는 아니지만 기계식 바리캉(Bariquant)으로 삭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군의관을 마치고 처음 치과의원을 개업했던 1986년까지 해외여행이라곤 꿈도 못 꾸었다. 개업 이듬해에 가까웠던 친구 부부와 태국 파타야를 다녀온 것이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물론 그 전에 고등학교 수학여행지와 신혼여행지로 일종의 해외(?)인 제주도에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고등학생 때의 제주도 수학여행은 말 그대로 악몽이었다. 44년 전 어느 가을날이었다. 목포에서 제주를 왕래하던 여객선 ‘가야호’가 제주에서 목포로 돌아오던 중에 기관 고장으로 동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도 추자도 근해였던 것 같다. 600명이나 되는 우리 일행을 싣고 배는 정처 없이 섬 사이를 헤집으며 떠다녔다. 몇 시간을 파도에 흔들리며 떠돌자 모두가 심한 뱃멀미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날이 어두워진 후 출동한 해군함정에 의해 다시 제주항으로 예인된 다음 날 새벽녘까지 온통 공포와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아마도 ‘세월호’ 사건의 전주곡은 아니었나 싶다. 1987년의 첫 태국 해외여행 이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남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세계 곳곳을 두루 다녀왔다. 특히 ‘대한영상치의학회’를 따라 인도와 남아프리카 일대를 여행한
조선 후기에 태어 난 달항아리(백자대호)는 귀족보단 서민, 세련보단 풍성, 남성보단 달을 품은 여성이다. 입(口)은 눈썹 모양으로 크루아상(Croissant)을 탄생시킨 초저녁 초승달로 태동한다. 진정한 비밀처럼 입술도 없는 듯 짧게 시작한다. 어깨는 반달(Young moon)이다. 입에서부터 목(頸)이 없이 시작하다가 해산(解産)달의 배처럼 팽창한다. 혜곡은 무심한 아름다움의 시작이라 했다. 몸통은 꽉 참(滿)의 보름이다. 점점 헤어지듯 벌어진다. 저마다 세로 또는 가로로 성장한다. 그러다가 두개의 반원을 차낸 후 접합한 흔적을 남긴다. 풍만함은 절정에서 쉬었다가 다시 하강한다. 허리의 하현은 활시위(弦)가 아래(下)로 가는 신호다. 빛이 약간 어두워진다. 윤회(Samsara)를 구현하고 묵직한 비대칭도 시연한다. 여기를 지나면 매처럼 날카롭게 하강한다. 저부(바닥)는 마지막인 그믐 그리고 안정을 위한 숨고르기다. 시작(입)과 끝(굽)은 형제의 높이다. 입에 비해 굽 지름이 8할 정도 작다. 그래도 짐을 지는 대속의 십자가가 되었다. 꾸밈없이. 이런 달항아리(Moon jar)를 가슴에 하나씩 소성(燒成)하여 삶을 넉넉하게 채우기도, 넉넉하게 비우기도… 송선
박용호 원장 박용호 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장(전) 한국문인협회 회원 치과신문 논설위원 치의학 박사 수필집 《와인잔을 채우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치과가 미국 일반의학계의 주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치과의사(구강외과 의사)들이 악안면 손상 환자 처치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공식적으로 5000여 명의 치과의사들이 참전하여 안면골 골절수술 2000건, 하악골 총상 1123건, 골이식 125건을 기록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2차 대전 중에는 성형외과, 구강외과, 간호사, 마취사로 구성된 악안면손상 외과팀이 야전병원에 배치되었다. 전쟁 후, 전쟁외과의 발전에 자극되어 치과의사들 측에서 새로운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이 정립되었다. 이는 1946년 창립된 미국 구강외과학회의 요구 조건을 이수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1950년 미국 육군 치무대장 Smith는 피츠버그 치과대학 및 가맹병원과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이때 배출된 치의들이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한국의 구강악안면외과 발전에도 기여한다. 이병태 著 《나는 사람이 좋다》에서 이런 일화가 자세히 서술된다. “정순경 박사가 군의관 파견 교육을 1954
싱싱한 것들 해와 달과 별들이 싱싱한 것은 시시때때로 구름으로 닦으며 밤과 낮을 분명하게 가르고 모두에게 봉사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싱싱한 것은 산과 들과 바다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스쳐도 맑게 보이기 때문이다. 눈뜨면 들어온 탐욕 가슴에서 쓸어내리고 눈물로 참회하는 일 흘린 만큼 싱싱하다 내 마음 흐물거릴 때 남들이 던진 돌덩이로 내 가슴이 철렁이는 순간 그 풍파도 싱싱했다.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
