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에 사람이 있고 없음에 따라 체감온도가 달라지는 것은 서로간의 조화된 호흡과 체온이 만들어주는 따스함도 있겠지만, ‘곁에 있어 든든함’이 그 따스함을 훨씬 더 배가 시켜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겨울 추위를 잘 이겨내는 비결은 ‘서로 함께 함’이 아닐까요? 송년, 지난 한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때론 험난하기도 했지만, 당신이 곁에 있어 행복했고, 아름다웠습니다. 더욱 더 빛나는 당신이 되도록 하기 위해, 앞서서 어두운 장막을 걷어내고, 희망 가득한 새해를 준비하겠습니다. 당신의 행복이 우리의 사명이고, 기쁨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나보다 두 살 연상이니, 살아 계셨으면 듣는 대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이순(耳順)이시다. 어린 시절 작은 형은 가끔씩 자기보다 몸집이 훨씬 큰 선배 형들과 다투었고, 그때마다 우리 집 대문을 쿵쾅거리며 핏대를 세우고 들어오신 아주머니들은 결국 못난 제 아들만 나무라며 발길을 돌렸었다. 막내 동생뻘에게 맞았으니 창피해서 말도 못하겠다고. 점심시간 직전에 다급한 아버지와 호기부리는 아들이 얻어맞은 친구 녀석을 데리고 들어왔을 때, 불현듯 떠오른 작은 형님. 무던히도 많은 사고를 치셨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되지는 말아야 할 텐데……. 다행입니다. 아예 부러지지는 않았으니 빼지는 않아도 되겠네요. 피해자 가해자로 나뉘어 선 부모들에게 긍정 가득한 말로 설명을 해주고 서로를 안심 시킨다. 진료를 마치고 주먹 쓴 녀석의 아버지가 지갑을 꺼낼 때에 애타는 심정을 갖고야 말았다. 당신의 한 손이 절단되어 있구나. 호기만 부리는 녀석을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지는 아리한 마음을 간신히 참아야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가슴에 못 박고 간 자식이라 애타는 부모의 심정을 돌아간 형님은 알고 계실까? 그래도 오늘 문득 형이 몹시도 그리운 것은 그 시절엔
자기 이득만을 노리는 자는 흙탕물을 받아 진탕을 만들고, 두 손에는 진흙을 들도록 부추깁니다. 반면, 바른 신념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자기 팔의 아픔은 참아내면서, 다른 이들을 위한 길잡이 횃불을 높이 치켜듭니다. 치의신보는 지난 56년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치과의사와 치과계의 권익을 위한 횃불을 높이 들었습니다. 정부와 국회 등에 치과계를 위한 정책 수립을 요구하고, 국민들에게 바람직한 치과의사상을 정립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또한 치과계 내부의 임상과 학술뿐만 아니라, 봉사와 문화 발전을 위한 보도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치의신보는 영상미디어 시대를 대비한 전략, 디지털 시대에 맞는 광고 전략,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치과계 홍보 전략, 무한 경쟁 시대에 균형 있는 의료 환경 발전을 위한 전략 등 미래발전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여, 치과계의 공기(公器)로써, 치과의사와 치과계가 국민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고 스스로 자부심을 갖도록 언론을 선도하겠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그 습지에 작은 바람이 휘돌면 쭉정이로 남은 억새들의 속삭임이 들린다. 질척거리는 집착은 스스로를 속박할 뿐, 그리움 없는 사랑의 반감기는 가속된다고.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비밀이 많은 이는 부자라지만 그 부를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열쇠를 가져야하며 더 적은 잠을 자야 한다. 권태와 자학이 방황의 강가에 흐르는 밤 홀로 누워 깊은 숨을 뱉고 있을 때 그는 내게로 다가와 자유에로의 손짓을 보냈다. 부적응과 불신과 사랑 없음에 흐느끼고 있을 때에 그는 내게로 다가와 근엄함과 자상함으로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은화 같은 달빛을 실루엣으로 두르고 우뚝 선 그대, 어둠을 볼 수 있는 빛나는 그 눈동자. 그는 내게 다가와 하나의 전체로의 비밀이 되었다. 달콤한 밀회. 밤이 새워지도록 그의 등에 흐르는 땀을 가슴에 적시며 달리는 쾌감. 세상의 눈을 피하여 그에게서 삶의 방법을 배우고, 그에게로 자유에의 열정을 뿜으며 오랫동안 그대로 서 있었네. 낮과 밤은 서로 함께 할 수 없는가? 어둠 속에서도 밝음을 볼 수는 없을까? 강렬한 태양 아래 마음과 몸을 한껏 열어 젖혀 벌거벗은 몸으로 대지를 달리고 싶다. 차라리 독선의 쓴잔을 들이키고 싶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드러내고 싶은 나의 욕구에 그는 세찬 거부의 몸짓을 하였다. 오오, 나를 지배하는 또 하나의 나여 나를 놓아주오. 나는 너를 우리에 가두지 않는다. 너를
