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릴 때에는 매스컴에 노출된다는 것을 거의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신문이나 라디오, TV에 지인분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온 동네에 화제가 되고 이야기가 도는 신기하고도 드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하여 누구나 온라인상으로 그 이름 석자가 올라갈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나의 모습이 다른 분들에게 보일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로 세상을 아름답고 재미있게, 그리고 살만한 훈훈한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남의 어두운 부분을 부각시켜서 그것이 노출된 사람은 상처를 받고 대인 기피증이 생기는 그런 예상치 못한 결과도 초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약 23년 전에,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치과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많은 아이들과 보호자분들과의 만남이 있었는데 어떤 만남은 1~2회로 끝나고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어떤 인연은 20년이 넘게도 이어져서 하는 일의 보람을 많이 느끼게 해줍니다. 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다 그렇듯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최근에 몇 건의 기운 빠지는 일들이 생겨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매주 특별한 일이 없는 일요일엔 오전 6시경에 이제는 저절로 눈이 떠진다. 지난 13년간 해온 청계산 등산을 위해서이다. 함께 산에 오르는 멤버들과 아침 먹을 식당 주차장에서 만나면 6시 40분, 이 시간에 이수봉을 향해서 첫 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약 2시간 정도의 무리스럽지 않은 산행 후에 산채비빔밥 등의 건강식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귀가하면 아직도 오전 10시밖에 안되니 그렇게 휴일의 하루는 길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신기한 것은 10년도 넘게 해왔지만 꼭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에는 마음속에서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저절로 눈은 떠지더라도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과연 건강에 좋은 일일까? 일주일동안 진료실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침대 속에서 뒹굴뒹굴 하면서 최대로 쉬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유혹의 속삭임이 머리 속을 맴돌면서 나가지 말라고 유혹한다. 정말로 어쩌다가는 꼬드김에 빠져서 침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결국 하루를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에 후회가 남게 된다. 그래서 오늘 일요일에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 집을 나서게 된다. 평소에 다니는 헬스클럽에 가면
공포영화속의 주인공이 소리를 지를 때처럼 비명을 지르며 사지를 여러 사람이 붙잡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치료를 진행하느라 온 병원을 떠들썩하게 흔들어놓았던 아이가 진료를 마치고 언제 그렇게 울었냐는 듯이 멀쩡히 “아여히 계셔요” 명확하지 않은 말솜씨로 인사를 한다. 또 한 번의 빙긋 미소가 지어지는 상황이다. 어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문득 창밖을 보니 벌써 어둡다 못해 검은 물감이 흘러내리는 듯 점점 새까맣게 건물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하나 둘씩 반딧불처럼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모여서 밤의 정경을 이루고 있다. “흐흐, 어느덧 퇴근 시간이네?” 오늘도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을 붙들고 새까맣게 변해버린 이를 이리 갈고 저리 붙이고, 다듬고, 씌워주고 하며 이 아이 저 아이에게로 뛰어다니다보니 벌써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나보다. 집에 가서도 아이들의 우는 모습, 해맑게 웃는 모습, 여러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 병원에서 상대한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그런 순수한 아이들과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나만큼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치과의사도 드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수련을 받기 시작했던 새파랗게 젊은 치과의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하루 종일 치료와 상담을 반복하고, “위잉~” 익숙한 핸드피스의 소리에 다소 지친 귀를 달래면서 집으로 돌아오니 딸과 아내가 ‘아는 와이프’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많은 갈등으로 결혼을 후회하는 부부가 과거로 돌아가 현재와 다른 가정을 이루고 살아보고 다시 한 번 현재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슬립, 시간여행이란 낯설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제법 재미있습니다. 어릴 때 보았던 ‘백 투더 퓨쳐’, ‘터미네이터’ 등의 영화와 최근의 ‘고백부부’ 같은 드라마 등 수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었던 과거로 가서 현재의 상황을 바꾼다는 비슷한 설정이 연상되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상상의 호기심을 발동시키곤 합니다. 사람들의 꿈으로 가지고 있는 이 시간여행을 아직까지는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없지만, 많은 이론 물리학자들은 향후에 꼭 이 시간여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한다는데 과연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현재의 삶이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아무도 예측하기 힘들 것입니다. 대 혼란이 있을 지도 모르지요. 드라마에서도 과거로 돌아간 남자 주인공이 과거와는 다른 선택
