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지는 천사들의 방문 경기도 남쪽의 끝자락인 이곳 평택에 자리를 잡고 어린이 구강건강관리를 중점으로 하는 예튼e치과라는 조그마한 치과를 개원한지도 벌써 8년이 되어간다.우리 치과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 사회로부터 소외된 어린이와 장애인, 미혼모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동방복지타운이라는 제법 큰 규모의 사회요양시설이 있다. 이 동방복지타운에 소속되어 있는 여러 종류의 기관 중에서 ‘야곱의 집’이라는 영유아 보호시설이 있는데, 이 ‘야곱의 집’은 낳아준 친부모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해서 사회적인 보호가 필요한 만3세 이하의 영유아들이 모여 있는 시설로써, 다른 보호시설로 가거나 입양가정이나 연고자 등이 나타나기 전까지 일정 기간 동안 어린이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시설이다. 치과를 개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하게 이 ‘야곱의 집’과 인연이 닿게 되어 몇 년 전부터는 ‘야곱의 집’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어린이들의 구강검진을 정기적으로 해주고 있는데 처음으로 ‘야곱의 집’ 어린이들을 대했을 때의 인상은 상당히 밝고 구김살이 없어 보였다. 요양보호시설에 있는 어린이들은 명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마음 한구석에 잠재되어 있던
치대생 눈으로 본 치과계 현재와 미래 2010년 1월,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본과 3학년의 과목 중 하나인 특성화 선택 과정의 일환으로 나는 대한치과의사협회 치의신보에 오게 됐다. 요새 하도 치과계가 어렵다, 전망이 좋지 않다, 안 좋은 시기에 딱 맞춰서 치과대학에 왔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 내가 직접 치과계의 동향을 알아보고자 지원했다. 매주 학생회실에 비치되는 학교에선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치의신보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여러 해 동안 발간된 것을 찬찬히 읽어 보니 치과계의 상황을 보다 현실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책적인 면에서는 최근의 비급여 고지제 실시와 복수의료기관 진료허용,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치·의·한 협의진료 허용 등이 화두였고, 아직까지 도입은 안됐지만 영리법인이나 노인틀니 급여화 추진에 관한 기사도 많았다. 사실 힘들게 공부해서 왔으니 졸업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준비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 치의신보를 보고 기사도 써 보면서 이
눈 멈춤(쉼) 언제부턴가 날이 차가와지면 어느 산에 눈이 많이 오나?휴일까지 그대로 쌓여 있으려나? 설산행의 설렘이 있었는데… 2010년 첫 출근 날, 하얀 눈이 경인년 ‘하양 호랑이해’를 열어 주려는 듯 하루 종일 내렸다. 기록적인 도시의 폭설은 도로의 마비, 스키용자들의 출몰, 지하철사고 등 많은 뉴스거리들을 만들어 냈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전날 밤(1월 3일) 저녁부터 제설대책 1단계 비상근무를 시작으로 4조로 나누어 24시간 작업, 12일에야 겨우 제설작업 보강근무가 해제된 상태다. 고요와 침묵을 닮은 희디 흰 눈은 잘 쌓이는데 그 아름다움이 있다고는 하지만,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기에는 너무 많이 내렸고, 이틀 뒤엔 한차례의 눈이 또 예고되어 있다. 며칠 전 H신문의 공감이 가는 기사가 있었다.“폭설로 비효율적인 하루를 예상하면서도, 쉽게 ‘휴무’를 결정하지 못함은 휴식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누군가 ‘오늘은 그냥 모두 쉬자’고 이야기 할 수 없었을까? 그런데 그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삶의 일터 종속성은 엄청난 수준으로 사회 전체가 ‘과로’를 미덕으로 삼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운영되는 이유다. 최근의 경제학은 과
밤 깊은 소관탈(하) <지난호에 이어 계속> 거친 파도와 싸워가며 소관탈 암벽에 로프를 묶느라 30분을 먼저 허비한 후에야 겨우 닻을 내릴 수 있었다. 닻줄과 소관탈에 맨 로프를 동시에 잡아당겨 배를 고정시켜야 한다. 한참동안 소동을 벌인 후에야 배를 고정시킬 수 있었다. 소관탈과의 거리는 30m, 똥 여와의 거리는 70m. 조 사장이 점지해준 야간 돌돔낚시 최적의 위치를 잡았다.더 어두워지기 전에 채비를 갖추어야 한다. 돌돔 떼를 유인하기 위해 이 선장은 한꺼번에 크릴 4장을 썰망에 투입하고 조류를 따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조류의 속도는 구멍찌 낚시에 적당한 초속 50cm 정도였다. H교수는 과감하게 중장비인 10호대를 펴고 나는 예민한 가마가쓰 슈퍼인테사 1호대에 쮜리겐 제로 찌, 릴은 시마노 스텔라 3000번에 원줄은 쎄가 5호, 목줄은 3호 브이하드를 사용하고 바늘은 가마가쓰 7호로 스마트하게 데뷔했다.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해서 쮜리겐 구멍 찌에 초소형 전자 찌를 부착하니 조류에 따라 흘러가는 전자 찌의 빨간 불빛이 은은한 황혼을 배경으로 수평선에 나부끼는 신비경을 연출한다. 석양 속에 아스라한 한라산 정상도 낙조에 물들어 어
