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에서 노란빛의 송화밀수가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이 차는 꿀물에 잣을 띄워 마십니다. 원기를 북돋는데 그만이죠.” 친절한 설명과 함께 주인이 곁들여 내온 감자 맛은 그 작은 씨알만큼이나 소박했다. 빗방울들이 통유리 너머 나뭇가지에 염주처럼 매달려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을씨년스러웠다. 밤새 내린 비로 불어난 계곡물이 바위를 끼고 돌며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둘은 한참이나 대리석 교각 위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손을 맞잡고 계곡을 따라 아치형 통나무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나는 오빠가 안타까워 죽겠어.” “뭐가 안타까운데?” “싫다는 소릴 못해. 그래서 사람들이 오빠를 우습게 알잖아.” 둘은 다리 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민혁이 순영을 살며시 안았다. 그의 온기와 심장의 박동이 순영에게 전해졌다. 다리 위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민혁은 순영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을 때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가 순영의 입술 안으로 혀를 밀어 넣자 갑자기 순영이 비명을 지르며 입안에서 뭔가를 뱉어냈다. 바닥에 떨어진 분홍색 물체가 다리 틈새로 떨어졌다. 민혁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지만,
1995년 디트로이트의 2년제 지역대학(Community College)에 들렸다. 구강위생과를 비롯한 20개과 중에, 지금은 미국 드라마를 통하여 많이 알려진 CSI(Crime Scene Investigator; 범죄 현장 조사)과가 신기했다. 지역주민은 등록금이 무료이고, 4년제 정규대학에 진학하면 취득한 학점을 그대로 인정해준다. 1988년 방학 중에 대학 문창과가 시민을 위한 강좌를 열었다. 글쓰기에 문외한인 아내가 친구 따라 등록하더니 기승전결에 주제가 뚜렷한 콩트 세 편을 써내고, 홍보이사로서 대전광역시 약사회지를 창간하여 3년을 꾸려갔다. <외갓집 풍경>은 필자의 <할아버님댁>과 짝을 이루어, 서정 태선희의 그림으로 꽃단장한 뒤 대전문학관 ‘명사 시화전’에 걸렸다가, 이제는 우리 거실에 와 있다. 치인문학(齒仁文學) 동인인 윤양하 원장의 주선으로 멜로디까지 얻었다(CD). 이제 상설강좌로 자리 잡은 문창과 강의는, 학부로서는 물론 노후 시민들에게 생의 의미를 다시 살려 사회통합에도 기여하는 ‘제2의 문맹퇴치 운동’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제1이 읽기라면, 제2는 쓰기다. 걸출한 이야기꾼(Story Teller) 황석영 씨의
지우의 휴대폰이 핸드백 속에서 다급하게 울렸다. “어, 영미야! 미안~ 내가 갑자기 학교에 일이 생겨서…… 좀 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그래, 택시 타고 약속장소에 먼저 가 있을래? 응, 미안.” “퇴근 후에 후배랑 약속이 있었거든.”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지은파 선생님까지. 그래, 지은파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 계셔?” “교실에서 고양이를 키워서 자기 아이가 고양이 털 알러지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한 학부모가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거든. 학부모 참관수업에 왔다가 우연히 내게 먹이 주는 모습을 본 모양이야. 그래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어. 본인이 책임을 지시겠다고.” “참, 어이가 없네. 겨우 어린 들고양이에게 먹이 준 걸 가지고." “자기 아이가 회장이 되지 못했다고 담임선생님에게 불만이 많았던 엄마였거든.” “아이가 회장에 뽑히지 않은 게 무슨 선생님 잘못이야!” 지우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은파 선생님이 떠난 후 갑자기 또 혼자가 돼버렸겠구나.” 비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떠나고 나자, 갑자기 반 아이들이 돌변했어. 나를 더럽다고, ‘블루 데블’이라고 욕을 해대는 아이들도 있었고, 죽어버리라면서 돌멩이를 던