1940년대 초, 뉴질랜드 출신의 한 청년이 아무도 오르지 못했던 세계 최고 높이의 산인 에베레스트산 등반에 도전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호기롭게 도전했던 그는 8848미터라는 높은 벽만 실감한 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등반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실패한 그의 몸과 마음은 지쳐있었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다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너는 성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성장해서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다시 돌아온 그 청년은 마침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섰다. 오랜 준비 끝에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뤄낸 것이다. 이 청년의 이름은 에드먼드 힐러리 경(Sir Edmund Hillary, 1919~2008)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에 오른 최초의 산악인이었다. 덕분에 이후에 많은 분들이 가능성을 믿고 오를 수 있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꿈을 이루려는 탐험정신과 도전하는 용기의 아이콘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감히 이렇게 거창한 에베레스트 산행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필자는 쉬는 날이면 특별한 일과 겹치지 않는 한
'人事가 萬事’라는 명언이 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임과 동시에 결국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의 운용을 잘 하는 것이 만사형통이라는 의미이겠다. 사회에서는 능력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제공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하고,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도 필요하며, 능력중심의 적정한 보직분배를 적극 실시해야한다고 흔히 이야기들 한다. 그런데 우리 치과영역에서는 그런 이론대로 적용하기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치과대학을 다니면서 고학년이 되어 치과병원에서 실습을 돌기 시작했을 때 환자와 직원, 그리고 치과의사의 관계가 보일 때가 있었다. 보기에 흐믓한 좋은 관계들도 있었고 물론 그렇지 않고 불협화음이 생기는 상황도 간간히 보였다. 어떤 경우에는 병원에 오래 근무하고 있는 직원이 젊은 수련의와 다툴 때가, 또 어떨 때는 환자와 마찰이 생겨서 서로 인상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는 광경도 발생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내가 졸업하고 치과의사가 되어서 진료를 시작하면 나의 위치에서 직원과 환자와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지내는 그림을 그렸었다. 그 그
휴일 어느 날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아주 어릴 때 읽었던 책이 눈에 들어와서 집어들었다. ‘바보 이반’, 러시아의 대표문호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가 저술한 단편소설인데 세 형제 중에서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이반이라는 막내가 위의 형제들은 세상에서는 머리좋게 부와 명예를 얻으며 잘 살아가다가도 악마들에 의해서 파멸의 길로 떨어지지만 오히려 바보같이 우직한 삶의 자세로 인하여 갖은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삶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이야기 했었던 것이 기억에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약간은 호기심으로, 또 다른 시각에서는 어떻게 우직하고 멍청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단편이 톨스토이의 다른 여러 단편작품들과 함께 한 책에 수록되어 있었고 그 중 또 다른 한 편의 제목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였다. 이 작품은 하나님께 벌을 받느라 사람들의 세계에 내려와서 함께 살아가던 천사 미하일의 시선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결론적으로 우리 사람 안에는 남을 생각하는 사랑이 있고, 안타깝게도 미래의 한치 앞을 내다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결국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얼마 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소아치과 학회에 다녀왔다. 짧지 않은 하늘 길 오가는 비행기에서 대부분 누구나 그러하듯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무심코 영화채널을 돌렸는데 익숙한 제목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름하여 ‘미녀와 야수’.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비디오 테이프가 마르고 닳도록 보던 바로 그 이야기가 최근에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으로 만화가 아닌 영화로서 개봉했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마침 메뉴에 있길래 과연 그림을 어떻게 영화로 바꾸었을까 하는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가볍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정작 나를 사로잡은 것은 신기하고도 정교한 컴퓨터그래픽의 화면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주인공도 아닌 어떤 등장인물이 독백식으로 읊조렸던 대사 하나였다.