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교실에 혼자 남아 있던 지우는 자기도 모르게 ‘후유~’하고 한숨을 내질렀다. 오늘 하루도 별일 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여지없이 문제가 터졌다. 오늘 짝이 된 지영이와 민수가 주먹다짐을 한 것이 다. 민수 말로는 지영이가 먼저 머리를 때렸다지만, 그렇다고 지영이 머리를 벽에 밀친 민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들로부터 오후 내내 번갈아 가며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학교업무는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우는 멍하니 빈 교실을 응시하다가 퇴근할 시간이 30분이나 지난 걸 알게 되었다. ‘참, 6시에 영미 학교로 태우러 가기로 했는데, 깜빡 잊었네.’ 영미는 지우가 지난해 근무했던 학교에 동학년 선생님이었다. 허겁지겁 책상 위에 소지품들을 핸드백에 던져 넣고, 호주머니 속에 만년필을 꺼내는 순간에 100원짜리 동전이 교실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교실바닥은 삐걱대는 오래된 목재로 돼 있어서 이음새 부분마다 틈이 있었다. ‘톡! 또르르~’ 지우의 눈이 바닥에 떨어진 100원의 궤적을 좇아갔다. 동전이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기차 바퀴처럼 바닥을 구르다가 그만 틈새로 빠져버렸다. “힝~ 내 행운의 동전!” 할아
하늘과 땅의 기(氣) 어우러진 신비한 안데스 산려(山麗) 구름과 바람 신(神)의 도시 숨겨 놓았고 가슴 설레는 마추픽추에 오르니 하늘을 찌르는 와이나픽추 영기(靈氣) 서린 천봉에 구름 넘나들고 신 앞에 한발 다가서는 느낌 천공(天空)의 도시 산정(山頂)에 자리한 소우주 불가사의한 석축 도시 태양신을 섬기는 잉카의 실존을 보여 주고 백천단애의 심연(深淵) 우루밤바강이 휘돌아 흘러 아마존 대하로 간다 청청한 하늘 이 신성한 땅에 오늘도 태양 빛 쏟아지고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 나그네의 발길 끊이지 않네 최 단 원장 -<순수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쟁문학회 이사 -광진문학 고문 -순수문학회 부회장 -치문회 회원 -최단치과의원 원장 -<한국전쟁문학상> 시부문 본상 -<순수문학> 시부문 본상 -저서 《사진과 함께하는 나의 세계 문화 기행시 上.下》, 《미선나무》, 《노을의 미소》, 《영운당의 풍령》, 《나, 허수아비》 등
차 문 호 교수님을 기억하며 차문호 교수님(車文豪, ’24.7.4~’76.7.20)을 만난 것은 3 학년 소치(소아치과학) 강의시간이었습니다. 반듯한 정장에 당시로는 드문 나비넥타이를 매고 “내레, 내레~” 하시는 등 진한 평안도 사투리를 섞어 웃음도 없이 최신 소치학 원서 한권을 형태학부터 성장발육, 병리학까지 강의 하셨습니다. 당시는 전공 교과서의 한 장을 선정해 강의하거나 결강, 휴강이 흔한 때였습니다. 교수님은 평남 선천군 수청면 학현동 51번지에서 출생하시고 신의주 동공립중학교(6년제 ’43.3.20)와 서울대 치대(1회 ’47.7.11)를 나오시고, 문교부 영어학교를 수료(’47.1~’48.1) 후 주한 미국대사관병원 치과(’49.4.10~10.30)와 미국 워싱톤주립대 치대서 소치학을 수학 하셨고(’54.9.14~’55.8.9) 미국 미네소타대 치대서 연수(’78.3~5) 하셨습니다. 뉴질랜드 웰링톤 치과학회 WHO(’54.5~6), 덴마크 코펜하겐 소아치과서 연수(’67.3~6) 하시고 싱가폴 세미나 (’81.3~4)에 참석 하셨습니다. 당시로는 드물게 미국, 뉴질랜드, 덴마크, 싱가폴 치대서 연수나 방문, 국제적 안목을 넓히시어 외국인 방문자
낭만이 흐르는 포구 포구를 둘러싼 산등성이엔 그림 같은 집들이 숲속에 숨어 있다 북대서양의 풍성함이 집결하는 베르겐 어시장 비린내가 섞인 싱싱한 해산물 뜨거운 삶의 현장을 본다 나 어릴 때 즐겨 부르던 솔베이그의 노래 그 고향 베르겐 그리그(Grieg)의 기념관이 베르겐에 있었다 한적한 베르겐의 교외 바닷가 산등성이에 그리그가 살았던 아담한 집 한 채 울창한 숲길 따라 바다로 내려가면 벽처럼 깎인 바위벽 속에 그의 무덤이 있다 무덤 앞에 서서 바다 바라보고 그의 노래 소리 죽여 불러본다.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또 봄은 가네 그 여름날도 가고 세월이 가네 세월이 가네 그대는 나의 사랑하는 님 내 사랑이여 내 정성을 다해 나 사랑하리라” 최 단 원장 -<순수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쟁문학회 이사 -광진문학 고문 -순수문학회 부회장 -치문회 회원 -최단치과의원 원장 -<한국전쟁문학상> 시부문 본상 -<순수문학> 시부문 본상 -저서 《사진과 함께하는 나의 세계 문화 기행시 上.下》, 《미선나무》, 《노을의 미소》, 《영운당의 풍령》, 《나, 허수아비》 등
