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로서 살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난관에 대해 좌절하지 않으려면 모든 비극적인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를 최대한 넓고 깊게 깔아 두는 게 현명하다. 갑자기 초진상 환자가 치과에 드러누워 분신 소동을 벌이더라도, 믿었던 수납직원이 수억을 횡령하고 잠적하더라도, 치과의사라면 언제나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음을 깨닫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갑작스러운 비극 앞에서 좌절 없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지혜다. 세네카를 비롯한 스토아 철학자들은, 비극적 상황이라는 것을 마치 자연재해처럼 아무런 의도나 감정 없이 내 앞에 닥치는 것으로 보았다. 거기엔 아무런 명분도 원한도 없으며, 상대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지위가 높든 낮든 상관없이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걸 맞이하는 개인 역시 그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 돌발적인 상황에 정념이 이끌리는 것은, 좌절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특히 스스로 정의롭고 선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개인에게는 더욱 큰 분노를 유발한다. 그러나 애초에 비극은 상대가 선인이든 악인이든 상관없이, 마치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지고 땅에서 지진이 발생하듯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인데, 이 시점에서 ‘나는 선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집에 귀여운 시츄 한 마리가 들어왔다. 강아지 이름은 촌스러워야 오래 산다는 엄마 아빠의 주장으로 이름은 최고참으로 지어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느낄 새도 없이 물 흐르듯이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우리 고참이 나이가 14살이 되었다. 평소엔 산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고, ‘간식 먹을까’라는 말에 헥헥거리는 모습에 14살이라는 나이는 잊고 지냈던 것 같다. 그런데 한 달쯤 전인가, 컨디션이 조금 안 좋길래 데려간 동물병원에서 신장 수치가 너무 나쁘다는 얘기를 듣고, 입원까지 시켜야 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얘기를 들었다. 강아지가 아픈 게 이렇게까지 마음이 힘들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강아지 한 마리가 불러오는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온 가족이 고참이 상태만을 바라보고 지냈다. 나는 고참이와 보내는 시간이라도 늘려보려고 혜화와 분당에서 통학을 했다. 매일 새벽 6시에 나서 광역버스를 타는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서야 함께하는 시간이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강아지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냐며
봄이 오면 들과 산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조성하고 있는 공원과 수변에는, 원색의 화려하고 예쁜 꽃들이 가득 피어납니다. 그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꽃들도 한여름이 되면 강한 햇살과 무더위에 힘을 잃고 시들해져 버립니다. 반대로 그 무더위를 즐기듯 여름에 더욱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 연꽃. 효녀 심청에 얽힌 동화뿐만 아니라, 연꽃에 관한 전설과 이야기는 수없이 많기도 하고, 종교, 음식 등과 관련해서도 소재가 넘치는 꽃이기도 합니다. 사진사들에게도 여름 땡볕을 두려워하지 말고 촬영해달라는 매력 가득한 피사체입니다. 전체를 찍어도, 부분으로 나누어 찍어도 좋습니다. 워낙에 인기가 많은 피사체이기 때문에 웬만큼 예쁘게 잘 찍어내지 못하면 눈에 들지도 못합니다. 햇살이 잘게 부서져 찬란한 빛망울(보케, Bokeh)로 산화되는 한낮, 노오란 속살을 드러낸 분홍꽃잎의 홍련에 푹 빠졌던 그 날은, 얼굴이 새까맣게 익어도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18%의 표준반사율을 갖는 중성회색’ - 모든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적정노출의 기준점입니다.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키가 작으면 또 그만큼 억지로 늘
