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치교협에 참여와 성원을… bj90@freechal.com 남북치의학교류지원협력위원회(남북치교협)는 민족의 화해와 공동번영 그리고 민족 치의학 발전을 위하고, 남북한 치의학 교류를 통하여 북한 치의학계 발전에 기여하며 학문, 시설, 장비, 인력 등 필요에 따라 북한 치의학계를 지원하고 협력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지난 7월 11일 발기인 대회를 가졌습니다. 이후 8월 17일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중요 사업으로는 2002년까지 북한 도급 8개 지역에 소아치과를 개설 할 예정이며, 올해는 평양의학대학 치과대학에 유니트체어 2대 기증과 한 곳을 지정하여 소아치과를 개설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올해 안으로 남북치교협 관계자들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교류와 지원을 위해 치과계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물론 북한을 지원하는 일에는 많은 자금도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을 부탁합니다. 남북치교협 위원으로 참석하고 싶거나, 물품 지원을 하고 싶은 분은 간사 김봉준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 : 02) 504-4546 , ·이메일 : bjkim@hallim.com 또는
“용어 통일 사용 필요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준 면허증의 명칭은 치과의사 면허증이다. 요즈음 치과의사의 명칭을 치의사로 쓰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한다. 치의사라는 용어가 요즈음 같이 많이 통용되는 것은 어느 한 교수님이 수 십년 동안 외롭게 외쳐 오시던 주장으로 그분에 감명을 받은 치과의사 분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인데 치과의사들간에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이루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 기쁘기도 하다. 그러나 치과의사라는 용어를 치의사라는 용어로 바꿀 경우 수많은 공문서에 명시되어 있는 것을 바꿔야 하며, 모든 교과서의 용어를 바꾸어야 하니 예방치과를 제외한 다른 교과목 교수님들의 동의도 필수적이다. 법률 조항에 있는 치과의사라는 단어를 모두 치의사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 과정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또한 국민들에 친숙한 치과의사가 치의사로 바뀌려면, 대국민 홍보도 열심히 하여야 한다. 아마 이에 소요되는 예산은 얼추 수백억은 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부담은 치과의사들이 지거나 치의사 사용을 고집하는 분들이 나누어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명칭 변경을 두가지를 공존시키면서 계속 사용한
“쇼핑하러 갈 땐 반드시 배를 든든히 채워라...” 신문을 읽다가 눈길이 멈췄다. 백화점들이 일제히 가을정기세일을 벌리는 요즘, 이색적인 쇼핑비결을 제시한 기사였다. 다섯 가지였다. 첫째, 배가 많이 고플 땐 쇼핑가지 말란다. 배가 든든하지 않으면 필요 이상의 식품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둘째, 열 받을 땐 쇼핑을 삼가란다. 어떤 여성의 경우 스트레스가 과소비에 불을 지르기 때문이다. 셋째, 냉장고의 재고를 확인하란다. 불필요한 중복 구입을 막기 위해서다. 넷째, 아이와 함께 가지 말란다. 뜻하지 않은 물건을 사기 쉽기 때문인데, 시간도 절약된단다. 마지막으로 필요 이상의 돈을 갖고 가면 안 된단다. 지갑에 돈이 두둑하면 쇼핑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백화점의 유혹을 뿌리치도록 하는 재치였다. 가을, 이 좋은 계절에도 우리는 유혹 앞에 서 있다. 어디 이런 백화점 앞에서 뿐이랴. 정치·경제·사회·문화 심지어 종교 백화점까지 활짝 열어놓고 유혹은 철이 바뀔 때마다 정기세일을 하고 있다. 먼 후일에서야, 정말 먼 후일에서야, 우리는 불필요 한 것을 구입하느라 가장 소중한 생명을 소비하며 살았음을 한탄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