하늘 찌르는 첨봉들 구름 아래서 피어오르네 태고의 신비 감추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기암괴석들 바위 휘감고 늘어진 노송들 삼경(三景)이 어울려 장관 이룬다 아, 바로 여기가 신선이 살던 황산이더냐 옛 선인들 말씀에 “황산 보지 않고 산경 논하지 말라 황산 본 후 오악(五岳) 가지 말라 보지 않고, 가지 말라” 참으로 그 말씀 가슴에 닿네 사계가 다 다른 경이 있다고 하나 내 분수에 어찌 사계 다 보랴 일계만 보았어도 내 평생 가 본 중 감히 으뜸이라 말할 수 있네. 최 단 원장 -<순수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쟁문학회 이사 -광진문학 고문 -순수문학회 부회장 -치문회 회원 -최단치과의원 원장 -<한국전쟁문학상> 시부문 본상 -<순수문학> 시부문 본상 -저서 《사진과 함께하는 나의 세계 문화 기행시 上.下》, 《미선나무》, 《노을의 미소》, 《영운당의 풍령》, 《나, 허수아비》 등
푸른 바다의 수평선은 우리에게 청량감을 준다. 지구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모성애를 느끼게 한다. 지구 상에서 가장 놀라운 선중의 하나는 수평선과 지평선으로, 수평선은 하계인 바다와 상계인 하늘의 경계선이다. 하지만 실제로 바다와 하늘은 만나지 않는다.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를 갈라놓는 심상 속 경계로서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현상적인 세계를 지우고 내면속에서 새 현상을 만들어준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 하나의 선 앞에 서 있으면 가시적인 세계 너머에 있는 무궁함을 직면하게 되며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질 수 있다. 은은한 파스텔톤 바다물의 색감. 수평선 위로 아롱거리는 서기, 그 위로 떠다니는 구름...(사진 1. 관용) 그 앞에 서있으면 누구라도 무방비 상태가 되어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놓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바다를 찾아간 사람들은 멍하니 바다를 응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치유되는 자신을 보게 된다. 기나 긴 일상에서 지루함, 슬픔, 괴로움, 기쁨, 즐거움 등의 감정들과 부딪히면서 꿈을 붙들고 자유를 갈망한다. 바다와 수평선은 바라보는 것은 모든 존재의 완전성을 전하고 있다. 지평선은 다른 하계인 대지가 하늘과
다시 엎드려 틈새를 들여다보았을 때 고양이는 100원짜리 동전을 발 앞에 내려놓고 갸르릉 거렸다. 오른발등에 침까지 묻혀가며 부드럽게 빗질하듯이 얼굴 주위를 닦고 있었다. ‘으흠,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거니! 고양이가 말할 리가 없잖아. 민수와 지영이 엄마랑 상담하느라 너무 피곤했었나? 이젠 환청이 다 들리네.’ 애써 태연한 척하며 핸드백을 둘러메고 교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에 서늘한 목소리가 다시 지우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차 타고 가면 안 돼.” 고양이는 꼬리를 한껏 부풀리며 말했다.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니?” “그럼 여기 당신 말고 또 누가 있는데……” 지우는 차마 뒤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선은 출입문 손잡이에 고정한 채 언제든지 비명을 지르며 복도로 뛰어나갈 기세였다. “왜 차를 타고 가면 안 되는데?” “왜냐면, 오늘 차를 타고 가다가는 사고를 크게 당할 거거든.” “뭐? 차 사고가 크게 날 것이라고?” “그렇다니까.” 고양이는 귀찮은 듯 크게 하품을 해댔다. “근데, 너 이름이 뭐야?” “이름? 원래 이름은 비체. 하지만 언젠가부터 블루 데블이라고 불렸지.” “비체라고?” “통성명도 했으니, 후후, 블루 데블을 불러내는 방법을 어
이역만리 낯설은 땅 보는 이 없이 홀로 영고의 몸이었는데 145년 만의 귀환 이제야 내가 태어난 곳 조국의 품에 돌아오도다. 내 이름은 외규장각 의궤 감회어린 만남. 보아야 할 사람들이 보는 것 보여줄 사람에게 보이는 것 아침부터 많은 인파 그대 보려 줄 서 기다리네. 조선 시대의 기록문화의 꽃 화려한 긴 행렬 참으로 장관일세. 아직도 그때 그 시절 살아 숨 쉬고 감추어진 숨은 이야기 하나 하나 보여 주니 만남의 환희 그칠줄 모르네. 오늘도 끝없이 이어지고 최 단 원장 -<순수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쟁문학회 이사 -광진문학 고문 -순수문학회 부회장 -치문회 회원 -최단치과의원 원장 -<한국전쟁문학상> 시부문 본상 -<순수문학> 시부문 본상 -저서 《사진과 함께하는 나의 세계 문화 기행시 上.下》, 《미선나무》, 《노을의 미소》, 《영운당의 풍령》, 《나, 허수아비》 등