초등 5학년 때 자치회장에 뽑혔다(1953). 만 5세 갓 넘어 입학한 탓에 워낙 작고 어려 줄반장도 어려웠지만 회의 진행은 문제없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반만년 역사에 시민사회와 자유와 민주를 ‘겪지도 배우지도 못한 국민’을 깨우치자면, 교육이 먼저임을 꿰뚫어보고 교육입국(敎育立國)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다. 일제 치하에서 늘어난 문맹률이 어느 정도 줄자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자치(自治) 체험을 제도화한 것이다. 4·19 혁명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고등학생이다. ‘전국 최초로 전교생이 일어선’ 대전고등학교 3·8 데모는 우리 61학번의 쾌거였다. 그러나 4월 26일의 ‘하야(下野) 성명’은 독재자의 구명(求命) 퇴진으로만 단순화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첫째, 제4대 대선은 86세인 노대통령의 유고시 승계문제로서, 초점은 부통령후보에 맞춰져 있었다. 야권 제1후보가 공교롭게도 잇달아 급서(急逝: 신익희 조병옥)하여 이승만 당선은 기정사실이요, 문제는 이기붕 부통령후보의 부정이었다. 둘째, 따라서 3·8 당시 우리 구호는 “학원에 자유를 달라, 학원에서 선거운동을 배격한다, 서울신문 구독 강요하지 말라!”에 그쳤다. “이승만 물러가라!”는 귀교하던 고려대생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군인 및 군인 가족 분들을 대상으로 연평도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다. 봉사 지역이 연평도라고 들었을 땐 걱정이 앞섰다. 북한의 도발이 있었던 곳이고 지금도 언제 포격전이 벌어질지 모르다 보니 조금 무서웠다. 약간의 두려운 마음을 갖고 봉사에 참여하시는 분들과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연평도로 향했다. 연평도 군대 내에는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었지만, 치료가 필요한 군인은 많으나 의료인의 수가 한정적이다 보니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대한치과의사협회와 롯데웰푸드가 나서 치과 무료진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동안 ‘닥터 자일리톨 버스가 간다’ 캠페인에 11번 정도 참여했지만, 이번만큼 환자 수가 많은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 치과 이동 버스에서 하루에 30~40명의 환자를 봤다면 이번 연평도 봉사에서는 60~70명 가까이 되는 환자가 예정되어 있었다. 환자 수를 듣고 놀랐지만 좋은 일에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진료를 시작했다. 첫 번째로 봤던 환자는 이를 꽉 무는 습관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때문인지 치경부 부위, 쉽게 말하면 치아의 목 부위 쪽이 대체로 파여 있었다. 그래서 치아에 바람을 불었을
협회나 단체 등이 추구하는 비전 혹은 목적을 달성하게 하면서, 건전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내부에서 돕는 것이 감사의 근본 역할입니다. 문제는 전문적인 식견 부족 혹은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단순히 조직 내 명목상의 기구로만 감사를 두는, 즉 형식적인 감사 지위를 주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재무 회계에 국한하여 감사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잘못된 감사의 행태도 나타날 수 있는데, 감사라는 직위를 내세워서 자신의 파벌을 조성하거나, 측근의 잘못을 묵인하기도 합니다. 또한 감사 직무를 수행하면서 획득한 정보를 누설하여, 소속 단체 및 협회의 존립에 중대한 위해를 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감사에게는 기본 자질로 직무수행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하고, 개인의 성향에 좌우되지 않는 시스템적인 감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상세 규정이 마련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업에서는 일정 금액 이상의 신규 사업 또는 기존 사업의 추가 및 확대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서 자금 집행이 필요한 경우, 감사(인)에게 사전에 타당성 및 적정성 검토를 의뢰하여, 감사(인)이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는 프로세스 시스템을 갖추어,
교합력(咬合力)은 씹는 힘으로 저작근(咀嚼筋) 수축에 의해 위아래 치아가 맞물릴 때 발생한다. 이때 빰과 혀가 교합력 발생의 도우미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교합력은 악구강계와 뇌신경계의 섬세한 조절 및 통합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 그러므로 위아래 맞물리는 치아 수가 부족하거나 입술 주변 및 혀의 근력이 위축되면, 음식을 제대로 씹거나 삼키기가 어렵다. 이것이 여러 개의 치아 소실과 함께 뇌병변을 가진 돌봄 노인에서 교합력이 저하되는 이유이다. 문제는 이런 교합력 저하가 역학적으로 노인의 영양부족, 신체기능 감소, 낙상, 노쇠 및 기능적 장애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에 필자는 교합력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돌봄 노인에서 교합력 저하를 평가할 수 있는 두 가지 근거와 그 의미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 교합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교합력은 턱얼굴 형태, 성별, 나이와 치주질환, 잔존치아 수, 보철물 수복 형태와 위아래 치아의 맞물림(occlusal support) 양상 등 치아 상태, 그리고 저작근 강도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교합력은 각진(square) 얼굴과 남성에서 높고, 대략 50세가 지나면서 줄어든다. 또 치주
