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바둑을 복기하는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관상에 대해 많은 것을 공부하였습니다. 체계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공부하면서 정리해보았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익혀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여전히 아마추어입니다. 10년 이상은 집중적으로 해야 약간 눈이 떠진다고 하는 관상을 그렇게 수박 겉핥기 하듯 해서 무엇을 얻나 싶지만 그래도 대충의 윤곽은 잡을 정도는 됩니다. 개원을 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배운 것을 적용해보고 보는 눈을 조금씩 넓히면서 도달한 결론이 사람의 운명은 태어나면서 어느 정도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아무리 벗어나려고 노력해도 결국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너무 결정론적으로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성실하고, 여자 쫓아 다니는 사람은 문지방 넘을 힘만 있으면 계속 여자를 쫓아 다닙니다. 공부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 공부만 하고, 운동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 그것만 합니다. 여자 쫓아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공부 열심히 하거나 공부 좋아하던 사람이 갑자기 운동 선수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두
코골이 결혼하고 나서 집사람과 몇 번이나 다툰 건 순전히 코골이 때문이다. 일부러 코를 고는 것도 아닌데 그때마다 와이프한테 좀 서운하기도 했다. 20살에 독립하여 지금까지 혼자 사느라 나는 내가 코를 심하게 곤다는 걸 모르고 지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난후 집사람이 불면증으로 나날이 피폐해지는 것을 본 후 코골이 수술을 여기 저기 알아보았다. 하지만 금액은 둘째 치고 수술적 처치는 재발할 가능성이 높고 아프다 해서 포기하고 비수술적 처치를 알아봤는데 이것도 매일 마우스피스를 물고 자야한다는 것이다. 선택한 결론은 집사람이 비행기용 귀마개를 하고 자는 걸로 반 강제적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집사람의 모습에서 평생을 아버지와 거꾸로 주무신 어머니가 떠오르는건 왜일까? 이야기는 십몇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계실 때다. 다들 걱정스런 마음에 혹여 무슨일이라도 생길까 집이 병원 정문에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환자실 앞에서 아버지와 누나, 나 이렇게 병실 앞을 떠나지 못하고 의자에서 기다렸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이고 누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아버지와 함께 중환자실 문 앞을 지켰다 아버지가
공자가 풀이한 주역 조선시대에는 사서(四書)를 다 배우고 난 뒤에 ‘주역’을 읽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퇴계 이황 선생도 20세(1520년)읽기 시작하여 34세에 회시(會試)에 응시해 모든 과목에서 최고점인 ‘통(通)’을 받았지만 ‘주역’만은 요즘으로 치면 C학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계사전’은 주역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해석서로서 공자의 저작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주역 자체를 해석하려고 하다가는 사이비종교가 되기 쉬워서 성인이 풀이한 해설서를 중국의 대학자인 남회근 선생님의 재해설서인 ‘주역계사’를 근본으로 하고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역경’을 배우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상으로써 살펴 효사로서 가지고 놀기 위해서지 점을 치거나 명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보면 운세를 알 수 있다. 이것을 ‘관기상(觀基象)’이라 일컫고 그 상을 잘 살피면 그것이 사물이든 상황이든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죠.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이라 우주의 만물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주역 계사전에서 이릅니다. 천지간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기에 개인이든
저는 지금 복싱에 도전 중입니다! 제 큰아이가 대학교 3학년이고 막내가 고2입니다. 인생에 있어 도전은 앞으로 길어야 15년 전 후일 것입니다. 환자와의 진료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한 투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뒤돌아 봤을 때 치과의사라는 직업만 떠올린다면 얼마나 불행할까요? 나는 참으로 후회 없는 인생을 보냈다고 자부한다면 내 인생은 참으로 멋있었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도전이라고 볼 수 없으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행위야 말로 진정한 인생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결국은 다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라기보다는 지금당장 해야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녹화가 아닌 생방송입니다. 생방송은 되돌릴 수가 없듯이 우리네 인생에서 오늘은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환자진료에 너무 올인 하지 마시고 즐기십시오. 환자가 좀 줄고 수입이 좀 떨어지면 어떻습니까? 답답한 진료실을 벗어나 주위를 돌아보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생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
