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Eliot에 의하여 가장 잔인한 달로 묘사된 4월입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꽃들도 제각각 아름다움을 뽐내고,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펴게 되는 봄이 왔건만, 왜 잔인하다고 절규했을까요? “산업과 과학문명의 추구가 가져온 욕망과 탐욕이 가난했지만 오히려 따뜻한 인간애 넘치던 사람들을, 풍요롭지만 거친 약육강식의 사회로 내몰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시인의 안타까움의 표현”이라는 누군가의 감상평을 보았습니다. 절실함과 간절함이 소원을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닙니다만, 정당성을 부여받고 동조를 얻기에는 꽤 효과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절실함이 도를 넘는, 즉 분수를 넘어 욕망으로 바뀔 때는 거꾸로 상대편과 갈등을 유발하고 대립하게 됩니다.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알려진 해태(獬豸)상은 광화문 양쪽에 놓여 경복궁을 지키면서 대한민국을 알리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중국문헌 [이물지(異物志)]에는 해태를,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은 보면, 바르지 못한 자를 뿔로 받는다. 사람들이 서로 따지는 것을 들으면, 옳지 못한 자를 문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자 형태의 머리에 큰 코와 수염이 있고, 구름 같은 갈기를 하
예전에는 지천에 널린 꽃이라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시멘트와 오염수로 인하여 마을에서는 설 땅을 잃고 점점 산중으로 밀려나는 처지가 서글픕니다. 예쁘다 보고가기만 해도 좋으련만, 자기 사진만 남기고 짓밟아 버리는 비양심은 이제 그만. 질투는 당신의 힘이 되지 못합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오늘 올린 꽃은 [얼레지]라는 꽃입니다. 이파리에 얼룩무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재무릇]이라고도 합니다. 이른 봄에 만나는 야생화들이 다 예쁘고 반갑습니다만. 꽃잎을 뒤로 말아 올리고 도도하게 유혹하는 얼레지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봄꽃의 여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지요. 꽃말은 ‘질투’도 있습니다만, 산바람에 춤을 추는 모습은 영락없는 ‘바람을 만나 여인’입니다. 대개 보라색을 띄는데 저렇게 흰색으로 드물게 피어납니다.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경배하듯 납작 엎드려 촬영을 하여야 합니다. 나물로도 맛있게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깊은 산중으로 찾아가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사진 찍고, 몇 시간 후 하산 길에 다시 가보았습니다. 꽃대가 꺾인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고 허탈함이 밀려들어 한동안
시샘하듯 눈이 내려도 봄을 막지 못합니다. 낮은 계곡에는 아직 두꺼운 얼음이 얼어있어도 높은 골짜기에 햇살과 따뜻한 기운을 가진 바람이 스며들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꽃들은 머리를 듭니다. 혹시라도 밟지 않으려 조심조심 발밑을 살피며, 이제 막 녹기 시작하여 졸졸 물소리를 내는 청량한 계곡을 거슬러 오릅니다. 양지바른 곳, 큰 나무들이 자라기 힘든 돌밭에 뿌리를 내리고 봄 햇살을 즐기는 변산 아씨(변산 바람꽃)를 만났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바람꽃을 뜻하는 서양이름은 아네모네(anemone)입니다. 그리스신화 속 미의여신 아프로디테의 연인인 미소년 아도니스가 멧돼지 사냥을 하다 날카로운 이빨에 찔려 죽을 때 피를 흘린 곳에서 생겨난 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어 아네모스(anemos, 바람)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같은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에 속하는 꽃들로 이른 봄부터 볼 수 있는 바람꽃으로는 너도 바람꽃, 나도 바람꽃, 꿩의 바람꽃, 변산 바람꽃 등 그 종류가 아주 많습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이른 봄 깊은 산 계곡에 몸을 납작 엎드려야만 볼 수 있는 야생화들이 아직 남아있는 겨울 추위 속에서도 서둘러 꽃을 피워내는 것은, 생명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절박함이고, 냉혹한 약육강식에 대처하는 방편입니다. 노루귀, 바람꽃 등 야생화들은 그 낮은 몸뚱이로는 봄 여름날 큰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넓은 이파리 그늘에 가려 햇살의 생명력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겨울과 봄 사이의 짧은 기간 재빨리 꽃을 피워 씨앗을 맺어야 새들의 먹이가 되어 새로운 땅에도 정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많은 야생화들이 예전에는 낮은 산지나 들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는데, 차츰 더 깊은 산골로 터전을 옮겨가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손이 타는 곳에서 살기가 팍팍하기 때문일까도 생각되어, 깊은 곳까지 찾아들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괜스레 민망해질 때도 있습니다. 