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재판을 통해 판결을 받는 방법 외에도 당사자 사이의 협의를 거쳐 조정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매우 효율적인 수단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정은 결국 당사자 사이의 협상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래서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가장 유명한 강의 중 하나가 협상에 관한 강의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제가 조정절차에 관여하여 보면 많은 분들, 심지어 변호사들조차 협상의 기본적인 원칙이나 기술에 관하여 너무 무지하여 협상을 망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협상은 기본적으로 양보를 전제로 하되 나에게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것을 포기하고 더 중요한 것을 받아내는 과정입니다. 이는 상대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상대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부분이 약점인지를 빨리 파악하여 내가 손해를 보지 않는 결과를 얻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 스스로도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지 잘 파악하지 못하거나 너무 쉽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 노련한 상대방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나누거나 분배하는 사건, 예를 들어 토지분할이나 이혼 재산분할 사건에서 종종 사용되는 조정 기법 중 하나는 한쪽이 분배 방법을 정하면 다른 한쪽이 그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입니
코로나가 극성이던 2022년 여름, 나는 결혼식장에서 옮아온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격리되어 골골거리고 있었다. 고열에 시달리던 중 직장동료로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베트남… 갈거지?’ 짧게 한마디 던진 친구. 소상히 물어보기엔 너무 몽롱한 상태여서 일단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격리가 끝난 후 나는 25년 넘게 베트남에서 구순구개열수술을 이어왔던 유서 깊은 일웅의료봉사단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웅은 민병일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교수님의 호 ‘일웅(一雄)’을 따서 설립된 의료봉사회라고 한다.) 봉사활동을 떠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참으로 많았는데, 나를 포함한 전임의 두 명과 간호사 세 명이 450개가 넘는 물품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짐을 싸느라 고군분투하며 밤도 참 여러 번 새웠다. 너무 힘들 때에는 냉큼 베트남에 가겠다고 한 내 방정맞은 입을 탓할 때도 있었고, 하필 역병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그때 베트남에 가겠느냐고 전화했던 동료를 원망할 때도 있었다. 이렇게 준비가 미진해서야 봉사활동 못 가는 거 아니냐며 멘붕을 하루 세 번씩 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11월 말 겨울이 되어 버렸고 어느새 나는 이륙하
솔직한 마음으로, 치위생과가 꿈꾸어 왔던 학과는 아니었다. 희망했던 학과와는 전혀 다른 계열이었고 흥미 있던 학문도 아니었으나 삶의 흐름이 종잡을 수 없듯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 순간 내가 치위생과에 와 있었다. 물론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이유가 ‘빠른 취업’이긴 했다. 내키지 않는 마음을 애써 무시한 채 학부 시절 초반기엔, 숱한 고뇌와 내 사정을 모르는 타인이 주는 마음의 상처로 녹록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를 돌아보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잘하지도 못할뿐더러 좋아하지도 않아서 내가 과연 능력 있는 치과위생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아득한 생각으로 멍하니 실습실에 앉아 막막하곤 했다. 그랬던 고민의 시간이 쌓여 내 삶의 토대를 이뤘고 방황의 시절을 지나 학문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를 하다 보니 구강보건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다방면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느끼게 되었고 해가 거듭될수록 열정에 가득 찬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됐다. 이런 마음은 국가고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할 때도 이왕 합격할 것이라면 121점이 아니라 180점은 넘어서 합격하고
