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세상에나 어찌나 안심되든지 말이야. “춘식아~ 아까 혼이 어딨느냐고 아부지한테 물었냐?” “어딨어라? 아부지?” “사람 몸띵이에 혼이 어디 쪼매 들어 있는 게 아니여.” “……” “글씨, 몸띵이 빼고는 다 혼 이제.” “심장에 숨어 있는 게 아니어라?” “아니제. 춘식아, 엄마 보고 싶제? 동무들이랑 놀던 생각도 나고?” “두말하면 입 아프니더.” “엄마 보고 싶은 맴, 놀던 동무들 생각 그리고 아부지랑 이렇게 달밤에 걸은 기억까지 춘식이가 하늘나라로 갈 때 다 갖고 가는 겨.” “참말이어라?” “그럼 참말 이제!” 동리에 가까워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집집마다 개들이 연달아 청승맞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아부지? 아직 멀었어라?” “……아즉도 나가 느그 아버지로 보이냐?” “무섭게 와 그런데요 아부지~” “하하, 어디 보자, 저그 불 켜진 집이 큰집이여. 이제 다 왔나 보다.” 고 씨가 얘기를 마치자, 성만은 연기 때문에 눈이 맵다며 뒤돌아 눈물을 훔쳐냈다. 노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돌았다. “어째들 내 얘기가 들을 만하든가?” 어느새 드럼통 주변에 예닐곱 명의 남자들이 숨죽이며 모여 있었다. 성만이 충혈된 눈으로 고개를 주억거렸고, 나머지 남
여울 따라 들어가는 원림(園林) 향긋한 풀 내음 흙 내음 가슴에 싸이고 새소리 물소리 자연에 소리 귀속에서 녹는다. 죽림(竹林)을 벗어나니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오곡문(五曲問)을 만들어 휘돌아 흐르는 옥수는 앙증스러운 폭포가 된다. 세월은 이조 중엽으로 되돌아가는가. 옛 선비들의 풍류가 고풍스러운 제월당(齊月堂)에 녹아 있고 바로 앞 광풍각(光風閣)에는 낭낭한 선비들 글 읽는 소리 들이는 듯하구나 내 어찌 이제야 찾아왔단 말인가 세파에 찌든 몸 이곳에 눌러앉아 남은 세월 묻어 두고 싶구나. ------------------------ ※소쇄원 : 우리나라 사적 제304호로 지정된 곳으로 전라남도 화순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의 민간의 대표적인 원림으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로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운 곳이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학자 양산보가 조성하였고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당하여 죽게 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이곳에서 많은 학자들과 학문을 토론하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호남에서 으뜸가는 명승지로 일반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 단 원장 -<순수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회원
핸드폰을 쳐다보던 남자들의 시선이 일순간 노인에게 집중되었다. “아부지? 사람의 영혼이 어디에 있대요?” “영혼? 그건 갑자기 와?” “영식이가 오늘 학교에서 사람의 영혼이 어딨는지 아느냐고 묻길래 ‘머릿속에 있지 어디 있어’ 했더니, ‘빙신이야~’ 우리 대학생 삼촌이 그러는데, 영혼은 심장 제일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 있대요.” 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박진 고개에 닿았지. 우거진 숲속은 달빛이 비쳐들지 않아서 마치 시커먼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어. 갑자기 공동묘지 근처에서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네. 이미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이었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한밤중에 아이들이 몰려다닐 곳이 아니었어. 먹구름이 희미한 달빛 조각마저 무심하게도 날름 삼켜버렸지. 한밤의 아이들 목소리는 점점 또렷이 들려왔어. ‘누가 내 주먹밥 훔쳐 먹었어? 간난이 너지!’ ‘난 아니야. 오라버니! 맨날 자기가 먹어놓고 나한테 뒤집어씌우고 그래.’ ‘이 가시나가!’ ‘아아, 앙~ 왜 때려. 이 거짓부렁이 오빠야.’ ‘이게 진짜, 어리다고 봐줬더니.’ ‘조용히 좀 해, 저기 사람들 오잖아.’ ‘우리가 노랠 부르면
비 온 뒤에 아침 고요 싱그러운 맑은 공기 가을의 내음 토하고 오색의 국화 향 우리를 반긴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계절 따라 보여주는 너의 화사한 자태 전망대에 오르니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아침 고요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다 이제 아침 고요는 너만의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것으로 자라났구나. 드높은 하늘 아래 오늘도 수많은 인파 찾아오니 아침 고요가 아니라 아침 소요일세 그래도 초록빛 바다 너의 품속은 생명력의 젖줄 즐거운 하루 놀아 볼꺼나 최 단 원장 -<순수문학>으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쟁문학회 이사 -광진문학 고문 -순수문학회 부회장 -치문회 회원 -최단치과의원 원장 -<한국전쟁문학상> 시부문 본상 -<순수문학> 시부문 본상 -저서 《사진과 함께하는 나의 세계 문화 기행시 上.下》, 《미선나무》, 《노을의 미소》, 《영운당의 풍령》, 《나, 허수아비》 등
