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자 치의신보에서 필자가 쓴 글을 읽기 시작하자 곧 식은땀이 났다. 아뿔싸! 치매(癡?)의 전조(前兆) 증상인 것인지, 1975년 ‘국내에 치과대학으로 하나 뿐인 서울치대’라고 썼던 것이다. 그 당시 경희치대와 연세치대는 물론 조선대와 경북대에도 치의예과가 있었는데 그만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며칠 전 후배 치과의사로부터 ‘보험이야기’를 계속하라는 격려 전화까지 받았는데 이런 실수를 했으니, 곧바로 반성하는 바이다. 각설(却說)하고, 지난달 치주과학회 학술대회에 참가한 회원들에게 대국민 홍보용 동영상 CD를 제공해 좋은 평가를 얻었다는 전문지 기사를 읽었다. ‘치주 질환, 우리 몸을 위협한다’라는 주제의 그 동영상 자료는 치주건강 홍보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했다.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치과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대국민 홍보’라고 했는데, 치주과학회의 시도는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국민 홍보와 더불어 궁금한 것이 있다. 즉, ‘기본에 충실한 치주치료를 할 자세를 갖춘 동료 치과의사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것이다. 참고로, 2001년 6월 심평원의 심사직원으로부터 ‘Scaling, PTC 및 Root plan
독일의 니체는 그의 유고인 권력의지 ; Will zur Macht에서” ‘허무주의란 무엇이냐?’에서 최고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인데 왜?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허무요, 무목적이다.’라고 말한 실존철학은 많은 현대인들을 ‘절망과 소외’속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라고 성경은 제시합니다. 인생은 만남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세 가지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님과의 만남, 둘째는 배우자와의 만남, 그리고 세 번째는 절대자와의 만남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서는 건널 수 없는 ‘죄와 죽음’의 강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만남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까? 불교경전 ‘法句經’에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만남의 종교입니다. 인생의 만남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진리와의 만남, 생명과의 만남입니다.
독일작가 ‘괴테’는 “하늘에는 별이 있고, 땅에는 꽃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엔가 오아시스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사랑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한 세상이 되고 말까요?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교수를 지냈던 칼 힐더(1833~1909)의 묘비에는 “Arnor Omnia Vincit”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생애에는 세 가지 질서가 있습니다.첫째, 힘의 질서입니다. 폭력이나 물리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방법입니다. 링컨의 말과 같이 물리적인 폭력으로 승리한다 할지라도 그 승리의 기간은 짧은 것입니다.둘째, 법의 질서입니다. 법이나 정의나 규례를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벙법입니다. 이것은 냉랭하고 인간미가 없습니다. 셋째, 사랑의 질서입니다. 사랑의 힘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가장 높은 차원이요 또 최고의 이상 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폭력을 이기고 증오를 이깁니다. 신앙생활에는 율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용한 것은 은혜와 사랑입니다. 맹자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했습니다. 어
지난 1975년 미국 위스콘신주 치과의사 여러 명이 관광차 서울에 오면서 치과대학을 방문하고 싶다고 해서 당시 국내에 하나뿐인 서울치대를 안내한 일이 있다. 이때 인솔자인 치과의사 Jacobi가 자신이 저술한 것이라며 건네준 책자의 제목이 ‘A Dentist"s Flight Manual To Success(1974, 수정판)’로 치과의원의 경영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다소 생소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 이후 한국에서도 의원 경영에 대한 논의가 시작 됐으며 그 내용은 비교적 소박한 수준으로 기억한다. 이후로는 소위 ‘마케팅(Marketing)’이라는 의료분야와는 비교적 덜 어울리는 듯한 단어도 인용되기 시작했다. 오늘에 와서는 ‘의료산업’이라는 용어가 익숙해지면서 한편으로는 ‘의료상업화’를 걱정하기도 하는 상황이다. 최근 전문지의 1면 기사 제목이 “환자알선과 영리법인 최초 허용”과 “제주도 보건의료 특별법 시행…전국 경제자유구역 확대 움직임”이었고, ‘의료서비스 선진화와 규제개혁’ 세미나에서는 의료기관의 ‘영리법인’ 즉 출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의 허용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얼마 전 일간지 경제면에서는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진료행위에 대한 심사과정은 전문직인 의료인들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나 순기능도 있는 듯하다. 즉 심사를 통해서 다양한 소신진료의 양태가 노출되는데, 이들이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2008년 3월 현재 심평원에 신고된 전체 의사 수는 6만8156명이고, 의원은 2만6217개소이다. 또한 치과의사는 1만8916명이고, 치과의원은 1만3404개소이며 치과병원은 157개다. 1998년에는 치과의원 9742개소에 치과병원이 33개였으니, 10년 전에 비해 병원은 5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전체 의사의 3분의 1, 치과의사는 4분의 3이 의원급에서 진료를 하고 있어 치과는 의과에 비해 단독 개원이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독 개원해 진료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학술 정보의 교환이나 신지식 습득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서인지, 심평원에서 심사 일을 하는 동안 납득하기 곤란한 주장이나 진료 행태들을 적잖이 볼 수 있었다. 심사업무 속성상 보편타당한 범주의 소위 적정한 진료행태를 접할 기회는 별로 없으며 주로 문제가 있는 사례들을 접하게 된다. 예를 들면 ‘나는 모든 치근활택술은 마취하에 시행한다.’ 와