1982년 여의도에 첫 개원을 하고 40년을 지나 이제 ‘치과 개원의’라는 명패를 내려놓으려 합니다. 말 그대로 진짜 卒業을 하게 된 것이지요.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은퇴를 맞이하게 되었고 내가 속한 여러 모임에서 소회를 듣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져서 내 삶을 뒤돌아보는 기회가 됩니다. 저희 세대는 6.25 동란 중에 세계 최빈국에서 태어나 민족중흥의 책무를 띠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에 휩쓸려 올바른 인생의 지향점이 실종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공자님이 말씀하신 ‘바람직한 삶이란 부와 명예가 아니라, 선배들이 나로 인해 평안하고, 동료들이 신뢰하고, 후배들이 그리워하고 존경하는지를 인생 평가 척도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 마음 깊이 공감합니다. 돌이켜보면 인간의 품격인 禮와 義가 기본이 되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공자님의 기준에는 한참 모자라겠지만 하루하루 진료실 일상에 최선을 다해왔던 한 사람의 개원의로서 ‘나는 어떤 개원의가 되고 싶었나’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나, 전문가 동료의 신뢰를 받는 치과의사 치과의사는 전문 직업인 중에서도 최고 전문직입니다. 이런 전문가들인 동료의 신뢰를 받으려면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정년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제자들을 바라보며 ‘이 세계가 불안해 보이고 살아가는 일이 힘든데 한 줄의 글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라는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대학에서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누군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공부의 과정은 자신에게 ‘무형의 자산’으로 남아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 기준에 영향을 주고, 가정에서 다음 세대의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눈앞의 돈만을 세지 않고 조금 더 고양된 세계에 눈을 뜨게 되고, 주위 사람들에게 작지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시간이 지나며 금세 평범해집니다. 중년이 되면 ‘아무 일 없음’의 행복이 어떠한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평범한 일상이 오기 전 진료 현장에서, 일상의 시간 속에서 꿈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격려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고 노래한 시인 유치환 선생님이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편지를 쓰듯 겨울 하늘이 보이는 연구실 창가에서 새로운 세대의 후배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씁니다. 윤동주 시인이
2016년 군의관을 마치고 전인성 원장님의 강의 faculty로 입문하여, 2017년부터 시작된 나의 강의 인생은 이제 횟수로 6년차가 되었다. 강의를 막 시작했을 즈음에는 겨우 두 달에 한 번 정도의 느슨한 강의 스케줄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든 여가 시간은 강의 준비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이후 시작된 첫 해외에서의 강의로 인한 언어적인 문제와 함께, ‘suture’ 라는 새로운 주제의 강의 준비는 더욱 나의 정신을 빼놓았다. 강의의 구성, 스토리, 시간 배분, 실습 시간 배분 및 구성, 도안 완성도, 증례 완성도 및 관찰 기간 등 내용에 관한 부분과 표정, 어투, 몸짓, 목소리 톤 등의 전달에 관한 부분 등 처음 1~2년은 정말 부족한 것으로 가득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앞서 언급된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겪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나에게 가장 부족하면서 또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찾게 되었고 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 에피소드는 ‘골프’와 관련된 이야기다. 나에게 골프란 진료와 진료를 위한 출·퇴근시간, 강의와 강의 준비 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을 처절하게 쪼개서 연습하고 라운딩을 해야하는 따라서 하기도 힘들고 잘하기는 더
독일 육군 만슈타인 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회고록 <잃어버린 승리>에서 “소위로 참전하여 1942년 전사한 나의 아들 게로와 조국을 위하여 전사한 독일 병사들을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라고 징병군인들에 대한 헌사(獻辭)를 적고 있습니다. 롬멜 장군은 1937년 출판한 보병 전술 <Infantry Attack> 서문에 “유럽 동서남북 어디를 가나 조국을 위하여 전사한 독일병사들의 무덤을 볼 수가 있다. 전사한 병사들은 조국이 또 위기에 처할 때는 언제나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달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라고 징병군인들에 대한 헌사(獻辭)를 적고 있습니다. 호사카 작가가 저술한 <쇼와 육군>을 보면, 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 육군의 첫 번째 병폐는 “전쟁을 일으키고 패전한 것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 안 졌다”이고 일본 쇼와 육군의 두 번째 병폐는 “직업군인들이 징병군인들을 전투의 주체가 아니고 소모품으로 여겼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6·25 징비록 서문을 보면 “전쟁을 이끌었던 일선의 직업군인 장군들이 문제였다. 먼저 등을 보이며 달아났던 자치관도 많았다. 긴장하면서 전투 채비에 나섰어야 할 직업군인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기업들과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자극적인 뉴스와 컨텐츠가 넘쳐나고 있어 판단력은 흐려지고 정보에 대한 피로도는 쌓여가고 있다. 