내딛는 발걸음도 조심스레 몇 장의 봄꽃 사진을 담아봅니다. 오늘은 “노루귀” 입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개울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갯가에 얽혀있는 버들강아지는 단단한 겉껍질을 벗고, 보송보송한 솜털로 봄 마중을 시작합니다. 수수한 암꽃을 유혹하려함인지, 수꽃은 붉고 노랗게 화려한 막대사탕 모양의 꽃을 피웁니다. 버들개지라고도 불리며 장마철 홍수에 가지가 부러지고 찢겨서 물길 따라 떠내려가다가도 땅에 닿아 박히면, 다시 그 곳에서 강인하게 뿌리를 내려 무성한 군락을 이룬다고 합니다. 다발로 생겨난 가는 줄기가 많을수록 거친 홍수를 더 많이 견뎌낸 증거라는군요.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기 전, 한없이 저 멀리 있을 것 같은 봄이 바로 근처에 왔음을 처음으로 알려주는 갯버들. 겨울 추위가 아무리 매섭고 날카로워도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주기에 봄의 전령사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따스한 햇살아래 녹은 땅처럼 말랑말랑하고 여유로운 봄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걷는다면, 늦은 저녁 야경까지 서울에 있는 4궁 1묘(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를 하루에 모두 출사가 가능합니다. 우여곡절이 많은 경희궁까지 합하면 5궁 1묘가 되어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여타 규모가 작은 것들까지 합하면 서울 시내에는 꽤 많은 궁궐이 있습니다. 궁(宮)과 궐(闕)이 합쳐진 궁궐의 궁은 천자나 제왕, 왕족들이 사는 큰 건물을 말하고, 궐은 궁 출입문 양쪽의 망루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궁궐들에는 아주 많은 전각들이 있는데, 그 웅장함에 놀라기도 하고, 찬찬히 자세히 둘러보면 화려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나라의 근본인 만백성을 평안하게 다스려야할 임금의 거처였으니, 국가의 천년대계를 세우고 지키기 위함과 왕실의 안녕을 위하여 궁궐 내의 전각들도 함부로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궐내에 물길을 내고 산언덕을 만들기도 하면서, 위엄을 잃지 않도록 대전을 짓고, 높은 담으로 쌓인 답답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전망 좋은 루를 올리고, 자손의 번성을 위한 처소를 마련한 것들에는 치밀하게 풍수역학을 따지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왕실의 안녕이 곧 국가의 번영과 백성의 평안을 위하던 시대에도,
저 위에 오르면 무엇이 있을까? 저 위에 앉으면 무엇을 보게 될까? 내 소망과는 다른 것이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내 의도와는 다른 방향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옛 시간에 안주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몸짓으로는 계속 미끄러지기만 할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얻고 싶을 때에는 두려움에 앞서, 손익계산에 우선하여, 먼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 위에 올라도 나를 잃지 않을까?’ 자기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오를 수 없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몸에 힘을 빼야 비거리가 늘 듯, 과거와 지금의 나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빼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거나 뚜렷한 목표가 있는 조직이라면, 나보다 너와 우리를 우선시하는 미덕이 더 높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나를 높이기 위해 너를 밀어내지 않아도, 우리를 위해 준비된 [같이] 앉을 자리는 이미 충분합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이 빈말임을 믿습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피사체는 흔들려도(‘모션 블러’라고 함) 그것을 촬영하는 카메라 유저는 흔들림(‘핸드 블러’라고 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카메라와 더불어 튼튼한 삼각대가 필요합니다. 튼튼한 삼각대는 바람이나 걸림에 쉽게 넘어지지 않아서 비싼 카메라를 보호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그런데 삼각대를 쓰기가 힘든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일행이 있는 여행 중에 좋은 사진 찍겠다고 삼각대를 펴고 장비를 세팅하고 있으면, 촉박한 일정에 민폐가 됩니다. 오늘 사진의 ‘박각시’ 같이 빠른 움직임의 피사체를 촬영하고자 할 때, 혹은 근접하여 접사 사진을 촬영하고자 할 때에는 삼각대가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는 경우도 생깁니다. 삼각대가 없다면, 핸드 블러가 생기지 않을 만큼의 충분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손떨림 보정과 트래킹 기능이 훌륭한 카메라 바디, 구경이 커서 빠른 셔터스피드가 가능한 렌즈, 혹은 밝고 정확한 스트로보 등 장비입니다. 물론 더 중요한 요소는 그 장비를 가지고 흔들림 없이 촬영할 수 있는 강인한 팔과 피사체에서 초점을 놓치지 않고 유지하려는 고도의 집중력일 것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흔들리지 말아야할 것