반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교실에 혼자 남아 있던 지우는 자기도 모르게 ‘후유~’하고 한숨을 내질렀다. 오늘 하루도 별일 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여지없이 문제가 터졌다. 오늘 짝이 된 지영이와 민수가 주먹다짐을 한 것이 다. 민수 말로는 지영이가 먼저 머리를 때렸다지만, 그렇다고 지영이 머리를 벽에 밀친 민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들로부터 오후 내내 번갈아 가며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학교업무는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우는 멍하니 빈 교실을 응시하다가 퇴근할 시간이 30분이나 지난 걸 알게 되었다. ‘참, 6시에 영미 학교로 태우러 가기로 했는데, 깜빡 잊었네.’ 영미는 지우가 지난해 근무했던 학교에 동학년 선생님이었다. 허겁지겁 책상 위에 소지품들을 핸드백에 던져 넣고, 호주머니 속에 만년필을 꺼내는 순간에 100원짜리 동전이 교실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교실바닥은 삐걱대는 오래된 목재로 돼 있어서 이음새 부분마다 틈이 있었다. ‘톡! 또르르~’ 지우의 눈이 바닥에 떨어진 100원의 궤적을 좇아갔다. 동전이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기차 바퀴처럼 바닥을 구르다가 그만 틈새로 빠져버렸다. “힝~ 내 행운의 동전!” 할아
하늘과 땅의 기(氣) 어우러진 신비한 안데스 산려(山麗) 구름과 바람 신(神)의 도시 숨겨 놓았고 가슴 설레는 마추픽추에 오르니 하늘을 찌르는 와이나픽추 영기(靈氣) 서린 천봉에 구름 넘나들고 신 앞에 한발 다가서는 느낌 천공(天空)의 도시 산정(山頂)에 자리한 소우주 불가사의한 석축 도시 태양신을 섬기는 잉카의 실존을 보여 주고 백천단애의 심연(深淵) 우루밤바강이 휘돌아 흘러 아마존 대하로 간다 청청한 하늘 이 신성한 땅에 오늘도 태양 빛 쏟아지고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 나그네의 발길 끊이지 않네 최 단 원장 -<순수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쟁문학회 이사 -광진문학 고문 -순수문학회 부회장 -치문회 회원 -최단치과의원 원장 -<한국전쟁문학상> 시부문 본상 -<순수문학> 시부문 본상 -저서 《사진과 함께하는 나의 세계 문화 기행시 上.下》, 《미선나무》, 《노을의 미소》, 《영운당의 풍령》, 《나, 허수아비》 등
차 문 호 교수님을 기억하며 차문호 교수님(車文豪, ’24.7.4~’76.7.20)을 만난 것은 3 학년 소치(소아치과학) 강의시간이었습니다. 반듯한 정장에 당시로는 드문 나비넥타이를 매고 “내레, 내레~” 하시는 등 진한 평안도 사투리를 섞어 웃음도 없이 최신 소치학 원서 한권을 형태학부터 성장발육, 병리학까지 강의 하셨습니다. 당시는 전공 교과서의 한 장을 선정해 강의하거나 결강, 휴강이 흔한 때였습니다. 교수님은 평남 선천군 수청면 학현동 51번지에서 출생하시고 신의주 동공립중학교(6년제 ’43.3.20)와 서울대 치대(1회 ’47.7.11)를 나오시고, 문교부 영어학교를 수료(’47.1~’48.1) 후 주한 미국대사관병원 치과(’49.4.10~10.30)와 미국 워싱톤주립대 치대서 소치학을 수학 하셨고(’54.9.14~’55.8.9) 미국 미네소타대 치대서 연수(’78.3~5) 하셨습니다. 뉴질랜드 웰링톤 치과학회 WHO(’54.5~6), 덴마크 코펜하겐 소아치과서 연수(’67.3~6) 하시고 싱가폴 세미나 (’81.3~4)에 참석 하셨습니다. 당시로는 드물게 미국, 뉴질랜드, 덴마크, 싱가폴 치대서 연수나 방문, 국제적 안목을 넓히시어 외국인 방문자
낭만이 흐르는 포구 포구를 둘러싼 산등성이엔 그림 같은 집들이 숲속에 숨어 있다 북대서양의 풍성함이 집결하는 베르겐 어시장 비린내가 섞인 싱싱한 해산물 뜨거운 삶의 현장을 본다 나 어릴 때 즐겨 부르던 솔베이그의 노래 그 고향 베르겐 그리그(Grieg)의 기념관이 베르겐에 있었다 한적한 베르겐의 교외 바닷가 산등성이에 그리그가 살았던 아담한 집 한 채 울창한 숲길 따라 바다로 내려가면 벽처럼 깎인 바위벽 속에 그의 무덤이 있다 무덤 앞에 서서 바다 바라보고 그의 노래 소리 죽여 불러본다.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또 봄은 가네 그 여름날도 가고 세월이 가네 세월이 가네 그대는 나의 사랑하는 님 내 사랑이여 내 정성을 다해 나 사랑하리라” 최 단 원장 -<순수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쟁문학회 이사 -광진문학 고문 -순수문학회 부회장 -치문회 회원 -최단치과의원 원장 -<한국전쟁문학상> 시부문 본상 -<순수문학> 시부문 본상 -저서 《사진과 함께하는 나의 세계 문화 기행시 上.下》, 《미선나무》, 《노을의 미소》, 《영운당의 풍령》, 《나, 허수아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