치과 근처에 작은 떡볶이 가게가 있다. 무려 1988년부터 영업을 해온 떡볶이 가게이다. 오다가다 생각날 때, 밥을 먹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을 때, 그 떡볶이 집에 들러서 떡볶이나 순대, 튀김 등을 먹곤 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튀김을 시켜서 먹었다. 내가 시킨 건 오징어, 김말이, 계란이었는데 시키지 않은 만두가 들어 있었다. 튀김은 떡볶이 소스에 버무려져 나오기 때문에 만두가 들어있는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시각적으로는 알기 어렵고 식감에 의해 인지가 되어야 한다. 낯선 식감에 튀김을 몇 개 들춰보니 역시, 만두가 있었다. “사장님, 몰래 만두 넣으신 거에요~?” 만두 이상의 어떤 것을 먹은 기분에 밝게 여쭈었다. 사장님은 그런 건 몰래 넣어야 되는데 들켰다며 쑥스러워하셨다. 평소, 조금 무표정이신 분이라 잠깐 보는 웃는 낯이 무표정과 대비되어 더 밝게 보였다. 가게를 나서는 길에 돈을 더 내려는 나와 안 받으시려는 사장님 간의 짧은 실랑이가 있었다. 개원 초가 떠올랐다. 몰래 만두를 넣는 마음과 같이 애정 어린 치료를 했었다. 파일 파절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 단계 더 파일링을 해서 근관장에 딱 맞게 거터퍼처를 넣어주는 마음, 기공료가 조금 비싸도 경
타인과 공명하며 사회적 선을 이뤄나가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구성원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이기심과 공명심에 지배당하는 일부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이성과 감성, 둘 모두를 끊임없이 소모시키게 됩니다. 기쁨과 열정이 마모되고, 인격과 존엄도 파괴되어 갑니다. 조직은 존립가치를 잃고, 구성원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였고, 적을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며, 깨트리는 것은 차선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속전속결을 가치 있게 여기고, 전쟁은 살려는 방편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괴물과 싸우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경고가 들려옵니다. 싸움에 이기는 법을 기술하고 널리 퍼트린 목적은 인정사정 보지 않으면서 베고 쓸며 자신만 높이려 하지 말고, 민초의 삶을 지켜나가면서 싸울 줄 아는 지혜를 일깨우고자 함일 것입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저출산과 고령화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상한 지 오래이며 기대수명의 증가는 치아 건강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최근의 연구들은 오랫동안 다수의 자연치아를 보존한 사람들이 더욱 긴 건강 수명을 누리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건강영양조사와 아동구강건강 실태조사와 같은 국가조사 검진자로서 표본으로 추출된 아동들의 구강을 들여다볼 기회가 주기적으로 있는데, 맹출한 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아서 뽀얗고 광택이 있는 치아를 볼 때면 그 아이가 늙어서 생을 다할 때까지, 어쩌면 백 년 이상의 시간 동안 그 치아가 이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고 보존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지난 몇십 년간 우리나라 노인의 구강건강상태는 지속적으로 개선되어왔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의 구강건강상태는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인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로 산출한 기능치아 수 백분위 수 시각화의 결과를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서 기능치아 수란 한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건전한 치아의 수와 비록 우식 또는 치아파절 등으로 인하여 치료를 받았더라도 수복 또는 보철이 잘 이루어져서 기능을 할 수 있으며 현재 진행되는 경조직 질환은 발견되지 않는 치아의 수를 합친 것을 의미한다. 2012년에
나에게는 오래전 선물로 받은 몇 점의 수석이 있다. 문외한이긴 하지만 거의 30년간 한국춘란 취미생활을 하느라 주로 난실을 가꾸고 있는데 난실 구석에 그 수석을 같이 보관하고 있다. 수석에 물을 뿌리고 씻어보면 전후의 모습이 너무나도 차이가 나서 춘란들과는 또 다른 세상을 보는 느낌이다. 최근에 우연찮게 유튜브를 보다가 호피석의 특별한 예술적 작품성을 보게 되면서 수석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애석인의 수준은 아니지만 장식장이나 거실에 있는 몇 점의 수석을 보면서 제대로 된 예쁜 돌 한 점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온라인 카페로 알게 된 애석인의 집에 가서 순창호피석을 인도 받게 되었다. 그 호피석이 내게 안기게 될 줄 생각도 못했는데 꿈에 그리던 순창호피석과의 인연이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호피석: 호피무늬 수석의 일종) 전남 순창 어느 강가에 가서 직접 물속에서 건져낸 돌이라던데 그 호피석을 넘겨받아 안았을 때는 그분이 건져 올렸을 때의 황홀감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과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생일석의 기쁨과 감격을 맛보며 여느 돌보다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난을 캐러 난 자생지인 전라도나 경남지역을 수십 년 다니며 일생일란을 꿈꾸어 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