일상에 길들여져 바쁜 척 외면하는 느리고 무심한 시선으로 시작하는 아침. 어제와 똑같은 하루는 없으며, 자연계에는 늘 생존을 위한 치열함이 가득하지. 우렁찬 굴림으로 무한의 시간을 지배하며 광대한 무대를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 이 행성에서, 우리는 스치듯 지나치는 여행자 조약돌 같은 추억을 담아가는 지구별 탐구자.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합창하듯 내쉬지는 않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대기에 숨을 뱉어냅니다. 너무 커서 인간의 귀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지금도 쉼 없이 구르고 있는 지구별에 잠시 들른 여행자일 뿐입니다. 지구 나이 45억 5천만년에 비하면 인간의 수명 100년은 너무 짧습니다만, 그 짧은 여행 동안 우리들은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경험하고, 때로는 사랑하고 미워하며 욕심도 부립니다. 만남이 있었기에 헤어짐은 필연이 될 것이고, 아름다운 헤어짐은 없다고 하지만, 아픔은 정화되고 순화되면서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됩니다. 그 만남이 만들었던 환희와 아름다움을 탐하던 기억들이 눈물 한 방울이 되어 지치고 메마른 가슴을 잠시나마 말랑하게 해주길……. 한진규 치협 공보이
80년 전후를 사는 사람은 1분에 12~15번 정도 숨을 쉬고, 10여년을 사는 개는 100번 정도 숨쉬기를 한다고 하고, 250년을 사는 거북은 1분에 겨우 3번 호흡을 한다고 합니다. 숨을 들이마시는 시간을 천천히 하고, 들이마시는 시간의 두 배 정도로 더 천천히 내뱉으면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없애고, 산소를 말단 세포까지 더 잘 보낼 수 있어서 더 건강해지실수 있다고 합니다. 숨은 코로 쉬면 방독면의 공기정화통과 같은 구조를 가진 광대뼈 내부에 있는 상악동이란 곳으로 공기가 들어가서, 깨끗하게 불순물이 걸러지고 따뜻하게 폐로 들어갑니다. 반면 입으로 숨을 쉬면, 공기 중의 온갖 잡균과 바이러스가 무방비로 폐 속으로 직행하면서 감기며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코로 천천히 숨을 쉬세요. 그래야 오래 사십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오래 사는 동물과 호흡수 사이에 정확한 인과관계가 규명된 것은 없습니다. 오늘 입안에 치료기구를 넣기만 하면 구역이 심한 환자분에게 조용히 귓속말로 위와 같은 ‘오래 사는 비법(?)’을 전수해 드렸더니, 훨씬 수월하게 진료를 마칠 수 있어서 소개해 올립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대령하라.”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요리를 대령하라.”는 상반된 명령에 지혜로운 노예 이솝은 두 번 모두 소의 [혀]를 쟁반 위에 담아내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말인 감언이설과 가장 듣기 싫은 고언을 모두 낼 수 있기에, 혀만큼 맛있다가도 입맛 떨어지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요? 치과의사의 진료를 힘들게 하는 입 안 구조물 중 최대의 난적도 바로 [혀]입니다. 혀로 인해 시야가 방해되고,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습니다. 고급 바둑판을 뒤집어 보면 그 가운데에 움푹 파인 구멍이 있습니다. 향혈(響穴)이라 하여 돌을 놓을 때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해 팠다고도 하고, 나무의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향혈은 혈류(血溜)라고도 부르면서 또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었는데, 바로 훈수꾼의 혀를 잘라서 그 피를 담았다고 합니다. 승부를 겨루는 와중에 섣부르게 훈수를 두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공인(公人)으로서 내뱉는 말 한마디와 글 한 줄이 갖는 책임은 천금보다 만금보다 더 무겁습니다. 말은 소리로 흩어지기라도 하는데, 글로 남기는 행위는
이른 아침부터 부모님과 마을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난 후, 햇살이 좋은 날에는 논 가운데 볏짚 속을 파고들어 숨바꼭질도 하고, 공터에 오징어를 크게 그려 놀기도 하고, 나이 먹기 가위바위보 놀이도 했지요.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벙어리장갑이 다 젖도록 눈사람 크게 만들기 시합을 하고, 편을 갈라 눈싸움에 엉엉 울음이 터지기도 하였습니다. 동네 언덕길에서는 비료포대 썰매를 타고 냇가에서는 앉은뱅이 썰매 타느라 해 떨어지는 줄도 몰랐지요. 가래떡은 장수(長壽)와 집안의 번창(繁昌)을 위해 길게 뽑고, 엽전 모양으로 둥글게 썰면서 재물운(財物運)이 계속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순백의 쌀떡과 맑은 국물은 좋지 못했던 지난 것들은 잊고, 새해에 새롭게 시작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 그리고 사촌들이 둘러앉아 받았던 설 떡국에는 꿩고기를 넣어서 끓였습니다. 꿩 구하기 힘들 때에는 식감이 비슷한 질긴 폐계(廢鷄) 살을 넣기도 했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넉넉함]은 눈이나 머리보다 마음으로 먼저 담아낼 때에 비로소 그 여유로운 맛도 잘 느껴지는 구나’를 깨닫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시절 어린 마음에 살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