“생각할수록 참으로 이상한 밤이었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해. 내가 이제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됐는데도 말이야.” 7호선 남구로역 새벽 5시, 예순이 넘은 노인의 얼굴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한 표정이 깃들었다. 큰 두상에 통뼈로 타고 나서 젊은 시절에 힘꽤나 썼을 법한 체격이었다. 고 씨의 고향은 경남 의령군 부림면 경산리라 했다. 지난해 새벽 인력시장에서 고 씨는 성만과 몇 번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노가다 일꾼을 구하러 온 십장의 트럭에 올라탈 때도 성만을 함께 부르는 법은 없어서 같이 일해본 적은 없었다. 다만, 주경야독하며 병든 노모를 모시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면서 3년째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고학생이란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성만은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여태껏 살아계셨다면 어르신과 연배가 같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검붉게 녹슨 드럼통 주변에 아직 잠이 덜 깬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작불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장작불이 뱀의 혓바닥처럼 드럼통 밖으로 날름거릴 때마다 어둠 속에서 남자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사라지곤 했다. 드럼통 안에 건축 폐기물에서 나온 장작을 얹자 불티들이
1927 경기도 용인 출생 1949 서울치대 3회 졸업 1969 예비역 치의 대령 대한치과의사협회 감사 1974 대한치과의사협회 총무 1980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 1967 대한구강보건협회 부회장 감사 고문 1967 대한치과기재학회 3-5대 회장 고문 1978 인공치아이식임플란트학회 초대 2대회장 1979 국제치의학사회 I.C.D. 평생회원 1982 서울대학교치과대학동창회 부회장 1982 전주류씨 전양부원군 종중 회장 현) 종로구치과의사회 지도위원장 유 양 석 치과의원장 상훈 : 보국훈장 협회대상 서울치대동문상 수상 치아는 태어나서 생을 마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저작 운동을 해야 하는 제2의 심장(心臟)이다. 전신건강의 근본이며 전신발육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치아임을 생각할 때 구강 보건과 치아의 건강 없이 체력향상은 기대할 수 없고 체력향상 없이 전력배양이나 국력배양은 없다. 그래서 치아의 건강이 중요한 것이며 전신의 건강은 물론 개인의 행복과 국력에 관한 문제이므로, 조금도 소홀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젊고 건강할 때는 소홀이 생각하기 쉬우나 나이가 들수록 절실히 느껴지는 것이 치아의 건강이다. 결론은, 전쟁을 통해 치과 군의관들은 모든 고난
어릴 때 형이나 누나의 소풍날 새벽녘이면 어머니는 안방에서 김밥을 만드셨다. 자다가 졸린 눈을 배시시 뜨고 일어나 보면, 어머니 옆에는 김밥에 넣을 속 재료들과 시큼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갓 지은 밥이 놓여 있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손으로 집어 먹어 보면 익숙한 맛이었다. 도마 위에는 길 잃은 김밥 꽁다리들이 보였다. 크기도 작거니와 보기에는 볼품이 없지만, 비몽사몽 잠결에 하나씩 입에 넣었을 때의 기쁨이란 먹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소풍 전날이면 늘 설레며 잠들었다. “일찍 일어나는 아이 김밥 꽁다리 얻어먹는다.” 진심 이런 속담 하나 만들고 싶다. 퇴근길 저녁에 들른 김밥집 사장님에게 어렸을 때 어머니가 소풍 때 싸주셨던 시큼한 김밥을 팔면 어떠냐고 제안해본 적이 있다. 사장님은 손사래를 쳤다. “그럼 김밥이 쉰 지 알고 사람들이 난리 나요.” 사장님은 어릴 적 잠결에 일어나 시큼한 김밥 꽁다리를 드셔본 적이 없는 게 분명하다. 토요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들렀다. 김밥용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계산하려니 지갑이 없다. 아무래도 김밥은 내일 싸야겠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왜 어릴 때