이집트 나일강을 지배하는 포악하기 짝이 없는 악어도 사람을 잡아먹고 나서는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상은 입을 벌리면 눈물샘도 같은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고, 눈물이 먹이를 삼키기 좋게 수분을 충분히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해준다고 합니다. 결코 애도를 표하기 위해 나오는 눈물이 아닙니다. 악어의 눈물은 흔히 거짓의 눈물, 위선자의 눈물을 비꼬기 위해 사용됩니다만, 본래의 의미를 모른 체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중 하나는 본인도 그 구성원인 모임의 이익에 반하는 치명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대의를 들먹이며 자기 합리화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일정 지위에 있는 사람이 조직의 규범과 목적을 자의적으로 결정지으려고 했을 때는 그 조직이 맞닥뜨려야 하는 위험도는 상상 이상으로 커집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소위 알권리를 내세우면서 아니면 말고 식의 무차별적인 허위사실 유포와 익명 투서로 인한 내부 고발로 외부 조직을 끌어들이는 행위로 인해, 최근 몇 년간 그 폐해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잘못의 인정이나 사과도
노란 낙엽이 가을 엽서처럼 켜켜이 쌓여가는 거리 달콤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고 슬퍼말아라. 붉게 화려했던 치장들이 조막손같이 쪼그라들어도 위축되고 망설일 것이 아니다. 눈 내리고 꽁꽁 어는 거칠고 혹독한 추위가 오기 전에 바람에 낡은 이파리들을 모두 떨궈내야만, 돌아오는 명년 봄 초록의 향긋함을 맛볼 수 있으리니…….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봄여름 내내 녹색을 보이던 나뭇잎은 가을이 되면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붉고 노란 색소들을 드러냅니다. 떨켜를 만들어 이파리를 떨어뜨리면서 수분과 영양소의 손실을 차단하고, 벌레의 침입을 막습니다. 찬 겨울을 이겨낼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낙엽이 실상은 생존을 위한 치열함의 산물입니다. 기온이 하락하면 녹색 엽록소는 파괴되고, 대신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과 노란 색소인 크산토필이 밤낮의 온도차가 클수록 화학작용이 더 활발해지면서 나타나게 되어, 울긋불긋 단풍과 은행 나뭇잎이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합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요즘 어른이 없다.”고 말들을 합니다. 미래가치에 대한 숙고도 없고, 그 성취 방향도 제시해주지 못하면서, 자기이익 만을 추구하는 미숙한 사람들이 그 조직을 좌지우지 하고자 주목받고 싶어 안달하기 때문에,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말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리더로 세워야 할까요? 아니, 몇 번의 시행착오와 뼈저린 반성이 있어야만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리더를 뽑을 수 있을까요? “내가 리더야 ”라고 외치면서 깃발을 자기만 들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을 리더로 인정해줄 수 있을까요? 회원이 선택한 리더를 리더로 인정 못하겠다면서 조직의 안위와 가치에 대한 보호 사명 따위는 개나 줘버린듯이 난도질하는 사람을 울며 겨자 먹기로 인정해줘야 할까요? 리더를 흔드는 것은 그 조직 전체를 흔드는 것과 다름이 있을까요? 다원주의 사회에서 각각의 조직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에 따라서 추구하는 원칙과 목적 등을 구현하고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추구하는 목적이 더 클수록 경쟁 역시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그럴 때 일수록 구성원간의 일치단결이 강조됩니다. 전문가 집단이 더 많은 견제를 받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망가뜨릴 만큼 망가뜨린 후에 그 조직의 리더가 되
“시기와 질투는 너의 힘이 아니다. 오히려 너의 약점을 드러내는 치명적 결함이다.” <에피소드 #1> 따르르릉~ 남쪽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동호회서 만난 동생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행님아~ 혹시 네*버 사진관련 카페에서 활동하는 머시기에게 사진 준적 있나? 아무리 봐도 행님 사진인데, 그노마가 지 사진이라고 우기고 있는 기라. 후딱 확인 해봐라마~” 존재감 제로인 제 사진을 뭐 하러 가져갔을까 생각하면서, 해당 게시글을 찾아가 보니, 뜨악~ 조회수가 1만 5천여 건에 댓글이 1,000개쯤 달렸습니다.“ 와~ 역시 작가님 최고예요~” “가을이란 이렇게 표현을 해야하는 거군요~” (비슷비슷한 찬양이 쏟아집니다.) 거기에 그 작가님의 코멘트도 군데군데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우연히 촬영한 사진인데....(운운). 여러분도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시면 충분히 촬영하실 수 있습니다. (운운).... 제 사진 강좌도 많이 구독 사랑해주세요~” 나름 그 분의 소셜포지션을 생각해서, 점잖게 이메일로 사진 출처를 밝혀주실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며칠간 답이 없어서, 직접 그 게시글에 댓글로 촬영 원작자의 신분을 밝히고,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대신