이러한 인포데믹 상황에서 정보의 왜곡과 포장은 오해를 야기할 수 있고, 더 큰 피해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신체와 건강에 관련된 헬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할 부분이 된다. 2021년 7월 열린 ‘헬스케어 홍보 포럼’에서 코로나19 시대 헬스케어 홍보 키워드로 ‘진정성’을 제시한 것은 팬데믹 시대 더욱 중요해진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대 불안한 고객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치과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대내외 마케팅을 진행해야 할까. 이를 위해 필자는 불만 의견, 입소문 효과, 슈퍼고객 관리라는 세 가지 단계로 치과 마케팅을 점검해볼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고객의 불만 섞인 목소리는 생리적 각성의 과학이다. 분노와 불안을 유발하는 정보가 공유되는 빈도가 높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만족감과 슬픔은 각성효과가 낮아 공유 효과가 낮다. 위기 상황에서 불만의 목소리는 더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혐오적인 지방덩어리를 공익광고에서
작년 초, 치의학대학원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던 저는 임상과 기초치의학을 아우르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포부를 가지고 치의학 공부를 막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서울대학교에 10-10 프로젝트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이는 연구활동 및 논문 출판을 통해 10년 내로 서울대가 10위권 대학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연구를 독려하는 연구지원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연구를 위해 좋은 기회일 뿐더러 모교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판단했던 저는, 이전에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신경생물학을 전공할 당시 수업도 들어보았고 현재 저희 학교에서 세계적 연구결과를 내고 계신 오석배 교수님 실험실에서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도 흔쾌히 허락해주신 덕에 여름방학부터 신경생리학 실험실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전에 신경생물학을 전공하고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에 대한 신약개발을 했던 경험을 살려 구강 세균이 신경세포에 미치는 영향 및 둘의 상호작용 양상과 더 나아가 말초 유래 구강 세균의 뇌내 감염이 알츠하이머병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까지 탐구하고자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신경을 주제로 하는 실험실이라 기존에 해보았던
Relay Essay 제2517번째(2022년 9월 12일자) 게재 철없는 아빠로 살기로 마음먹었기에 엄마 몰래 라면도 끓여주고 아토피에 안 좋은 양파링도 가끔 사주며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항상 아들에게 묻곤 한다. “아들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답을 정해 놓고 물어본다고 생각했건만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엄마가 좋지.” 질문이 적절한 대답을 유도하지 못했기에 다시 물어봐야 한다. “아빠가 말이야, 엄마 몰래 일요일마다 라면도 끓여주고 아이패드도 사주고 했잖아. 다시 생각해봐. 아빠가 좋지?” 10살 먹은 아들은 잠시 생각하다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빠는 말이야. 좋고 싫은 게 아니라 부담스러워.” 묘하게 설득이 된다. 생각지 못했던 녀석의 표현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사람 보는 안목이 있어 인생 사는 데 어려움이 없겠구나, 라는 안도감과 함께.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부담스러운 아버지가 있다. 초등학생 때(사실은 국민학생 때) 용돈 인상을 위해 기안문을 작성해서 오라고 하시고, 여러 근거들을 노트에 적어서 가면 자꾸 이런저런 이유로 안 된다고 하시고는 부담스러운 눈빛과 함께 엄마 몰래 몇 천 원을 더 쥐어주시던 그런 아버지가 있다. 대
20여 년 전부터 지헌택 회장, 김일봉 교수, 유양석·김규문·정상주·최욱환·김종열 고문 등 아버님 같은 선배의 모범적인 ICD(International college of dentists) 사랑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치과계 리더로서 사회에서의 라이온스클럽이나 로터리클럽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동참하다 보니 5월 21일 정기총회에서 ICD 한국 회장으로 영광스럽게 선출되었다. ICD 한국회에는 이사 한분 한분이 모두 다른 단체의 회장을 맡을 만큼 워낙 유명하고 바쁘신 분이 많아서 전화하기조차도 미안할 정도다. 늘 세상을 선도해 가는 분들과 많이 배우면서 한국 회장을 부담스럽더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지난 10월 15일 국제본부이사회의 국제회장에 취임한 장호열 국제회장께서 내년도 국제본부이사회를 한국에서 열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주셨다. 사실 2년 전에 나고야에서 ICD 창립 100주년 행사를 개최하기로 하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하여 2년 동안 개최하지 못해 포기하고, 올해는 휴스톤에서, 내년에는 뉴욕에서 열기로 한 바 있었다. 국제본부에서는 한국에서 내년에 개최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2년 동안 행사를 진행하지 못해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