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에 홀 아버지와 함께 사는 벨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와 그의 아버지를 사차원 적으로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녀를 흠모하는 번듯한 외모와 힘이 있는 개스통이라는 남자, 그의 옆에는 르푸라는 친구이자 조수같은 사내가 있었다. 개스통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따랐고 개스통은 벨에게 프로포즈를 하지만, 벨은 개스통의 무식함과 잘난 척에 기겁을 하고 일언지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아침이 찾아왔고 또한 어제 그랬던 것처럼 출근준비를 하고 늦지 않게 병원으로 출근한다. 아침 9시에 전 직원 함께 둥글게 서서 스탠딩 미팅을 하면서 서로 밤새 안녕했는지 확인하고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자고 의기투합 하고 나면 오늘 찾아올 예약환자의 차트를 함께 열어보면서 그렇게 개원한 소아청소년 치과의사로서의 하루를 시작한다. 하나, 오늘 찾아온 첫 환자는 어젯밤에 다쳐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간단한 응급처치만을 받고 급한 마음에 예약도 없이 찾아온 아이였다. 넘어지면서 얼굴을 바닥에 부딪혀 입술은 위, 아래 모두 퉁퉁 붓고 피딱지가 엉겨 붙어서 누가 보더라도 사안이 심각하구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고 입을 벌리니 안에도 온통 핏덩어리 투성이, 치아도 많이 흔들거리면서 손만 대도 아파하는 상태였다. 어제 밤 다쳤을 때 부터 너무 심하게 놀라있었고 또 앞으로 치러야할 치료과정이 많이 아플까봐 걱정되기도 해서 아이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울먹거렸다. 어머님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근심 가득한 얼굴로 눈물까지 눈가에 맺히신다. 겁이 많은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선물용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니 굳은 얼굴표정이 풀리기 시작했고 천천히 흉측해 보이는 핏
치과의사가 된 지도 벌써 30여년이 되어간다. 짧지 않은 기간이다 보니 그동안 치과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왔다. 혹한에 수도가 얼어서 진료를 며칠 동안 못한 적도 있고, 반대로 화재가 났다가 초기진화 되어서 하마터면 정말 큰일 날 뻔했던 아찔한 적도 있었으며, 환자분이 쓰러져서 119 구급대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 진료 중에 보철물이 입안으로 떨어져서 아이가 삼켜서 급히 흉부 방사선사진 촬영의뢰를 한 일도 있었고, 진료 도중에 정전이 되어서 하던 진료 중단하고 내원한 환자분들 귀가시켜드리는 해프닝도 겪어 보았다. 물론 대부분의 하루하루는 귀여운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도 많은 날들이었고,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사는데 가슴 뿌듯함의 보람이 있는 날들이 많음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제까지의 어떤 일들보다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생겼다. 한 달쯤 전에 앞니를 다쳐 절반정도가 부러진 상태에서 여러 병원을 거쳐서 타 치과에서 발수를 하고 임시충전 상태로 내원한 아홉 살 남자아이가 있었다. 어머님께서 부러져나간 치아 조각을 소중히 가지고 오셨는데 다른 병원에서는 부러진 부분을 붙여주지 않고 크라운을 해야
매일 일상의 진료 중에 어떤 때는 정말로 여러 가지가 운이 없게도 꼬여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환자분께 발생할 때가 있다. 그런 정황을 너무나도 이해심이 많은 환자분이 그냥 넘어가주시면 좋겠지만 그 환자분도 이미 다른 곳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심기가 불편해진 상태였다면 그 결과는…. 어느 날 아침 환자아이의 예약 시간보다 거의 15분쯤 지나서 봐달라고 직원의 호출이 있길래 늦게 왔나보다 하면서 진료실로 갔고 정기검진 아이라서 간단하게 입안을 검진 후 교익사진을 찍도록 했다. 방사선사진에서 이전 내원 시 발견되었지만 진행이 더디기를 바라면서 관찰하던 인접면 우식증이 꽤 진행이 되어서 이번에는 치료를 해야 할 유치가 2개 보였다. 어머님께 “관찰하던 부위가 충치가 더 진행되어서 이번에는 치료 해야하겠으니 설명 들으세요” 하고 자리를 떴는데 잠시 후에 그 치과위생사가 사색이 되어서 오더니 어머님께서 화가 나셨다고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하는 마음으로 가보니 어머님께서는 접수대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신 상태였고 아주 큰 소리로 이런 저런 불만사항을 말씀하셨다. 주위에 다른 대기 환자가족들이 있는 상태였고 어머님 옆에 서서 멍하니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듣다보니
어느 날 문득 커피를 산책하며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어느 체인점 매장을 방문해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다. 아르바이트 직원이 건네준 커피를 받아들고 나오려는 때에 손으로 들고 다니기에는 다소 뜨겁다고 느껴져서 평소 뜨거운 종이컵에 덧대도록 끼워주는 슬리브를 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받으리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르바이트 직원 분은 슬리브는 냉커피를 위해서 준비된 것이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잘 못 들었나? 하는 생각에 다시 요청 해보았는데 당사의 매뉴얼로 된 원칙이라서 안된다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였다. 그리고 컵이 이중으로 되어있어서 괜찮다고 하면서 본인 손으로 직접 잡고 “봐요, 안뜨겁잖아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음식점에서 서빙해주시는 분이 손으로 집어서 주신다고 공기밥을 무심코 받다가 “앗 뜨거” 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뜨거움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제가 뜨겁다고 느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것 몇 푼 한다고 그러세요?” 하면서 다소 언성을 높이면서도 이야기 해보았지만 여전히 원칙에 입각한 요지부동의 자세인 그분과 더 이야기 해보았자 소용없겠다 해서 매니저님을 찾았다.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