‘힘’ 이어라 이슬람교 첫 예배 소리인 파스로의 아잔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 4시 30분이다. 아마 이 시간이 가장 신선하고 힘이 샘솟는 시간인가 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남쪽 78Km 떨어진 사당지역으로 의료봉사를 간 첫날 새벽에 울려 퍼진 코란기도 소리다.익숙치 않은 우리에게는 귀에 거슬리고 피곤한 몸에 짜증이 난다. 이 기도는 모든 이슬람교도라면 의무적으로 하루에 다섯 번씩 하는 기도 중 첫 번째 기도란다. 우리에게 이슬람교하면 중동이 생각나고 중동하면 전쟁과 테러가 떠오를 정도로 이슬람교에 대해 무지하다. 또 이슬람교하면 한 손에는 코란 다른 손에는 칼을 든 호전적 종교로 각인 되어 있다.그런데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다섯 번씩 인류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기도를 한다니 좀 혼란스럽고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60억 세계인구중 11억 인구가 이슬람교도라니 우리가 이슬람교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고 몰이해 했던 게 아닌가 생각 된다.특히 인도네시아 이슬람교는 인도네시아 인구(2억5000명)의 88%를 점하고 전체 이슬람교도 중 10%가 넘는 1억5000명이라고 하니 인도네시아 이슬람교야 말로 세계적 종교이고 잘못 된 우리 생각을
파타고니아, 태초에 하나님이 바람을 만드신 곳 1. 남미의 비경 파타고니아 남미의 비경이 어디 한둘일까 마는 지구의 남쪽끝, 파타고니아를 빼놓을 수가 없겠지요.그리고 그 중심에 “또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있지요. 2. 꿈속에 꾸는 꿈 몇 년전 겨울 큰맘 먹고 병원을 11일 비우고 , 트레킹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는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와,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준말)를 갔었지요. 갔을때 거의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임에 놀랐었지만 그래도 아무나 갈 수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내가 꿈꾸던 그곳”에 왔다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여행기간 내내 설레이는 마음에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별을 보며 날이 새기까지 기도를 했었지요.그때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일년여 동안을 새벽4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거기에서 나름대로 “내허벅지 굵다”하는 이들이 모여서 트레킹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어떤 이야기, 어떤 지명들이 화제가 될까요?꿈을 현실화 시킨 그들이 또 다시 꾸고 있는 꿈이 파타고니아의 중심 또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걷는 W트레킹(코스를 연결한 동선이 알파벳W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말)
새벽 2시 새벽 2시, 눈을 떴다. 근심을 안고 잠든 날은 가끔 그렇듯이…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두 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젖살이 남아 있는 동그스럼한 얼굴, 꾸밈없는 표정, 부드럽고 규칙적인 숨소리, 낯익은 체취. 아빠 된 사람에게 딸들이 잠든 모습보다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게 있을까? 모든 고등생물이 그러하듯 인간도 반쪽 DNA 두 개가 만나서 하나가 된 후 복제를 거듭한 세포들의 집합체다. DNA는 Adenine, Guanine, Cytosine, Thymine이라는 네 가지 염기가 연결된 긴 끈이고, 네 가지 염기는 수소, 탄소, 산소, 질소 등의 원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평범한 분자들 중 일부다.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몇 개씩 모인 작은 입자고, 양성자는 Up-quark 2개와 Down-quark 1개, 중성자는 Up-quark 1개와 Down-quark 2개가 모여 만들어진 더 작은 입자다. 전자와 quark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소립자이다. 결국 내 딸들도 몇 가지 소립자들이 규칙적으로 모인, 30kg 정도 되는 물질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몇 가지 소립자들이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형태로 모여
