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궁기라고 하여 보리가 아직 여물기 전인 음력으로 4~5월인 오뉴월은 굶주림으로 신음소리 가득한 애달픈 시기였습니다. 맥령기라고도 해서, 험한 산 하나를 넘듯 삶의 고비를 넘기기가 쉽지 않은 시기였기도 합니다. 그렇게 배고픈 시기가 언제였는지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지금은 쌀 소비가 줄어들어 오…
거칠고 진한 것들보다 부드럽고 연한 것들이 더 살갑게 다가오는 것은 노안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에 맞서는 것보다 순응하고 긍정하는 것을 더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귀에 들어오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은 고집스러움이 귓밥으로 가득 찬 연유도 있겠지만, 그만큼 스스로를 잃지 않고 살아…
자연이 대리석을 깎아내어 험준한 계곡을 만들고, 제비들이 날아들어 절벽 구멍에 둥지를 튼다는 곳. 바로 대만의 제일명승지라는 태로각 협곡입니다. 태백산맥을 동서로 횡단하기 위해 넘는 대관령, 미시령, 한계령 등이 해발고도 1,000미터 아래임에도 힘들게 쉬면서 넘어가는데, 대만에는 3,000미터가 넘…
선덕여왕이 공주시절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을 보고 “꽃은 고우나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을 것이다.”고 해서, 씨앗을 심어보니 과연 향기가 없었고, 이에 선덕의 영민함을 모두가 탄복하였다고 하는 이야기가 삼국사기로 전해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모란은 분명히 향기가 있고, 꿀벌…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솜씨 좋은 현상소 아저씨를 만나는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야 찍은 사진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게 인화되어 받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인 요즘에는 카메라 제조사의 소프트웨어 기술자를 잘 만나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조시 기본값이 잘 세팅…
병원에서 진료에만 전념을 했더라면 그럴 일이 거의 없었겠지만, 30여 년을 동창회, 지역치과의사회, 봉사단체, 치협 등에 얽히다보니, 신념이 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이끼리는 연결되어, 서로에 대한 영향 평가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생떼를 쓴다... 앞뒤가 꽉 막혀 대화가…
강원도 태백시 금대산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정선, 영월, 단양, 충주, 여주를 거쳐 굽이굽이 천리 물길을 내면서 흐르던 남한강은 경기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 본류가 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높은 산지 사이를 흘러내려온 북한강이 좁고 거친 계곡 풍광을 보이며 투박한 야생의 느낌이 강하다면,…
신학기가 시작되어 미숙함과 분주함이 넘치는, 점심시간 끝 무렵, 창문 밖 풍경. 트렌치코트를 멋스럽게 입거나 나비넥타이를 그럴듯하게 매고 파이프를 물거나 혹은 목도리에 헌팅캡을 쓰거나 세련된 콧수염을 만지며 전부 다른 개성으로 단장하고서 시크하게 미소까지 슬쩍 날리면서 노교수님들 열 분이 대…
좋은 것만 보고 싶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 맛있는 것만 먹고 싶고, 맛있는 것만 먹여주고 싶다. 예쁜 것만 입고 싶고, 예쁜 것만 입히고 싶다. 소박하다고 생각되는 꿈들일지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애를 써야할까요? 어려움에 직면하여 스스로 풀어내기 전에는 모릅니다. 사진 이미지를…
다음 중 어떤 물건을 골라야 할까요? 1. 단단한 포장에 상한 내용물 2. 허접한 포장에 상한 내용물 3. 허접한 포장에 좋은 내용물 4. 단단한 포장에 좋은 내용물 당연히 4번 문항을 다들 고르시겠지요? 단단한 포장에 상한 내용물을 파는 행위는 사기이고, 그걸 고른 당신은 안목이 없는 것입니다. 허접한 포장에…
간간히 찾아오는 꽃샘추위가 여전하지만, 3월 중순, 이제 춘분이 지나 밤보다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계곡이며 들녘이며 공원에는 꽃망울이 맺히고, 남녘에는 벌써 목련이 활짝 개화를 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산길 따라 계곡 따라 오르다, 돌 틈 아래에 옹기종기 흰 노루귀 가족을 만났습니다. 노루귀…
역설적이게도 농촌 일손 부족으로 오히려 기계화가 잘 되어 예전처럼 허리 숙여 낫질을 해야 하는 경우는 드물게 되었습니다. 모판에 씨앗을 뿌려 싹이 나고 한 뼘쯤 자랐을 때면, 학교며 일터며 군대에서는 하던 일들을 멈추고 농촌으로 향하였지요. 듬성듬성 던져진 모 다발을 주워 하나하나 심어가며, 길게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