밤 깊은 소관탈(상) 드디어 가까운 지인인 H교수와 소관탈 섬으로 밤낚시를 가기로 약속한 날이 되었다. 낚시일정만 잡혔다 하면 며칠 전부터 설레는 마음 때문에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심지어는 조용히 잠들었다가도 안방 천장에서 환영처럼 요동치는 찌의 신기루에 화들짝 놀라 비몽사몽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출조 전날쯤 되면 반은 미친놈 형국이다. 별로 쓸데가 없는 낚시용품들까지 모조리 늘어놓고 이상한 열병식을 거행한다. 그냥 사용해도 될 깨끗한 낚싯대를 괜스레 닦아대다가 무심코 벽에 들이꽂아 값비싼 카본 호사끼를 잡아먹고 혼자서 벙어리 냉가슴을 앓곤 한다. 아마도 낚시 매니아가 아니라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보통 때에는 좋은 물건이나 패션에도 관심이 없고 백화점에도 잘 가지 않지만 유독 낚시용품만은 모조리 최고급 명품들이다. 온 집안에 시글시글 넘쳐나던 낚싯대나 알록달록 동글동글한 찌, 장구통 릴이나 스피닝 릴, 고어텍스로 된 모자와 낚시 옷, 갯바위용 장화 같은 허접때기들의 가격을 알아낸 아내는 하마터면 졸도할 뻔 했었다. 집구석 여기저기에서 쓰레기처럼 발에 걸리던 물건들이 모조리 일반인의 상식
겨울 담쟁이 고즈넉한 돌담에 푸르고 넙적한 담쟁이 잎이 탐스럽게 걸려 있다. 소소한 바람이 담쟁이 잎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결을 따라 담쟁이 잎이 파도치듯 춤춘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이야기 하듯…….어느 잎은 간지럽다고 웃고, 어느 잎은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흐느낀다. 속내를 보이기 싫은 잎은 수줍은 듯 몸태를 기울고, 호방한 잎은 너털웃음에 힘차게 세상을 뒤흔든다. 이 모습은 여름 담쟁이다. 여름 담쟁이는 부러울 것이 없다. 힘차게 자랄 수 있는 물이 넉넉하고, 강렬한 태양은 담쟁이 잎을 짙푸르게 만들고, 담쟁이 넝쿨은 무서울 것 없이 맹렬히 뻗어 간다. 세찬 장맛비에도 몸 한번 툴툴 털면 빗물이 산뜻하게 떨어져 더더욱 깔끔해 지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서너 번 허리를 기울었다 일으키면 거뜬하다. 여름 담쟁이는 담쟁이의 절정기이다.잔서리가 내리는 어느 날 밤, 검푸르던 담쟁이 잎이 어느 순간 단엽(丹葉)으로 변했다. 다소곳이 숙인 붉은 담쟁이 잎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꿈의 잔치를 하고, 잔바람에 맥없이 떨어지는 잎이 아름다웠던 세월의 날개를 너울너울 춤추며 마지막을 완성한다. 마지막 잎새를 연상케 하는 가을 담쟁이의 잎은 마음의 허전
40대 중반 학장으로서의 모험 “네가 학장이 되다니,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나?”2년 전 2008년초 우리나라 나이로 45세에 치과대학 학장이 되고나서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친구나 선후배에게 듣는 말은, 첫 마디가 “축하한다”였고, 의례 둘째 마디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독백하듯 중얼거리던 위와 같은 말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 사람이 내게 하는 말이 날 축하하는 말인지 자신의 나이 듦에 대한 자탄인지 헷갈리곤 했다. 지방대학교의 치과대학장이나 치전원장님들 중에는 내 나이와 큰 차이 없는 연세에 학장을 하셨던 분들이 적지 않고, 현재 하고 계신 분들이 꽤 계심에도 이런 소리를 들음은 “내가 나이보다 동안으로 보이기 때문일 게야”라는 남이 들으면 수족위축증(손발이 오그라드는 증상)을 일으킬 자아도취로 축하의 뜻만 받아들이곤 했다. 긍정의 힘을 믿어야지… 직책에 비해 젊은(?) 나이라는 것이 일에 손해를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권위의식 같은 걸 걸치고 있을 필요가 없이 말단 실무자를 직접 찾아 발로 뛰고 얼굴을 맞대어도 부담이 없어서 편했다. 생전 처음하는 일이란 것이 늘 생소하기 마련이겠지만, 정부로부터 재산신고를 하라