그때는 세상에나 어찌나 안심되든지 말이야. “춘식아~ 아까 혼이 어딨느냐고 아부지한테 물었냐?” “어딨어라? 아부지?” “사람 몸띵이에 혼이 어디 쪼매 들어 있는 게 아니여.” “……” “글씨, 몸띵이 빼고는 다 혼 이제.” “심장에 숨어 있는 게 아니어라?” “아니제. 춘식아, 엄마 보고 싶제? 동무들이랑 놀던 생각도 나고?” “두말하면 입 아프니더.” “엄마 보고 싶은 맴, 놀던 동무들 생각 그리고 아부지랑 이렇게 달밤에 걸은 기억까지 춘식이가 하늘나라로 갈 때 다 갖고 가는 겨.” “참말이어라?” “그럼 참말 이제!” 동리에 가까워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집집마다 개들이 연달아 청승맞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아부지? 아직 멀었어라?” “……아즉도 나가 느그 아버지로 보이냐?” “무섭게 와 그런데요 아부지~” “하하, 어디 보자, 저그 불 켜진 집이 큰집이여. 이제 다 왔나 보다.” 고 씨가 얘기를 마치자, 성만은 연기 때문에 눈이 맵다며 뒤돌아 눈물을 훔쳐냈다. 노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돌았다. “어째들 내 얘기가 들을 만하든가?” 어느새 드럼통 주변에 예닐곱 명의 남자들이 숨죽이며 모여 있었다. 성만이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렸고, 나머지 남
여울 따라 들어가는 원림(園林) 향긋한 풀 내음 흙 내음 가슴에 싸이고 새소리 물소리 자연에 소리 귀속에서 녹는다. 죽림(竹林)을 벗어나니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오곡문(五曲問)을 만들어 휘돌아 흐르는 옥수는 앙증스러운 폭포가 된다. 세월은 이조 중엽으로 되돌아가는가. 옛 선비들의 풍류가 고풍스러운 제월당(齊月堂)에 녹아 있고 바로 앞 광풍각(光風閣)에는 낭낭한 선비들 글 읽는 소리 들이는 듯하구나 내 어찌 이제야 찾아왔단 말인가 세파에 찌든 몸 이곳에 눌러앉아 남은 세월 묻어 두고 싶구나. ------------------------ ※소쇄원 : 우리나라 사적 제304호로 지정된 곳으로 전라남도 화순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의 민간의 대표적인 원림으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로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운 곳이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학자 양산보가 조성하였고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당하여 죽게 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이곳에서 많은 학자들과 학문을 토론하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호남에서 으뜸가는 명승지로 일반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 단 원장 -<순수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회원
핸드폰을 쳐다보던 남자들의 시선이 일순간 노인에게 집중되었다. “아부지? 사람의 영혼이 어디에 있대요?” “영혼? 그건 갑자기 와?” “영식이가 오늘 학교에서 사람의 영혼이 어딨는지 아느냐고 묻길래 ‘머릿속에 있지 어디 있어’ 했더니, ‘빙신이야~’ 우리 대학생 삼촌이 그러는데, 영혼은 심장 제일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 있대요.” 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박진 고개에 닿았지. 우거진 숲속은 달빛이 비쳐들지 않아서 마치 시커먼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어. 갑자기 공동묘지 근처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네. 이미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이었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한밤중에 아이들이 몰려다닐 곳이 아니었어. 먹구름이 희미한 달빛 조각마저 무심하게도 날름 삼켜버렸지. 한밤의 아이들 목소리는 점점 또렷이 들려왔어. ‘누가 내 주먹밥 훔쳐 먹었어? 간난이 너지!’ ‘난 아니야. 오라버니! 맨날 자기가 먹어놓고 나한테 뒤집어씌우고 그래.’ ‘이 가시나가!’ ‘아아, 앙~ 왜 때려. 이 거짓부렁이 오빠야.’ ‘이게 진짜, 어리다고 봐줬더니.’ ‘조용히 좀 해, 저기 사람들 오잖아.’ ‘우리가 노랠 부르면
비 온 뒤에 아침 고요 싱그러운 맑은 공기 가을의 내음 토하고 오색의 국화 향 우리를 반긴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계절 따라 보여주는 너의 화사한 자태 전망대에 오르니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아침 고요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다 이제 아침 고요는 너만의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것으로 자라났구나. 드높은 하늘 아래 오늘도 수많은 인파 찾아오니 아침 고요가 아니라 아침 소요일세 그래도 초록빛 바다 너의 품속은 생명력의 젖줄 즐거운 하루 놀아 볼꺼나 최 단 원장 -<순수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쟁문학회 이사 -광진문학 고문 -순수문학회 부회장 -치문회 회원 -최단치과의원 원장 -<한국전쟁문학상> 시부문 본상 -<순수문학> 시부문 본상 -저서 《사진과 함께하는 나의 세계 문화 기행시 上.下》, 《미선나무》, 《노을의 미소》, 《영운당의 풍령》, 《나, 허수아비》 등