흔히들 요즈음을 가리켜 불안(不安),불신(不信),불망(不忘)의 3불(三不)의 시대라고 합니다. 정치나 경제 현실로 보면 우선 불안하고 믿을 곳이 없고 희망을 가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365번이나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루에 한 번 꼴로 걱정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염려는 ‘메림나오’(merimnao) ‘곧 마음이 나뉘어 진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양팔을 두 마리의 말에 각각 묶어 놓고 달리게 하는 것과 같다는 뜻 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입니다. 마음가짐은 사물을 보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인간의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에이브람 링컨은 “인간은 자신이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행복해 진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외적 조건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심리학자 ‘월리엄 제임스’는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이 자기 마음자세를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잠언18장 12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은 르네상스시대의 천재적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1495년에 시작해 1497년에 완성한 것인데, 다빈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예수와 열두제자를 그리기 위해 3년 동안 성경연구는 물론 많은 자료를 수집하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특히 예수님과 가롯유다의 모습은 참으로 그리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빈치는 예수님의 모델을 찾기 위해 밀라노의 어떤 교회로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다빈치는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아주 멋진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피에트로 반디네’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환하면서도 엄숙하고 거룩하면서도 인자한 모습이 예수님의 모델로는 적격이었습니다. 그 후 열두제자를 그리던 다빈치는 맨 마지막 가롯 유다의 얼굴을 그리려는데 막상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시작한지 두해를 넘기 게 된 다빈치는 생각다 못해 유다의 모습을 찾아 감옥에 가게 됩니다. 거기서 한명의 죄수와 마주쳤습니다. 그의 교활하고 야심에 찬 듯하면서도 절망적으로 일그러진 모습에서 자신이 찾고 있는 가룟유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다빈치는 죄수에게 모델이 돼 주기를 청했습니다. 말없이 괴로운 표정을
대통령직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고위공무원이 한 말,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요즘도 그네들의 소신 없음을 지적하는 표현으로 인용되고 있다. 심평원에서 상근심사위원은 법적으로 공무원이 아니었으나 영혼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극과 극은 모두 위험 하다고 알고 있는 터라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이름’은 남이 불러 주는 것이라 나 자신조차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영혼이 있는 공무원’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이가 있어 소개를 해본다. 2003년 11월 심평원은 구강병리를 전공한 치과의사가 치과대학 부속병원 구강병리과 또는 치과대학 구강병리학 교실에서 시행한 검사료(해부병리조직검사)는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당시 ‘검체검사 위탁에 관한 기준’을 보면 제3조에 수탁기관은 ‘의과대학 기초의학교실 또는 진단검사의학교실(과·부 등)’, 상근해야 하는 인력은 ‘병리과 전문의와 임상병리사’로 명시돼 있어 수탁기관 자격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점과 병리과 전문의가 아니어서 급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구강악안면 병리학회장 김 진 교수와 치협은 심평원과 복지부에 공문을 통해 급여 중단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심평원에서
이집트 스핑크스의 전설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가진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낸 후, 대답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모두 죽였다고 합니다. “아침에는 네 다리로 걷고, 점심때는 두 다리로 걷고, 저녁에는 세 다리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정답은 “인간”입니다. 아기 때는 기어 다니고, 젊어서는 서서 힘차게 활동하지만, 늙으면 지팡이에 의존하니 세 다리가 되는 셈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 나오는 질문의 첫 번째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인 동시에 사람의 본분이기도 합니다. 누구보다도 화려한 인생을 살았고,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렸던 솔로몬이 노년에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그 자체가 허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 인생은 그 근본이 영원한 하나님과 연결돼 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와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주축이 돼 치과분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사업을 이달 중으로 시작한다. “돈 걱정 없는 아이들 치과의료, 부모님에게는 씹는 즐거움을”, “1%가 아닌 100%를 위한 치과의료, 급여확대만이 대안입니다” 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치과보험급여 확대 운동을 벌린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줄곧 내세운 스케일링과 노인 틀니 보다 ‘아동 청소년 주치의제’를 급여확대의 우선 목표로 삼았으며, 치협 이수구 회장도 지난 2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유아미취학 아동 및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동네 주치의제도’도입을 제안했다고 한다. 1921년 뉴질랜드에서 시작된 학교구강보건관리사업을 본보기로 삼아 이제라도 어릴 때부터 구강건강을 관리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이는 그 필요성에 대한 근거를 제대로 마련한다면 국민들이나 정책 결정자들에게 수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건치 정책사업 팀장은 ‘아동주치의제’에 필요한 재정을 8천2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보다 철저한 명분과 근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건강세상 사무국장은 ‘치과급여 확대가 재정의 문제가 아닌 필수적인 건강권 확보의 문제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인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 그의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드디어 그의 유해가 미국 뉴욕에 도착하는 날, 뉴욕시가 생긴 이래 최대의 인파가 부두에 몰려 들었습니다.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소리가 울려 퍼졌고, 대통령과 국무위원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도열한 가운데 이 사람의 유해를 실은 군함이 입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사실은 이 주인공이 유명한 정치가도, 위대한 작가도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위대한 군인도, 과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작사한 단 한 곡의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마음속에 깊은 메시지를 띄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해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꽃 피고 새 우는 , 내 집뿐이라…” ‘홈, 스위트, 홈’의 작시자 존 H. 페인(John Ho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