박용호 원장 박용호 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장(전) 한국문인협회 회원 치과신문 논설위원 치의학 박사 수필집 《와인잔을 채우다》 5년 전 어떻게 아시고 중1 때 영어 선생님이 찾아 오셨다. 호마이카 선생님. 노총각 대머리가 가구처럼 빛나 붙은 별명이었다. 교장을 끝으로 퇴직하셨다. 70대 중반 왜소하지만 단단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부천에서 승용차 몰고 오셨단다. 끝의 어금니가 한 개 흔들리는 것 제외하곤 건강한 편이라 다시 한 번 놀랐다. 마모증 치료와 치석 제거를 하고 主訴인 동요치는 그냥 더 사용하시도록 권유했다. 선생님의 교육방식은 독특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몸짓으로 연신 몽둥이를 휘두르며 발음 고저와 강약을 지도했다. 영어 한 과가 끝나면 무조건 외어야 했다. 공포의 암기검사 날이면 회초리를 들고 단체 암송을 시킨 후 교실을 누볐다. 입 모양 보고 버벅대는 학생들에게 여지없이 머리통을 내리쳤다. 학기 말에는 책거리로 영어 암송대회가 열렸다. 그는 ‘개념 있는’ 선생님이었다. 중2 여름방학, 만리포로 단체 해양훈련을 갔다. 저녁 백사장에서 급조된 긴 상 깔고 식사 중이었다. 그때 걸인이 나타났다.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시커먼 영상이 우
박용호 원장 박용호 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장(전) 한국문인협회 회원 치과신문 논설위원 치의학 박사 수필집 《와인잔을 채우다》 북핵으로 긴장 상태가 고조된 요즘, 작가 황석영의 <한씨연대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소설 속 주인공 한영덕은 6.25전쟁 전 평양의전과 교토대를 졸업하고 모교에 재직하던 산부인과 교수였다. 전쟁이 터지자 성격이 올곧고 초연한 그는 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의무군관 차출에서 제외된다. 동료 교수 서학준의 잠적에 묵인했다는 이유로 사형 위기에 몰린다.(서학준은 남하하여 수도육군병원의 군의관이 된다.) 천신만고 끝에 홀로 피란한 그는 아들을 찾으려고 미군 부대를 배회하다가 간첩으로 오인되어 고초를 겪는다. 납북된 경찰관 미망인과 재혼도 하고 호구지책으로 무면허 업자와 동업하지만 양심적인 의술 이외에는 융통성도 없고 현실타협을 못 한다. 치과의사도 연루된 주변인들의 고발에 의료법 위반을 빌미로 정보대에 구금된다. 집행유예로 나오지만 고용의사로 떠돌다가 알코올 중독되어 적산가옥에서 독거노인으로 마지막을 고한다. 이 소설은 북한 의사가 남한에 와서 겪는 생사고락을 서술했는데 만약 남한이 베트남화 되면 남한 의사들은 어
나무들의 편지 별들이 은하수에 몸을 씻고 우리들의 머리에 빛날 때 나무들은 맑은 정신으로 세상 다독이는 편지를 쓴다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빛깔로 꽃 피워 열매를 맺던 일 그간의 사연을 이파리에 물들인 아름다운 엽서를 지상에 띄운다 모두 다 헌신적으로 이 땅을 가꾸자는 뜻 한 장씩 띄워 보낼 때마다 나무는 더 곧아진다 바람 타고 오는 낙엽들 자연을 사랑하는 편지 나무는 그대로 세워두자고 가랑잎 소리로 속삭인다.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
박용호 원장 박용호 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장(전) 한국문인협회 회원 치과신문 논설위원 치의학 박사 수필집 《와인잔을 채우다》 개원 초창기 겨울, 아침 출근 시의 나는 사뭇 로마 원형경기장에 등정하는 검투사 심정이었다. 파카 잠바, 모자, 장갑, 안경, 넥타이, 귀마개로 중무장한 후 스님의 말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를 되새기며 나섰다. ‘오늘은 또 어떤 환자와 맞서게 될까? 칼과 창 대신 한 손에 핸드피스 한 손에 미러를 들고 유효적절한 언사를 날리며 적시타를 터트려야 할 텐데…….’ 오전 대기실에 그득했던 사자들을 다 처치하고 나면 입은 마르고 허기지고, 그냥 ‘하키코모리’이고 싶었다. 환자 많은 게 죄였다. 그땐 다 그랬다. 누구와 점심같이 하자고 전화할 여유가 없었다. 단골 칼국수집은 혼면을 하며 환자 진료를 복기하고, 반성하고 후회하는 한 시간의 도피처였다.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오후 이차전에 대비한 자가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여기저기 감투를 맡게 되었다. 매주 도시락 조찬모임이 있는 날이 있었다. ‘말하며 듣고 생각하며 먹는’ 주요행위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생리에 거슬렸지만 요령을 터득하는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