Free Hugs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낯선 타인을 안아 주겠다는 글을 써 놓은 마분지 (우리 세대가 자랄 때는 종이 종류가 많지 않아서 좀 두터운 종이는 다 이렇게 불렀다)를 들고 있다가, 다가오는 사람을 안아 주는 동영상을 본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5천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 중인 유튜브 영상이다. 처음에는 멀뚱거리며 쳐다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츰 종이를 든 사람의 진심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꼬옥 안기는 모습을 보노라면 눈시울이 뜨끔해 지고 가슴속이 뭉클해지는 감동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잉태된 순간부터 태생적으로 엄마의 품에 안겨서 자라게 되므로, 누구든지 누군가에게 포옹을 받게 되면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품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철없이 안겨서 자라나는 어린 나이 때에는 부모 마음대로 자식을 좌지우지 하겠으나, 혼자 밖을 나다니는 나이 즈음에 이르면 마치 애초부터 저 혼자 자라난 양 기고만장 한다는 뜻이리라. 우리집 막내놈도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쉽사리 아빠 품에 안기려 하지 않는다. 좀 섭섭하기도 하지만 험한 세상 살아가려면 독립심도 좀 필요하니
‘핸드피스야구단’의 탄생 2009년은 올림픽 야구 우승과 WBC 준우승 등으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데다 ‘천하무적’이라는 연예인야구단이 흥행몰이에 나서면서 야구가 특히 인기를 끌었던 해다. 특히 가을에 접어들어 플레이오프가 진행되면서 야구단을 향한 두 개의 물밑 전류가 있었다.하나는 배드민턴을 치던 주 훈 원장님, 이남선 대리님, 나 등이고, 다른 하나는 골프를 치던 최형규 원장님, 정도야 원장님 등이다. 두 전류가 하나로 만난 것은 10월 11일 바로 전주시치과의사회 가을운동회 뒤풀이 장소인 ‘서신막걸리’였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최형규 원장님이 술 마시다가 뜬금없이 “혹시 야구 해 보실 맘 없으세요?”라는 얘기를 했고, 같은 테이블에 있던 나와 정연호 원장님, 조석규 원장님의 눈에 10만 볼트의 불꽃이 튀었다. 그 순간부터 술자리 파할 때까지 야구 얘기가 이어졌고, 정도야 원장님과 내가 야구단원을 모집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12일) 점심 실무적인 얘기를 나눈 후 오후 3시 51분. ‘전주시치과의사회 야구동호회 결성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현대치과, 푸른치과로 연락바랍니다’라는 문자가 발송되면서 마침내 화살은 당겨지고 말았다. ‘다들 왕
‘올해의 수필’ 당선작 ■ 제1494번째 이야기 / 11월 2일 게재 농사와 진료 상큼한 흙냄새를 맡고 싶어서 한참 동안 밭에 엎드려 호미질을 하다 문득 앞산의 낙엽송 나뭇가지위에서 몇 마리 왜가리가 고요한 정적을 깨고 푸드득 날아가는 소리에 허리를 펴고 이리저리 둘러보니 어느새 정상에 있었던 운무가 서서히 밀려 내려 오고 계곡 바람이 심심찮게 귓가를 스치며 지나간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치열했던 공간과 시간의 치열함의 끈이 느슨해진 것에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호사스런 여유를 이제 누리는 것도 점점 익숙해진다. 아마도 내일이나 모레쯤 비가 올 것 같은 조짐이란 느낌이 들자, 이번 가을에 심을 알타리 무는 작년보다 적기에 심을 것 같다는 생각에 농부처럼 마음이 흐뭇해졌다. 모종보다는 파종이 수확을 위해 시기와 날씨가 아주 중요하다. 옛부터 훌륭한 농부는 손바닥을 펴 바람을 느끼며 파종할 시기를 알아보았다고 했는데, 얼추 하는 짓이 이리저리 눈치로 감 잡고 하는 게 아직도 사이비 농사꾼이 틀림없는 것 같다. 이제 밤이슬 오기 전에 서둘러 로타리 마
겨울 담쟁이 고즈넉한 돌담에 푸르고 넙적한 담쟁이 잎이 탐스럽게 걸려 있다. 소소한 바람이 담쟁이 잎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결을 따라 담쟁이 잎이 파도치듯 춤춘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이야기 하듯…….어느 잎은 간지럽다고 웃고, 어느 잎은 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흐느낀다. 속내를 보이기 싫은 잎은 수줍은 듯 몸태를 기울고, 호방한 잎은 너털웃음에 힘차게 세상을 뒤흔든다. 이 모습은 여름 담쟁이다. 여름 담쟁이는 부러울 것이 없다. 힘차게 자랄 수 있는 물이 넉넉하고, 강렬한 태양은 담쟁이 잎을 짙푸르게 만들고, 담쟁이 넝쿨은 무서울 것 없이 맹렬히 뻗어 간다. 세찬 장맛비에도 몸 한번 툴툴 털면 빗물이 산뜻하게 떨어져 더더욱 깔끔해 지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서너 번 허리를 기울었다 일으키면 거뜬하다. 여름 담쟁이는 담쟁이의 절정기이다. 잔서리가 내리는 어느 날 밤, 검푸르던 담쟁이 잎이 어느 순간 단엽(丹葉)으로 변했다. 다소곳이 숙인 붉은 담쟁이 잎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꿈의 잔치를 하고, 잔바람에 맥없이 떨어지는 잎이 아름다웠던 세월의 날개를 너울너울 춤추며 마지막을 완성한다. 마지막 잎새를 연상케 하는 가을 담쟁이의 잎은 마음의 허전함을 나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