1년 고생 많은 걸 얻었다 <하> <1967호에 이어 계속> 드디어 학교에 첫 출근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침 7시30분까지 출근하라고 하셔서 떨리는 맘으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학교에 갔습니다. 애리조나 치과대학 프로그램 디렉터인 박재현 과장님이 저를 반겨주었고 치과대학 학장님, 교정과 크리닉 디렉터, 외부교수들, 다른 과 과장님들, 레지던트들, 스탭들에게 인사시켜주었습니다. 어떻게 인사하고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너무 긴장하고 얼어있어서 바보처럼 첫날을 보냈습니다. 상대편이 하는 얘기는 전혀 알아듣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저 스스로도 어쩔 수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7시30분에 출근하여 모닝세미나를 하고, 9시부터 12시까지 진료하고,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 1시부터 2시까지 또 세미나, 2시부터 5시까지 오후 진료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바쁘게 학교근처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거나, 런치박스를 싸와 먹으면서 스터디룸에서 할 일을 하거나, 때때로 외부 교정재료회사에서 Lunch&Learn이라고 하여
1년 고생 많은 걸 얻었다 <상> 2010년 9월 약 10년 동안의 오랜(?) 개원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애리조나로 향하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를 첫 번째 도착지로 하여 입국심사를 받고, 애리조나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얼떨떨한 상태로 밤 11시경 애리조나 국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저는 애리조나 치과대학 교정과에 1년동안 ‘international visiting scholar"로 재직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유학을 결심하게 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다가 지금이 아니면 언젠가 미국에서 교정공부를 더하고 싶었고 선진 기술과 지식을 익히고자 했던 마음을 실행할 수 없을 듯 했으며, 많다면 많은 나이가 단지 숫자일 뿐이고,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고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마침 남편도 저와 같은 뜻을 품고 1년동안 로스앤젤레스 UCLA에서 치주와 임플랜트 공부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영어공부는 고사하고 출국 전날까지 진료하고 출국짐 싸느라 정신없이 지내서인지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 주변의 영어로 말하고 떠드는 미국인들이 그저 무섭고 낯설었습니다. 입국심사하는데 얼마나 떨리던
짝을 찾고 계신가요? <하> <지난호에 이어 계속>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가 다가올수록 내 맘은 더욱 조급해졌고 이대로 버스를 올라타게 된다면, 지금의 순간은 영영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뒤로 하고 먼저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결국 난 버스를 타지 않았다. 버스야 다시 기다리면 되지만, 이 순간만은 영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버스가 지나간 후, 알 수 없는 용기가 샘솟았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용기있는 자만이 아름다운 여인을 가질 수 있어라고 외치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 그녀에게 다가가, “저… 안녕하세요~”, “네? 네…”“저… 다른게 아니라, 저도 여기서 버스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쪽이 너무 마음에 끌려서요~ 혹시 괜찮으시다며, 잠깐 시간 좀 내어주실 수 있으세요? 커피라도….” “아~ 그래요? 맘은 감사하지만, 제가 지금 선약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말을 더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도 느껴지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마도 그녀도 마찬가지였나 싶다. 자리는 뜨고 싶은데
짝을 찾고 계신가요? <상> 결혼을 갈구하는 20~30대 선남선녀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로망을 꿈꾼다. 여자는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길 꿈꿀 것이고, 남자는 첫눈에 반할 그런 아름다운 여성이 내 눈앞에 나타나길 꿈꿀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이 서울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의 심장을 요동치게 할 그런 사람이 나타나길 항상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아~ 저기… 하는 순간, 순식간에 미모의 여인은 내 앞을 지나갔고, 내 인연은 아닌가 보다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용기 없는 나를 자책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 속에서 한 청취자의 사연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녀는 30대 초중반의 미모의 여성인 듯 했다. 요지는 이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거리를 걷다보면 하루에 몇 번이고 자신에게 말 걸어오는 남자들이 많았는데, 이젠 아무리 예쁘게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거리를 누벼봐도 남자들의 반응이 없단다. 자신이 나이가 들어 인기가 없어진가 해서 다시 거울을 봐도 여전히 이쁜데, 왜 그럴까 반문했단다. 자신에게 우연한 행복을 안겨주었던 그 많은 남성들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마도 공주병이 지대로 있으셨나보다. 그녀의 결론은 그랬다. 남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