귀소본능일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고향 생각에 문득문득 사로잡히는 횟수가 잦아진다. 그럴 때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곤 한다. 이번 추석만 해도 그렇다. 애당초 고향 갈 계획이 없었다. 어디 가볍게 외출이라도 하자는 아내의 성화에 이곳저곳을 생각하다가 고향생각이 떠올라 그만 발동이 걸렸다. 부랴부랴 두어가지 옷가지를 챙긴 후 충청도 서천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 엄청나게 막혔다. 구리를 빠져나가는 데만 한 시간을 잡아먹더니, 서해안 고속도로를 지나는 내내 정체와 서행을 계속하였다. 그래도 기꺼이 감수했다. 고향산천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난 늘 그리워한다. 드문 일이지만, 내가 고향을 찾는 이유는 순전히 고향산천이 그리워서다. 부모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만날 친척이나 친구가 있어서도 아니다. 태어나 살던 그 향취를 느끼고 싶어서 휑하니 둘러오곤 한다. 열 시간 여를 달려서 도착한 곳, 그러나 그곳은 고향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정붙였던 옛집도 온데 없고, 산새 들새 지저귀던 뒷동산도 간데 없었다. 졸졸대며 흐르던 집 앞 냇가도 이야기를 멈추었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던 종달새의 들판도 노래를 잃은지 오래였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돌팔이 피해 심각 … 애타는 마음 mwleedds@chollian.net 공보의 3년차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돌팔이 때문에 망가진 환자들을 여태 많이 봐 왔지만 오늘 또 심한 경우를 하나 보고 가슴이 답답해져 여기 처음으로 글을 써 봅니다. 여긴 강원도 정선인데요. 환자분이 나름대로 양질의 진료를 위해 강릉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다가(발치 하고 엔도 마치고) 딴에는 잘하는데를 찾는 답시고, 서울까지 가서 돌팔이 한테 진료를 받으셨다는군요. 편측 무치악인데 상악 좌측 6,7번이 없고, 전치부에 몇개 엔도를 한 모양 이더군요. 근데 13번 에서 27번까지를 10유닛으로 PFM Bridge를 해놨는데 교합이 전혀 안되더군요. 13에서 Cusp to cusp로 교합되고. 24,26번정도 한두군데 닿고, 하악유도해보면 전치부 오픈바이트 상태가 되구요. 환자가 하악 Protrusive 해서 적당히 사는 중인가 보더군요. 아무튼 10일이 되었다는데 모든 이가 아프고 시리다면서 왔는데… 문제는 처음에 신경치료한게 잘 못된거 아니냐며, 머구리 역성만 드는게 한심해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말았네요. 200만원들었다는데, 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싸게 든것도 아닌것
내가 윤흥렬 선생님을 처음 뵌것은 1990년 단국치대 본과 4학년 시절이다. 정진형 선생님의 미국연수로 당시 이재현 학장님이 윤흥렬 선생님을 치주임상과목의 외래교수로 초빙한 것이었다. 치주학에 대한 선생님의 강의가 내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선생님은 수업중에 항상 미래를 생각하며 미래를 준비하며 살라는 점을 한학기 내내 강조하셨으며 전공외의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다. 수업을 들었던 당시 동기들의 반응은 신선하다는 것이었다. 치의학이란 학문자체가 ‘Art & Science’라고 열변을 토하던 분도 계셨지만 원내생이 되어 환자를 대하기 전까지 빨리 벗어나고 싶은 시험이라는 어두운 동굴의 연속이요 재미없는 실습의 늪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나면 학생 때부터 선배들의 병원을 방문하고 자신의 미래의 병원모습을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고 강조하셨다. 병원에 놀러오라고 하셔서 선생님 병원에 찾아갔었다. 광화문 교보빌딩에 개인의원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병원분위기가 특이했다. 독립적으로 격리된 치료실과 효율적으로 구분된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미모의 치위생사 두명도 인상적이었고…. 당시 윤흥렬 선생님의 연세는 49세. 졸업후 선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헤아려보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 아내를 만난 것처럼 감사한 것도 없다. 요즘 들어 ‘내가 장가는 참 잘 들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팔불출이 되더라도 아내 자랑을 좀 해야겠다. 아내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중퇴 이후 10여 년을 계속하던 방황의 끝자락에서였다. 아내는 세상과 멀리 떨어져 살다 돌아온 실속 없는 나와 결혼했다. 그리고 재주라곤 공부밖에 없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자청했다. 검정고시를 하고 신학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직장과 집을 오가며 고된 나날을 견뎌냈다. 짐은 남편만이 아니다. 결혼이후 지금까지 13년이 넘도록 시부모를 모시고, 하나도 버거운 아이를 셋씩이나 낳아서 잘도 길러내고 있다. 이쯤 얘기하면 6·25 전쟁통에 아이를 들쳐 엎고 생계전선에 나선 억척 아줌마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내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담한 체구에 언제나 웃음과 생기가 넘친다. 텔레비전 광고에 ‘산소 같은 여자’가 나오던데, 아내가 그렇다. 아내가 있는 곳은 언제나 밝아지고 웃음꽃이 만발한다. 나는 이런 아내가 여간 이쁘지가 않다. 