1927 경기도 용인 출생 1949 서울치대 3회 졸업 1969 예비역 치의 대령 대한치과의사협회 감사 1974 대한치과의사협회 총무 1980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 1967 대한구강보건협회 부회장 감사 고문 1967 대한치과기재학회 3-5대 회장 고문 1978 인공치아이식임플란트학회 초대 2대회장 1979 국제치의학사회 I.C.D. 평생회원 1982 서울대학교치과대학동창회 부회장 1982 전주류씨 전양부원군 종중 회장 현) 종로구치과의사회 지도위원장 유 양 석 치과의원장 상훈 : 보국훈장 협회대상 서울치대동문상 수상 #치과기공문관 채용 치과기공사가 최초로 군에 채용된 것은 나의 건의로 이루어졌다. 보철기술하사관으로 근무하던 하사관들이 제대 후 갈 곳이 없어 고향에 가서는 군에서 배운 기술로 자격도 없이 잠행하여 무면허로 부정 치과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양성화하여 그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고자 군에 정식으로 취업할 수 있는 치과 기공 문관제도를 마련코자 건의한 결과 수용이 되었다. 그래서 1962년 제 5육군병원 근무 시 부산 서면에 성업 중이던 강치과의원에 근무하던 김(金)종태라는 기공사가 최초로 채용되어 잘 있는 사람을 빼내 갔다는 오
가족들에게 생색내기는 영화만큼 좋은 게 없다.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를 뜻하는 가심비로 최고라고 생각한다. 2015년 7월, 뷔페에서 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군산에 내려오면서 보려고 마음먹었던 영화는 <연평해전>이었다. 식사 중간에 스마트폰 앱으로 영화를 검색해보니, 아뿔싸 <연평해전>은 하루 전에 상영이 끝났다. 그래서 판타지 호러 영화 <손님>을 보게 되었다. 나는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면 으레 온 가족을 극장으로 초대해 영화를 본다. 여름 휴가차 떠난 제주도 애월읍에서도 9명의 가족을 태운 렌터카를 몰고 40여 분을 달려 영화를 보러 갔을 정도였다. 김광태 감독이 직접 쓴 영화 <손님>의 시나리오는 2013년 우연한 기회에 접한 《피리 부는 사나이》 책 소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중세시대 독일의 도시 하멜른(Hameln)에서 내려오는 민담을 기반으로 한 동화책 《피리 부는 사나이》는 쥐 사냥꾼 이야기와 1284년 6월 26일 하멜른에서 130명의 어린이가 행방불명된 이야기가 합쳐져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로 탄생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리에게 동화로 익숙한 하멜른의 &l
1927 경기도 용인 출생 1949 서울치대 3회 졸업 1969 예비역 치의 대령 대한치과의사협회 감사 1974 대한치과의사협회 총무 1980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 1967 대한구강보건협회 부회장 감사 고문 1967 대한치과기재학회 3-5대 회장 고문 1978 인공치아이식임플란트학회 초대 2대회장 1979 국제치의학사회 I.C.D. 평생회원 1982 서울대학교치과대학동창회 부회장 1982 전주류씨 전양부원군 종중 회장 현) 종로구치과의사회 지도위원장 유 양 석 치과의원장 상훈 : 보국훈장 협회대상 서울치대동문상 수상 #권위주의자의 횡포 자기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일에 간섭하고 깔보며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다. 권위주의자의 속성이랄까 윗사람에게는 약한 저자세로 아부 근성을 부리면서, 아랫사람에게는 가혹하고 야박한 세도를 부리려 한다. 상후하박으로 밑에 사람에게는 인색하고, 속담에 자기 밑이 구리면 남의 밑도 구린 줄 알고 남을 의심하고 자기 할 일을 제쳐놓고 남의 일에 간섭한다. 내가 현역에 있을 때 육군본부 의무감실에는 군에 동시에 입대한 동기생임에도 한 사람은 육군 소장으로 의무감의 권세를 누리고 있지만, 한 사람은 만년 대령으로 그 밑
오늘처럼 이렇게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전날 추수를 마치고 토방 위에 추수한 볏가마니들을 쌓아 놓고 비를 맞지 않게 방수포로 덮어두었던 날이다. 그날도 비가 온종일 주룩주룩 내렸다. 아버지와 나는 마루에 앉아 방수포 위에 시원하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아버지 앞에는 막걸리와 평소 술안주로 즐겨 드시는 문어 숙회가 놓여 있었다. 어린 아들은 술 드시는 아버지가 못마땅해 마지 못해 곁을 지켰다. 힘들었던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끝마쳤다는 후련한 표정이 불그죽죽한 아버지의 야윈 얼굴에 어려 있었다. 아버지는 술, 담배를 참 좋아하셨다. 그런 아버지 영향인지 나는 술 한 잔에도 취기가 올라 온몸이 벌게지는, 알코올 분해효소라고는 가뭄에 콩 나듯이 찾아보기 힘든, 몸을 갖고 있다. 그래서 술 한 잔에 시름을 덜고 스트레스를 날리는 애주가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내게는 미적분만큼이나 어렵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내가 이렇게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사드리면서 어리광도 부리고 그랬을 텐데. 뭐가 그리 급하시다고 서둘러 가버리셨는지……” 오랜 친구의 넋두리를 듣자니, 아버지 생전에 건강에 해로우니 술, 담배 좀 그만하시라고 버릇없이 잔소리만