50대 후반의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입니다. 좋은 꼴 싫은 꼴을 많이 보기도 하고, 또 보여주기도 했을 텐데도 지금껏 잘 참아낸 당신의 인내에 경의를 표합니다. 지금 당신은 더 이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받지 못한다는 체념으로 가득 차, 힘없이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가련한 처지가 아닙니다. 세월이 만들어준 순화된 감성은 다른 이들의 원함을 더 잘 받아들이고 보듬어줄 준비가 된 것이고, 은은한 미소가 만들어낸 주름은 넉넉하고 너그러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해주었고, 느릿한 음성은 굳이 힘껏 내지르지 않아도 저 멀리까지 당신 마음의 소리를 퍼지게 해주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차귀도는 죽도, 지실이섬, 와도의 세 섬과 작은 부속 섬을 거느린, 제주에 있는 무인도중 가장 큰 섬이라고 합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아름답고 다양하게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근처의 수월봉 높은 정자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평안한 느낌과, 지금처럼 약간 북쪽의 해안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또 다르게 다가옵니다. 평안히 누워있는 망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힘차게 대양을 향하는 고래이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무엇일
알프스 산맥의 많은 산 중에서도 가장 높다는 몽블랑(Mont Blanc, 해발 4,807m)은 ‘흰 산’ 이란 뜻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에 위치하여 국경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실제 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닌, 자존심 싸움에 가까운 것입니다. 관람을 위해 방문한 에귀뒤미디(Aiguille du Midi, 해발 3,842m, 한낮의 바늘) 봉 정상에 설치된 전망대는, 프랑스의 샤모니 마을에서부터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는데, 정상부근을 빠른 속도로 오르내릴 때는 놀이기구를 타듯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늘 함께하면서도 특별한 느낌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것, 그것은 바로 ‘공기’입니다. 실제로 공기에도 무게가 제법 있어서, 1기압에서는 1세제곱미터 당 1.2kg이나 됩니다. 단시간에 고지에 빠르게 오르면서 산소부족으로 나타나는 증세가 고산병인데,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구토 증세와 호흡 곤란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늘 곁에서 지켜 주고 있었으나,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감사함도 표하지 못하여, 떠난 뒤에야 비로소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은 못난이들의 숙명입니다. 휘청거리게 취했을
오늘 올린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4만7천명 이상이 감상하고, ‘좋아요’를 현재도 외쳐주고 계십니다. 다국적 대상의 사진 콘테스트에서 제법 큰 상도 수상한 작품입니다. 대한민국 공군 에어쇼팀 'Black Eagles'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데 작은 기여를 했다고도 생각합니다. 촬영 후 여러 해가 훌쩍 지났지만, 그때 비행장 근처의 야트막한 야산 언덕 위를 빽빽이 메웠던 카메라들과 결정적인 순간을 낚아채기 위해 집중하던 수많은 눈들을 기억합니다. 난생 처음 에어쇼 장면을 촬영해보겠다고 며칠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진 작품들을 열심히 검색하고 분석해보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이후로 몇 번을 더 에어쇼에 가면서 비행 순서를 외울 정도가 되니, 좋은 장면을 촬영해야겠다는 긴장감이 반대로 점점 떨어지더군요. 사진 촬영하는 장비를 신형으로 늘리고, 테크닉을 기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지만, 저 사진 이후로는 늘 아쉬움만 쌓여갑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애초에 제목은 ‘악마의 손톱 (The Devil's nails)’으로 출품 하였습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손톱을 발톱으로 수정하였습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 할퀴고 쥐어뜯고자 하는 네 발의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