성경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ssdental@hanmir.com 9월 20일자 조선일보에 고성희 회원께서 치주질환 예방에 관한 고견을 기고하였습니다. 참 공감되는 내용이었으며 시사성도 높았고 우리 치과의사들이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제시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주제에 관해서 전체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 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또 어떤 방법으로 조사하여야 회원들의 정확한 의견을 종합할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고성희 회원님의 투고 내용입니다. 구강보건 교육비 삭감 아쉬워…. “정부에서 적극 지원해야” 고성희·서울 송파구 고치과의원장 지역주민의 구강보건현장 일선에 있은 지 20년 된 치과개원의다. 개원 초기에 비해 요즘은 환자분들의 스케일링에 대한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다. 또한, 단순스케일링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애석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숱한 스케일링 및 치주치료 환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물론 전신질환으로 인해 2차적으로 치주염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양치질하는 방법이 틀려 생기는 경우가 90%이상 되는 것 같다. ‘3-3-3방법’이라고 막연히 알고 있긴 하지만, 의외로 잇몸은 닦
한 시민이 안녕하십니까? 치과를 자주 찾는 사람입니다. 6개월에 한번정도 스케일링을 하라고 해서 며칠 전에 치과를 찾았더니…. 글쎄요...7월부터 보험에서 제외되었다면서 5만원이랍니다. 20분 정도면 되는 것을 5만원이란 너무 비싼 것 같습니다. 서민들이 가기 어려운 치과가 되었군요. 6개월에 한번이 아니라 몇 년에 한번 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건의합니다. 의료보험 혜택을 다시 환원시켜주시기를…. 불쌍한 서민들이….
몇 달 전부터 N2O와 러버댐 사용으로 인하여 심사평가원의 집요한 추궁이 계속 되었다. 사용하지도 않는 것을 청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또 다른 치과의사들은 사용하지 않는 것을 왜 당신만 사용하고 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별관리를 하고 특별심사를 한다고 청구액도 늦게 지급이 되고 있다. 몇 일 전에는 챠트를 몇 장 복사해서 보내라고 해서 보냈더니…. 다시 그 달에 청구한 G-I 충전 환자 챠트를 모두 복사해서 보내라고 통보가 왔다. 모두 보냈는데 얼마 있어서 정밀심사를 한답시고 청구액에서 G-I 충전료를 제외한 금액이 들어왔다. 하루는 무얼 캐낼려고 하는지 두 명의 심사평가원 직원이 아침부터 찾아와서는 내일까지 현지확인 심사를 하러 왔다며 열심히 무언가를 뒤적이고 했다. 러버댐을 사용하면 안되는 나라... N2O를 사용하면 안되는 나라... 아말감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 이 나라의 심사평가원은 나에게... 아니 치과의사에게 어떤 존재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벌써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저자거리의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이야기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바둑을 두는 두 사람 곁에 붙어 앉았다. 나보다 잘 두면 한 수 배우고 그렇지 않으면 훈수라도 둘 참이었다. 그런데 몇 수를 두지도 않아 화제는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바둑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선 이야기였다. 이들이 펴놓은 것은 바둑판이 아니라 정치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판을 다 읽고 있었다. 작금의 판세를 읽고 대선 구도를 점치는데 아주 능해 보였다. 간단한 몇 마디의 해설로 나에게 여야의 대선 싸움이 포석단계를 넘어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 몇 마디의 훈수에, 나는 금방 이들이 고수들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다소곳하게 들었다. 이들은 여당의 판세를 짚어 가면서, 마치 축을 몰아가듯이, 마지막 주자가 될 두 사람을 가볍게 잡아냈다. 그리고 이미 단독주자로 달리고 있는 야당의 후보와의 관계에서 누가 최종주자로 지목될 지에 대한 수 싸움을 벌였다. 확실히 정치 9단 다웠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대단히 정치를 보는 눈이 뛰어나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그러나 정작 고수들의 정치의식에는 실망을 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