“생각할수록 참으로 이상한 밤이었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해. 내가 이제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됐는데도 말이야.” 7호선 남구로역 새벽 5시, 예순이 넘은 노인의 얼굴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한 표정이 깃들었다. 큰 두상에 통뼈로 타고 나서 젊은 시절에 힘꽤나 썼을 법한 체격이었다. 고 씨의 고향은 경남 의령군 부림면 경산리라 했다. 지난해 새벽 인력시장에서 고 씨는 성만과 몇 번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노가다 일꾼을 구하러 온 십장의 트럭에 올라탈 때도 성만을 함께 부르는 법은 없어서 같이 일해본 적은 없었다. 다만, 주경야독하며 병든 노모를 모시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면서 3년째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고학생이란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성만은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여태껏 살아계셨다면 어르신과 연배가 같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검붉게 녹슨 드럼통 주변에 아직 잠이 덜 깬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작불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장작불이 뱀의 혓바닥처럼 드럼통 밖으로 날름거릴 때마다 어둠 속에서 남자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사라지곤 했다. 드럼통 안에 건축 폐기물에서 나온 장작을 얹자 불티들이
1927 경기도 용인 출생 1949 서울치대 3회 졸업 1969 예비역 치의 대령 대한치과의사협회 감사 1974 대한치과의사협회 총무 1980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 1967 대한구강보건협회 부회장 감사 고문 1967 대한치과기재학회 3-5대 회장 고문 1978 인공치아이식임플란트학회 초대 2대회장 1979 국제치의학사회 I.C.D. 평생회원 1982 서울대학교치과대학동창회 부회장 1982 전주류씨 전양부원군 종중 회장 현) 종로구치과의사회 지도위원장 유 양 석 치과의원장 상훈 : 보국훈장 협회대상 서울치대동문상 수상 치아는 태어나서 생을 마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저작 운동을 해야 하는 제2의 심장(心臟)이다. 전신건강의 근본이며 전신발육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치아임을 생각할 때 구강 보건과 치아의 건강 없이 체력향상은 기대할 수 없고 체력향상 없이 전력배양이나 국력배양은 없다. 그래서 치아의 건강이 중요한 것이며 전신의 건강은 물론 개인의 행복과 국력에 관한 문제이므로, 조금도 소홀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젊고 건강할 때는 소홀이 생각하기 쉬우나 나이가 들수록 절실히 느껴지는 것이 치아의 건강이다. 결론은, 전쟁을 통해 치과 군의관들은 모든 고난
어릴 때 형이나 누나의 소풍날 새벽녘이면 어머니는 안방에서 김밥을 만드셨다. 자다가 졸린 눈을 배시시 뜨고 일어나 보면, 어머니 옆에는 김밥에 넣을 속 재료들과 시큼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갓 지은 밥이 놓여 있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손으로 집어 먹어 보면 익숙한 맛이었다. 도마 위에는 길 잃은 김밥 꽁다리들이 보였다. 크기도 작거니와 보기에는 볼품이 없지만, 비몽사몽 잠결에 하나씩 입에 넣었을 때의 기쁨이란 먹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소풍 전날이면 늘 설레며 잠들었다. “일찍 일어나는 아이 김밥 꽁다리 얻어먹는다.” 진심 이런 속담 하나 만들고 싶다. 퇴근길 저녁에 들른 김밥집 사장님에게 어렸을 때 어머니가 소풍 때 싸주셨던 시큼한 김밥을 팔면 어떠냐고 제안해본 적이 있다. 사장님은 손사래를 쳤다. “그럼 김밥이 쉰 지 알고 사람들이 난리 나요.” 사장님은 어릴 적 잠결에 일어나 시큼한 김밥 꽁다리를 드셔본 적이 없는 게 분명하다. 토요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들렀다. 김밥용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계산하려니 지갑이 없다. 아무래도 김밥은 내일 싸야겠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왜 어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